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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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NC 다이노스넥센 히어로즈LG 트윈스
KIA 타이거즈SK 와이번스한화 이글스롯데 자이언츠
과거에 참가했던 구단 보기 ➡
삼성 라이온즈kt w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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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블럼마스코트 아테나와울[1]
SK 와이번스
SK Wyverns
법인 설립2000년 3월 22일
창단2000년 3월 31일
구단 법인명㈜SK와이번스
영문명칭SK Wyverns Co. Ltd.
업종명스포츠 클럽 운영업
상장유무비상장기업
기업규모대기업
연고지인천광역시[2][3]
구단 연고지 변천인천광역시 (2000~)
구단명 변천SK 와이번스 (2000~)
구단주최창원[4][5]
사장류준열[6]
단장민경삼
감독트레이 힐만
홈 구장숭의야구장 (2000~2002)
(12,000명)
인천 SK 행복드림구장[7] (2003~)
(26,000석)
2군 구장SK 퓨처스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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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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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우승
3회
2007, 2008, 2010
역대 우승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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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2008년2010년
SK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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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제주 유나이티드서울 SK 나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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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T1SK 호크스SK 슈가글라이더즈
2007년, 2008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2006-삼성 라이온즈SK 와이번스2009-KIA 타이거즈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2009-KIA 타이거즈SK 와이번스2011-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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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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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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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1 소개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KBO 리그의 야구단. 2000년에 쌍방울 레이더스의 법정 퇴출로 인해 기존의 쌍방울 팀이 해체되면서 뿔뿔이 흩어진 전 쌍방울 선수와의 계약+드래프트를 통한 각 구단 선수 2명씩의 차출, 용병 3명 계약등을 통해 구단을 구성, 초대 감독 강병철로 창단한 신생팀.[8] 창단 순서로 따졌을 때 KBO 제9구단이다.

사실 영어 발음으로는 "와이번"가 맞지만, 구단은 "와이번"라고 불러줄 것을 권하고 있다. 따라서 "SK 와이번즈"라고 쓰면 틀린 표현이다. 같은 맥락으로 "KIA 타이거즈"도 "기아"라고 한글로 쓰는 것을 원치 않으며[9], 일본의 "한신 타이거스"는 "타이거즈"라 불리는 걸 원치 않고 있다.

현대가 서울로의 연고 이전을 노리느라 비워둔 인천을 연고지로 차지하였으며, 창단 초창기에는 숭의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였으나 구장의 노후화로 2002년 개장 당시 최신식 수준 구장으로 이름 높았던 문학 야구장으로 옮겨 현재까지 홈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천 연고지 결정에 대해 썰을 풀자면 우여곡절의 사연이 있다.

재정파탄 상태에 처한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하지 않고 기다리다 2000년 1월 13일 법정퇴출이 확정되고 나서야 웨이버 공시 처리된 구 쌍방울 소속 선수들과 개별계약하여 전력을 구성하기 시작한 SK 그룹은 창업지인 수원을 연고지로 선택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줄기차게 서울 입성을 현대가 먼저 노리다가 뒤에 실패하고, 결국 인천으로 방향을 급선회하게 된다. KBO가 도시연고제를 추진하자 3월 11일 '다른 팀은 모두 광역도시를 연고로 삼는데 SK만 일반도시수원을 연고지로 삼으라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수원성남을 묶어 연고지로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으나 결국 3월 15일 인천을 연고지로 요구하여 연고지가 인천으로 확정이 된다. SK 기업이 KBO 야구계로 정말 잘 와서 다행이다 이 팀 없이 없었으면 관중몰이 망했을지도 모른다.

SK가 갑자기 수원이 아닌 인천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연고지가 수원으로 굳어져 가는 분위기가 형성될 즈음 안용태 창단준비팀장[10] 은 그룹 고위층으로 불려가 호되게 혼이 났다. "다른 팀들은 모두 광역시로 연고지가 넓은데 왜 SK만 중소도시냐"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작은 연고지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SK의 자존심이 막후협상을 통해 인천을 택하게 한 것이다. 또한 새로 지어지는 최첨단 시설의 문학 야구장의 유혹도 한 몫을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인천광역시청에서도 달라붙어 SK를 설득했다.짠물야구 링크

부연고지로 일단은 수원구장이나 춘천 의암 야구장을 두고 있지만, 1군 경기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는 '인천야구의 정통성'이라는 의미를 SK 쪽에서 매우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대한 관심도가 낮은 탓이기도 하다. 김광현은 경기도 안산시 출신인데?[11]

사실 인천야구의 정통계보인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는 이후 현대 유니콘스로 바뀌었고, 이들은 수원에 있다 목동구장으로 옮기고, 이후 해체 후 신규 창단이라는 형식으로 히어로즈가 되었다. 고로 정식적으로는 삼청태현으로 이어진 인천연고 프로야구의 계통은 끊어졌다고 단언할 수 있다. SK 와이번스는 1999년 시즌을 끝으로 해체되어 갈 곳 없어진 쌍방울의 선수들을 데리고 시작했으나, 이후 차근차근 인천 출신의 신인과 타팀의 선수를 영입, 특히 김경기로 대표되는 인천 지역 스타를 영입해 인천의 야구팬들을 흡수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히어로즈가 현대를 공식적으로 인수하지 않고 신규창단을 선택한 이상, SK가 인천야구의 계승자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팀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삼청태현과 SK가 '같은 팀'이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이로 인해 실질적으로 쌍방울의 선수들을 인계했던 SK를 응원했던 구 쌍방울 팬들은 새로운 인천 SK 팬들과의 마찰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서서히 사라졌다. 태평양 데이 당시 SK가 까이는 패턴 중 하나가 슼방울, 솩방울이라는 표현이었다. 물론 쌍방울 레이더스SK 와이번스넥센현대처럼 (공식적으로는) 남남인 팀이므로 이러한 태도가 문제될 것은 없지만, 이러한 태도로 인하여 수많은 구 쌍방울 팬들이 상심한 채 떠나갔다. 대부분은 현재 쌍방울의 전라북도 지역 연고권을 흡수한 KIA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상황. 또는 아예 야구를 보지 않는 사람도 많다. SK는 인천 야구의 계보를 이어받았다고 말하지만, 쌍방울 계보를 의도적으로 끊어버린 탓에 정통성 시비가 발생할 경우 도저히 뭐라고 반박하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원점에서 새출발한 것으로도 볼 수 있어서 정통성 논란에서 자유로운 거 아니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계보의 승계 없이 전북/인천 야구를 최대한 흡수하려 들었던 탓인지 SK가 태평양 데이 행사를 치르자(하필이면 당시 상대가 넥센이었다), 야구계에서는 SK의 정통성 문제를 놓고 한바탕 크게 문제가 되었었다.

수원의 경우에도 2015년에 제10구단 KT 위즈가 창단되면서 SK의 부연고지와도 전혀 상관없게 되었다. 나홀로 버려져 있는 춘천구장만 안습.

이후 한국 프로야구의 연고지 체제는 과거의 광역 연고지 체제에서 도시 연고지 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를 문제시 할 제도적 근거는 없다.[12] 하지만 201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광역연고제가 사실상 부활했다.

연고지는 한반도 서쪽에 자리잡은 인천이지만, 올스타전에서는 동군이다. 이는 빙그레 이글스(現 한화 이글스) 창단 당시 삼미 슈퍼스타즈의 성적이 영 좋지 못했기 때문에 빙그레를 서군에 넣었고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될 때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동군에 넣은 게 쌍방울 해체 후에도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 2014년 시즌을 끝으로 동서군으로 팀을 나누는 방식이 사라질 예정이라 나머지 수도권 4개 구단과 엮이는것이 유력해 보였는데, 결국 동서군 구분이 각각 드림 올스타(구 동군)와 나눔 올스타(구 서군)로 이름만 바뀐채 유지되기로 함에 따라 올스타전에서 두산·롯데·삼성·KT와 한 팀으로 엮이게 되었다.

상징 마스코트는 '비룡(Wyverns)'. 대표 응원가는 '연안부두'. '비룡'이 된 이유는 연고지인 인천에 '비룡'의 이름을 딴 것이 많기 때문.[13]

팀의 상징색은 파랑색(2000년~2005년) - 빨강색(2006년~현재) 순이다.

과거 야구 갤러리에서는 구단을 부를때 슼, 스크, 주유소[14] 정도의 단어를 썼다. 2008년 이후에는 성적이 좋을 때만 생기는 전형적인 양산팬들 때문에 개념팬들까지 [15]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3번(2007년, 2008년, 2010년) 하였는데 준우승은 4번(2003년, 2009년, 2011년, 2012년)이나 하였다. 특히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16]

2008년에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2연패를 이루었는데. 역대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것은 해태(1986-89년, 1996-97년), 현대(2003-04), 삼성(2005-06년)에 이어 SK가 4번째 팀이자 역대 5번째다. 또한 2008년 126경기 체제 기준 페넌트레이스 시즌 최다승[17] 기록 수립.

2017년 시즌 기준 감독은 트레이 힐만이다. 전임 감독에는 강병철(2000~2002) - 조범현(2003~2006) - 김성근(2007~2011) - 이만수(2011~2014) - 김용희(2015~3016)가 있다.

인천+경기도+강원도라는 프로야구 제일의 팜[18]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스카우트 능력은 극악이라는 평가가 다수. 특히 대졸출신 신인뽑기에서는 정근우 이외에는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평가받을 정도. 허나 2010년 시즌부터 전면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어 지역연고제를 활용하기가 힘들어졌다. 당장 전면 드래프트 도입 후 시행된 세 차례의 드래프트에서 인천 출신 선수는 고졸, 대졸을 막론하고 1명도 지명되지 않았다. 그래도 2010년 드래프트에선 좋은 투수들을 잘 뽑았다는 평.

온라인상에서 SK 팬들과 야구 기자들(심지어 축구전문가까지)의 갈등이 유독 잦다. 대부분 김성근 감독의 야구스타일을 비판 혹은 비난하는 기자들과 좋은 성적을 내는 구단이 잦은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이 안타까운 팬들의 대립양상. 2009년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하기 전까지는 7개 구단 팬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라기보단 집중적으로 까였다.) 거의 1:7 수준으로 까였다. 오죽하면 2009년 시즌까지만 해도 다른 7개 구단에게 공공의 적으로 불리며 까이고 있었다.

2014년부터 인천 문학운동장의 시설에 대한 운영 및 관리를 수행하는 위탁 운영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이 아니라 야구장을 포함한 경기장 전체(박태환수영장 제외)이다. 경기장 일부에 대한 관리를 위탁한 사례는 있었지만 모든 시설에 대한 관리를 위탁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한다. 덕분에 SK 프론트 입장에서는 경기장 전역을 활용한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2 팀의 특색

전력에 대한 특성을 먼저 나열하고 기타 특성은 뒷부분에 서술함

2.1 준수한 투수력

선발과 계투 모두 자원이 풍부한 편이다. 왕조시절에는 막강한 투수력을 바탕으로 3회 우승을 달성한 바 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투수들의 부진과 이탈이 맞물려 영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2015년부터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2016년에 이르러서는 왕조 시절을 이끌었던 대부분의 투수들이 이탈했지만 투수 성적은 여전히 리그 상위권이다.
하지만 타선에서의 빈번한 침묵과 불펜들의 방화력,박종훈 문광은등 투수들의 부진은 sk가 6위로 2016시즌을 마무리한 큰 원인이 되었다

2.2 물빠따? 뻥야구?

투수력에 비해 공격력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왕조시절에는 거포가 즐비한 타선은 아니지만 한 방을 쳐낼 수 있는 능력과 빠른 발을 가진 타자들이 많아 지뢰밭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실제로 2009년에 타율-홈런-타점 모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위 벌떼야구로 불리는 투수진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바람에 공격력은 다소 묻히는 편이다. 게다가 팀 성적이 중위권으로 내려오고부터는 타격지표도 그저 그렇다(...) 그래도 내세울 만한 지표는 바로 홈런. 타자친화적인 홈구장홈런에 환장한 타자들 덕분에 홈런 순위는 타율 순위에 비해 잘 나온다. 그리고 2016년 현재 탈쥐 듀오의 활약에 힘입어 20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써내려가는 중이다.
7월 11일 최정이 홈런을 쳐내며 팀 21경기 연속 홈런으로 신기록을 세웠다.관련 영상홈런 못 쳤으면 저 현수막 썩힐뻔 7회까지 얼마나 똥줄이 탔을까

2.3 토털 베이스볼과 막장야구 사이

왕조시절 팀컬러는 토털 베이스볼. 그냥 다 잘한다...라기 보다 한 선수가 여러 포지션을 겸하는 게 일상사였다. 이진영(우익수-1루수. 이적했지만) 박정권(우익수-1루수-2루수[19])이나, 박재홍(1번 타자-3번 타자)최정(3루수-투수-포수), 김광현(투수-대타)가 대표적. 2년 연속 우승의 영향으로 2009년엔 팀 연봉도 1위였다.

그리고 2009년에서 한국시리즈에서 좀비들이 되어 좀비야구를 보여줬다 에이스와 주전포수가 부상으로 못 나오고 남은 선수들의 상태도 정상이 아니였던 상황에서 기아 타이거즈를 상대로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버텨냈고, 7차전도 마지막까지 근성으로 버텨내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하지만 이 때 왕조 건설에 활약했던 선수들, 이진영, 정대현, 정근우등이 타 팀으로 이적하고 김재현, 박경완, 박재홍이 차례로 은퇴를 한데다가 2011년 이후로는 김광현, 채병용, 전병두, 고효준등 주축 투수들도 좀처럼 옛날 폼을 못 찾으면서 점차 SK 특유의 끈끈한 야구도 퇴색되는 중. 그리고 대망의 2014년, 극악의 투타 엇박자와 찾아온 팀 실책 꼴찌에 SK 팬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2.4 가을 DNA

KBO 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SK의 특색
시즌 내내 죽쑤다가도 가을만 되면 잘한다. 반등시기는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입추에서 9월 초 사이이다. 자세한 내용은 가을솩 참조.
그러나 2016시즌 어이없는 한화전을 시작으로 9연패를 내리당하며 엘지와 기아한테 4위와 5위를 헌납.
축포를 미리 터트리며 가을쇀이라는 이미지를 망쳤다

2.5 이벤트에 관심이 많은 부자 프런트

일차적으로는 SK구단을 위한, 전체적으로는 한국야구의 활로가 될 수 있을 '스포테인먼트' 사업을 제창하고,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문학구장 문서에서 알 수 있듯 홈구장의 리모델링은 연례 행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SK팬들이 매년 하는 생각 중 하나가 "올해는 또 어디를 고칠까?"[20] 더불어 스쿨데이, 반려견 출입을 허용하는 도그데이, 불금데이, 토요일 불꽃놀이 등 다양하고 이색적인 행사를 많이 개최해오고 있다. 2016년 6월에는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을 진행해서 많은 야구팬들의 호응을 받기도 했다. 매년 선발하는 객원마케터들이 제작하는 약빤(...) 영상도 팀의 특징 중 하나이다.

2010년을 전후하여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많이 놓쳐서 짠돌이 구단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상술한 스포테인먼트 사업의 스케일이나 2014년도에 FA선수 5명을 모두 잡은 점을 고려하면 재정은 확실히 부유하다. 사실 떠난 선수들에게도 넉넉하게 금액을 제시하긴 했다. 더 많은 금액을 써제낀 구단이 있었을 뿐.

이렇게 넉넉한 재정을 보유할 수 있는 이유는 재정지원 방식이 타 구단과는 약간 다르기 때문. 타 구단이 모기업 계열사에서 꾸준히 차입을 하여 지원하는 반면에 SK 와이번스는 회계상으로 SK텔레콤이 1조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며 추가적인 차입을 하고 있지는 않다. 쉬운 말로 1조 묻어둘테니 니들이 알아서 쓰세요 하는 소리. [21] 또한 홈구장인 인천 SK 행복드림구장 일대의 운영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구단에서는 문학구장의 세계구급 시설을 바탕으로 한 이벤트를 통해 구단 자립을 실현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이 넘들이 정우람을 80억에 팔고 80억을 들여서 미친 크기의 전광판을 지었다. 어느 정도냐면 주변 아파트에서도 전광판 그림이 보일 정도. (참고로 이벤트로 여기서 영화를 사영했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6 팬덤 성향

주요 팬 베이스는 인천광역시와 주변의 부천시[22], 시흥시[23], 안산시[24], 김포시 일대이며, 서울에도 경인선 라인의 구로구영등포구를 중심으로 작게나마 팬층이 존재했지만 이후 모 거포덕후 구단 팬덤으로 많이 넘어간 상태. 그리고 인천과는 한참 먼 전북 군산시에도 은근히 팬이 많은데#, 그도 그럴 만한 게 최태원, 조원우, 김기태, 김원형, 박경완 등 과거 쌍방울을 빛냈던 선수들이 SK에서도 여전히 활약했으며, 이진영, 이승호, 정대현 등 군산상고 출신 선수들 또한 은근히 많은 편이다. 그래서 KIA에서도 군산 경기를 편성할 때 SK나 한화(가까우니까) 경기를 우선적으로 잡아 놓는다.

관중 수에 대해서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WBC 준우승의 영향의 야구붐과 더불어 한국시리즈 우승/준우승의 성적으로 2010년 전반기에 팀 창단 최다 기록인 9회 매진을 기록을 달성하고 한때 관중 동원 수 1위를 달리기도 했다. 이 시기 원년구단인 두산 베어스도 구단 역사상 최다인 9회 매진을 똑같이 기록했는데, KBO 원년멤버이자 창단 29년차 구단후발 주자이자 10년차 구단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록임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고, 이미 인천 팬들은 현대를 완전히 잊고 SK를 받아들인 듯 하다. 이 선수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산만큼은 아니여도 여성팬이 매우 많다.
2011년 시즌 이후 관중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었지만 2012년 시즌에는 9월 15일 KIA전에서 마침내 한 시즌 100만 관중을 돌파했다.[25] 100만 관중 돌파 기념 불꽃놀이 영상. #

한국 프로야구 1억 번째 관중이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나왔다는 점도 주목 할만한 사실이다. # SK 팬인 친구를 따라온 원래 야구 팬도 아니었던 소년이라 SK로선 1억번째 관중과 함께 새로운 팬을 얻게 된 셈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1억번째 관중사건 항목 참조.

3 팀의 역사

3.1 연표

3.1.1 창단 초창기의 암흑기

2000 시즌 시범경기에는 참가하지 않았고, 정규 시즌부터 참가했다.

창단년도인 2000년부터 2002년까지의 당시 SK의 전력은 근래에 SK의 팬이 된 사람들이 알면 충공깽인 수준이었다. 주력 선수들을 몽땅 팔아치운 쌍방울의 막장 전력을 기반으로 했던만큼 물론 3명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했음에도 막장으로 스타트, 2000년 44승 3무 86패인 성적으로 양대 리그를 통틀어 압도적인 꼴찌였으며 망해가던 해태 타이거즈한테도 밥수준인 6승 13패를 헌납할 정도로 동네북 신세였다.

거기다가 6점대 방어율을 기록했으며, 847실점은 2013년까지 역대 최다기록이었으며 195피홈런은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 게다가 홈 총 관중수는 84563명으로 한 경기 평균 2000명도 못 채웠다. 흥행 문제는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1999년까지 인천 연고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돌연 인천 연고지를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바람에 다수의 인천 팬들이 멘붕에 빠져 야구를 끊어버린 것이 흥행 대실패의 첫째 이유고 2000년대 초반부터 프로야구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그 다음 사유다.

2년차인 2001년엔 강병철 감독이 전년도 신인왕 이승호페르난도 에르난데스라는 노예(야구) 원투펀치에게 무려 450이닝을 합작하게 만드는 정신나간 운용을 한 끝에 간신히 롯데를 따돌리고 7위. 하지만 4위 한화와의 게임차는 3게임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롯데는 암흑의 길

2002년부터 새로 완공된 문학야구장으로 홈구장을 옮겼다. 4강 진출을 목표로 부지런히 노력했으나 결국 시즌 최종 성적은 전년보다 한 계단 상승한 6위였다.

초창기 암흑기 시절의 그나마 위안이었다면 이승호의 2000년 신인왕 수상과 틸슨 브리또호세 에레라, 호세 페르난데스 등 성공한 용병타자, 해태에서 성영재를 주고 데려온 인생은 이사람의 성장,[26] 조범현 감독 시절에 가서 어느 정도 수확을 거두기 시작한 상위지명 신인들 정도.[27]

참고로 2001년과 2002년 신인드래프트에서는 신생팀에 대한 특별 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2차 지명 1라운드에서 3명의 신인을 뽑을 수 있도록 KBO가 배려했다. 이때 뽑힌 선수들이 이대호 거르고 김희걸, 김동건, 윤길현, 제춘모 등이다.

3.1.2 2003년 돌풍의 한국시리즈

그 후 2003년, 조범현 감독은 감독 경력 첫 시즌에 보란듯이 삼성과 KIA를 포스트시즌에서 연파하고 한국시리즈에 올랐는데, 이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창단한지 3년밖에 안된 팀이 한국시리즈까지에 올랐으니. 페넌트레이스에서 4위를 하고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상대로 전승, 플레이오프에서 기아 타이거즈 상대로 전승하였다. 정작 한국시리즈에선 현대 유니콘스에게 깨졌지만,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이었다.[28] 한동안 SK 와이번스는 행복한 2위 마케팅을 해 기업이미지 마케팅에 쏠쏠히 써먹었다.

3.1.3 2004년

2004년에 LG 트윈스에서 그 유명한 "야생마" 이상훈을 영입하여 지난 시즌 마무리를 담당한 조웅천과 더불어 이른바 "더블 스토퍼"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그러나 초반부터 좋지 않은 성적이 이어지자 자신의 플레이에 용납을 못한다는 이유로 결국 이상훈은 스스로 은퇴를 선언하고 만다. 조웅천 역시 작년과 달리 잔부상 등으로 예전의 구위를 회복치 못하고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선발로 영입한 용병 호세 카브레라를 시즌 후반에 마무리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다.

선발진에서는 이승호가 15승을 거두었지만 나머지 선발들은 부진했다. 다만 엄정욱이 당시 기아 리오스와의 선발대결에서 1피안타 14탈삼진 완봉승을 거두는 등 7승을 올리는 성과도 있었다. 또한 무명투수 김경태가 후반기에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깜짝 활약을 하기도 했다.

부진한 투수진과는 달리 타자들의 성적은 눈부셨다. 이진영은 시즌막판까지 브룸바와 수위타자 경쟁을 했지만 병역비리에 걸리며 결국 3할4푼2리로 타율 2위를 기록했다. 이호준이 112타점으로 타점왕, 박경완이 홈런 34개로 홈런왕을 차지했는데 이후로도 아직 와이번스 소속 타점왕과 홈런왕은 나오질 않고 있다. 그러나 팀 최종성적은 61승 64패 8무로 전체5위. 지금까지도 와이번스 역사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타격타이틀을 배출한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4강에 실패했다. 결국 타율2위, 타점왕, 홈런왕이 있어도 4강 진출에 실패한 것은 마무리와 선발의 부실 때문이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팀 내에서 골든글러브는 이진영(외야수)와 김기태(지명타자)가 수상했다.

3.1.4 2005년

2005년은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시즌이었다.

FA를 통해 LG 트윈스의 김재현을, 트레이드를 통해 KIA 타이거즈의 박재홍을, 현대 유니콘스에서 방출된 위재영을 영입했다. 애당초 병역비리 사건으로 생길 공백으로 김재현과 박재홍을 영입한 것이었으나 행정소송으로 이러한 문제점이 해결되어 대폭적인 전력증강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시즌 초에는 부상으로 인한 투수진의 붕괴아 타선의 집중력 부족으로 계속적으로 하위권으로 내려가더니 5월말에 기어이 꼴찌까지 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투수진에서 지난 시즌에 기껏해야 패전 처리조에 지나지 않은 신승현(12승)의 포텐 폭발과 김원형(14승)의 부활, 승부처마다 투입되어 2이닝 정도 중간에이스 역할을 한 위재영이 활약하고 그동안 부진했던 이호준이 여름부터 홈런포를 연이어 터트리면서 상황은 나아지기 시작했다. 거기한 교체영입한 용병 넬슨 크루즈[29]가 선발진에 가세하고 중간계투에 정대현이 부상에서 돌아오면서 8월말에는 단독 2위까지 치고올랐다. 그 때 벌어진 문학에서의 삼성 라이온즈와의 3연전은 미리보는 한국시리즈라고 제법 떠들썩하게 치뤄졌는데 지금도 간간이 틀어주는 박재홍의 홈스틸 장면도 이 3연전때 나온 것이었다. 결과는 1승1무1패.

이대로 쭉 가면 1위는 몰라도 2위는 매우 높은 확률로 정규시즌을 끝마치고 플레이오프 직행을 할 것이라고 와이번스 팬들은 전망했다. 그러나 3위 두산 베어스도 만만찮게 한두게임차로 시즌 막판까지 추격하고 있었다. 결국 시즌 최종전에서 그 결말이 나는데..., 와이번스는 LG 트윈스와 베어스는 KIA 타이거즈와 맞붙었는데 공교롭게 4강과 이미 멀어진 두팀을 상대로 홈에서 치뤄지는지라 누가 유불리한지 따질 수도 없었다. 결과는 베어스가 이기고 와이번스는 져서 한끝차 3위(70승 6무 50패)로 시즌 종료. 더욱이 LG 트윈스가 그동안 부진했던 선수들이 대활약[30]을 하면서 이겼는지 더욱 속이 쓰렸던 상황.

포스트시즌에서 한화 이글스와(!) 맞붙어서 2승 3패로 탈락(!!!). 여담으로 2005년 포스트시즌에서는 가장 재밌던 시리즈였다.[31]

마지막으로 팀 내에서 김재현이 지명타자 부문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3.1.5 2006년

소속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지난 시즌에 비해 스탯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여 덩달아 팀 성적도 떨어진 시즌이었다. 용병들도 타자로 영입한 일본인 타자 시오타니 가즈히코가 시즌 초에 맹활약했으나 몸에 맞는 볼로 인한 손가락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고, 거구인 캘빈 피커링 또한 홈런을 쳐주긴 했으나 향수병 때문에 퇴출되었다. 후속 영입한 투수 용병들인 호세 카브레라와 댄 세라노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재계약에 실패. 특히 삼성 라이온즈에게 매우 약했는데 이는 지난 시즌에 선수생활을 한 강성우가 삼성 코치로 가면서 작전을 읽혔다는 분석이 있기도 했다. 결국 60승 1무 65패로 6위에 그쳤다.

그러나 소득이라면 후일에 와이번스의 기둥이 되는 자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정근우가 도루 2위를 하면서 2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김강민, 박재상, 최정[32] 등이 주전을 꿰차기 시작했다.

시즌 종료 후, 조범현 감독은 사의를 표하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구단은 신속하게 후임 감독을 물색했고 김성근을 감독으로 이만수를 수석코치로 기용하는 등 파격에 가까운 영입을 이뤄냈다.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참교육자 호세선생의 신승현 구타사건이 이 시즌에 일어났다.

3.1.6 2007년 - 왕조의 시작

와이번스 최초의 우승시즌. 그러나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시즌 막판까지 두산 베어스와 1위 경쟁을 하였고 한국 시리즈도 레전드급 경기를 치뤄내어 이때부터 베어스와의 2000년대 후반 한국 프로야구의 라이벌 구도를 이뤄냈다. 와이번스는 김성근 특유의 스몰볼을 내세웠다면 베어스는 뛰는 야구에 기반한 선굵은 빅볼로써 대응하는 강렬한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면서 프로야구 흥행에 큰 기여를 했다.

선발진은 케니 레이번-마이크 로마노-채병용이 확고한 가운데 송은범이 뒷받침하고 막판에 신인 김광현이 한국시리즈에서 큰 역할을 했다. 타선이 전반적으로 스탯이 올라온 가운데 특히 최정은 수비가 많이 향상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완성형 3루수로써의 시작을 알렸고 베어스에서 트레이드된 나주환[33]이 유격수로 고정이 되면서 덩달아 내야수비까지 안정이 되었다. 결국 73승 48패 5무로 와이번스 최초의 정규 시즌 1위를 달성했다.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 시리즈는 그야말로 명승부 중 하나였다. 1, 2차전 홈에서 모두 패배한 와이번스는 지금껏 2승을 먼저한 팀이 한국 시리즈를 우승한다는 징크스가 있었기 때문에 암울한 분위기 속에 잠실로의 원정을 가야만 했다. 그러나 3차전에서 로마노의 호투와 돌발적인 벤치 클리어링으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하더니 4차전에서는 김광현의 깜짝호투로 2승2패 동률을 만들었다. 5차전은 투수전속에 김재현과 이호준의 활약으로 승리. 결국 인천 홈에서의 6차전 승리로 한국 시리즈까지 우승했다. 3번의 우승 가운데 인천 홈에서의 우승 결정은 이 때가 유일하다. 2패후 4연승 한국 시리즈 우승도 KBO 최초. 한국 시리즈 MVP는 시즌 내내 부진했지만 승부처마다 홈런과 적시타를 때려낸 김재현이 차지했다.

한국 대표로 아시아시리즈에 참가하여 준우승을 했다. 주니치 드래곤스와 1승 1패를 했지만 그 1패가 결승전이었다는게 아쉬울 뿐.

마지막으로 박경완이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3.1.7 2008년 - 지지 않는 야구

2008년 83승 43패로 승률 0.659를 거두면서 페넌트레이스 1위에 등극하였다. 83승은 126경기 체제의 최고기록이며, 00현대(133경기, 91승)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승수이다. 4월 20일 이후로 시즌 종료일까지 1위를 유지하였다. 더불어 기존 해태가 1993년에 기록한 126게임체제 최고승률(.655)를 경신하는 기록이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맞아 4승 1패로 2연패를 거두는데 성공하였다.

2007년의 에이스인 케니 레이번은 부진으로 17승 투수가 5승 투수로,[34] 4번타자인 이호준이 부상 및 수술로 8게임밖에 나서지 못하였다. 외국인 선수는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를 국민우익수 이진영의 1루기용에서 드러나는 토탈베이스볼로 메꾸는데 성공하였다. 2년간의 동계훈련으로 누적해놓은 선수단 전체의 깊이와, 기존의 노장, 김재현이나 박재홍 등이 2008년에 대분투한 것이 이를 가능케 하였다.

투수부분에서는 2007년 17승을 거두었던 레이번이 5승으로 부진하였고, 다윈 쿠비얀과 케니 레이의 연쇄부도, 채병용의 부상등으로 선발로테이션이 불안한데다가 마무리 정대현조웅천의 부진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극복해내는 데 성공하였다. 김광현은 2007년 가을의 활약을 정규 시즌에 보여주는데 성공하면서 다승 1위 - 탈삼진 1위 - 방어율 2위로서 투수삼관왕을 아쉽게 놓쳤지만, 정규 시즌 MVP와 투수부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전에 두 번 나와 금메달에 기여하면서 개인적으로도 군혜택을 받게 되었다. 채병용은 눈에 띄지 않는 꾸준한 투구로서 팀의 2선발로서 제 역할을 해냈고, 승률 1위로서 첫 개인타이틀을 수상하였다. 정우람은 홀드왕이 되었고, 이승호는 오랜 재활 끝에 돌아와서 한국시리즈에서 1점만을 내주면서 두산의 타선을 틀어막는 데 성공하였다.

한마디로 4번 타자와 외국인 선수 하나 없이 126경기체제 정규 시즌 최다승을 기록했다는 점. 한국시리즈에서도 후반기에 합류한 에스테반 얀을 제외시킨 채 두산타선을 꽁꽁 틀어막았다. 그럴만도 한 것이 2008년 승률을 보면 매월 승률이 6할을 웃돌았으며 가장 추락했던 것이 2008년 5월과 7월 6할 4푼대 승률이었는데 여름에는 뭐 다른 팀들도 다들 페이스 떨어질 때였고 2008년 6월에 KBO 역사상 월간 최다승 최고 승률을 갱신하며 벌어 놨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다.(월간 최다승 최고승률은 다음해 KIA 타이거즈에 의해 재 갱신된다.)

이때 SK팬들의 느낌은 5점차 6점차로 뒤지고 있어도 이길거 같고 어차피 경기는 이기는거니까 스탯이나 챙겨보자

긍정적인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윤길현이 KIA의 최경환에게 욕설을 하면서 빚어진 욕설파문과 아시안 시리즈 예선에서 대만의 퉁이 라이온즈에게 지면서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또 창단멤버이자 시즌 내내 멀티플레이어로서 활약한 이진영이 LG로 이적하며 전력이 약화되었다.

3.1.8 2011년 ~ 2014년 - 이만수 감독 체제

3.1.9 2015년 ~ 2016년 - 김용희 감독 체제

3.1.10 2017년 트레이 힐만 감독 체제

3.2 관련 기록들

3.2.1 역대 성적

­우승
­준우승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정규시즌 순위최종 순위팀이름경기수승률
2000매직 4위/4팀8위SK 와이번스133448630.338
20017위/8팀7위133607120.458
20026위/8팀6위133616930.469
20034위/8팀준우승133666430.508
20045위/8팀5위133616480.488
20053위/8팀3위126705060.583
20066위/8팀6위126606510.480
20071위/8팀우승126734850.603
20081위/8팀우승126834300.659
20092위/8팀준우승133804760.602
20101위/8팀우승133844720.641
20113위/8팀준우승133715930.546
20122위/8팀준우승133715930.546[35]
20136위/9팀6위128626330.496
20145위/9팀5위128616520.484
20155위/10팀5위144697320.486
20166위/10팀6위144697500.479
KBO 통산 17시즌V3 224511451048520.522

그 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항목 참조.

3.2.2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삼성 라이온즈03준PO : 2승
10KS : 4승
11KS : 1승 4패
12KS : 2승 4패
준PO 1승, KS 1승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9승 8패
KIA 타이거즈03PO : 3승
09KS : 3승 4패
11준PO : 3승 1패
준PO 1승, PO 1승,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9승 5패
현대 유니콘스03KS : 3승 4패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3승 4패
한화 이글스05준PO : 2승 3패
준PO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2승 3패
두산 베어스07KS : 4승 2패
08KS : 4승 1패
09PO : 3승 2패
PO 1승, KS 2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11승 5패
롯데 자이언츠11PO : 3승 2패
12PO : 3승 2패
PO 2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6승 4패
넥센 히어로즈15WC : 1패
WC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1패

3.2.3 역대 감독

역대이름재임기간(시즌)성적비고
초대강병철2000 ~ 2002399전 165승 226패 8무
2대조범현2003 ~ 2006518전 257승 243패 18무2003년 한국시리즈 진출 (준우승)
2005년 준플레이오프 진출 (탈락)
3대김성근2007 ~ 2011611전 372승 232패 13무2007년 한국시리즈 진출 (우승)
2008년 한국시리즈 진출 (우승)
2009년 한국시리즈 진출 (준우승)
2010년 한국시리즈 진출 (우승)
감독대행이만수201140전 19승 18패 3무2011년 한국시리즈 진출 (준우승)[36]
4대이만수2012 ~ 2014389전 194승 187패 8무2012년 한국시리즈 진출 (준우승)
5대김용희2015 ~ 2016288전 138승 148패 2무2015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 (탈락)
6대트레이 힐만2017 ~ ?0전 0승 0패 0무

3.2.4 역대 주장

2000년최태원
2001년양용모
2002년박계원
2003년김기태
2004년조원우
2005년강성우
2006년김재현
2007년김원형
2008년이호준[37]김원형
2009년박경완
2010년김재현
2011년이호준
2012년박정권
2013년정근우
2014년박진만
2015년조동화
2016년김강민

3.2.5 유니폼 변천사

3.2.6 선수단 일람

3.2.7 등번호 일람

3.2.8 캐치프레이즈

  • 2000년 : 패기의 SK! 승리의 와이번스![38]
  • 2001년 : 불같은 패기! 뜨거운 감동! SK와이번스!
  • 2002년 : 패기의 SK! 팬과 함께 우승영광!
  • 2003년 : 세계로 향한 인천! 우승을 향한 SK![39]
  • 2004년 : 정상을 향한 무한비상! SK와이번스!
  • 2005년 : 구도[40] 100년! 챔피언 원년! 인천 SK!
  • 2006년 : 우승을 향한 행복 날개![41] SK와이번스!
  • 2007년~2009년 : Fan First! Happy Baseball![42]
  • 2010년 : Go Green! Enjoy Baseball![43]
  • 2011년 : 불꽃투혼 SK! 팬과 함께 V4![44]
  • 2012년~2014년 : Touch Wyverns! Go V4!
  • 2015년 : One Team! One Spirit![45]
  • 2016년 : 새로운 시작! 새로운 도전!

4 영구결번

SK 와이번스 영구결번
No.26 박경완

2014년 3월 10일, 박경완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하기로 결정했다. SK 와이번스 첫 영구결번. 인천 SK 행복드림구장 백스크린 뒷쪽에 야구공 모양의 영구결번 기념 조형물이 있다. 야간 경기에는 조명이 들어온다.

조금 특이한 점은 일반적인 영구결번 선수들은 그 팀에 입단해서 평생 그 팀에서 큰 기여를 한 선수들이 전부다. 박경완은 인천 출신도 아니며 SK가 아닌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다가 현대 유니콘스로의 트레이드를 거쳐 SK에 자유계약선수로 입단한 선수다. 때문에 앞에서 서술한 일반적 영구결번 지정 조건에는 맞지 않는다.[46] 더구나 박경완의 최전성기는 4연타석 홈런과 포수 최초 20-20클럽 가입 기록을 세웠던 현대 유니콘스 시절(1997~2002)이었다는 역시 독특한 점.

그러나 창단 초창기의 흑역사를 걷어내고 SK가 강팀이 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았고 2000년대 후반 V3에 지대한 공을 세운 전설적 선수이기 때문에 구단의 첫 영구결번 사례가 됐다. 엄밀히 따지자면 인천 프랜차이즈에서 오랫동안 돋보이는 활약을 했고 그에 대한 기여를 기리기 위해 영구결번이 결정됐다고 볼 수 있다.[47]

박경완 이외에도 영구결번급으로 언급될 만한 번호가 있다면 단연 인천야구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김경기 2군 감독의 00번. 물론 김경기 감독이 SK 현역 선수로 뛴 시간이 2시즌(2000~2001)에 불과한데다 김 감독의 현역 활동 기간이 SK의 창단 초창기 흑역사 시즌에 해당하고 김 감독 스스로도 SK 선수 시절 기록적인 활약을 한 적이 없기에 SK의 영구결번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인천야구 전체 역사를 아우르는 영구결번으로는 헌액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 보면 00번은 사실상 영구결번이나 다름없다고도 볼 수 있다. 애초에 00번이라는 등번호도 희귀하지만 SK 구단 16년 역사에서 등번호로 00번을 달았던 선수는 김경기 감독이 유일하다. 적어도 인천에서만큼은 00번이 갖는 의미가 남다른 만큼 앞으로 김경기 감독 이외의 다른 사람이 인천 연고팀에서 00번을 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인천야구를 빛낸 슈퍼스타 중 한 명인 빵형박재홍 해설위원의 현역 시절 등번호 62번도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박재홍의 경우 현역 선수 은퇴 당시 SK 구단과의 결별 과정이 그리 매끄럽지 못했다는 점에서[48] SK 구단이 훗날에라도 62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미지수다.

5 2군 구장 : SK 퓨처스 파크

2006년까지는 용현동의 SK 와이번스 2군 구장을 사용했으나, 구장이 위치한 지역이 재개발 지구로 정해진 터라 도원 구장으로 잠시 이전, 하지만 도원 구장까지 축구장 지으려고 헐리고 결국 송도에 위치한 열악한 야구장을 2군 임시 경기장으로 쓰게 되었다. 야구장 바로 옆에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시설이 있는데, 이 시설에는 나오는 악취 때문에 경기가 중단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빈번하다.

그리고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강화군 길상면에 새로운 2군 시설이 지어진다 하여, 팬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으나, 시와의 부지 매매 관련 협의가 잘 안되었는 지 한동안 건축은 커녕, 삽질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2013년까지 송도내의 LPG기지내의 야구장을 임시 2군 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드디어 시와의 협의가 끝났고, 2013년 4월 첫 삽을 떴다고 한다. 연습 경기장은 일단 2014년 내에 완공 예정이라고발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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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까지 공정률이 30%에 불과해 팬들의 걱정이 많았으나 이후 작업속도를 내면서 공사를 시작한지 정확히 2년이 된 2015년 4월 1일, SK퓨처스파크 개관식이 거행되었다. SK퓨처스파크는 8만6762m²(2만6245평)의 대지에 주경기장, 보조경기장, 수펙스돔(실내훈련장), 패기관(숙소) 등 4가지 주요 시설로 이뤄졌다. 주경기장(2군 훈련과 경기 전용)과 보조경기장(재활·잔류·육성군 전용) 모두 실전을 치를 수 있는 규모로 조성됐다. 실내훈련장은 투수와 야수 시설을 분할해 건립됐다. 에너지 효율과 친환경,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신경을 썼다. 또 숙소는 37개 객실 모두를 1인1실로 만들어 어린 선수들 위주로 수용할 계획이다.

6 논란

6.1 인천야구의 정통 계승

인천팬들을 끌어들이려는 일환에서 2002년 8월 24~25일에 과거 인천을 연고로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했는데, 당시에는 아직 현대 유니콘스멀쩡하게 살아있었던 관계로(...) 이벤트 이름도 꿈★의 이벤트가 되었으며, 결국 가슴의 별에는 삼미 로고의 S 대신 SK가 박혀있는 유니폼으로 대신했다.

더군다나 올드 유니폼 데이의 흑역사였던 2008년 태평양 데이에서는 현대가 없어졌고 태평양 돌핀스의 모기업이었던 태평양도 회사명을 '아모레 퍼시픽'[49]이라고 바꿨기 때문에 태평양 로고를 붙이고 경기했지만, 하필 그 때의 상대가 히어로즈였다(…). 여기에 SK가 KBO에만 행사의 사전 협의를 하고 히어로즈 측에는 통보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과거에 같은 한 팀을 응원했던 히어로즈들과 SK팬들 사이에서 더욱 깊은 갈등과 대립을 낳고 말았다... [50]

2009년 9월, 이 문제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데, 바로 히어로즈 프런트에서 '과거 히어로즈의 전신이 된 팀'(그러니까 삼미와 태평양도)의 유니폼 모양의 LED 뱃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언론에서 떠들 정도로 사태가 크진 않았지만, 이미 양측 팬들간의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해버렸다.(한때 같은 한 팀 응원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인천'을 이은 팀과 '사람'을 이은 팀 간의 싸움에서 과연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51][52]

참고로 메이저리그에선 태평양데이 같이 연고팀을 떠나보낸 팬을 위해 정착팀이 옛 연고팀의 올드유니폼 행사가 종종 있는데, 그 중 태평양데이와 가장 유사한 사례는 시애틀 매리너스가 옛 연고팀 시애틀 파일러츠의 유니폼을 입은 행사이다. 시애틀 파일러츠는 밀워키로 연고를 이전하고 밀워키 브루어스로 구단명을 바꾸고 현재도 존재 중, 또 밀워키 브루어스도 행크 아론을 기념하기 위해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유니폼을 입는데 이 구단 역시 연고를 이전하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구단명을 바꾸고 존재하는 상태이다. 또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사라진 옛 니그로리그 연고팀 블랙삭스의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또 과거 뉴욕(브루클린)에서 연고 이전한 LA 다저스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경우처럼 연고지 이전 전의 기록들을 모두 인정하고 기념하는 것으로 히어로즈의 정당성을 말하는 이도 있지만 앞서 말한 메이저리그 두 팀과는 달리 연고지 이적과정에서 벌어진 잡음으로 삼청태현의 전신들과 공식적으로는 별개의 팀이기 때문에 엄연히 차이가 있다.

이 문제는 SK와 넥센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이며, 어느 한 쪽이 양보를 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동안 대립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양보를 하더라도 골수 팬들은 인정을 안 하는 상황이 분명히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간혹 SK 와이번스의 창단을 놓고 현대처럼 쌍방울 레이더스를 버리고 연고이전했다고 까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이 경우는 인천을 둘러싼 연고이전과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물론 이것마저 문제삼고 나온다면 할 말은 없다. 이외에도 꼴찌를 밥먹듯이 하거나 우승하고 잘나가나 싶더니 뒤통수 치고 떠나버렸던 인천 연고 야구팀들의 역사 탓에 여러 가지로 말이 많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SK의 프론트는 쌍방울과의 단절과 동시에 인천 연고를 강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일례로, 구단 응원문구에 공식적으로 연고지 이름이 들어가는 구단은 와이번스가 유일무이하다.[53]또한 국내 최초로 지역명을 유니폼 상의 전면에 표기한 것 역시 SK.[54]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이 논란에 있어서 쌍방울과의 단절은 SK로서는 뼈아픈 일이다. 쌍방을 계보를 이어받아 인천으로 연고 이전했다면 적어도 정통성 논란에서는 지금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3월, 현대 유니콘스의 모기업이었던 하이닉스는 SK에 인수되어(…)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것이 바로 사필귀정??

6.2 프런트와 현장과의 갈등

지금은 프런트는 팀워크의 낭비임을 증명한 프로야구단 2호라지만. 전임감독 강병철과 조범현의 성적이 그렇게 좋다고 볼 수 없는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두 감독 모두 임기를 채우고 원만하게 물러났으며, 연봉 협상에 대한 잡음이 거의 없고, 심지어 김성근 감독이 프런트에 대해 보이는 신뢰 등 타팀 팬들이 보기에 SK의 프런트는 대단히 개념충만한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실제 SK팬들이 보았을 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김성근 감독이 언론과 그다지 친밀하지 않아 비난에 가까운 기사가 수도 없이 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방송해설 중이나 블로그에서 끊임없이 까는 민훈기 기자라든가, 스포츠동아의 스고이 김영준, 최민규 기자[55] 등이 대표적) 프런트에서 거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2008년 이후 끊임없이 용틀임마당을 비롯한 팬 커뮤니티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전에도 '밥값 문제'나 신영철 사장의 막걸리 야구 사건 등 곳곳에서 팀킬을 저지른 마당에[56] 2010년 6월의 이만수 수석코치의 2군 감독 이동을 둘러싸고 벌어진 중대한 병크에 대해서 '프런트 까는 내용이 나오고 나서야 적극적으로 기사를 내렸다'는 폭풍비난을 듣고 있는 중이다. 그 외 사퇴당시 김성근 감독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의 야구스타일에 대해 구단이 직접 비판을 하였다고 한다.

7월 29일에 구단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을 폐쇄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 페이지로 대체한다는 공지를 하는 병크를 저질러버렸다. 자유게시판에 김성근 감독 재계약 글, 프런트가 감독 디스한 예, 5년동안 전력 보강이 전혀 없는 점을 지적한 글이 대부분 차지하자 이에 못마땅한 프런트 직원이 저런 병크를 저질러버린 것. 참고로 2014년 현재까지도 구단 공식 게시판인 용틀임 마당은 부활할 기미도 없다. 대신에 SK와이번스 팬카페로 비룡군단이 만들어졌다. 현재로는 김우중 장내아나운서와 치어리더들이 가입되어 있다.공식 팬카페가 아니라는 것은 함정

결국, 8월 17일자로 김성근 감독이 2011 시즌 후 자진 사퇴를 선언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그러자 프런트는 바로 다음날 김 감독을 얼씨구나 하고 전격 경질. 재계약 문제때는 거북이 걸음마냥 차일파일 미루며 굼뜬 행보를 보이더니 김 감독이 자진 사퇴 한다니까 대번에 칼같이 해고해버렸다. 이로 미루어볼 때 올 시즌이 끝나든 어떻든간에 프런트 측에서는 김 감독과 결별할 생각이었던걸로 여겨진다.

프런트에 대한 불만은 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던 김성근 감독[57]의 퇴임으로 결국 폭발하였다. 김성근 전 감독의 팬들은 문학구장 소요 사태를 일으켜 구단에 수천만 원의 손해를 입히고, SK 와이번스 프런트 퇴진운동까지 벌어지는 중.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이 프런트와 팬들의 갈등으로까지 번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팬들이 돈을 모아 지하철 무가지에 광고를 때렸을 정도니... 게다가 구단측에서는 팬들을 달래기보다 제 2의 소요 사태를 염려하여 9월에 들어서 팬을 상대로 불법채증을 저지르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2013년 2월에 신영철 사장이 퇴임했다. 참고로 신영철 사장은 우승 직후에 "빈틈있고 인간미 나는 막걸리 야구를 하고 싶다", "훈련은 많이 시킨다고 해서 전지훈련비에 구장 조명비, 식비까지 팍팍 나가는데 성적은 그에 비해 안 나온다" 등의 개드립을 한 바도 있다. 2013년 1월에도 "개인주의 선수는 필요없다"라는 망언으로 욕을 실컷 먹었다. 하지만 반 프런트 성향의 SK 팬 일부가 '악의 축 신영철에게 그룹 수뇌부가 정의의 심판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신영철 사장은 2012년 말의 최태원 회장 법정 구속에 따른 일련의 사태로 모기업인 SK텔레콤의 경영 방침 중 하나인 '회장 부재시 사장단 친정 강화책(회장이 부재중이니 최고 의사결정 구조를 사장단 쪽으로 무게추를 바꾸는 작업)'에 따라 그룹 계열사의 사장단 인사이동으로 인해 SK 텔레콤 고문직으로 영전한 것이지. 야구단 운영 문제 때문에 퇴임한 것은 아니다.[58]

2015시즌 종료 후 김용희감독 경질설이 돌았지만 애초에 처음부터 2016시즌까지 2년 계약이었고, 구단 측에서도 코칭스탭 개편 선에서 선을 긋는다는 입장이라 결국 내년에도 김용희 체제로 가게 되었다. 썩 반가운 결과는 아니지만 예상했던 결과라는 반응이 다수. 애초에 팀 성적이 밑바닥을 찍던 이만수감독 시절에도 결국 계약기간을 전부 채운 프런트였으니.......

6.3 사건 사고

7 기타

  • 견제 응원이 없기로 유명했었다. 2007년까지는 견제구호[59]가 있었으나 2008년 윤길현 욕설 사건 이후 김성근 감독의 의견으로 타 팀 선수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없앴다고 한다.[60]
  • 또 김성근 감독이 기자들과 대화 중 "일본에서는 내야에서는 조용하게 야구보는 사람들이 오고 외야에서 주로 응원을 하는데, 그 이유가 투수들 집중을 깨지 않기 위함이다. 응원하는 건 좋지만 투수 견제구호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투수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라는 말 한마디를 한 이후로 SK 팬들이 자발적으로 견제 응원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 하지만 2011년 8월 김성근 감독이 경질된 이후 김성근 팬덤을 중심으로 한 SK 팬층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견제 응원이 부활할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시즌부터 견제 응원이 부활했다!![61]
  • 타팀팬들이 SK를 비하하는 명칭으론 기본적으로 이 있고[62] 여기게 다양한 접두어,접미어를 붙이는데 접두어로는 대표적으로 10, 접미어론 벌레 蟲이 자주 쓰인다. 이중 충이란 명칭이 SK고유의 별칭[63]이라 이해하면 된다. 벌레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2007 코시의 정근우의 다리잡기, 2008 시즌 윤길현 사건, 이기고 있는 9회말 2아웃에서 투수교체 등등으로 지저분하게 야구한다는 의미. 여기에 야구본지 얼마 안되는 티 팍팍내던 SK팬[64]들을 조롱하는 의미도 있다. 이른바 2008년부터 야구본 놈들.[65]
  • 충이라 불리는 이유를 몇가지가 더 꼽아볼 수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다음과 같은 이유는 절대로 아니다. 원문
각 팀을 가리키는 비하적 표현이 없지는 않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를 중심으로 확산된 별명이기는 하지만 SK 와이번스를 ‘충’, 두산 베어스를 '범죄두' 한화 이글스를 '꼴칰', LG트윈스를 ‘헬쥐’ 혹은 '조작쥐'로 일컫는 식이다. ‘충’은 SK의 우리말 발음에서 비롯됐고, (이하 생략)
SK의 우리말 발음이 어떻게 충으로 연결되는지는 오로지 저 글을 쓴 기자 자신만이 이해할 것이다(...). 사실 충이 아닌 슼을 대입하면 맞는 말이긴 하니 굳이 기자를 옹호해주자면 슼이 아닌 충으로 잘못 적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 슼충의 어원은 팀이 한창 잘나가던 07년 김성근 감독 특유의 완벽주의와 승부에 대한 집착이 타 구단 팬들의 반감을 사서 구단의 마스코트인 '비룡'을 비하하며 '이런 쫌생이 야구를 하는 팀은 비룡이 아니라 지렁이 같은 놈들이다'라고 깎아내리는 과정에서 지렁이=미물=벌레=蟲의 과정으로 이어진것이다.
  • 이란 별칭은 야구판에선 와이번스 이외의 타팀에겐 잘 안 쓰이지만, 야구판을 벗어나서 xx충이란 별칭이 붙으면 xx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인간 이란 의미로 종종 사용된다. 최근엔 이 게임에서 가장 널리 쓰인다.
  • 그리고 SK 프런트가 2014년부터 문학야구장 위탁 관리전권을 인천시로부터 위임받으면서 야구팬들이 미래의 비전으로써 바라던 구단이 직접 야구장을 관리하는 꿈과 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다.팬들도 프런트를 욕하는 와중에 이 일만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점점 더 발전하고 프런트에서 말해오던 볼파크로써 달라지는 문학야구장을 기대해보자. 그리고 2015 시즌 개장을 앞두고 엄청난 개보수가 이루어 졌다!!! 인천 SK 행복드림구장 항목 참조.
  • 여담으로 위탁관리전권과 관련해서 사건이 하나 있었다. 2014년 2월 6일 기사에 따르면 구단 사무실이 위의 위탁 전권과 관련해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고 한다. 구단측과 인천시 공무원간의 유착 혐의를 수사한다고 한다. 그리고 4월 8일 수사결과로 인천시 당국과 SK 구단 사이의 유착혐의는 없는 것으로 최종결론이 났고 유착혐의와는 별도로 구단 전직 임원 A와 응원대행업체 사장 B의 횡령 사실이 드러나 입건되었다. 유착 혐의를 파려고 했는데 엉뚱한게 걸렸다.
  • 2016년부터 kt 위즈 2군이 수원에 있는 성균관대학교 야구장을 떠나 익산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1군과 2군의 연고지가 같은 유일한 구단이 되었다. 강화군인천광역시 소속이기에 가능한 일.

7.1 마스코트

구단 초기 마스코트 정보는 여기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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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초기부터 2007년까지 사용했었던 마스코트 비룡.
2000년 중반에 용돌이, 용순이로 이름이 변경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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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SK로고가 교체됨에 따라 약간 바뀐 비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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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와우&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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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팬 페스트 행사에서 리뉴얼 된 와우와, 새롭게 공개된 윙키.


2012년을 앞두고 새 마스코트를 발표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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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KT 소닉붐의 우주복 마스코트 못지 않은 최악의 병맛 마스코트가 등장했다. 같은 그룹에서 후원하는 모 프로게임단의 마스코트는 인기가 정말 대단한데 뿐만 아니라 비룡은 어디 가고 웬 개미핥기냐라고 하면서 까이고 있다. 아 ! 얼마나 무서운가그래도 동체공학적구조로 된 마스코트라 호랑이는 털 수 있잖아. 더 큰 문제는 이게 MLB 필라델피아 필리스 마스코트 필리 패나틱(Philly Phanatic)을 그대로 가져다 베낀 수준이라는 것. 위의 그림에서 털 색깔만 초록색으로 바꾸고 유니폼만 갈아입혔더니, 어?!


게다가 저 색상을 바꾼 이미지로 구글 유사 이미지 검색을 돌리면 자동으로 Phillie Phanatic으로 인식해서 검색을 수행해 준다. 구글신의 눈은 역시 속일 수 없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원래 이름인 '윙고' 대신 모두들 솩우튀김(…)으로 부르게 되었다.

결국 좋은 소리 못 듣는걸 구단쪽에서도 인지한건지, 어정쩡한 타협안으로 여캐인 윙키는 내버려두고 와우는 짜르는걸로 결정되었으나 어째서인지 현 2015년 9월 홈페이지에서는 기존 마스코트인 와우와 윙키와 함께 윙고가 같이 있다.[1]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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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고퀄리티
2016년 새로운 마스코트를 공개했다. 바로 아테나. 그리스 신화의 그 아테나가 맞다. 연고지 및 구단명과 아무 상관 없으면서 동시에 표절논란까지 있었던 윙고보다는 낫지만, 이쪽도 연고지와 구단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동일하다.사실상 SK 아울스(Owls)

새로운 마스코트의 시구 이 와중에 댕이 오빠는 마스코트의 시구에 깜짝 놀랜건 덤. 참고로 이 시구 모델을 서유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아쉽게도 아니다.
공개 하루만에 미화짤이 나왔다(...)

7.2 지역 연고 학교

7.3 네임드 팬

일단 와이번스 구단의 역사가 길지 않고 삼청태현 시절로 스펙트럼을 넓힌다고 해도 1983년[66], 1989년[67], 1994년[68], 1996년[69], 1998년[70]을 빼고는 성적이 변변치 못했던데다 팀의 주인이 통째로 자주 바뀌었던 아픈 역사가 여러번 되풀이됐던 탓에 다른 팀에 비해서 유명인 팬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대부분은 인천광역시 출신이거나 인천광역시에 거주 중인 인사들이 와이번스의 팬을 자처하고 있다.

8 같이 보기

  1. 아테나의 상징 중 하나가 부엉이.
  2. 도시연고로는 인천광역시이며 광역연고로는 부천시, 김포시, 안산시, 시흥시 등 인천과 인접한 수도권 서부 지역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과거 광역 연고제 시절 인천 연고팀의 연고지 범위는 인천광역시를 넘어 경기도강원도, 이북5도(...)까지 크고 아름다운 수준이었다. 1차 지명 신인 우선지명 연고지도 인천, 경기, 강원지역이었다. 현재는 인천광역시 내 3개 고등학교와 경기도 내 일부 고등학교에 대해 우선 지명권을 갖고 있다. 경기도 지역의 지명권은 수원시 연고 팀인 kt 위즈와 분할해서 보유하고 있는 상태.
  4.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으로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막내 아들이다. 현재 SK가스와 SK케미칼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야구에 심취한 열혈 야구팬이라고 알려져 있다.
  5. 와이번스 창단 이전인 1990년대 후반부터 SK그룹의 회장은 최태원이었지만 본인이 직접 구단주를 맡은 적은 없다. 창단 초창기부터 구단주를 맡았던 사람은 SK그룹 회장과 SK텔레콤 명예회장을 지낸 손길승 씨였다. 이후에는 구단주 대행 체제로 이어졌는데 SK텔레콤 사장 출신인 정만원 부회장이 구단주 대행을 맡았던 적이 있다. 그래도 최태원 회장은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야구장을 찾아 일반석에서 임원들과 와이번스를 응원하곤 한다. 2007년2008년 우승 때는 헹가래도 받았다. 참고로 최태원 회장은 SK그룹 스포츠단 6개 중 여자 핸드볼팀을 제외한 어느 구단에서도 구단주를 맡지 않고 있다. 축구단SK에너지 대표이사, 농구단게임단SK텔레콤 대표이사, 남자 핸드볼팀SK하이닉스 대표이사가 구단주다.
  6. 배우 류준열과 동명이인
  7. 문학 야구장. 2015년 3월 31일자로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8. 따라서, 쌍방울 레이더스의 역사를 계승하지 않는다.
  9. 이 쪽은 "기아"라는 단어의 다른 의미 탓. 한글 '기아' 표기는 과거 해태의 가난한 이미지가 연상된다고 해서(...) 영문 표기를 쓰고 있다. 그런데 KIA도 다른 의미가 있지 않나?
  10. SK케미칼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SK그룹이 김대중 정부 고위층의 프로야구단 창단 권유를 받아들이자 야구단 창단 준비팀장으로 발령이 났고 이후 SK 와이번스의 초대 사장으로 선임됐다. KBO리그 각 구단 사장들의 모임인 KBO 이사회에서는 '파이터' 내지는 '깡패 사장'(...)으로 유명했던 사람. 아닌게 아니라 일면식도 없었던 박용오 당시 KBO 총재에게 다짜고짜 전화해 "SK에게 서울 연고지를 주시오."라고 요구한 적도 있고 창단 초기 신생팀에 대한 지원 방안으로 1라운드 신인 추가 지명을 강하게 요구한 사례도 있다. 서울 연고지는 못 얻었지만 인천, 경기, 강원 연고권을 얻었고 2001년과 2002년에는 2차 1라운드에서 3명의 신인을 뽑기도 했다. 이 때 뽑은 선수들이 윤길현제춘모.
  11. 현대서울 입성에 실패하고 수원을 불법 점거한 탓도 있다.
  12. 같은 이유로 롯데 자이언츠마산에서 경기를 안 해도 제도적으로 문제가 될 근거는 없다. 전북, 전남을 모두 아우르는 연고지를 갖고 있음에도 기아 타이거즈2009년, 4년만에 다시 군산시에서 경기하기로 협정을 맺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13. 옛 용정리 앞바다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말이 있어 '비룡리'로 불렸다가 이게 '독정리'와 합쳐서 '용정리'가 되었고, 광복 후에는 현재의 '용현동'이 되었다. 인하대학교 캠퍼스에 비룡탑이 있고 인하대역 인근에 비룡삼거리가 있는 것도 이 지역의 원래 이름이 비룡리였기 때문이다.
  14. SK 와이번스의 모기업은 정유사업을 관할하는 SK에너지가 아니라 SK텔레콤이다. 2005년까지 SK 와이번스와 SK 나이츠, SKT T1이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것이 바로 과거 다른 SK 계열사와는 별개로 되어 있던 SKT의 청색 CI를 따랐기 때문이다. 진짜 주유소로 볼 수 있는 쪽은 법인화 이전의 부천 SK와 제주 유나이티드.
  15. 두산이 최악이다를 줄여서 돡이라 불렀는데 그것을 응용한 것.
  16. 삼성 라이온즈2010년~2015년으로 공동 1위, 해태 타이거즈1986년~1989년 4연속으로 3위에 올라 있다.
  17. 순수 최다승은 00현대 유니콘스의 91승.
  18. 특히 투수천국으로 불리며 요 근래에는 국가대표 에이스급 투수인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등이 배출되었다.
  19. 2010년도에 2루수로 출전했다.
  20. 올해는 3루 띠전광판이 교체될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거기 말고는 더 고칠 곳도 없으니까(...)
  21. 넥센을 제외한 타 구단은 1년에 150억~200억 정도의 적자를 보며, 이를 메꾸기 위한 차입으로 연 200억 정도가 들어간다. 삼성은 삼성카드, 두산은 두산중공업, NC당연히 NC소프트에서 돈이 들어가는 식. 한때 흑자를 보기도 한 롯데의 경우도 매년 롯데제과를 통해 130억원이 광고비 명목으로 지원되고 있다. 09년부터 10억원 가량 흑자를 꾸준히 본것도 170억원의 수익과 더불어 계열사 광고 130억원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2. 다만 부천시는 근처에 고척 스카이돔이 인접해 있는 넥센 히어로즈와 팬덤이 나뉜다는 점.
  23. 2012년 수인선 개통으로 접근성이 나아지고 있다.
  24. 김광현의 고향이며 시흥시와 마찬가지로 수인선 개통으로 야구장과의 접근이 수월해졌다.
  25. 인천 연고 프로스포츠 팀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26. 성영재는 단 2시즌 해태/기아 투수진에 도움이 되었지만, 이호준은 2002년 자리잡아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하였다.
  27. 헛껍데기 수준이었던 쌍방울 출신 전력이 빠르게 사라졌다는 점은 전력상으로 도움이 되었고, 이 자리를 신인지명과 트레이드, FA 영입을 통해 보강을 하면서 강화하게 되었다. 이대호 거르고 김동건은 뼈아픈 실책으로 남았지만
  28. 현대나 SK나 당시에는 팬덤이 적어서 흥행에는 실패했다.
  29. 2007년의 한화 이글스의 용병과는 다른 인물
  30. 왈론드의 깔끔한 마무리와 한규식의 결승타.
  31.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는 모두 승리팀이 스윕했다.
  32. 특히 최정은 10대에 두자릿수 홈런을 치는 KBO 4번째 선수(김재현-이승엽-김태균에 이어)가 되었다.
  33. 이대수와 트레이드. 이대수가 송구동작을 사이드스로를 하는걸 김성근감독이 고치라고 했는데 말을 잘 안들어서 트레이드 시켰다는 카더라통신이 있었다.
  34. 레이번 성적을 보면 평균자책점 순위권에 들 정도로 좋은 투구 내용을 보였지만 레이번 선발 등판이 SK 타자들은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많은 SK팬들은 레이번이 불쌍하다고 할 정도로 안타까워했다. 윤석민상 그리고 2016년 현재 같은 팀 외국인 후배 메릴 켈리가 레이번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35. 2011년과 승무패, 승률이 완전히 동일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페넌트레이스 2위다.
  36. 최초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감독대행
  37. 2008년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사실상 주장직을 해보지도 못하고 김원형에게 넘겨주었다.
  38. 이후 구단의 공식 슬로건이 됐다. 캐치프레이즈에 적힌 '패기'는 SK그룹의 인재상이기도 하다.
  39. 캐치프레이즈에 지역명을 직접 표기한 흔치 않은 사례. 인천 팬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SK가 인천 연고 팀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결국 이 해 SK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적잖은 성공을 거뒀다.
  40. 球都. 야구도시라는 뜻으로 인천에서 처음 야구가 시작됐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41. SK그룹의 CI에 행복 날개가 추가된 점을 감안해 제정됐다.
  42. "'스포테인먼트' 시대를 열겠다"는 취지로 "팬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다"면서 마련한 캐치프레이즈였다. 그리고 그 팬들은 호구가 됐다
  43. 연두색 유니폼을 입는 이마트 그린데이 시리즈가 이 해부터 시작됐다.
  44. 원래는 'Do Dream! SK Wyverns! Let's go V4!'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팬 공모를 통해 선정됐지만 발표 이후 당시 부천 FC 1995 축구단의 캐치프레이즈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밝혀졌고 결국 재선정됐다.
  45. 김용희 감독이 제안했다.
  46. SK가 쌍방울 선수들을 일부 흡수(정확히는 고용 승계)한건 맞지만 해체 후 신규 창단 방식으로 생긴 팀이기 때문에 SK와 쌍방울은 별개의 구단이다.
  47. 박경완의 프로 경력 23년 중에서 인천에서 활약한 시간은 절반이 넘는 14년(현대 시절 3년+SK 시절 11년)이다. 이 때문에 박재홍과 마찬가지로 인천 출신은 아니지만 인천야구를 빛낸 스타라고 해석할 수 있다.
  48. 그래도 은퇴식은 SK 구단 프런트가 배려를 해준 덕에 나름 화려하게 진행됐다.
  49. 사실 퍼시픽은 태평양을 영어로 쓴거다.
  50. 물론 법적으로 태평양과 히어로즈의 연계성은 없으므로 SK가 히어로즈 측에 통보를 할 의무는 없었으나...더군다나 그 당시에는 태평양 시절부터 팀의 부침을 지켜봐 왔던 이숭용과 전준호(투수)가 있는 상황이었고. 당시 전준호는 "우리의 과거가 부정당하는 것 같다"라며 씁쓸해했다.그리고 얼마 뒤 방출되어 SK로 왔지
  51.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시도하던 당시 인천 출신의 유명 유격수투수는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 더 좋잖아요."라는 말로 인천 야구팬들의 속을 뒤집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 중 한 선수는 인천으로 되돌아와서 SK 와이번스에서 아직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오래된 이야기라서 진실여부는 불확실.
  52. 또한 정민태의 경우, 현대가 해체되기 전인 2007년 무렵에 SPORTS 2.0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인천팀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이것이 진심인지, 혹은 2000년 당시엔 서울연고구단으로 가고 싶었다가, 현대가 서울에 정착하지 못하자 차라리 수원보다 인천이 낫다는 뜻인지, 혹은 그저 언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53. 인천SK. LG는 무적LG, 넥센은 히어로즈, 그외 확실한 응원문구를 정하지 않은 NC와 kt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최강OO(최강한화, 최강삼성 등)을 쓰며, 롯데가 홈경기 한정으로 부산롯데를 가끔씩 쓴다. 여담이지만 현대의 응원문구는 막강현대.
  54. 사족으로, 과거에는 여러 구단들이 연고지역명을 유니폼의 어깨 부분에 광고와 같이 달았지만, 마지막까지 유지했던 건 유니폼에 대구를 새겨 넣었던 삼성...이었는데, 2013년부터 대구 마크를 제외시켰다. 대신 들어간 건 삼성화재.
  55. 그러나 2015년 김성근 감독의 행적이 비판받으면서 최민규 기자가 재평가되었다.
  56. 신영철 사장은 현장과 갈등을 빚기 전까지는 자신의 부임 이전에 굴러가고 있던 기존 프런트진을 쳐내는 정치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평사원으로 SK에 입사한 후 와이번스 창단과 동시에 프런트 지원팀장 업무를 맡아 최종준 전 단장을 보좌하면서 신생구단을 연고지에 안착시키고, 최 단장 퇴임 후에는 단장으로 승진하여 우승을 일궈낸 명영철 단장을 신 사장은 취임 2년 만에 내치고 단장직을 일시적으로 폐지했으며, 프런트 요직은 자기 사람들로 채웠다. 프런트의 타락은 'SK 왕조'의 시작부터 예고되어 있었던 셈.
  57. 현대의 야반도주로 돌아선 인천팬들의 야구사랑을 되찾아 왕년의 球都를 되살렸다.
  58. 일례로 김응용 한화 감독도 삼성 사장 시절인 2010년 말에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이동 때 물러났는데, 이 역시 2010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책임을 지고 잘린 것이 아니다. 선동열은 그게 맞지만
  59. 구체적으로 "야! 그러면 안되지이~" 라는 구호를 외쳤다.
  60.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견제구가 들어오면 투수가 아닌 자기팀 주자에게 뛰어! 라고 외친다.
  61. (삐빅!) 쩔어! x3 '쩔어'는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인천 방언 중 하나다.
  62. 두산베어스의 비칭인 '돡'과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졌다. 즉, "스크(SK)가 최악이다" = '스악' = '솩'.
  63. 물론 안좋은 쪽으로
  64. 이 이미지는 최근 여성팬들이 급증한 두산에 넘어갔다. 이른바 얼빠천국
  65. 08년 부터 야구봤다는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야구 전체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야구대표팀이 全勝우승으로 금메달을 따면서 야구보기 시작다는 것, SK로 한정하면 그 해 SK가 한국 야구사에 남을 강팀의 족적을 남기면서 유입된 쪽이란 것. 어느쪽으로든 기본적인 규칙도 모르는 한마디로 양산형 팬이란 의미. 하지만 2008년부터 야구를 봤다고 해도 2016년 기준 벌써 8시즌째다. 이젠 완전 초보라 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66. 장명부를 앞세워 삼미 슈퍼스타즈가 돌풍을 일으켰던 해
  67. 태평양 돌핀스가 인천야구 사상 최초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해
  68. 태평양 돌핀스가 인천야구 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해
  69. 현대 유니콘스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진출
  70.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야구 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 패권을 거머쥐었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