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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명승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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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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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5:33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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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15:33:4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대한민국 국군/인물]], [[정치인/목록]]&lt;br /&gt;
&lt;br /&gt;
[include(틀:국내 정치인)] &lt;br /&gt;
[include(틀:12.12의 주역들)]&lt;br /&gt;
&lt;br /&gt;
https://tv.pstatic.net/thm?size=120x150&amp;amp;quality=9&amp;amp;q=http://sstatic.naver.net/people/33/201410281517014081.jpg?width=150&lt;br /&gt;
&lt;br /&gt;
高明昇&lt;br /&gt;
1935년 ~&lt;br /&gt;
&lt;br /&gt;
|||||||||| [[대한민국 육군]]의 [[제3야전군사령관]] ||&lt;br /&gt;
|| 9대 [[최세창]] || → || 10대 고명승 || → || 11대 [[신말업]] ||&lt;br /&gt;
&lt;br /&gt;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이다.&lt;br /&gt;
&lt;br /&gt;
1935년 [[전라북도]] [[부안군]] 출생. [[육군사관학교]] 15기. 동기인 [[민병돈]], [[이진삼]], [[김상구]] 등과 [[하나회]]에 가입하였다. &lt;br /&gt;
&lt;br /&gt;
1979년 [[12.12 군사반란]] 때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소속으로 반란에 직접 가담했다. 역시 하나회 멤버인 당시 경호실장 직무대리 [[정동호]] 준장과 함께 무단으로 출동하여  [[육군본부]] [[헌병]] 경호대장 구정길 [[중령]] 예하의 헌병 병력을 강제로 제압하고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머물된 [[국무총리]][[공관]]을 접수했다.&lt;br /&gt;
&lt;br /&gt;
이 공로에 힘입어 [[전두환]] 정권 때 15기의 선두주자로서 승승장구했으며 군사 정권에서 요직 중에 요직인 수도경비사령관,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사령관|사령관]]을 모두 역임했다.[* 수경사령관과 기무사령관은 군사 정권에서 실세 자리이기 때문에 두 자리를 모두 역임하는 건 실세 of 실세라는 뜻] 5공화국 내내 승승장구한 전두환계 군맥에 속했으나, 같은 전두환계이자 육사 동기 [[민병돈]] 특전사령관과 함께 1987년 [[6월 항쟁]] 때 전두환이 내린 군 유혈 진압 명령을 반대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전두환은 퇴임 직전, 퇴임 이후 자신의 세 확보를 위한 조치 중 하나로 고명승을 대장 진급시키며 군사 정권의 요직인  [[제3야전군사령부]] [[제3야전군사령관|사령관]]에 임명했다. [* 3군사령관은 야전군사령군 중 수도권을 방위하며 군사정권의 기반이 되는 핵심 요직이다.] 전두환은 그 외에도 군사정권의 핵심 요직들에 자신의 직계 군맥들(박희도 참모총장 유임, 최세창 합참의장 임명, 고명승 3군사령관 임명, 최평욱 기무사령관 임명, 김진영 수경사령관 임명)을 깔아놓고 노태우에게 이임했다. &lt;br /&gt;
&lt;br /&gt;
상왕으로 군림하려는 전두환의 태도에 노태우가 분노했을 것은 당연지사였고 노태우는 취임 후 첫 정기인사에서 박희도를 경질하는 것을 시작으로 천천히 이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군맥(9.9 군맥)으로 채워넣는다. 전두환의 직계 고명승은 경질되지 않고 3군사령관으로서 2년 임기를 채웠지만 이후 영전하지 못했고 [[육군참모총장]]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3군사령관을 끝으로 전역하게 된다. 5공 내내 선두주자였던 그가 전역한 후 6개월 뒤, 5공 내내 한직을 멤돌았으나 6공에서 승승장구한 노태우계 군맥의 직계인 육사 동기 [[이진삼]]이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 같은 하나회였지만 노태우계였기 때문에 5공 내내 소외되었던 이진삼은 동기인 고명승보다 중장은 1년, 대장은 1년 반이 늦었지만 마지막에 참모총장이 되며 역전한다.]&lt;br /&gt;
&lt;br /&gt;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전라북도 부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1991년)|민주당]] [[이희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김진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음에도 당시 다른 가담자들과 달리 기소되지 않아서 논란이 되었다. 한편 이 때 그의 비서를 지낸 [[김종규(1951)|김종규]]는 이후 민선 부안군수를 재임중이다.&lt;br /&gt;
[[분류:한국군/군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전라북도 출신 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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