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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회루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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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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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2일 (일) 14:4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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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2T14:40: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상위항목 : [[경복궁]], [[대한민국의 국보]] [[분류:대한민국의 국보]]&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800px-Gyeongbokgung-Gyeonghoeru-02.jpg|width=600]]&lt;br /&gt;
&lt;br /&gt;
||&amp;lt;-3&amp;gt;&amp;lt;tablebordercolor=#151B54&amp;gt;&amp;lt;table align=right&amp;gt;&amp;lt;bgcolor=#315288&amp;gt;&amp;lt;:&amp;gt; '''{{{+1 [[대한민국 |{{{#FFFFFF 대한민국}}}]][[대한민국의 국보|{{{#FFFFFF 의 국보}}}]]}}}'''[br]''{{{#ffffff National Treasures Of Korea}}}'' ||&lt;br /&gt;
||&amp;lt;-3&amp;gt;&amp;lt;#ffffff&amp;gt; https://pbs.twimg.com/profile_images/714566766807089152/Gn371bnO.jpg?width=150 ||&lt;br /&gt;
||&amp;lt;|3&amp;gt;&amp;lt;:&amp;gt; '''공식명칭''' ||&amp;lt;:&amp;gt; 한글 ||&amp;lt;:&amp;gt; 경복궁 경회루 ||&lt;br /&gt;
||&amp;lt;:&amp;gt; 한자 ||&amp;lt;:&amp;gt; 景福宮 慶會樓 ||&lt;br /&gt;
||&amp;lt;:&amp;gt; 영어 ||&amp;lt;:&amp;gt; Kyong hoe roo ||&lt;br /&gt;
||&amp;lt;:&amp;gt; '''분류번호''' ||&amp;lt;-2&amp;gt;&amp;lt;:&amp;gt; '''{{{+1 {{{#F39100 국보 224호}}} }}}''' ||&lt;br /&gt;
||&amp;lt;:&amp;gt; '''소재지''' ||&amp;lt;-2&amp;gt;&amp;lt;:&amp;gt;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 경복궁  ||&lt;br /&gt;
||&amp;lt;:&amp;gt; '''분류''' ||&amp;lt;-2&amp;gt;&amp;lt;:&amp;gt;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lt;br /&gt;
||&amp;lt;:&amp;gt; '''시설''' ||&amp;lt;-2&amp;gt;&amp;lt;:&amp;gt; 1동 ||&lt;br /&gt;
||&amp;lt;:&amp;gt;'''지정연도''' ||&amp;lt;-2&amp;gt;&amp;lt;:&amp;gt; [[1985년]] [[1월 8일]] ||&lt;br /&gt;
||&amp;lt;:&amp;gt;'''제작시기''' ||&amp;lt;-2&amp;gt;&amp;lt;:&amp;gt; [[조선시대]], 1395년, 1867년[* 흥선대원군 시기 재준공]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서울]] [[경복궁]] 안에 있는 [[크고 아름다운]] [[누각]]. [[근정전]] 서편에 위치하고 있다. [[국보]] 제 224호.[* 1985년 1월 8일] 만원권 [[지폐]] 구권의 뒷면 도안으로 등장할 만큼 유명한 건물이기도 하다. [[IMF]] 당시 해외 어느 일간지에서는 이 경희루가 물에 가라앉은 그림을 기사로 내면서 한국경제 침몰이라는 글귀를 달기도 했다. 현존하는 가장 부피가 큰 전통 건물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경회루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하루 전날 인터넷을 통해 미리 예약을 해서 지정된 시간에 안내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보통은 일주일 전부터 예약이 마감되므로 빨리 예약하는게 좋다.&lt;br /&gt;
== 역사 ==&lt;br /&gt;
[[조선]] [[태조(조선)|태조]] 4년([[1395년]]) 경복궁 창건 때 연못을 파고 누각을 세웠으나 지대가 습해 건물이 기울자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대규모로 준설해 동서 128m, 남북 113m의 방지(方池)를 조성하도록 명했다. 건설은 당시 최고의 건축가 [[박자청]]에게 맡겨졌고, 무려 8개월만에 경회루를 완공한다.이 당시의 경회루는 현재의 경회루보다는 크기가 더 작았으나 지금의 경회루보다 더 호화로웠다. 돌기둥마다 용의 형상을 세겼으며 3층 높이의 중층 지붕을 가진 전각이었다.&lt;br /&gt;
&lt;br /&gt;
http://s8.postimg.org/jerf2e9zp/a0053134_538e1a5d5cecb.jpg&lt;br /&gt;
조선 전기 회화 '기성입직사주도'에 묘사된 경복궁과 경회루.&lt;br /&gt;
&lt;br /&gt;
http://s30.postimg.org/oit5mx60x/a0053134_4fe427743ac8a.jpg&lt;br /&gt;
임진왜란 전의 모습을 상상해 그린 것. 이것보다 규모는 작았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전체가 소실되었다. 이후 약 300년 뒤인 [[고종]] 4년(1867)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재건되면서 다시 세워졌다. 이 때 경회루의 크기 자체는 더 커졌지만, 단층 지붕으로 바꿔 높이가 낮아지고, 누각을 지탱하는 용조각이 새겼졌던 돌기둥들이 무늬 없는 것들로 바뀌어 세워지는 등의 변화가 생겼다. &lt;br /&gt;
&lt;br /&gt;
== 건축 ==&lt;br /&gt;
[[파일:attachment/KHpa.jpg|width=600]]&lt;br /&gt;
경회루의 단면도&lt;br /&gt;
&lt;br /&gt;
경회루의 구조는 전형적인 대량식 구조지만, 1층의 기둥이 전부 돌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 특기할만하다. 2층은 외부와 통해있는 외진과 내부의 공간인 내진, 그리고 가장 중심에 있는 중궁 부분으로 구분된다. 각 공간 사이에는 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을 전부 들어올려 한 공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 외진과 내진 그리고 중궁은 바닥의 높이가 달라 단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자리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어 가장 안쪽으로 갈 수록 높은 지위의 사람의 공간임을 나타낸다. 외진과 내진에는 궁궐 건축 답게 천장을 개판으로 막고 있다. &lt;br /&gt;
&lt;br /&gt;
경회루의 바깥 돌기둥은 네모낳고 안쪽 돌기둥은 둥근데 이는 땅은 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天圜地方) 사상을 나타낸다. 그리고 전체 기둥은 총 48개로 바깥기둥이 24개 안쪽 기둥이 24개인데 이는 24개절과 24방을 의미한다. 그리고 경회루 주위에는 네모난 인공 연못과 두개의 둥근모양의 섬을 만들었는데, 이 또한 천원지방을 형상화 한 것이다.&lt;br /&gt;
&lt;br /&gt;
=== 전통 건축 중 최대의 크기 ===&lt;br /&gt;
근정전의 크기는 정면 30m 에 측면 21m, 높이 22.5m(기단 제외)지만, 지금의 경회루는 정면 34.4m, 측면 28.5m, 높이 21.5m로 '''현존하는 한국의 단일 목조 건축 중 부피가 가장 크다.''' (다만 가장 면적이 넒은 건물은 종묘 정전이다.) 칸 수 역시 근정전이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총 25칸인데 반해 경회루는 정면7칸에 측면 5칸 35칸이다. 다만 한 칸의 길이는 건물에 따라 다 다른 만큼 칸 수만 가지고는 건물의 크기를 확실하게 비교할 수는 없다. 경회루 근처의 수정전은 정면 10칸에 측면 4칸으로, 무려 40칸이나 되지만 실제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다. &lt;br /&gt;
&lt;br /&gt;
경회루는 이정도 크기가 조선말의 목재 여건상 지을 수 있는 최대의 건물이었다는 추측을 하게 해주는 건물인데, 소모되는 부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른 건물과 차별화된 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팔작지붕의 삼각형 수직벽면인 박공의 비율상 크기가 굉장히 크다. 근정전과 비교해봐도 두 건물의 크기 차이 이상으로 박공 차이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박공의 크기를 늘려 그만큼 박공 아래에 있는 처마지붕의 길이를 줄일려고 했던 것이다. 비가 들이치는 박공은 작을수록 좋은데, 통상의 비율을 어기면서까지 크게 만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처마에 쓸 긴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삼림자원이 고갈된 조선말에서는 충분한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 쉽게 예상된다.&lt;br /&gt;
&lt;br /&gt;
== 기타 ==&lt;br /&gt;
돈이나 물건 따위를 함부로 마구 써 버린다는 뜻의 단어 '흥청망청' 이 경회루와 연관이 있다. 조선시대 연산군이 '흥청' 이라는 기생들을 모아놓고 경회루에서 술잔치를 벌이던 것이 그 유래이다.&lt;br /&gt;
&lt;br /&gt;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06470|경회루와 지폐에 관한 기사]]&lt;br /&gt;
&lt;br /&gt;
만화가 고 [[길창덕]]의 [[선달이 여행기]]에서도 나왔는데 주인공인 선달이가 보고는 &amp;quot;임금님 수영장&amp;quot;(...)이라고 외쳤던 장면이 나온다. 후에 동행으로 같이 여행하던 대학생이었던 뚝갑이가 정정해 주긴 하지만.. &lt;br /&gt;
&lt;br /&gt;
[각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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