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2%BD%EC%88%9C%EA%B3%B5%EC%A3%BC</id>
		<title>경순공주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2%BD%EC%88%9C%EA%B3%B5%EC%A3%BC"/>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2%BD%EC%88%9C%EA%B3%B5%EC%A3%BC&amp;action=history"/>
		<updated>2026-07-25T14:18:18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2%BD%EC%88%9C%EA%B3%B5%EC%A3%BC&amp;diff=427143&amp;oldid=prev</id>
		<title>2017년 2월 4일 (토) 18:08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2%BD%EC%88%9C%EA%B3%B5%EC%A3%BC&amp;diff=427143&amp;oldid=prev"/>
				<updated>2017-02-04T18:08:3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공주]]&lt;br /&gt;
&lt;br /&gt;
慶順公主&lt;br /&gt;
&lt;br /&gt;
? ~ 1407년 9월 8일&lt;br /&gt;
&lt;br /&gt;
조선 초기의 왕녀.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적녀로, [[의안대군]]과 [[무안대군]]의 동복 누이이다. 태조의 딸들은 생몰년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 정확한 출생순서는 알 수 없으나, 적녀들 중에서는 신의왕후 소생인 경신공주와 경선공주에 이은 셋째딸이자 막내딸로 추정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아버지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개국공신 흥안군 이제와 혼인하였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이 경순공주의 동복형제인 [[의안대군]]과 [[무안대군]]을 살해하고 [[의안대군]]을 세자로 옹립하거나 방원을 견제하려 했던 공신들도 처형하면서 남편 이제도 처형되었다. 공주는 남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남편에게 방원의 밑으로 들어가라고 설득하였으나, 강직한 성품이었던 그는 듣지 않고 처남들과 운명을 함께 했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하루아침에 동복형제들과 남편을 잃은 경순공주는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으며, '''조선 최초로 출가한 왕족'''이 되었다. [[신덕왕후]]의 살아남은 유일한 자식이자 의안대군, 무안대군의 누이라는 신분 때문에 그녀마저 방원에게 화를 입을까 염려한 태조가 직접 그녀의 머리를 잘라 출가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후로도 태조는 딸을 염려하고 그리워하여 자주 찾았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공주는 출가하고 정업원인 청룡사에서 몸을 의탁하였는데 이곳은 당시 갈 곳을 잃은 고려 왕족들의 처 등 왕실 여성들이 많이 지내고 있던 곳이었다. [[공민왕]]의 후비인 혜비 등 왕실 여성들은 공주를 따뜻하게 맞아 위로해주었으며, 경순공주의 [[올케]]이자 의안대군의 부인인 심씨도 출가하여 청룡사에서 함께 지냈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이후 공주가 죽기까지의 삶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적극적인 [[숭유억불]]정책을 펼쳐 사찰들을 폐쇄할 때도 정업원은 예외로 하고 신하들이 정업원의 예산이 사치스러운 것을 일컬어 폐쇄를 주장해도 유지시킨 것은, 정업원에 머물고 있는 누이 경순공주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세종대왕]]이 즉위하고 남편 이제가 신원되었으며, 경순공주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었기에 조카인 이윤으로 대를 이었다.&lt;br /&gt;
&lt;br /&gt;
 [[분류:조선의 왕족]]&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