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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향의 봄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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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4T14:32:04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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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3일 (월) 01:3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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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3T01:30: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lt;br /&gt;
&lt;br /&gt;
[youtube(tH-FSCrvFFc,width=640,height=360)]&lt;br /&gt;
= 개요 =&lt;br /&gt;
[[일제강점기]]인 1926년 [[이원수(아동문학가)|이원수]] 시인이 발표한 동시이며, [[동요]]는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26&amp;amp;newsid=20110601155419748&amp;amp;p=yonhap&amp;amp;RIGHT_COMM=R8|이일래(본명 이부근)작곡 버전]]과 [[홍난파]] 작곡 버전 두 종류가 있다. 이 중에서 세간에 알려진 버전은 홍난파 버전. 일본어 버전도 있다.&lt;br /&gt;
&lt;br /&gt;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일본식 운율인 7·5조가 사용되어 일본인들에게도 친숙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비슷한 7·5조 노래로 '[[학교]]'과 '[[섬집 아기]]'가 있다.&lt;br /&gt;
&lt;br /&gt;
가사는 서정적이지만 곡조는 [[섬집 아기]]처럼 우울한 느낌이 드는게, 어두컴컴한 곳에서 혼자 듣다보면 좀 무서워진다(…).하지만 묘하게 착착 감기는 곡이라 [[초딩]]때 배우는 노래인데도 성인이 되어 잊어버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lt;br /&gt;
&lt;br /&gt;
이원수는 이 동요를 중학시절인 10대에 지었는데, 그 1절은 &amp;quot;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amp;quot;이다.&lt;br /&gt;
&lt;br /&gt;
이 노래의 배경이 되는 곳은 당시 이원수가 살고 있던 [[창원]].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 아니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창원은 [[마산]] 등에 비하면 시골에 가까웠다. 특히 서부지역은 더더욱. 예를 들어 도계동만 하더라도 90년대 초반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그래서 창원 팔용동에는 &amp;quot;고향의 봄 도서관&amp;quot;이라는 곳이 있다. 그러나 이원수가 노래한 꽃피는 산골은 팔용산 쪽이 아니라 그 반대인, 현재 하이트맥주 공장이 있는 천주산이다. 이 곳의 진달래는 산 사면을 따라 울긋불긋 피어올라가는 모습을 보인다. 참고로 당시 이원수가 살고 있었던 곳은 지금의 소답동.&lt;br /&gt;
&lt;br /&gt;
[[2011년]] 초 이원수가 고향의 봄을 쓴 곳이 확인되었다. [[마산]](現 창원 마산합포구) [[오동동]] 71번지라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01/31/0200000000AKR20110131033100052.HTML?did=1179r|‘고향의 봄’ 탄생지는 마산 오동동 71번지]]&lt;br /&gt;
&lt;br /&gt;
여담으로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인 [[영구람보]]에서는 엔딩곡으로 등장한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예전에 [[고교야구]] 대회에 [[재일교포]] 야구단이 초청받아 참가했었는데 경기에서 [[재일교포]] 팀이 승리할 경우 한국의 여러 고교팀이 각자 학교의 교가를 트는 것과 달리 이 고향의 봄을 틀었었다.[*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에서 자세히 묘사된다.]&lt;br /&gt;
&lt;br /&gt;
일제강점기 시기에 지어진 노래이다 보니 북한에서도 불리고 있는 노래다. 북한에서는 '동네'가 아니라 '동리'로 부르고 있다.&lt;br /&gt;
= 가사 =&lt;br /&gt;
== 한국어 원 가사 ==&lt;br /&gt;
=== 1절 ===&lt;br /&gt;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lt;br /&gt;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lt;br /&gt;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lt;br /&gt;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lt;br /&gt;
&lt;br /&gt;
=== 2절 ===&lt;br /&gt;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lt;br /&gt;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lt;br /&gt;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lt;br /&gt;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lt;br /&gt;
&lt;br /&gt;
== 일본어 번역 가사 ==&lt;br /&gt;
&lt;br /&gt;
=== 1절  ===&lt;br /&gt;
我が生まれた故郷　花咲く　山里&lt;br /&gt;
桃の花　あんずの花　赤ちゃん　つつじ&lt;br /&gt;
色とりどり鮮やかな　花の宮殿[* 직역하면 '알록달록 또렷한 꽃 궁전' 한국어 가사와 다르다.]&lt;br /&gt;
その中で　戯れた時が　懐かしい&lt;br /&gt;
&lt;br /&gt;
=== 2절  ===&lt;br /&gt;
花の里　鳥の里　我が故郷&lt;br /&gt;
青い草[* '파란 풀'로 번역되었다. 일본어로 '들'은 '野原(のはら)'. 박자를 맞추기 위해 조금 바꾼 듯 하다.]　南から　風が吹けば&lt;br /&gt;
川の　ほとりの　柳が　踊り躍る[* 직역하면 '냇가의 수양버들이 춤추고 춤추네'. '춤추는 동네'라는 명사 서술어가 동사 서술어로 번역되었다.]&lt;br /&gt;
その中で　戯れた時が　懐かしい&lt;br /&gt;
&lt;br /&gt;
= 1을 패러디한 교도소 노래 =&lt;br /&gt;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980~90년대까지 &amp;quot;나의 살던 고향은 XX[[교도소]]&amp;quot;로 개작한 노래가 유행했다. 일설에 따르면 [[전두환]]과 [[노태우]]가 잡혀들어갔을 때 유행했다고 하나[* 이것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만화영화 '두치와 뿌꾸' 오프닝 노래를 개사한 것도 유행했다. 이쪽은 더 직접적으로 까고 있다(...). [[두치와 뿌꾸]] 항목 참조.], 사실 이 노래개작 자체는 1980년대 [[국민학교]] 시절부터 존재했었다. 그 이전에 이 노래를 불러보셨던 분들은 [[수정바람]].&lt;br /&gt;
지역마다 가사는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하게 '''XX교도소에 수감됐던 죄수가 꽁보리밥 먹다가 10년만에 탈옥해서 집에 와보니 아내는 도망갔다'''~~가끔 NTR~~는 내용이다. 대개 다음과 같은 가사로 불렸다. 물론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lt;br /&gt;
&lt;br /&gt;
{{|나의 살던 고향은 XX교도소&lt;br /&gt;
개 밥에 된장국도 맛만 좋더라&lt;br /&gt;
감옥살이 10년하고 집에 와보니&lt;br /&gt;
마누라 새끼 집 팔아먹고 도망갔더라|}}&lt;br /&gt;
&lt;br /&gt;
{{|나의 살던 고향은 XX교도소&lt;br /&gt;
눈만뜨면 꽁보리밥에 김치 깍두기&lt;br /&gt;
10년만에 탈옥해서 집에 와보니&lt;br /&gt;
마누라는 집 팔아먹고 토끼삐뜨라(도망갔대요)|}}&lt;br /&gt;
&lt;br /&gt;
{{|나의 살던 고향은 XX교도소&lt;br /&gt;
꽁보리밥에 된장국이 일품이라네&lt;br /&gt;
10년만에 탈옥해서 집에 와보니&lt;br /&gt;
여편네는 집 팔아먹고 도망갔대요|}}&lt;br /&gt;
&lt;br /&gt;
{{|나의 살던 고향은 부산교도소&lt;br /&gt;
날만 새면 꽁보리밥에 김치 깍두기&lt;br /&gt;
집에 오니 아이들은 고아원가고&lt;br /&gt;
여편네는 집 팔아먹고 도망갔대요[* 부산지역에서 구전되던 가사]|}}&lt;br /&gt;
&lt;br /&gt;
{{|나의 살던 고향은 광주교도소&lt;br /&gt;
눈만뜨면 꽁보리밥에 빳다 열두대&lt;br /&gt;
한대 두대 세대 네대 아이구 엉덩이야&lt;br /&gt;
신신파스 붙일 때가 그립습니다[* 광주지역에서 구전되던 가사]|}}&lt;br /&gt;
&lt;br /&gt;
{{|나의 살던 고향은 XX교도소&lt;br /&gt;
꽁보리밥에 된장국이 그립습니다&lt;br /&gt;
교도생활 10년에 집에 와보니&lt;br /&gt;
여편네는 집 팔아먹고 날랐습니다[* 서울 북부에서 구전되던 가사]|}}&lt;br /&gt;
&lt;br /&gt;
혹은 2번째 행이 '''썩은 밥에 개구리 반찬 그립습니다'''로 치환되기도...&lt;br /&gt;
&lt;br /&gt;
대개는 그 지방에 있는 교도소의 이름을 따거나 아니면 [[인천]]교도소라고 불렸다.[* 전두환 잡혀들어갈 시절엔 안양교도소라고 불렸다.] 하지만 정작 인천에는 교도소가 없다. 현재 인천지방법원 옆에 인천구치소가 있기는 있다.[* 이 인천구치소가 예전에는 인천소년교도소라는 이름으로 있었고 소년범을 수용했었다. 지금도 형기 5년 이하 초범수형자(기결수)가 일부 수용되어 있다.] 대구에서는 [[달성군]] [[화원읍]]의 화원교도소를 넣어 부른다. 구미도 인천교도소를 넣어 부른다. 서울 송파구 일대에서는 특이하게 성동구치소라고 하였다. 물론 교도소와 구치소의 차이를 아이들이 알 리가 없었으니...&lt;br /&gt;
&lt;br /&gt;
[[분류:가곡]][[분류:동요]][[분류:시]]&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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