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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계황후 우라나라씨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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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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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2일 (일) 14:48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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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상위 항목 : [[중국사의 여성]], [[왕비]]&lt;br /&gt;
&lt;br /&gt;
[[파일:계후.png]]&lt;br /&gt;
&lt;br /&gt;
만주 양황기 사람인 좌령 나이포의 딸로, [[건륭제]]의 2번째 황후. 건륭 30년에 총애를 잃고 북방으로 보내져 쓸쓸히 죽고 시호도 없이 황귀비의 예로 치뤄진 것으로 유명한 그 황후이다. 계황후의 계도 칭호가 아닌 계후라는 뜻의 계이다. &lt;br /&gt;
&lt;br /&gt;
[[건륭제]]의 생모인 [[효성헌황후 니오후루씨]](숭경황태후 뉴호록씨)의 추천을 받아 궁에 들어왔다. 건륭제보다 7살 어린 나이에 측복진으로 들어와 즉위 후 한비가 되었고, 한귀비에 올랐으며, 건륭제의 첫번째 황후인 [[효현순황후 푸차씨]]가 승하하자 한황귀비가 되어 육궁을 총괄했고 곧 후궁에서 계후로 승격되었다. &lt;br /&gt;
&lt;br /&gt;
우라나라씨는 만주 팔대 성씨[* 사서마다 다르다. 니오후루씨와 구왈기야씨는 모든 사서에 해당되며 우라나라씨의 경우 &amp;lt;소정잡록&amp;gt;과 &amp;lt;심고&amp;gt;에만 만주팔성으로 기록되어있다.] 중 하나로 이미 효열무황후와 효경헌황후를 배출한 집안이지만, 그녀의 친정 자체는 다른 [[만주족]] 유력 가문들과 비교했을 때 그렇게 대단치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뒤이어 황후가 된 것은, 무엇보다도 [[건륭제]]의 생모 숭경황태후가 그녀를 황후로 적극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1765년 봄, 건륭제와 함께 항주를 여행하던 중 그녀는 건륭제와 크게 다투게 되었다. 이 다툼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 '''건륭제의 지나친 여성 편력'''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고, 건륭제는 '''&amp;quot;아 그냥 걔는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그리고 걔가 우리 엄마한테 불경스럽게 해서 싸운 거야.&amp;quot;''' 라고 '''혼자''' 꿋꿋이 주장했다. &lt;br /&gt;
&lt;br /&gt;
아무튼 문제는 이 다툼 직후 그녀가 ~~기분 전환 삼아 단발을 시도해 보기 위해~~ [[건륭제]]에게 항의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는 것인데,[* 야사 중에는 순행 중인 [[건륭제]]가 아름다운 [[비구니]]를 보고는 침소에 끌어들여 동침했고, 황제의 침소를 방문했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된 황후가 빡이 칠대로 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비구니처럼 잘라버렸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져 온다.] 황후의 이러한 행동은 궁중의 예법을 크게 위반한 것인 동시에 건륭제에 대한 심각한 불경이었다. &lt;br /&gt;
&lt;br /&gt;
[[건륭제]]는 그녀가 머리카락을 잘랐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격노하여 곧바로 그녀를 [[베이징]]으로 돌려보냈고, 그녀를 거처에 구금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즉 1766년 가을, 구금된 상태로 홀로 쓸쓸히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결국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lt;br /&gt;
&lt;br /&gt;
그녀가 죽은 뒤 건륭제는 예법을 가볍게 무시하고 황귀비의 급으로 장례식을 치렀고, 무덤도 본래 있어야 할 능역이 아닌 다른 외딴 곳에 조성했다. 이러한 파격에 대해 황실의 종친들은 물론, 중앙의 고위관료들부터 지방의 하급관원들까지 '''&amp;quot;폐하의 명령은 지나치고 예법에도 크게 어긋납니다!!&amp;quot;'''라며 용감히 상소를 올렸으나 빡친 건륭제는 이를 모두 씹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관료들이 맞아 죽거나 극도로 춥고 먼 곳으로 유배당했고, '''&amp;quot;네놈이 드디어 관심병에 걸렸나 보구나!&amp;quot;'''는 등의 격한 비난을 받았으며, 체포당해서 혹독한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3번째 황후를 책봉하자고 상소를 올린 사람들도 모두 처형당했다. &lt;br /&gt;
&lt;br /&gt;
슬하에 2남 1녀가 있으나 모두 요절하였다. 그나마 12황자 영기가 가장 오래 살았으나 24세에 사망.&lt;br /&gt;
&lt;br /&gt;
총애를 잃고 쫓겨나 황귀비의 예로 치루어진 황후라 그런 건지 [[황제의 딸]] 등 건륭제 시대를 그린 작품에서는 악역으로 나오기도 한다.&lt;br /&gt;
&lt;br /&gt;
== 미디어 믹스 ==&lt;br /&gt;
 * [[황제의 딸]] - 황후&lt;br /&gt;
 * [[후궁견환전]], [[후궁여의전]] - [[오라나랍 여의]][*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극중에서는 옹정제의 황후 효경헌황후의 조카로 설정되었다. 또 앞서 언급했듯 실제로는 효성헌황후의 추천으로 입궁했으나, 극중에서는 [[오라나랍 의수]]의 뜻에 따라 입궁한 것으로 나왔다. 또 극중에서는 대단한 명문가 출신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엄청난 집안 출신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디까지나 다른 권세가들과 비교할 때 그렇다는 얘기다.~~]&lt;br /&gt;
[[분류:퉁구스/인물]] [[분류:청나라의 황후]]&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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