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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국원왕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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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5T23:45:31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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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2일 (일) 14:55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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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2T14:55:0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amp;lt;tablealign=center&amp;gt;&amp;lt;tablewidth=100%&amp;gt;&amp;lt;-5&amp;gt;&amp;lt;:&amp;gt;&amp;lt;#000000&amp;gt; [[삼족오|https://36.media.tumblr.com/287851d3aca9ff24d4cab14f58eb3575/tumblr_o3p4bv63LR1sqk8veo2_r1_400.jpg?width=50]] [br] '''{{{+1 [[고구려/왕사|{{{#ffffff 고구려의 역대 국왕}}}]]}}}'''  ||&lt;br /&gt;
||&amp;lt;width=30%&amp;gt;&amp;lt;:&amp;gt; 15대 [[미천왕]] 고을불 ||&amp;lt;:&amp;gt; {{{+1 ←}}} ||&amp;lt;:&amp;gt;&amp;lt;width=30%&amp;gt;&amp;lt;#000000&amp;gt; '''{{{#white 16대 고국원왕 고사유}}}''' ||&amp;lt;:&amp;gt; {{{+1 →}}} ||&amp;lt;:&amp;gt;&amp;lt;width=30%&amp;gt; 17대 [[소수림왕]] 고구부 ||&lt;br /&gt;
&lt;br /&gt;
||&amp;lt;tablealign=center&amp;gt;&amp;lt;:&amp;gt; '''[[시호]]''' ||||&amp;lt;:&amp;gt; 고국원왕(故國原王) / 국강상왕(國岡上王) ||&lt;br /&gt;
||&amp;lt;:&amp;gt; '''[[성]]''' ||||&amp;lt;:&amp;gt; 고(高) ||&lt;br /&gt;
||&amp;lt;:&amp;gt; '''[[휘]]''' ||||&amp;lt;:&amp;gt; 사유(斯由) / 쇠(釗) / 소(召) ||&lt;br /&gt;
||&amp;lt;:&amp;gt; '''생몰년도''' ||&amp;lt;:&amp;gt; 음력 || 304년? ~ 371년 10월 23일(67세?) ||&lt;br /&gt;
||&amp;lt;:&amp;gt; '''재위기간''' ||&amp;lt;:&amp;gt; 음력 || 331년 2월 ~ 371년 10월 23일 (40년 8개월) ||&lt;br /&gt;
http://i5.qhimg.com/t01497cf1ecd6e4720e.jpg&lt;br /&gt;
[[안악 3호분]]에 있는 고국원왕 추정 [[어진]]&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소개 ==&lt;br /&gt;
[[고구려]]의 제16대 [[왕]]. 아버지인 [[미천왕]]과는 선명히 대비될 최악의 업적을 남겼다. 당시 고구려와 전선을 펴고 있던 서쪽의 [[전연]]과 남쪽의 [[백제]] 모두에게 발렸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군사적인 재능만큼은 확실하게 부족했다.&lt;br /&gt;
&lt;br /&gt;
시호가 여러가지가 전해지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lt;br /&gt;
 * 강상왕(岡上王): 삼국유사&lt;br /&gt;
 * 국원왕(國原王): 삼국유사&lt;br /&gt;
 * 고국원왕(故國原王): 삼국사기&lt;br /&gt;
 * 국강상왕(國岡上王): 삼국사기&lt;br /&gt;
 * 강상성태왕(岡上聖太王): 모두루 묘지명[* 강상성태왕은 고국원왕이라고 추정만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전연은 고국원왕 재위기인 338년 고구려의 신성 앞까지 와서 무력시위를 했다. 고구려가 쫄아서 화해하자 돌아가기도 했지만 불과 4년 뒤 전연은 5만 5천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게 된다. &lt;br /&gt;
&lt;br /&gt;
먼저 342년 [[모용황]]의 [[전연]]의 군사에 의해 국내성이 함락당했고[* 5만명의 주력부대를 북쪽 평야지대로 보냈고 남은 병력은 남쪽에서 자신이 지휘했는데, [[등애|전연군이 험한 남쪽으로 쳐들어와 통수맞았다...]]] 부왕 미천왕의 능도 털림과 동시에 태후 주씨(어머니)와 왕비도 볼모로 끌려갔다(...). 그 뒤 그때 털린 것들을 돌려받기 위해 전연에 스스로 [[신하]]를 칭하는둥 굽신거리며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결국 [[모용준]] 때 미천왕의 시신을 돌려받고 주 태후를 비롯한 볼모들도 돌아오는데 성공하지만 다시 태자 구부(후의 [[소수림왕]])가 볼모로 가야했다.&lt;br /&gt;
&lt;br /&gt;
그 이후인 370년, 전연이 [[전진]]에게 망하면서 태자는 돌아오게 된다. 과거 전연의 망명객을 전연으로 다시 송환해야했을 만큼 안습했던 치욕을 전연 왕족 일부[* 그냥 왕족도 아니고 [[섭정]] 격인 태부(태재) 모용평이었다.]가 망명했을 때 '''그대로 묶어''' 전진으로 보내버리는 등으로 복수를 하면서 치욕을 만회할 국력을 기를 기회를 노리게 된다. 그리고 그 대상은 [[백제]]였다.~~왠지 골목대장한테 얻어맞고 동네바보한테 화풀이하는 거 같다~~&lt;br /&gt;
&lt;br /&gt;
하지만... 369년 노구를 이끌고 2만의 군대[* 이때 적기를 든 군대만이 쓸만한 군대고 나머지는 [[잉여인간]]들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소위 '잉여'들은 고구려에 복속된 지방민으로서 열악한 무장에 사기가 떨어지는 동원병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를 긁어모아 백제 북방의 치양성을 공격하다가 백제의 왕 [[근초고왕]]에게 역관광을 당한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백제와 고구려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달리게 된다.] 결국 이러한 행태에 분노한 근초고왕이 371년 3만의 군대를 이끌고 평양성을 공격했다. 이에 고국원왕은 친히 나가서 전투를 벌이다 화살에 맞아 사망한다. 엄밀히 말해 전사한 것은 아니고 전투가 끝난 후 상처가 악화되어 죽었다.&lt;br /&gt;
&lt;br /&gt;
&amp;gt;四十一年 冬十月。百濟王率 兵三萬 來攻平壤城。王出師拒之 爲流矢所中 是月二十三日 薨。葬于故國之原。【百濟蓋鹵王表魏曰『梟斬釗首』 過辭也。】&lt;br /&gt;
&amp;gt;41년 겨울 10월에 백제왕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해 왔다. 왕은 군대를 내어 막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이 달 23일에 죽었다.[* 삼국 시대의 국왕 가운데 삼국사기에 '''사망 날짜가 제대로 명기된''' 몇 안 되는 왕이 고국원왕이다. 삼국사기는 왕의 사망을 보통 &amp;quot;어느 왕이 재위 몇 년만인 무슨 해 몇 월에 죽었다&amp;quot;고 개월수까지만 적는 편이고, 이런 식으로 몇월 '''며칠날'''에 죽었다고 날짜까지 적어 놓은 경우가 정말 얼마 없다는 걸 감안하면 자국 왕이 전사한 것에 한이 맺혀도 단단히 맺혔던 듯.] 고국(故國)의 들에 장사지냈다.【백제 [[개로왕]](蓋鹵王)이 위(魏)나라에 표(表)를 보내기를 『쇠(釗)의 머리를 베어서 달아 매었다.』고 하였으나 지나친 말이다.】- 《[[삼국사기]]》고구려 본기&lt;br /&gt;
&lt;br /&gt;
근초고왕의 공격을 받아 전사한 업적(?) 때문에 [[국사#s-1|국사]]에서는 4세기 백제의 전성기를 드러내는 하나의 예로서 많이 등장하신다. 국사를 배울 때마다 그의 업적(?)으로 '[[전사]]'가 빠지지 않는 등 [[사망전대]] 취급이라 안타깝게 여기는 학생도 있다. 선생 중엔 근초고왕을 '원'망하면서 죽어서 고국'원'왕이라는 ~~[[개드립]]~~ 암기법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고. 후대의 일이지만 [[고려]] [[원종]]이 백승현(白勝賢)의 주청대로 왕 자신의 휘를 고대 주나라의 성군 강왕(康王)의 이름자랑 같게 바꾸려다 하필 그 이름이 '''제 명에 못 죽은'''[* [[고려사절요]]에 실제로 사용된 표현(不得其死)이다.] 고국원왕의 휘와 같다는[* 주 강왕과 고국원왕은 모두 이름이 쇠(釗)이다.] 걸 알고 '''기겁해서 그냥 옛날 이름 그대로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 ~~[[영고라인|후대까지도 영원히 고통받는 고국원왕]].~~&lt;br /&gt;
&lt;br /&gt;
[[안악 3호분]]이 고국원왕의 왕릉으로 추정되나 다른 주장도 있다.&lt;br /&gt;
== [[삼국사기]]에서의 ~~[[안습]]한~~ 기록 ==&lt;br /&gt;
一年春二月 고국원왕이 즉위하다&lt;br /&gt;
二年春二月 시조 사당에 제사를 지내다&lt;br /&gt;
二年春三月 왕이 졸본에서 돌아오다&lt;br /&gt;
四年秋八月 평양성을 증축하다&lt;br /&gt;
四年冬十二月 겨울에 눈이 오지 않다&lt;br /&gt;
五年春一月 신성을 쌓다&lt;br /&gt;
五年秋七月 곡식이 서리의 피해를 입다&lt;br /&gt;
六年春三月 동진에 사신을 보내다&lt;br /&gt;
九年 전연의 모용황이 신성까지 침략해오다&lt;br /&gt;
十年 왕세자를 전연에 사신으로 보내다&lt;br /&gt;
十二年春二月 환도성을 수리하고 국내성을 쌓다&lt;br /&gt;
十二年秋八月 왕이 거처를 환도성으로 옮기다&lt;br /&gt;
十二年冬十月 전연의 모용황이 고구려를 침략할 전략을 논의하다&lt;br /&gt;
十二年冬十一月 전연의 모용황이 남도로 침략하다&lt;br /&gt;
十三年春二月 전연의 모용황이 미천왕의 시신을 돌려주다&lt;br /&gt;
十三年秋七月 평양 동황성으로 천도하고 동진에 사신을 보내다&lt;br /&gt;
十三年冬十一月 눈이 많이 내리다&lt;br /&gt;
十五年冬十月 전연이 침략해 와서 남소성을 빼앗다&lt;br /&gt;
十九年 송황을 전연으로 돌려보내다&lt;br /&gt;
二十五年春一月 왕자 구부를 왕태자로 삼다&lt;br /&gt;
二十五年冬十二月 전연이 왕모 주씨를 돌려보내다&lt;br /&gt;
三十九年秋九月 치양에서 백제와 싸워 패하다&lt;br /&gt;
四十年 전연이 망하다&lt;br /&gt;
四十一年冬十月二十三日 고국원왕이 죽다&lt;br /&gt;
&lt;br /&gt;
== 창작물에서 ==&lt;br /&gt;
http://img.kbs.co.kr/cms/drama/kingbaekje/images/cast_pic_03.jpg&lt;br /&gt;
&amp;gt; '''&amp;quot;나의 [[소수림왕|아들]][[고국양왕|들이]], 나의 [[광개토대왕|손주]][[장수왕|들]]이... 반드시 [[백제]]의 질주를 멈추게 할걸세&amp;quot;''' ~~[[예언자]]?!~~ ~~그리고 백제는... 몇년 뒤에 진짜로 [[망했어요]]!~~&lt;br /&gt;
&lt;br /&gt;
&amp;gt; '''&amp;quot;[[주유(삼국지)|어찌하여 하늘은 나 태왕 사유를 내고 부여구 그대를 낳았단 말인가]]!&amp;quot;''' ~~[[지못미]]!~~&lt;br /&gt;
&lt;br /&gt;
전 [[KBS 대하드라마]]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의 등장인물. 물론 고구려 왕으로 나온다. 연기자는 --[[불륜]] 전문 [[배우]]-- [[이종원]]. [[다혈질]]적인 성격에 툭하면 물건을 집어던지는 게 취미고 [[술잔 깨기|술잔도 자주 깨먹으신다]]. 부여구(근초고왕)를 소금장수놈이라고 [[비하]]하지만 실상은 자신도 [[미천왕|소금장수]] 아들내미.[* 이 때문에 당초에는 부여구에 대한 동정심도 있었던 듯하다.] 사실 미천왕이 소금장수를 했다는 사실을 잘 알만한 사람이, 그것도 아들(!)이 소금장수를 [[디스]]한다는 것 자체가 정황상으로 볼때 큰 오류다. --미천왕: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lt;br /&gt;
&lt;br /&gt;
자신감 넘치고 오만하기 그지 없으나 오직 고구려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냉혹한 면도 있다. 과도할 정도로 고압적인 면이 다분하다. 여구의 연인(?) 여화와 정략결혼할 모양으로 결국 결혼해 강제로 범하는(?) 식의 하룻밤을 보낸다. 허나 그 마음을 얻지 못해 전전긍긍...&lt;br /&gt;
&lt;br /&gt;
야심이 불타다 못해 넘쳐 거의 극중 [[최종보스]] 포지션이였으며 최근 전개에서는 백제의 내란을 지켜보면서(한편으론 조장하며) 얼마나 더 뜯어낼 것인가 고심 중이였다.&lt;br /&gt;
&lt;br /&gt;
헌데 참 묘한게 이 때 고구려와 고국원왕은 이미 [[전연]]의 [[모용황]]에게 한번 털려 제1왕비가 볼모로 잡혀 가 있는 처지였으며 다시 말해 암울하던 시절. 헌데 여기에 고구려는 어째 그런 기색이 없으니 어찌보면 대체 뭘 믿고 저리 나대냐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할 정도...[* [[드라마]]에서는 어머니와 제1왕비가 볼모로 잡혀간 사실이 언급되기는 한다.] 대신 이상하리만치 [[대방]](지금의 [[황해도]]) 영토에 집착한다. --이건 고구려는 [[서천왕]], 백제는 [[책계왕]], [[분서왕]]때 이야기지 말입니다!--&lt;br /&gt;
&lt;br /&gt;
결국 [[평양성]] 전투에서 훗날 [[근구수왕]]이 될 '''구수'''(...)가 쏜 화살을[* 그런데 고국원왕이 맞고 죽은 흐르는 화살, 즉 유시(流矢)는 원래 '''누가 쏘았는지 모르는 화살'''을 말한다. 고로 근구수왕에게 맞아 죽었다는 설정은 [[이순신]] 장군이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총탄 맞고 죽었다거나, [[당태종]]이 [[양만춘]]에게 화살 맞고 애꾸가 됐다거나, 해럴드 2세가 [[윌리엄 1세]]에게 화살 맞고 죽었다는 설정이나 매한가지. 즉 어디까지나 설정이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일기토]] 스타일을 좋아하긴 하니 봐줄 수는 있지만...--] 오른쪽 가슴에 맞고 돌아가시는데, 이걸로는 성에 안 찼는지 결국 성벽 아래로 떨어져서--이 드라마의 인물들이 다 그렇듯, 성벽 아래로 떨어져도 목은 절대로 안 부러진다.-- 백제군 진영에 누워서 근초고왕의 훈훈한 간호를 받다가 끝까지 위에서 본 것처럼 ~~[[백제]] [[언더테이커]]~~ [[광개토대왕]]을 암시하는 떡밥과 [[주유(삼국지)|주유]] 기믹을 양껏 남기고 돌아가셨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분류:고구려의 왕]][[분류:암군]]&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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