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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곤도 마사토시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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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4T12:00:02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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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3일 (월) 01:34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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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3T01:34:5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http://blog-imgs-31.fc2.com/h/o/w/howkspride/20110715114108caa.jpg?width=350&lt;br /&gt;
&lt;br /&gt;
権藤 正利(1934~ )&lt;br /&gt;
전직 [[일본프로야구]] 선수.&lt;br /&gt;
&lt;br /&gt;
== 유년시절 ==&lt;br /&gt;
1934년 5월 1일 [[일본]] [[시가]] 현 태생. 다섯살 되던 해 죽마를 만들다 칼에 왼손 검지손가락이 1cm 정도 잘리는 중상을 입고, 소아마비로 한때 반신불수가 되기도 했지만 가족들의 도움과 자신의 의지로 회복되는 등 순탄치 않은 유년시절을 지냈다.&lt;br /&gt;
&lt;br /&gt;
== 현역시절 ==&lt;br /&gt;
맹훈련으로 악명 높던 야나가와 상고를 졸업, 1953년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다이요쇼치쿠 로빈스]](후일 다이요 훼일즈로 개명)에 입단하였다. 어릴 적 불구가 된 왼손 검지손가락을 역으로 활용하여 고안한 폭포수같은 커브[* 미국의 [[모데카이 브라운]], 일본의 [[호리우치 츠네오]]의 경우와 유사하다.]를 바탕으로 첫해 15승 12패 평균자책 2.77 이란 빼어난 성적으로 신인왕을 수상하였고, 이듬해 1954년 에는 11승 20패로 부진했지만 평균자책 2.83, 탈삼진 222개로 [[나름]] 활약을 보였다.&lt;br /&gt;
&lt;br /&gt;
1955년 시즌 3승 21패로 부진한 성적을 마크한 곤도는 1957년 중반까지 거의 2년동안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하고 무려 '''28연패'''의 늪에 빠져 암흑시대를 구가하며 괴로운 시절을 보냈다. ~~[[심수창]]의 18연패는 명함도 못내밀 기세(...)~~ 사실 곤도는 지병인 위하수 때문에 밥을 제대로 못먹은 날이 허다했고, 그 때문에 스태미너 부족으로 경기 때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곤도의 키는 177cm로 당시로선 상당한 장신이었지만 지병 탓에 체중이 50kg 대에 불과했다(...)] 결국 1957년 7월 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며 연패의 사슬을 끊었고, 이날 다이요 팀메이트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곤도를 [[헹가래]] 쳐주며 곤도가 연패의 늪에서 벗어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날 경기에서 패배한 요미우리 선수들과 팬들도 곤도의 연패탈출을 박수로 축하해 줄 정도였다.]&lt;br /&gt;
1960년 다이요 감독으로 취임한 [[미하라 오사무]]는 곤도를 구원투수로 중용했고, 그 해 곤도는 다이요의 센트럴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제패에 크게 공헌하였다. &lt;br /&gt;
&lt;br /&gt;
이후 1964년 [[닛폰햄 파이터즈|도에이 플라이어즈]]에 이적하여 1년을 뛴 후, 1965년 부터 [[한신 타이거즈]]의 선수로 활동했다. 그런데 1973년 시즌 도중 한신의 감독이던 [[가네다 마사야스]]의 &amp;quot;[[원숭이]]도 [[담배]]를 피우냐?&amp;quot; 라는 폭언으로 인해 곤도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그 이후로도 가네다의 괴롭힘이 심해지며 곤도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다. 결국 곤도는 그 해 시즌 종료 후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팬 감사행사가 끝나고 감독실로 가서 가네다에게 &amp;quot;그 때 '''원숭이'''라고 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amp;quot; 고 요구했으나 가네다는 &amp;quot;그런 말 한 기억 없다. 설사 했더라도 뭐 어쩌라고?&amp;quot; 라면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에 감정이 폭발한 곤도는 감독인 가네다를 마구 두들겨 패버렸고,[* 이 때 절친한 후배인 [[에나츠 유타카]]도 같이 갔는데, 감독실에 곤도와 가네다 둘만 남기고 밖에 나와 감독실 문 앞을 막고 있었다. 잠시 후 가네다의 비명소리가 들리자 코치들이 들어가려 했지만 에나츠는 여전히 문을 가로막았고 비명소리가 잦아든 후 그제야 에나츠가 문을 열었다. 가네다는 감독실 구석에 코피를 흘리며 웅크리고 있었고 에나츠가 곤도에게 &amp;quot;선배, 이제 속이 풀렸수?&amp;quot; 라고 묻자 곤도는 조용히 &amp;quot;그래...&amp;quot; 라면서 감독실을 나왔다고.] 이로 인해 센트럴리그 징계위원회 에서 엄중징계를 받자 곤도는 그 해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lt;br /&gt;
&lt;br /&gt;
곤도의 통산 성적은 '''21시즌, 719경기 출장, 117승 154패 평균자책 2.78''' 이다.&lt;br /&gt;
&lt;br /&gt;
은퇴 후 곤도는 고향으로 내려가 가업인 주점을 이어받았지만 1987년 도산하였고,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 에피소드 ==&lt;br /&gt;
 * 평소 곤도는 성격이 상냥하고 온후한 것으로 유명했다. 팀 후배인 [[에나츠 유타카]]는 &amp;quot;곤도 선배가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amp;quot;고 밝힌 적도 있다. 그 때문에 1973년 한신의 가네다 감독을 구타하고 현역에서 은퇴했음에도 오죽하면 그랬겠냐며 야구계 안팎에서 오히려 동정을 받았다고 한다... ~~가네다가 [[막장]]인 탓도 있었겠지만~~&lt;br /&gt;
 * 곤도는 평소 침대 머리맡에 과자를 상비하고, 밥에 [[설탕]]을 뿌려먹을 정도로 단 것을 좋아했다. 그것도 설탕을 산더미같이 뿌린 밥을 세 그릇은 기본으로 비웠고, 선수단 회식 때 모두들 [[맥주]]를 마시는 와중에도 곤도는 진하게 탄 [[설탕]]물을 마실 정도였다. 이런 괴악한 식성 탓에 위하수병에 걸려 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경기에 나서는 통에 '''28연패'''라는 불멸의 금자탑(???)을 세운 것이다(...). 이후 다이요 감독에 취임한 [[미하라 오사무]]가 곤도에게 &amp;quot;조금씩 자주 먹으라&amp;quot;고 권유하여 소량으로 하루 다섯끼를 먹었고 덕분의 곤도의 체력은 전보다 회복될 수 있었다.&lt;br /&gt;
 * 1960년 [[미하라 오사무]]가 다이요의 감독에 취임하자 당시 스태미너 부족으로 고전하던 곤도가 &amp;quot;더 이상 못 뛰겠다. 은퇴하고 싶다&amp;quot; 라고 말했는데, 미하라는 &amp;quot;야구를 그만 두는건 언제든지 가능하다. 단, 1년만 나에게 몸을 맡기지 않겠는가? 내가 책임지고 자네의 체력을 키워주겠다&amp;quot; 라고 권유했고, 곤도는 이에 감복하여 은퇴 의사를 철회하고 미하라의 지시대로 훈련에 임했다. 바로 위에 언급한 식사법도 미하라의 처방 중 하나였다.&lt;br /&gt;
 * 1968년 9월 1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와의 경기 때, 선발투수인 [[진 바키]]가 [[오 사다하루]]를 위협하는 공을 던지며 난투극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바키는 요미우리의 타격코치인 아라카와 히로시의 [[죽빵]]을 날렸다가 오른손 엄지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는 바람에 이듬해인 1969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바키가 퇴장 당하여 구원투수로 곤도가 마운드에 올랐는데, 곤도는 바로 [[오 사다하루]]의 뒤통수를 때리는 [[빈볼]]을 던졌다. 그럼에도 요미우리 감독이던 [[카와카미 테츠하루]]는 &amp;quot;다들 들어와라. 곤도가 일부러 그런 공을 던졌겠는가?&amp;quot; 라면서 그라운드로 뛰쳐나간 선수들을 불러들였다고 한다. &lt;br /&gt;
 * 1960년대 [[주니치 드래곤즈]]의 에이스였던 곤도 히로시(이하 히로시)와는 성이 같고 동향([[시가]] 현) 출신에 활동시기도 비슷했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었다. 그런데 히로시가 감독으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를 38년 만에 일본시리즈 에서 우승시킨 1998년 [[요코하마]]의 한 백화점에서 기념 사진전이 열렸는데, &amp;quot;곤도 투수&amp;quot; 제목으로 1960년 우승 당시 한 주축선수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그 사진의 주인공은 히로시가 아닌 '''곤도 마사토시'''였다. 히로시는 이듬해 1961년 입단하였고 더구나 주니치 소속이었는데, 마사토시야 말로 1960년 우승팀인 다이요의 일원이었으니 당연할지도...   &lt;br /&gt;
&lt;br /&gt;
[각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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