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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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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9T18:48:01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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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1일 (토) 12:55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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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1T12:55: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상위 항목 : [[가톨릭]], [[천주교 청주교구]], [[성당]]&lt;br /&gt;
 * [[http://www.maegoe.com/|홈페이지]]&lt;br /&gt;
&lt;br /&gt;
http://chulsa.kr/files/attach/images/67/219/250/017/a3db7a2a51ec555c8462a70530fbd44a.jpg?width=400&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한국 천주교]]의 순례지 중 한 곳으로,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하면 많은 분들은 웬 듣보잡 ! 하면서 선듯 갈 마음을 먹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청미천을 흐르는 장호원교만 건너면 바로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이다. 그래서 아주 오래 전에는 장호원성당이라 불리기도 했단다.~~ 에 위치했으며 본당은 [[청주교구]] 감곡[[성당]]. [[수원교구]] [[http://www.namyangmaria.org/|남양성모성지]]와 더불어 [[성모]]성지로 이름이 높다. 다만 이곳은 엄밀히 말해 공식적으로는 아직 '''순례지'''이며 한 등급 위인 '''[[성지]]는 아니다.''' 하지만 인지도 자체는 성지 급. &lt;br /&gt;
&lt;br /&gt;
매괴(玫瑰)는 [[로사리오]]의 [[중국]]식 표현이다. &lt;br /&gt;
&lt;br /&gt;
== 유래 ==&lt;br /&gt;
감곡본당은 '''1896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의외로 꽤나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초대 본당 주임 [[신부(종교)|신부]]는 [[프랑스]] 출신의 임 가밀로 신부'''로, 초기 [[한국 천주교]]와 관련이 깊은 [[파리 외방전교회]][* [[프랑스]] [[파리(도시)|파리]]에 본부가 있으며, [[성모 발현]] 중의 한 곳인 '기적의 패 성당'과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지하 경당에 가면 [[한국어]]로 [[한국 103위 순교성인]]의 이름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소속. 1893년 [[성품성사|사제서품]]을 받은 후 바로 입국하여 그 다음해인 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 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된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성당이 사목지의 북쪽 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 부락이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하던 중, 사목 방문차 [[여주시|여주]]를 지나 장호원에 이르러 산 밑에 대궐 같은 집을 보게 되었다. 임 가밀로 신부는 이곳이 성당을 세우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임 가밀로 신부는 &lt;br /&gt;
&lt;br /&gt;
'''&amp;quot;[[성모]]님, 만일 저 대궐 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amp;quot;'''&lt;br /&gt;
&lt;br /&gt;
라고 [[기도]]하였으며, 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lt;br /&gt;
&lt;br /&gt;
문제는 그 대궐 같은 집은 '''[[명성황후 민씨]]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다는 것.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왔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1896년 5월 [[성모]]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 [[묵주]]기도 성월인 10월 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lt;br /&gt;
&lt;br /&gt;
== 임 가밀로 [[신부(종교)|신부]] ==&lt;br /&gt;
http://info.catholic.or.kr/archives/upload/images/001802/%EA%B0%90%EA%B3%A1%EC%84%B1%EB%8B%B9_%EC%9E%84%EA%B0%80%EB%B0%80%EB%A1%9C%EC%8B%A0%EB%B6%80%ED%9D%89%EC%83%81_SH107156.jpg&lt;br /&gt;
&lt;br /&gt;
초대 본당 주임이었으며 51년 동안 [[한국]] 땅에서 생활하며 어머니가 선종했을 때도 고향으로 가지 않고 열정적으로 사목했던 임 가밀로 [[신부(종교)|신부]]는, [[루르드의 성모|루르드]]에서 조금 떨어진 타브르 교구 출신의 [[신부(종교)|신부]]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루르드의 성모|루르드]]를 자주 방문하며 독실한 성모신심으로 신앙을 키웠다. 그리고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 [[사제]] 서품을 받자마자 다음 해에 바로 [[조선]]으로 파견'''되었다.&lt;br /&gt;
&lt;br /&gt;
발령이 나기 전 [[오지]][* 당시를 생각하면 [[조선]]은 [[오지]]였긴 했으니.]로 가는 자신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가르멜 봉쇄 수녀원으로 가서 기도했는데, 그 때 소화(小花)[* 불 끄는 소화가 아니라(…) 작은(小) [[꽃]](花)이라는 뜻의 소화. 그래서 소화 데레사 [[성녀]]를 '''작은 꽃 데레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데레사 [[수녀]]와 만나 영적 남매 결연을 맺었다고 한다. 이는 꾸준히 이어져, 소화 데레사 수녀가 24세의 젊은 나이로 선종하고 [[성녀]]로 시성된 후, 소화 데레사 [[성녀]]의 성상을 감곡 성당 내에 모시기도 했으며 그 성상은 지금도 감곡성당 내에 있다.&lt;br /&gt;
&lt;br /&gt;
부임하고 신자들에게 &lt;br /&gt;
&lt;br /&gt;
&amp;gt; '''&amp;quot;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amp;quot;'''&lt;br /&gt;
&lt;br /&gt;
라는 명언을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먼 이국 땅으로 가는 아들을 위해, 임 가밀로 신부의 어머니는 선물로 '''기적의 패'''[* [[파리의 성모]] 발현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가,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에게 만들어 착용하라고 지시한 패.]를 한 보따리 안겨주며 &amp;quot;요긴하게 쓰일 데가 있을 것이다.&amp;quot;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임 가밀로 신부는 [[프랑스]]에서 직접 제작한 [[루르드의 성모]]상과 기적의 패를 한 보따리 들고 조선으로 입국했다.&lt;br /&gt;
&lt;br /&gt;
전술한 것처럼 여주 부엉골에 부임한 임 가밀로 신부는 민응식의 집을 보고 [[성당]]을 세울 결심을 하지만, 당시 권력과 부를 손아귀에 쥔 민응식은 상상도 못할 가격을 불렀다.[* 쉽게 말해 안 팔겠다는 소리다.] 이에 돈이 없는(…) 임 가밀로 신부는 &amp;quot;저 땅에 [[성당]]을 세우게 해서 당신께 봉헌하게 해 주십시오!!&amp;quot;라며 [[성모]]님에게 청하면서 밤에 몰래 '''민응식의 집 주변에 기적의 패를 묻었다'''고 한다(…). -결국 '''여러 사건이 일어나며 [[민응식]]은 임 가밀로 신부에게 땅을 팔게 되었고''', 이것은 거래문서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땅을 얻어 신이 난(…) 임 가밀로 신부는 즉시 [[성당]]을 지었다. 짓기 시작할 때는 강북[* [[한강]] 이북]에는 [[명동성당]], 강남[* [[한강]] 이남] 에는 [[감곡성당]]을 모토로 [[명동성당]]과 똑같이 지으려고 했으나, 짓는 도중 [[일제]]가 자재를 공출해 가면서 훨씬 작은 모습이 되었다. 마치 [[명동성당]]의 자식 같은 느낌으로, 외양은 똑같지만 크기는 아담하다.&lt;br /&gt;
&lt;br /&gt;
임 가밀로 신부의 독문무공이자 절세신공(…)인 '''기적의 패 땅에 심기'''는 이후 일제가 성당 뒷동산에 강제로 [[신사(신토)|신사]]를 세우려고 하던 때에도 발휘되는데, 일제의 만행을 본인의 힘으로 막을 수 없자 임 가밀로 신부는 '''&amp;quot;당신께서 주셔서 성당을 지어 봉헌한 거룩한 땅이니, 당신께서 지켜 주십시오!!&amp;quot;'''라고 하며  또 밤에 몰래 [[신사(신토)|신사]] 주변에 기적의 패를 묻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그 후 [[신사(신토)|신사]] 공사만 하려 하면 야생동물들이 떼거지로 나타나 방해하거나, 억수같은 비가 내리거나, 인부의 팔ㆍ다리ㆍ손가락(…) 등이 부러지는 안전사고들까지 겹쳐 공사를 할 수 없었다. '''결국 [[신사(신토)|신사]] 공사는 철회된다.'''&lt;br /&gt;
&lt;br /&gt;
복지부동의 표본을 보여주던 [[일제강점기]]의 [[천주교]]에서도 임 가밀로 신부는 '''핍박받는 조선인들을 위해 여러모로 애를 썼고,''' 이에 [[서대문형무소]]에도 3번이나 수감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명목상 [[프랑스]]와 [[일본]]이 동맹이었기에 그 이상의 처분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더 이상 [[프랑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일제는, 눈엣가시 같은 임 가밀로 신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lt;br /&gt;
&lt;br /&gt;
사형 선고를 받은 임 가밀로 신부는 마지막으로 '''&amp;quot;[[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드리고 죽게 해 주시오.&amp;quot;'''고 말했으며, 이것이 받아들여져 임 가밀로 신부는 칼을 찬 일본 순사들과 함께 감곡 성당으로 돌아와 마지막 [[미사]]를 봉헌한다. [[미사]]가 끝나고 엉엉 우는 신자들 앞에서 [[일본]] 순사들이 칼을 빼들었는데… 돌연 성당 문이 벌컥 열리며 동네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lt;br /&gt;
&lt;br /&gt;
&amp;gt;'''신부님!! 사셨습니다!! 조선이 [[8.15 광복|해방]]되었어요!!!'''&lt;br /&gt;
　&lt;br /&gt;
[[성모승천대축일]]이 포인트. 임 가밀로 신부가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게 해 달라고 한 날이 바로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이자 [[성모승천대축일]]'''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영화]]가 따로 없다. [[흠좀무]] --그런데 [[미사]] 끝나고 성당 문 열고 들어왔다던 청년들아, 너희들은 [[미사]] 참례 안 하고 어디 갔었냐(…)-- ~~교중미사였나보지~~&lt;br /&gt;
&lt;br /&gt;
목숨을 건진 임 가밀로 신부는 그 뒤 2년간 더 사목하다가 1947년 10월 25일, '''&amp;quot;[[성모]]님, 저를 구하소서!!&amp;quot;'''라는 유언과 함께 선종했다. 유해는 성당 인근 야외에 모셔젔다가 83년에 성당 내 벽제대 아래에 모셔왔다.&lt;br /&gt;
&lt;br /&gt;
== 해방 후 ==&lt;br /&gt;
=== 칠고의 [[성모]]상 ===&lt;br /&gt;
http://photo.catholic.or.kr/GNDATA/BOARD/44/44847/th4_%EA%B0%90%EA%B3%A1%EC%84%B1%EB%8B%B9_%EB%A7%A4%EA%B4%B4%EC%84%B1%EB%AA%A8%EC%83%81_IMG_1459.JPG.jpg?width=400&lt;br /&gt;
&lt;br /&gt;
[[8.15 광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일어나고, 터가 좋은(…) 감곡성당의 위치는 남하한 [[북한군]]의 진지가 되었다. 이 때 '''성당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북한군]]에게 여러가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도깨비불]] 같은 것이 나타나 날아다니거나, 잘 서있던 [[성수]]대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쓰러지는 등등. 두려움에 떨던 [[북한군]]은, 성당 안 제대 위에 위치한 [[성모]]상이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lt;br /&gt;
&lt;br /&gt;
이에 [[성가대]]석에 올라가 [[성모]]상을 향해 총을 쏘았으나, 분명히 석고로 되었기에 총알 한 방 맞으면 산산조각 나야 할 성모상이 [[금강불괴]]를 시전했는지(…) 멀쩡히 서 있었다고 한다. 물론 가슴에 총알 구멍은 난 상태. 이에 --빡친-- [[북한군]]은 6발을 더 쐈고 성모상은 몸에 총 7군데의 총상이 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래도 부서지지 않자 --더 빡친-- 북한군은 성모상을 직접 부수기 위해서 [[사다리]]를 놓고 [[망치]]를 들고 올라갔는데, 성모상이 눈물을 흘리며 엄청나게 환한 빛을 비추어서 북한군이 놀라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망치 나가신... 잠깐 멈추시지!--  &lt;br /&gt;
-- 공격할 수 없는 상대입니다 --&lt;br /&gt;
&lt;br /&gt;
이에 질려버린 [[북한군]]은 '''&amp;quot;[[성당]] 내에 우는 여자(…)가 있어서 못 살겠다!!&amp;quot;'''며 [[성당]]을 뛰쳐나갔다고 한다.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후퇴할 때 감곡의 사람들을 [[납북]]하려 했던 [[북한군]]이었으나, 그 이전에 동네 사람들은 죄다 성당으로 피신했다. 성당 내 우는 여자(…)에게 겁을 먹은 북한군은, 성당 안으로 들어와 주민들을 끌고 가지 못하고 그냥 후퇴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후 이 성모상은 '''수난받은 [[성모]]상, 성모 칠고(七苦)를 상징하는 성모상''' 등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lt;br /&gt;
=== 부흥기 ===&lt;br /&gt;
사실 이런 것은 [[가톨릭]] 내에서도 꽤나 신심이 열정적인 사람들이나 알던 사실이었으나, 2000년대 중반 무렵, '''감곡성당이 30억이 넘는 엄청난 [[빚]]을 지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당시 감곡 성당은 납골당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지역의 어떤 곳과 트러블이 일어났다. 결국 그것을 해결하지 못해서 무리한 사업추진과 더불어 30억이 넘는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다. 이런 초유의 사태에 [[천주교 청주교구]]는 교구 내의 유명한 --[[엑소시스트]]--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를 그곳으로 급히 부임시켰고, 김웅렬 신부는 갑작스럽게 진천 성당에서 감곡성당으로 발령을 받아 부임하게 된다. 김웅렬 신부에게 1년에 발생하는 이자만 좀 막아달라고 부탁을 했다고.&lt;br /&gt;
&lt;br /&gt;
부임하는 날부터 사채업자들이 들들 달달 볶아대고 사무장을 폭행, 또 납골당 문제로 신자들도 분열된 상태에 엄청난 빚을 해결할 방도도 보이지 않고, 지인들은 김웅렬 신부가 돈 달라고 할까봐 전화도 받지 않는(…) 난감한 상황에서, 체중이 1달 사이에 10kg가 빠져버린--(강제 [[다이어트]])-- 김웅렬 신부는 모종의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lt;br /&gt;
&lt;br /&gt;
'''&amp;quot;야밤에 보따리 싸고 튀자!!&amp;quot;'''&lt;br /&gt;
&lt;br /&gt;
…비범한 결단을 내렸으나 일과 기도를 하던 중에 &amp;quot;'''너마저 나를 버릴 셈이냐!''' --이 망할 자식아--&amp;quot;라는 말씀을 듣고는, 마음을 돌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열정적으로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평소 [[성모]]신심이 깊었던 김웅렬 신부는 감곡성당의 유래와 그 신심, 루르드와의 관련 등을 연구하고 공부, 또 본인이 활발하게 강연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감곡성당과 수난 받으신 [[성모]]님의 이야기, 임 가밀로 신부의 영화같은 이야기들을 전국을 돌면서 사람들에게 알렸고 이에 눈물 콧물을 질질 짠(…) 신자들의 엄청난 방문이 이어지게 되며 삼삼오오 모은 그 신자들의 코묻은 [[헌금]]으로 '''30억이 넘는 빚을 1년 반만에 모조리 갚았다'''고 한다. 흠좀무.&lt;br /&gt;
&lt;br /&gt;
그리고 빚 다 갚았다는 증서를 --자랑스럽게-- 교구청에 보내자, 빚 갚을 방도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교구장 [[주교]]님은 어리둥절하며 이게 뭐냐고 김웅렬 신부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김웅렬 신부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울먹이며 &amp;quot;볼 것도 없이 그곳은 [[성모]]님이 계신 곳&amp;quot;이라며 '''이례적으로 빠르게 [[성모]] 순례지로 선포'''했다.&lt;br /&gt;
&lt;br /&gt;
이에 신이 난(…) 김웅렬 신부는 [[평화방송]]에 장기출연하며 이런 사실들을 더 홍보했고, 더 많은 사람들, 게다가 [[개신교]] 신자들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적자 30억이었던 감곡성당은 김웅렬 신부가 배티로 발령이 나서 가게 되었을 때는 '''흑자 7억……''' 대단하다.&lt;br /&gt;
== 전대사 ==&lt;br /&gt;
[[루르드의 성모]] 발현 150주년 기념으로 조사가 진행되었을 때, 감곡성당은 루르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공식 인증되었다. 이에 [[교황청]]에서는 [[루르드의 성모]] 발현 150주년 기념 전대사 성당으로 감곡성당을 지목해서, 1년 동안 하루에 1번씩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특전을 누리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로마 성모 대성전]]의 대사제 버나드 프랜시스로 [[추기경]]은 감곡 [[성모]] 순례지를 로마 대성전과 영적 유대로 결합된 성전과 [[성모]] 순례지로 인증, 지정했고 2009년에는 사도좌 내사원장 스탠포드 [[추기경]]이 전대사 특전을 부여했다.&lt;br /&gt;
&lt;br /&gt;
아래 목록은 1안으로 영원히 유효한 전대사. 단체순례시, 혹은 신자 1명이 1년에 하루 날을 잡아 순례할 때, 아래의 조건들 하에서는 [[지구멸망|이 지구가 끝나는 날까지]] 영원히 유효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면 알겠지만 이런 전대사 특전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lt;br /&gt;
&lt;br /&gt;
 * [[8월 5일]]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lt;br /&gt;
 * [[10월 7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lt;br /&gt;
 * [[야훼|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관련된 대축일&lt;br /&gt;
  *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lt;br /&gt;
  * [[3월 25일]] [[수태고지|주님탄생 예고]] 대축일&lt;br /&gt;
  *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lt;br /&gt;
  * [[12월 8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lt;br /&gt;
&lt;br /&gt;
또한 7년간 유효한 전대사, 즉 2015년 6월 8일까지 추가로 유효한 전대사 조건은 이러하다. 전대사를 받기 위한 기본 조건을 만족시키고 아래와 결합할 경우 해당 신자에게는 전대사의 특전이 주어진다.&lt;br /&gt;
&lt;br /&gt;
 * 매괴 [[성모]]상 앞에서 전례에 참여했을 시&lt;br /&gt;
 * 매월 첫 토요일 신심[[미사]]와 기도에 참여했을 때&lt;br /&gt;
&lt;br /&gt;
== 그 외 ==&lt;br /&gt;
김웅렬 신부라는 네임드급 주임 신부는 배티로 발령이 나서 현재는 없지만 아직도 꾸준히 신자들의 사랑을 받는 성모순례지로, 한적한 뒷산과 조용한 시골 분위기로 인해서 신자가 아니더라도 방문하면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성당 부지뿐만 아니라 산 자체도 성당 재산이다. 물론 울타리 쳐 놓고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 가볍게 마실 나오는 경우도 많으나, 기본적으로 성당의 땅이며 기도하고 묵상, 산책하라고 개방한 것이니 거기 가서 소란을 피우거나 놀고 먹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성당 뒷산 정상에는 무려 15m짜리 십자고상이 감곡 전체를 내려다보는 형태로 세워져 있고, 옆에는 임 가밀로 신부가 성체강복을 하는 동상이 서 있다.&lt;br /&gt;
&lt;br /&gt;
성당 아래에는 매괴여자중학교와 [[매괴고등학교]]가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부터 있던 유서 깊은 학교다. 점심시간 같은 쉬는 시간 때에 학생들이 뒷문을 통해 성당에 와서 쉬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뒷문이 폐쇄되고 성당으로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 ~~안습~~&lt;br /&gt;
&lt;br /&gt;
[[서울특별시]]에서는 [[동서울터미널]]에서 감곡까지 직통으로 가는 [[버스]] 노선이 있어서 의외로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점이 장점. 정류장에서 내려서 다리만 건너가면 금방이다. ~~깡촌 터미널이었던 것도 옛날 새로 지었다~~ ~~그래도 딱히...~~&lt;br /&gt;
&lt;br /&gt;
매년 10월 첫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청주교구]] [[성체성사|성체]]현양대회가 열린다. 미사와 성체 거동[* 성체를 성광에 안치하고 앞세워 행진하며 기도하는 천주교 전통의 신심행사]을 거행하는데, 한국에서는 성체 거동을 거행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참례한다면 신자로서는 좋은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교통에다 무엇보다도 평일-- --그래서 참여 신자는 주로 노년층이라 [[카더라]]-- --그리고 가끔 부모님 따라나온 어린애들--&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성모 신심]] [[분류:성당]]&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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