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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원용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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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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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1일 (토) 13:42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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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1T13:42:2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姜元龍&lt;br /&gt;
[[1917년]] [[7월 3일]] ~ [[2006년]] [[8월 17일]]&lt;br /&gt;
[[파일:attachment/20060817_j01.jpg]]&lt;br /&gt;
&lt;br /&gt;
[[대한민국]]의 [[목사]]. [[일제강점기]] 한국의 [[장로교]] 교단 중 하나인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목회자이자 [[정치인]], [[철학자]], 통일운동가, 교육자, 시민사회운동가였다.&lt;br /&gt;
&lt;br /&gt;
1917년 [[함경남도]] [[이원군]] 남송면 원평리에서 태어났으며 [[유교]]적 가풍이 강한 집안에서 태어나 보통학교 재학 시절이던 1931년 [[개신교]]인이 된다. 개신교인이 되자 집안의 반대는 당연히 심하였고 그의 조모는 슬퍼하셨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는 농촌 계몽운동에 감화되어 '농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라는 신념을 안고 만주 용정으로 건너갔으며 당시 1935년에는 만주의 북간도 용정의 용정중학으로 진학, [[윤동주]], [[문익환]]을 만나 인연을 세웠고 브나로드 운동에도 참가하였다.&lt;br /&gt;
&lt;br /&gt;
[[8.15 광복]] 이후에는 [[서울]]로 돌아와 중도파 정치인들과 같은 노선을 걸어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경동교회를 설립하였다.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조봉암]]과 생전에 친분이 두터웠으나, 기본적으로 반공보수 성향인 강원용은 조봉암의 지지요구는 거절하였다.&lt;br /&gt;
&lt;br /&gt;
정부수립 이후에는 재야 민주화운동에 참여, 반 독재운동에 헌신했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5공]]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는 당시 신군부에 호의적으로 돌아서면서 '''5공 시대의 변절자 [[윤보선|윤]][[천관우|천]][[지학순|지]]강''' 가운데 '''강'''으로 꼽히면서 변절의 아이콘 가운데 하나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노태우]] 정권 때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사노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박노해]] 석방 탄원서에 제일 먼저 서명할 정도로 인권 문제에 대해선 진보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lt;br /&gt;
&lt;br /&gt;
말년에는 [[386세대]]가 오만과 독선에 빠져있다면서 참여정부의 실정을 크게 비판하면서 [[친노]] 및 한겨례신문과 충돌하였다. 이는 [[김수환]] 추기경과도 비슷[* 당시 노무현 지지자들은 [[수꼴]]들에게 영혼을 팔았다며 [[패드립]]을 일삼았다. 참고로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낙태]] 같은 성 윤리 문제에 관해서 일부 좌파들도 모욕을 일삼았다가 비슷한 성향의 진보좌파 논객 [[진중권]]에게 극딜을 맞았을 정도. [[김수환]] 항목 참고.]했지만, 반발이 존재했던 김수환과 달리 5공 시절 이미 변절자로 취급받았던 강원용에 대해서는 큰 논란도 뭐도 없었다. ~~강원용이 우파로 돌아섰다라는 비판 받은지 20년이 다되어가던 상황이었는데 논란이 있을 리가...~~&lt;br /&gt;
&lt;br /&gt;
강원용 목사는 [[친미]] 보수 성향의 기독교 목회자로, 평생동안 반미 성향이나 좌파/사회주의 노선은 일관되게 멀리하였다. [[조봉암]]을 포함한 혁신계 인사들과 친분에도 불구하고, 같이 활동하자는 제안을 끝끝내 뿌리친 것도 이때문이다. 박정희가 5.16쿠데타를 일으켰을때도 그의 남로당 경력에 주목해서, 미국 외교관들에게 &amp;quot;박정희는 사상이 의심스러운 자&amp;quot;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증언도 남아있다. 그만큼 일관된 친미반공주의자였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가 국시를 [[반공]]으로 내걸고 극단적인 반공노선으로 치닫은 것도 이러한 미국의 의심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이었다. 198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의 일선에서 멀어진 것도, 고령으로 건강때문에 활동이 줄어든 것도 있지만 당시 민주화운동, 학생운동권에 반미성향[* 광주학살과 12.12가 가능했던 것이 미국의 승인 혹은 묵시적 동조가 있었던 것으로 봤던 것이 가장 큰 배경. 평시 군 통수권이 미군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협조 없이는 군대를 움직일 수가 없다. 이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과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이다.]과 좌파노선이 전면적으로 대두된 것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lt;br /&gt;
&lt;br /&gt;
월간 [[신동아]] 2003년 12월호부터 5회에 걸쳐서 &amp;lt;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 현대사&amp;gt;라는 인터뷰가 연재되었다. [[http://shindonga.donga.com/3/all/13/102998/1|①]], [[http://shindonga.donga.com/3/all/13/103079/1|②]], [[http://shindonga.donga.com/Library/3/01/13/103154/1|③]], [[http://shindonga.donga.com/3/all/13/103237/1|④]], [[http://shindonga.donga.com/3/all/13/103322/1|⑤]]&lt;br /&gt;
&lt;br /&gt;
[[2006년]] [[8월 17일]], [[노환]]과 더위로 인하여 [[사망]]. [[향년]] 90세.&lt;br /&gt;
 &lt;br /&gt;
저서로 &amp;lt;역사의 언덕에서&amp;gt;가 있다.&lt;br /&gt;
&lt;br /&gt;
[[분류:목사]]&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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