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2%80%EC%9D%80_9%EC%9B%94</id>
		<title>검은 9월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2%80%EC%9D%80_9%EC%9B%94"/>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2%80%EC%9D%80_9%EC%9B%94&amp;action=history"/>
		<updated>2026-07-07T14:11:55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2%80%EC%9D%80_9%EC%9B%94&amp;diff=35148&amp;oldid=prev</id>
		<title>2017년 1월 22일 (일) 08:49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2%80%EC%9D%80_9%EC%9B%94&amp;diff=35148&amp;oldid=prev"/>
				<updated>2017-01-22T08:49:0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1970년]] 9월 [[요르단]]에서 벌어진 [[내전]]급의 진압사건이다.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원인과 배경 ==&lt;br /&gt;
[[1947년]] 말, 유엔이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내놓으면서 [[팔레스타인]] 내부는 [[유대인]], 팔레스타인인, 영국군의 피터지는 삼자대면이 이루어졌다. 결국 영국이 GG치고 물러남과 동시에 1948년 5월 이스라엘은 우왕ㅋ굳ㅋ 님들 이제 우리 독립임이라고 외쳤고 이 사건은 아랍의 어그로를 끌어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결국 49년 유엔의 중재로 협정이 맺어졌고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지역은 각각 이집트와 트랜스요르단의 통치지역으로 남는다. &lt;br /&gt;
&lt;br /&gt;
그런데 웨스트뱅크지역을 통합하고 [[이스라엘]]에서 도망쳐 나온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받고보니 얼레 되려 요르단 원주민이 '''소수민족'''이 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요르단의 원 거주민들이 인구의 3분의 1, 웨스트뱅크의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이 3분의1,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요단강 동쪽에 40만명이나 거주하고 있었다.&lt;br /&gt;
&lt;br /&gt;
이는 곧 팔레스타인인들이 [[요르단]] 국내 정치와 안보문제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이었고, 당시 후세인 국왕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가리켜 '''살기 아니면 죽기'''로 묘사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그도 그럴것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결성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요르단 내에서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고 아랍 세계에서 여러방면으로 원조를 받고있었다. 대표적으로 [[이집트]]의 [[나세르]]는 정치적인 후원을 해주고 있었고 [[사우디 아라비아]]는 경제적인 후원을 뒷바침 해주고 있었던 상황이었다.&lt;br /&gt;
&lt;br /&gt;
더구나 팔레스타인 조직은 국경너머 이스라엘을 향해 심심하면 레이드를 갔고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보복 레이드를 오는지라 국경상황은 매우 안좋았다. 이 때문에 요르단은 비밀리에 이스라엘과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접촉을 했고 이를 위해서 후세인 국왕이 내린 침공금지명령은 '''불복종'''되었다. 심지어 일부 요르단 장교들과 지휘관들은 대놓고 명령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소극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레이드를 도와주기까지 했다. &lt;br /&gt;
&lt;br /&gt;
웨스트뱅크를 빼앗긴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 다음해인 1968년에는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병대]]를 공격하기위해 국경을 넘어 카마라 마을에 진입했고 피터지는 전투가 벌어진끝에 이스라엘 군이 물러났지만[*3 애초에 요르단과 전면전을 벌이려고 한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병대의 뿌리를 뽑기위해 벌인 전투였다.] 요르단군도 적지않은 피해를 입었다. 이 전투에서 가장 득을 본것은 아라파트와 파타당으로 아랍 세계에서 큰 명성을 얻었고 파타당은 PLO의 주도권을 획득한다. &lt;br /&gt;
&lt;br /&gt;
이런 군사적인 분쟁말고도 내부문제도 어느정도 있었는데, 당시 요르단내 팔레스타인 캠프의 지배자는 팔레스타인 민병대였다. 요르단 경찰이나 군대는 아예 간섭을 못했다. 심지어 이들은 캠프에 검문소를 설치해서 통행세를 갈취하기까지 했다. &lt;br /&gt;
&lt;br /&gt;
결국 [[1968년]] 11월 후세인 국왕과 PLO 사이에 협상이 이루어져 7개 조항이 합의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 PLO의 요원들은 도시내에서 무장을 하거나 제복차림을 해서는 안된다.&lt;br /&gt;
 * 시민들의 차량을 정지시켜서 검문하는것은 금지된다. &lt;br /&gt;
 * 모병문제로 요르단군과 갈등이 있어서는 안된다. &lt;br /&gt;
 * 요르단의 신분증명서를 가지고 다닐것.&lt;br /&gt;
 * 차량에는 요르단번호판을 달고다닐것.&lt;br /&gt;
 * PLO가 저지른 범죄는 요르단의 조사를 받는다.&lt;br /&gt;
 * PLO와 요르단정부와의 분쟁은 요르단 국왕의 대표자와 PLO 대표자로 이루어진 위원회가 다룬다. &lt;br /&gt;
&lt;br /&gt;
조항은 만들어졌지만 PLO는 이 조항을 잘 지키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민병대 내부의 규율은 완전히 퇴갤수준이었고 카마라 전투 이후 여러 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다보니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중앙조직의 힘도 전무했다. 더구나 [[시리아]]나 [[이라크]]의 지원을 받고 생겨나는 단체들도 있었고 어떤 단체들은 급진주의적인 자세를 취해 요르단 왕가의 권위에 반박하면서 저항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lt;br /&gt;
&lt;br /&gt;
심지어 어떤 단체는 깡패조직화 되어서 차량을 탈취하질 않나 상인들에게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돈과 물품을 강탈하기 까지 했다.&lt;br /&gt;
&lt;br /&gt;
1968년 중순과 [[1969년]] 말 사이에는 갈등이 더욱더 고조되었다. 요르단군과 팔레스타인 민병대는 수시로 충돌했고 폭력행위와 납치가 수시로 벌어졌다. &lt;br /&gt;
심지어 당시 '''팔레스타인 민병대가 요르단 군인을 죽인뒤 그 군인의 머리를 잘라서 축구를''' 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다음해인 [[1970년]] 2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온 후세인 국왕은 PLO의 활동을 제한하는 칙령을 내렸고 결국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처절한 시가전이 벌어져 300명이나 사망했다. &lt;br /&gt;
&lt;br /&gt;
1970년 7월 이집트와 요르단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 242호를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상황은 점점 심각해진다. PLO와 이집트의 좋은 시절은 끝이 나버렸고 PLO는 이왕 이렇게 된거 요르단이랑 끝장을 보겠다면서 발악을 한다. &lt;br /&gt;
&lt;br /&gt;
후세인 국왕에 대한 여러번의 암살시도와 함께 PLO내의 강경분파이던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은 우리한테 관심 좀 가져달라능을 외치면서 [[PFLP 동시다발 하이재킹 사건|여객기 여러 대를 납치해 요르단내의 다우슨이란 옛 영국 공군 활주로에서 화끈하게 날려버린다.]] 더불어 여긴 해방구역 우왕ㅋ굳ㅋ이란 선언까지 한다.&lt;br /&gt;
&lt;br /&gt;
이는 후세인 국왕을 빡치게 만들었고 결국  9월 15일 [[계엄령]]이 선포된다. 요르단군은 전차를 몰고가서 수도 암만의 PLO 본부를 급습했고 동시에 요르단 내의 팔레스타인 민병대 기지도 공격했다 &lt;br /&gt;
&lt;br /&gt;
이로 인해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여기서 내쫒긴 팔레스타인 민병대는 [[레바논]]과 [[시리아]]로 옮겨갔다. 또한 팔레스타인 과격분자들은 이를 요르단의 배신이라고 성토했고, 이 원한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훗날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였던 &amp;quot;[[검은 9월단]]&amp;quot;은 이 사건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lt;br /&gt;
&lt;br /&gt;
[각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