지안카를로 파스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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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ncarlo Pasquini (지안카를로 파스퀴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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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모습)

페이스북

이탈리아의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1963년 2월 21일에 만토바에서 태어났다. 본명보다는 Dave Rodgers(데이브 로저스)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하다.
이탈로 디스코 뮤지션으로 시작해 유로비트 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으며, 테크노와 팝락 곡들도 발표했다.

1 예명 목록

다른 유로비트/이탈로 디스코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예명을 사용했다. 다른 가수들과 예명을 공유하기도 했다.

  • Dave Rodgers
  • Dave & Domino(알레산드라 미르카 가티와 듀엣)
  • Dave & Futura(에벨린 말페라리와 듀엣)
  • Dave & Karen/Karen & Dave(Karen J. Wainwright와 듀엣)
  • Dave & Meri(Meri Neeser와 듀엣)
  • Aki(지안카를로가 A-Beat C를 세운 후로는 일본인 여성 보컬인 사나다 세츠에가 이 이름을 사용)
  • Aleph(Super Eurobeat 77과 79에서는 다른 가수가 이 이름을 사용하고[2] 지안카를로는 곡 제작과 코러스에 참여)
  • Alkogan
  • Angel
  • Bella & Blue(알레산드라 미르카 가티와 듀엣)
  • Blue Sunbeam
  • Cary On(지안카를로가 노래와 내레이션, 알레산드라 미르카 가티가 내레이션)
  • Chester(Luigi Raimondi도 이 이름을 사용. 지안카를로가 Time Records를 떠난 후로는 Gino Caria가 이 이름을 사용)
  • Coo Coo(1987-1989년에는 마우로 파리나가, 1990-1993년에는 지안카를로와 지안니 코라이니가 이 이름을 사용)
  • Coy Mc. Coy(Island라는 곡에서만 지안카를로와 지안니 코라이니가 이 이름으로 듀엣)
  • Derek Simon
  • Dr. Money(Give Up이라는 곡에서만 지안카를로가 이 이름을 사용. 그 전후로 Gino Caria를 포함한 여러 가수들이 이 이름을 사용)
  • Frankie Lee & Felix The Fox
  • Gary Cooper
  • Jill Sander
  • King Kong & D'Jungle Girls(Clara Moroni, Elena Ferretti, 마우로 파리나가 먼저 이 이름을 사용)
  • La Cima
  • Manzi Bellini
  • Marco Manzi
  • Mario Ross
  • Michael Dream
  • Mike Hammer(주로 Fernando Bonini가 사용한 이름)
  • Mr. Beat
  • Mr. Lust
  • Nevada(알레산드라 미르카 가티와 듀엣)
  • Patrick Hooley
  • R.C.S.(Rodgers, Contini, Sinclaire)(프로젝트성 밴드. 레코딩 외의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콘티니가 신디사이저, 싱클레어가 기타를 맡았다.)
  • Red Skins
  • Robert Newman
  • Robert Stone
  • Roby Benvenuto
  • The Big Brother
  • The Spiders From Mars(미켈라 카푸로와 듀엣)
  • Thomas & Schubert
  • Venice

2 이탈로 디스코 계에서의 활동

만토바의 C. Galliani 음악 학교를 졸업. 학생 때 처음으로 디스코텍에 갔다가, 음악이 마음에 안 들어서 자신이 직접 디스코를 작곡하기로 결심했다는 설이 있다.

1981년에 Aleph라는 밴드를 결성[3], 음악계에서 처음 활동하기 시작한다. 1984년에 안토니오 카란치(Antonio Caranci)가 지안카를로에게 Aleph의 곡 중 하나인 In Your Eyes[4]를 Caravel Records에서 발매하라고 권유했다. 이 곡은 Aleph의 데뷔 싱글 곡이 되었으며 이웃 나라 스페인에서 인기를 얻었다. 한편 지안카를로는 1984년부터 DISCOMAGIC 레이블의 작곡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85년에는 DISCOMAGIC 산하의 Time Records와 계약. 같은 해에 Aleph가 두 번째 싱글 Fly to me로 유명해진 후, 지안카를로는 마우로 파리나가 빠진 Time Records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 다른 가수들의 작곡과 프로듀스도 하기 시작했다. 1986년에 발표된 Aleph의 세 번째 싱글 Fire On The Moon도 성공을 거두었다. 1988년에는 Aleph의 첫 번째 정규 앨범 Black Out이 발표되었는데, 이 시기부터는 지안카를로가 Aleph에서 보컬뿐만이 아니라 작곡, 편곡, 레코딩 등 거의 모든 부분을 담당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5]

1988년 11월에는 That's EUROBEAT SPECIAL GIGS를 통해 처음으로 일본에서 공연했다. 1989년에는 두 번째로 일본에서 공연을 했으며 두 번째 정규 앨범인 Take My Life도 발표했다.

1989년에는 Flea Records로 이적.[6] Flea에서 사용한 예명으로는 Coo Coo(노래), Alkogan(작곡)[7], Frankie Lee (& Felix the Fox)(프로듀스) 등이 있다. 또 이 때 지안카를로는 'King Kong & D.Jungle Girls'의 후기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를 불렀을 당시의 보컬은 마우로 파리나다.</ref>

3 본격적인 유로비트 시장으로의 진출

유로비트 초창기부터 작곡가 및 프로듀서로서 활발히 활동했을 뿐 아니라 보컬리스트로서도 수많은 곡을 남겨 유로비트의 대부로 추앙받고 있다. 지안카를로는 다른 유로비트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예명을 사용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987년부터 사용한 Dave Rodgers라는 이름으로, 90년대 초반 후로는 이 예명을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했다.

1990년 지안카를로는 메탈 밴드 Bulldozer의 보컬 겸 베이시스트이자 DISCOMAGIC의 A&R이었던 Alberto Contini와 만나서 함께 A Beat C를 세우고(정확히는 Rodgers & Contini Records를 세우고 그 산하에 A-Beat C를 만든 형태) SUPER EUROBEAT 시리즈의 에이벡스와 전속 계약을 맺는다. SUPER EUROBEAT는 원래 수입 음반이었으나, A-Beat C와 에이벡스의 계약을 계기로 에이벡스가 직접 SUPER EUROBEAT를 생산하게 된다. A-Beat C는 당시 신생 소규모 레이블이었던 에이벡스의 첫 정식 파트너였다.

A-Beat C를 설립한 직후 지안카를로는 The Big Brother라는 예명으로 Wild Reputation을 발표해 유로비트 시장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다. 또 Wild Reputation과 함께 SUPER EUROBEAT Vol.9에 실린 Norma Sheffied의 Your Body Lies, SUPER EUROBEAT Vol.10에 실린 Virginelle의 Fantasy 등을 프로듀스해 애수 유로비트의 기초를 쌓는다.

일본의 유로비트 시장에서는 1990년 전후에 1차 붐, 90년대 중반에 2차 붐, 90년대 후반에 3차 붐이 있었는데[8], 그 동안 지안카를로는 가수 겸 프로듀서로서 유로비트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또 이니셜D 시리즈에 삽입된 Space BoyDeja Vu 등도 유명해져 현재까지 대표곡으로 꼽히고 있다. 2000년 SUPER EUROBEAT presents INITIAL D ~D NON-STOP MEGA MIX~가 일본 골드디스크 올해의 애니메이션 앨범으로, 2001년 SUPER EUROBEAT Vol.110이 일본 골드디스크 올해의 기획앨범으로 선정되었을 때 지안카를로가 대표로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받았다.[9]

2010년, 지안카를로는 유로비트 뮤지션인 에벨린 말페라리(예명 Futura, Oceania)와 함께 Sun Fire Records를 세워서 A-Beat C를 떠났다[10]. Sun Fire에서는 A Beat C 시절만큼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작곡과 프로듀스를 했으며, 보컬리스트로서도 솔로 곡 및 에벨린과의 듀엣곡을 발표했다. 2016년 5월 현재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직접 노래한 유로비트 곡은 2015년 6월 SUPER EUROBEAT Vol.239에 실릴 예정인 Restarted Tonight이다.

4 최근 활동

2015년 초, Aleph 데뷔 30주년을 기념해서 Fly To Me를 리메이크하겠다고 페이스북에서 발표했다.[11] 그리고 한국/일본 시간으로 2016년 1월 1일, 유럽 시간으로 2015년 12월 31일 유튜브를 통해 약속대로 Fly To Me 2016을 발표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Aleph feat. Dave Rodgers. 락 기타리스트이며 예전에 지안카를로와 같이 일한 적이 있는 Alex De Rosso가 기타 솔로를 맡았다.

2016년 1월 30일에는 멕시코에서 Patrick Miller Fest 2016에 Aleph로 출연해 80년대 이탈로 디스코 곡들을 불렀다. 2007년에도 Aleph의 이름으로 멕시코에서 공연한 적이 있으므로 이번이 두 번째다.

2016년 5월 7일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I Venti d'Azzurro 30주년 파티에 참석했다. 이탈로 디스코 뮤지션들이 모인 파티여서 Aleph의 이름으로 참석했고 공연은 하지 않았다. 팬들도 입장권을 사서 들어갈 수 있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전 세계(라고 해도 주로 서양)의 팬들이 지안카를로와 함께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다.

5 사생활

매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위안을 얻을 정도라고 한다. 가족들 중에 음악인은 없었지만,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해서 음반을 많이 모았고 최신 장비도 적극적으로 구입했다. 만 15세 때 처음으로 밴드에서 노래하기 시작했고 주로 딥퍼플, 데이비드 보위, 롤링스톤즈 등의 곡을 불렀다. Aleph도 디스코 곡으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락 밴드였다고 한다.

80년대에 Aleph의 공연장에서, 지안카를로는 현재 Domino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알레산드라 미르카 가티와 처음 만난다. 알레산드라는 지안카를로보다 여섯 살 어렸고 Aleph의 팬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으며, 1985년에 지안카를로가 알레산드라에게 Fire On The Moon의 내레이션과 코러스를 맡기면서 알레산드라는 음악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마우로 파리나와 함께 일하게 된 지안카를로가 알레산드라를 마우로에게 소개했고, 알레산드라는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알레산드라가 Domino라는 예명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89년에 지안카를로에게 Fever라는 솔로곡을 받아서 발표했을 때다. 지안카를로와 알레산드라가 처음으로 함께 부른 듀엣곡은 Bella & Blue라는 예명으로 1991년에 Flea Records에서 발표한 Magic이다.

두 사람은 1990년에 결혼했다. 알레산드라는 지안카를로와 같은 레이블에서 부부 유로비트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다수의 듀엣곡과 솔로곡을 남겼을 뿐 아니라, 알베르토 콘티니의 감독 하에 음악 외의 업무에도 크게 관여했다.팬에서 부인 겸 동료 뮤지션이 되다니 성공한 덕후 끝판왕 1991년에는 아들 페데리코 파스퀴니를 낳았다.

그러나 2003년(혹은 2004년) 이혼. 90년대부터 잡지 인터뷰에서 지안카를로가 '알레산드라와 싸우고 나면 좋은 곡이 나온다'고 말하고, 알레산드라가 '좋은 곡을 내놓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부부싸움을 한다. 화가 나야 곡이 잘 나온다고 해서 나는 도와주고 있는 것뿐이다'라고 응수한 것을 보면 부부 사이가 평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안카를로가 예민하고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 반면 알레산드라는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혼 후 잠시 SCP 등의 다른 레이블을 전전하며 방황하던 알레산드라는, 2006년에 A-Beat C의 주요 프로듀서 산드로 올리바와 함께 Gogo's Music이라는 레이블을 세워서 독립했다.[12] 하지만 두 사람은 이혼한 후에도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 온 듯.[13] 페데리코는 알레산드라에게 갔지만, 2005년에 페데리코가 Freddy Rodgers와 Freddy R.이라는 예명으로 지안카를로의 프로듀스를 받아 유로비트 가수로 데뷔한 것을 보면 양쪽 집을 오가면서 자란 모양이다.[14]

이혼 당시에는 지안카를로가 A-Beat C의 대형 신인 여가수였던 Nuage와 불륜을 저질러서 이혼했다느니, 지안카를로와 Nuage가 일본에 함께 공연하러 왔을 때 둘이 사람들 앞에서 키스했다느니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나 2005년과 2006년에 지안카를로가 Francesca라는 이름의 다른 여자[15]와 함께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Nuage와 관련된 기존의 이야기들은 헛소문이었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혼한 것치고는 지안카를로와 알레산드라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2013년에 Nuage가 알레산드라의 Gogo's Music에서 신곡을 발표한 것을 보면 최소한 지안카를로와 Nuage의 불륜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2011년 7월 16일 페이스북에서, 같은 Sun Fire Records 소속 가수 겸 프로듀서이며 81년생으로 열여덟 살 연하인 에벨린 말페라리(예명 Futura, Oceania)와 약혼을 발표. 교제는 2010년(혹은 그 전부터) 시작했다. 2015년 11월에 잠시 헤어졌다가 12월에 재결합. 2016년 1월 20일에는 마침내 페이스북을 통해서 에벨린과 결혼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지안카를로가 Patrick Miller Fest 2016에서 공연할 때 에벨린과 페데리코가 동행했고, 그 전부터도 페데리코가 지안카를로의 집에 편하게 왕래한 점을 보면 새엄마(...)와 아들의 관계도 원만한 듯. 페데리코가 알레산드라와 매우 사이가 좋으므로, 알레산드라와 에벨린이 서로 크게 불편한 사이는 아니라는 궁예질도 가능하다

재혼 후 에벨린과 국내외로 부지런히 놀러다니고 있다. 에벨린의 페이스북에서 지안카를로의 최근 사진을 상당수 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개를 키웠기 때문인지 개를 좋아하고, 지금도 에벨린과 함께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의 킹 찰스 스패니얼을 기르고 있다.
  1. 일본에서는 Pasquini를 'パスキーニ(파스키니)'라고 표기하나, 실제 이탈리아어 발음은 '파스퀴니'에 더 가깝다.
  2. 79에 수록된 Generation Of Love는 Paolo Campitelli라는 가수가 불렀다고 지안카를로가 직접 밝혔다.
  3. 흔히 3인조 밴드이며 지안카를로, Marco Manzi, Donato Bellini가 멤버였다고 알려져 있다. Aleph의 곡 다수도 Manzi와 Bellini가 작곡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지안카를로를 제외한 두 사람은 1983년에 In Your Eyes의 작곡에만 참여했으며 1984년부터 Marco Manzi는 지안카를로의 예명, Donato Bellini는 다른 작곡가들(주로 Luigi Raimondi)의 예명으로 사용되었다. 또 1집까지는 실제 Manzi와 Bellini가 같이 활동했으나 그 이후로 Aleph는 사실상 지안카를로의 원맨 밴드가 된다. 지안카를로는 2015년 페이스북에서 '당시 나와 Luigi Raimondi는 실제 이름으로 음반사와 계약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 이름들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4. 1991년에 지안카를로는 이 곡을 리메이크해 SUPER EUROBEAT Vol.14에 실었으며, 이 때는 Manzi Bellini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5. Black Out 앨범에는 레코딩을 담당한 사람의 이름이 Dave Rodgers라고 표기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이 앨범의 믹싱은 Laurent Gelmetti(Newfield)가 맡았다.
  6. 비밀리에 작업하던 Wild Reputation의 데모테이프가 유출되었는데 그 직후 Time 소속 가수 Maio & Co.가 비슷한 곡(Black Power)을 발표한 사건, Aleph 명의 사용권에 관한 분쟁, Time 측의 곡 수익 미지급 등이 원인이 되었다. Wild Reputation 사건은 심지어 Super Eurobeat 141의 속지에도 언급되어 있다.
  7. 이 이름은 SUPER EUROBEAT 시리즈에도 가끔 등장했으며 특히 지안카를로가 A-Beat C를 떠날 준비를 하던 2010년경에 여러 번 보였다.
  8. 2000년대 중반에 4차 붐도 있었지만 에이벡스가 억지로 조성한 느낌이 강하다.
  9. 2000년에는 SUPER EUROBEAT Vol.100이 올해의 기획앨범으로 선정되었는데 이 트로피는 Night Of Fire로 유명한 Niko가 대표로 받았다. 2001년에는 지안카를로와 알레산드라가 함께 트로피를 받았다.
  10. Sun Fire Records는 Rodgers & Contini Records에 속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레이블이며 에벨린의 소유다.
  11. Aleph의 이름으로 처음 발표한 음반은 1984년의 In Your Eyes지만 본격적인 커리어는 1985년의 Fly To Me부터 시작되었다.
  12. 다만 Gogo's Music도 A-Beat C와 마찬가지로 Rodgers & Contini Records의 산하 레이블이었다.
  13. 이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의 인터뷰에서도 알레산드라는 지안카를로를 상당히 좋게 말했다. 심지어 2015년 7월에는 알레산드라가 지안카를로의 페이스북 팬 그룹에 가입. 8월부터는 두 사람이 페이스북 친구가 되어서 서로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주고 있다(...)
  14. 변성기가 지난 후에는 예명을 Kaioh로 바꾸고 Gogo's Music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5. 지안카를로보다 22살 연하이고 유로비트와는 관계가 없는 인물. 두 사람이 2003년에 결혼 내지는 동거를 시작했으며 아들도 하나 낳았다는 증언이 일부 주변 인물과 팬에게서 나왔다. 다만 지안카를로는 최소한 인터넷상에서는 페데리코 외의 다른 자녀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