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3%A0%EB%8B%B9%EB%A5%AD</id>
		<title>고당륭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3%A0%EB%8B%B9%EB%A5%AD"/>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3%A0%EB%8B%B9%EB%A5%AD&amp;action=history"/>
		<updated>2026-07-05T22:33:52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3%A0%EB%8B%B9%EB%A5%AD&amp;diff=37468&amp;oldid=prev</id>
		<title>2017년 1월 22일 (일) 14:59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3%A0%EB%8B%B9%EB%A5%AD&amp;diff=37468&amp;oldid=prev"/>
				<updated>2017-01-22T14:59:0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amp;lt;tablealign=center&amp;gt;&amp;lt;#00008b&amp;gt;&amp;lt;:&amp;gt; {{{#ffffff '''『'''}}}[[위(삼국시대)|{{{#ffffff '''위서'''}}}]]{{{#ffffff '''』'''}}} '''{{{#ffffff 「신비양부고당륭전(辛毗楊阜高堂隆傳)」}}}''' ||&lt;br /&gt;
||&amp;lt;:&amp;gt; [[신비(삼국지)|신비]] ||&amp;lt;:&amp;gt; [[양부(삼국지)|양부]] ||&amp;lt;#dcdcdc&amp;gt;&amp;lt;:&amp;gt; '''고당륭''' ||&lt;br /&gt;
&lt;br /&gt;
高堂隆[* 고 씨에 이름이 당륭이 아니라, [[복성|고당 씨]]에 이름이 륭이다.]&lt;br /&gt;
생몰년도 미상&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위나라의 관료. 자는 승평(升平).&lt;br /&gt;
&lt;br /&gt;
태산군 평양현 출신으로 고당생[* 전한의 학자로 의례를 연구해 현재까지 전해지는 금문의례 17편을 쓴 유학자이다.]의 후손이다.&lt;br /&gt;
&lt;br /&gt;
[[삼국지연의]]에선 등장하지 않고 정사에서만 나오는 인물이다. 조예에게 잔소리(...)를 한 기록이 많다.&lt;br /&gt;
&lt;br /&gt;
== 생애 ==&lt;br /&gt;
=== [[조예]] 즉위 전 ===&lt;br /&gt;
젊었을 때 서생으로 태산태수 [[설제]]에게 임용되어 독우가 되었으며, 후에 군의 독군이 설제와 쟁론을 하자 독군이 설제의 이름을 부르며 욕했다. 이를 본 고당륭이 칼에 손을 대면서 독군을 질책해 말하기를&lt;br /&gt;
&amp;gt;옛날에 노나라 정공이 치욕을 받았을 때 [[공자]]는 계단에 올라 제지하였고, 조나라 왕이 진나라 왕이 아쟁을 탄 것을 탄핵했을 때 [[인상여]]는 나아가 질장구를 치도록 했습니다. 신하를 앞에 두고 주군의 이름을 부르면 예의에 따라 토벌해야 합니다.&lt;br /&gt;
이 말을 들은 독군은 얼굴빛을 잃었고, 설제는 놀라 일어나서 그를 제지했으며, 후에 고당륭은 관직을 버리고 제남으로 피난했다.&lt;br /&gt;
&lt;br /&gt;
213년에 [[조조(삼국지)|조조]]에게 초빙되어 승상군의연이 되었다가 역성후 조휘의 문학에 임명되어 상으로 전임했으며, 220년에 조조가 죽을 때 조휘가 조조를 애도하지 않고 사냥을 나가 말을 달리자 도의로써 정면으로 간언하였다. 황초 연간(220 ~ 226년)에 당양의 장이 되었다.&lt;br /&gt;
&lt;br /&gt;
=== [[조예]] 즉위 후 ===&lt;br /&gt;
226년에 [[조예#s-2|조예]]가 즉위한 후에는 급사중, 박사, 부마도위로 임명되었는데, 조예가 막 즉위하면서 일부 대신들이 연회를 열어야 한다고 하자 상소를 올려 연회를 열지 못하도록 하자 조예가 이를 받아들였다.&lt;br /&gt;
&lt;br /&gt;
진류태수로 승진했다가 나이가 70여 세인 소를 키우는 유목민이 고상한 것을 보고 그 사람을 계조연으로 추천하자 조예가 그를 매우 칭찬하면서 낭중으로 임명했으며, 고당륭은 산기상시, 관내후에 임명되었다. 태화 연간(227 ~ 233년)에 계절풍이 안 와 흉년이 들자 고당륭은 담당 관리 중 한 명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하늘이 질서를 일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 [[화흠]]이 현실적인 대비책을 올리면서 고당륭의 주장은 묻히게 된다.&lt;br /&gt;
&lt;br /&gt;
235년에 조예가 궁전을 마구 지으면서 장안의 큰 종을 가지자 이를 말리는 상소를 올려 [[노육]]도 이에 호응해 같이 상소를 올렸는데, 조예는 듣지 않고 변란이라는 자에게 고당륭의 상소를 주면서 그를 비방하라고 했다. 고당륭이 변란과의 설전에서 승리하자 조예는 매우 기뻐해 고당륭을 시중, 태사령에 임명했다. &lt;br /&gt;
&lt;br /&gt;
234년에 숭화전이 불타 없어지자 조예는 고당륭에게 기도해 재앙을 없애는 방법을 물어보자 고당륭은 여자를 줄이고 궁전을 더 이상 짓지 말라고 했는데, 조예는 [[한무제]]가 궁전을 오히려 크게 지어 재앙을 누른 일을 꺼내 반박했다. 고당륭은 자신의 견해를 밝혀 불이 난 곳을 깨끗이 하고 다시는 방을 짓지 말라고 했는데, 조예는 숭화전을 재건하고 당시 군국에서 9마리의 용이 나타나 구룡전이라 짓는다.&lt;br /&gt;
&lt;br /&gt;
능소궐이 건축되었을 때 까치가 집을 짓자 조예는 무슨 뜻인지 고당륭에게 물어보자 시경의 '까치가 집을 지으면 비둘기가 가서 산다' 는 구절을 들어 결국 이 곳에 살 사람은 '''다른 성씨'''가 될 것이라는 예견을 했는데, 조예는 겁을 먹고 안색이 바뀌었다고 한다. 또 이 해에 유성이 역행하여 대진(대화성이라 부르는 성좌)이 나타나자 이를 통해 조예의 사치 행위를 비판했다.&lt;br /&gt;
&lt;br /&gt;
236년에 장액군의 현천이 범람해 거센 물결이 치자 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보석이 나타났는데, 그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lt;br /&gt;
&lt;br /&gt;
&amp;gt;그 형상은 신령스런 거북이와 유사하면서 물 서쪽에 머물러 있으며, 반석처럼 우뚝 솟아있고 푸르스름한 바탕에 흰색 무늬가 있다. 기린. 봉황, 용, 말은 각각 형체를 이루어 빛을 발하며, 문자가 천명을 고하는 것이 찬연히 빛나고 있었다.&lt;br /&gt;
&lt;br /&gt;
고당륭은 이 보석을 보고 &amp;quot;이것은 고대의 성제와 선황이 일찍이 받지 못했던 신비로운 징조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는 우리 위나라가 합당하게 천명을 이는 것이니 황궁의 동쪽 벽에 넣어 대대로 이 보옥을 전해야 합니다&amp;quot;라고 주장했다.&lt;br /&gt;
&lt;br /&gt;
그는 법률을 개정할 것을 주장해 237년에는 역법, 옷의 색깔, 기계를 모두 바꿔 옛날 제도를 부연하고 개정할 것을 상주했으며, 조예가 받아들여 연호를 청룡에서 경초로 바뀐다. 경초 연간(237 ~ 239년)에 [[장제#s-2|장제]]가 반대했지만 고당륭이 옛날부터 주장하던 위나라가 순의 후손이라는 설이 채택되었으며, 광록훈으로 승진했다.&lt;br /&gt;
&lt;br /&gt;
도황후가 죽었을 때 기주에 홍수가 일어나자 도덕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조예가 이 상주문을 보고 고당륭이 두렵다고 했다. 고당륭의 병이 위독해지자 그는 또 다시 구술서로 황제에게 상소하여 하늘의 경고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lt;br /&gt;
&lt;br /&gt;
고당륭은 죽을 때 유언으로 검소한 장례를 치뤄 그 계절에 맞는 옷으로 염할 것을 부탁했는데, 그가 황제의 명령으로 내린 봉선 준비에 관한 예의제도를 작성을 마치지 못하고 죽자 명제는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lt;br /&gt;
&amp;gt;하늘이 나의 사업을 성취시키지 않으려고 하는구나. 고당생은 나를 버리고 죽었구나.&lt;br /&gt;
== 미디어 믹스 ==&lt;br /&gt;
|| http://san.nobuwiki.org/pic/sancg/11pk/792.jpg ||&lt;br /&gt;
|| 삼국지 11 ||&lt;br /&gt;
|| http://san.nobuwiki.org/pic/sancg/13/0284.jpg?width=400 ||&lt;br /&gt;
|| 삼국지 12,13 ||&lt;br /&gt;
[[삼국지 시리즈]]에 등장. 이름이 고당융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있다.&lt;br /&gt;
&lt;br /&gt;
[[분류:위나라의 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