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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곤도 히로시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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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4T05:41:19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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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4-06T09:52: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Imported from text file&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야구 관련 인물(NPB)]] [[분류:야구선수]]&lt;br /&gt;
&lt;br /&gt;
http://i.japan-baseball.jp/img/profile/face/2016001_gondohhiroshi_l.jpg&lt;br /&gt;
|| 이름 || 곤도 히로시(権藤博) ||&lt;br /&gt;
|| 생년월일 || [[1938년]] [[12월 2일]] ||&lt;br /&gt;
|| 출신지 || [[사가]] 현 [[토하시]] 시 ||&lt;br /&gt;
|| 학력 || 사가 현립 토하시 고등학교 ||&lt;br /&gt;
|| 프로 데뷔 || 1961년 ||&lt;br /&gt;
|| 포지션 || [[투수]], [[3루수]], [[유격수]] ||&lt;br /&gt;
|| 투타 || 우투우타 ||&lt;br /&gt;
|| 소속팀 || [[주니치 드래곤즈]](1961~1967) ||&lt;br /&gt;
|| 지도자 경력 || [[주니치 드래곤즈]] 2군 투수코치(1973~1980) [br] [[주니치 드래곤즈]] 투수코치(1981~1983) [br] [[킨테츠 버팔로즈]] 투수코치(1988~1989) [br]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투수코치(1991~1993) [br]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수석 코치 겸 배터리 코치(1997) [br]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감독(1998~2000) [br] [[주니치 드래곤즈]] 투수코치(2012) ||&lt;br /&gt;
&lt;br /&gt;
|||||||||||| '''1966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신인왕]]''' ||&lt;br /&gt;
|| 호리모토 리츠오[br]([[요미우리 자이언츠]]) || → || '''곤도 히로시[br]([[주니치 드래곤즈]])''' || → || 죠노우치 쿠니오[br]([[요미우리 자이언츠]]) ||&lt;br /&gt;
&lt;br /&gt;
||&amp;lt;-5&amp;gt;&amp;lt;:&amp;gt; '''1961년 [[일본프로야구]] [[사와무라상]]''' ||&lt;br /&gt;
|| 호리모토 리츠오[br]([[요미우리 자이언츠]]) || → || '''곤도 히로시[br]([[주니치 드래곤즈]])''' || → || 코야마 마사아키[br]([[한신 타이거스]]) ||&lt;br /&gt;
&lt;br /&gt;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역대 감독 ||&lt;br /&gt;
|| 오오야 아키히코 [br] (1996~1997) || → || '''곤도 히로시'''[br] (1998~2000) || → || [[모리 마사아키]] [br] (2001~2002)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소개 ==&lt;br /&gt;
前 [[일본프로야구]] 선수, 지도자, 야구해설가, 야구평론가.&lt;br /&gt;
&lt;br /&gt;
프로 첫 해부터 대활약했던 뛰어난 재능을 갖춘 선수였으나, 그에 맞춰 뒤따라온 엄청난 [[혹사]]로 인해 몸이 망가져 선수생활을 일찍 접어야 했던 비운의 인물.&lt;br /&gt;
&lt;br /&gt;
또한 지도자로써는 다니는 팀마다 [[투수]]진을 개선하는 데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으며, 무엇보다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게 38년 만에 구단 사상 2번째 [[센트럴리그]] - [[일본시리즈]] 우승을 안겨준 감독'''이다.&lt;br /&gt;
&lt;br /&gt;
== 프로 입단 전 ==&lt;br /&gt;
원래는 [[내야수]]로 뛰었지만,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투수]]가 부족했기 때문에 ~~[[김성근|잠만, 누군가랑...]]~~ [[투수]]로 전향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엔 한번도 [[고시엔]]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뛰어난 활약을 본 [[니시테츠 라이온즈]] 측에서 입단을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곤도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사회인야구]]팀 [[브리지스톤]] [[구루메]]공장 야구부에 입단하여 선수로 뛰었다. 그 후 1960년 [[도시대향야구대회]]에서 [[보강선수]]로 출전해 맹활약. 활약에 감명받은 여러 구단의 추파를 받았고, 1961년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한다.&lt;br /&gt;
&lt;br /&gt;
곤도는 야구 이외에도 신체능력 자체가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스포츠에서도 높은 평판을 받아 그를 영입하려 했다. 심지어는 [[1964 도쿄 올림픽]]에 [[허들]] 선수로 출전해달라는 요청까지 있었을 정도.&lt;br /&gt;
&lt;br /&gt;
== [[혹사]]로 일찍 끝난 비운의 선수 시절 ==&lt;br /&gt;
http://cdn-ak.f.st-hatena.com/images/fotolife/n/naniuji/20160224/20160224000928.jpg&lt;br /&gt;
'''비운의 [[에이스]].'''&lt;br /&gt;
&lt;br /&gt;
1961년 주니치에 입단한 곤도는 첫 해부터 맹활약을 펼치는데, '''세부성적을 보면 도저히 미쳤다고밖에 말하지 못한다.'''&lt;br /&gt;
&lt;br /&gt;
무려 '''69경기 등판[* 44경기 선발등판, 25경기 구원등판.], 32완투, 12완봉, 35승 19패, 429.1이닝, 310 탈삼진, 방어율 1.70이라는 정신나간 성적을 기록하고 [[사와무라상]]과 [[다승왕]], 최우수 [[방어율]] 타이틀, [[신인왕]]을 동시에 석권한 것!''' 심지어 저 성적 중에서 구원등판수와 패전 수를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그 해 리그 최다 기록이었다![* 다만 최다[[탈삼진]]은 [[센트럴리그]]에선 1991년부터 수상했기에 곤도는 이 상을 당연히.. 못 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 당시 기준으로도 엄청난 [[혹사]]였다. 오죽했으면 이 [[혹사]] 때문에 '''&amp;quot;비, 비, 곤도, 비, 곤도&amp;quot;'''란 유행어[* 의미는 간단하다. 경기가 [[우천취소]]가 되어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닥치고 다음 경기는 곤도 등판. 이 패턴이 계속되는 것. ~~[[류현진]]의 원조~~]까지 생길 정도.&lt;br /&gt;
&lt;br /&gt;
이듬해에도 전년보단 덜하지만 '''61경기 등판[* 39경기 선발등판, 22경기 구원등판.], 23완투, 6완봉, 30승 17패, 362.1이닝, 212탈삼진, 방어율 2.33'''을 기록하면서 [[다승왕]]을 수상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이 미친 [[혹사]]의 끔찍한 말로가 그를 기다렸다.'''&lt;br /&gt;
&lt;br /&gt;
이 미친 [[혹사]]도 한 몫했지만, 잘못된 [[어깨]]관리[* [[가네다 마사이치]] 항목에서 알 수 있듯, 당시 투수들에게는 어깨를 식힌다는 개념이 없어서 등판 후 [[아이싱]]은 커녕 [[어깨]]에 뜨거운 것을 대고 있었다. [[김성근]]과 [[김인식]]도 이런 잘못된 어깨관리 때문에 일찍 [[투수]]를 포기했던 것. ~~그리고 이 둘, 특히 전자는 정신 못 차리고 후배 선수들까지도 어깨가 박살나게..~~]로 인해 결국 곤도의 [[어깨]]는 망가져 버렸고, 결국 이듬해인 1963년엔 10승, 그 다음 해인 1964년엔 꼴랑 6승밖에 거두지 못하며 곤도는 추락하고 말았다. &lt;br /&gt;
&lt;br /&gt;
결국 곤도는 1964년을 끝으로 [[투수]]를 포기하고 [[내야수]]로 전향, [[타자]]로 뛰게 된다.&lt;br /&gt;
&lt;br /&gt;
http://npb-smp.nikkansports.com/npb/photo/news/00000035/2013/12/13/1230964-1.jpg&lt;br /&gt;
타자로 전향한 곤도.&lt;br /&gt;
&lt;br /&gt;
그러나 [[타자]]로 뛰면서도 이미 개박살난 몸 때문에 1967년 리그 최다 희생타를 기록한 것 빼곤 저조한 성적밖에 거두지 못했고, 결국 1968년 다시 [[투수]]로 뛰게 되지만 '''9시합 등판(단 1시합 선발등판), 1승 1패, 18.1이닝, 10탈삼진, 방어율 10.80'''의 처참한 성적만 거두고 그 해를 끝으로 은퇴하고 말았다.&lt;br /&gt;
&lt;br /&gt;
통산 성적은.&lt;br /&gt;
'''[[투수]] 성적은 210시합 등판, 82승 60패, 667탈삼진, 방어율 2.69'''&lt;br /&gt;
'''[[타자]] 성적은 463시합 출장, 214안타, 18홈런, 85타점, 56희생타, 타율 .245'''&lt;br /&gt;
&lt;br /&gt;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 [[혹사]]가 결국 몸을 망가뜨려 일찍 은퇴한 비운의 선수라고밖엔 표현할 수 없다.&lt;br /&gt;
&lt;br /&gt;
== 지도자 시절 ==&lt;br /&gt;
http://c2.atwiki.asia/livia/2/2013/1215/93ced9c6100189b30a5a.jpg&lt;br /&gt;
팀에게 2번째 [[센트럴리그]] - [[일본시리즈]] 우승을 안겨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감독 시절.&lt;br /&gt;
&lt;br /&gt;
은퇴 후엔 [[주니치 드래곤즈]], [[킨테츠 버팔로즈]],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등에서 코치로 뛰면서 [[투수]]진을 개선시키는 데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하지만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장의 성적을 위해 투수진의 혹사에 반대하는 의견을 고수하면서 감독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긴테쓰에서 [[오기 아키라]] 감독이 [[요시이 마사토]] 등의 주축 투수들을 지나치게 혹사시키는 것을 두고 불화를 겪기도 했다.[* 오기 아키라 감독은 [[스즈키 이치로]]의 타격폼을 수용하는 듯 열린 사고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지만, 투수 운용에 있어서는 승리를 위해 [[투수]]들을 연투 등으로 혹사시키는 근시안적인 모습을 자주 보였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10.19]] 당시 더블헤더 3일 전 완투를 한 에이스 [[아와노 히데유키]]를 2경기 모두(즉 '''하루에 2번''')에 구원등판시킨 것. 결국 아와노는 1번째 땐 어찌저찌 롯데 타선을 막아내어 팀 선배 [[나시다 마사타카]]가 팀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나 마찬가지인 적시타로 갖다준 팀의 승리를 지켜냈으나, 2차전에서 이 해 [[수위타자]]를 차지한 [[타카자와 히데아키]]에게 동점 투런 홈런을 맞아 [[블론세이브]]를 저질러 팀의 리그 우승 실패에 일조하고 말았다.]&lt;br /&gt;
&lt;br /&gt;
그리고 1998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감독으로 취임해선 첫 해부터 [[자율야구]]를 시행하면서 [[사이토 타카시]], [[노무라 히로키]], [[미우라 다이스케]], [[카와무라 타케오]] 등이 포진한 안정적인 선발진과 마무리 [[사사키 카즈히로]]를 중심으로 [[시마다 나오야]], [[이가라시 히데키]], [[세키구치 이오리]], [[아와노 히데유키]] 등의 [[중간계투]]진을 [[로테이션]]화한 독특한 [[투수]]운용을 보여주었고, 비록 [[홈런]]을 뻥뻥 쳐대는 대형 [[거포]]가 있진 않지만 컨택이 좋은 타자들이 연달아 [[안타]]를 뻥뻥 때려대면서 상대팀을 조지는 [[머신건]] 타선을 구축하면서 그 해 '''구단 사상 38년만의 2번째 [[센트럴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일본시리즈]]에서도 [[히가시오 오사무]]가 이끄는 [[세이부 라이온즈]][* 참고로 세이부는 1985년 [[한신 타이거스]]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선물한 구단이기도 하다(...) --고마워요 세이부--]를 4승 2패로 조지고 '''구단 사상 38년만의 2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면서 팀을 최고의 황금기로 이끌었다.&lt;br /&gt;
&lt;br /&gt;
http://number.ismcdn.jp/mwimgs/2/e/-/img_2edb94c14b067f93707f596c90a8ea85362008.jpg&lt;br /&gt;
1998년 [[일본시리즈]] 우승이 결정된 후 헹가래를 받는 곤도.&lt;br /&gt;
&lt;br /&gt;
이듬해인 1999년[* 이 해 요코하마는 센트럴리그 역대 기록인 '''팀타율 .294'''을 기록했고 4번타자인 [[로버트 로즈]]는 '''.369 37홈런 153타점'''의 괴물 성적을 찍었다.], 그 다음해인 2000년에도 팀을 3위로 이끌면서 4년 연속 A클래스로 이끌기도 했으나,[* 왜 4년이냐면 곤도의 전임 감독 [[오오야 아키히코]] 시절인 1997년의 2위도 포함하기 때문.] [[자율야구]] 방침에 불만을 품은 주전 선수들, 그리고 [[TBS]] 방송사의 요코하마 [[프런트]]진과 대립하면서[* 다만 구단 사장과는 형제 같은 친밀한 관계였다고 한다.] 결국 2000년을 끝으로 곤도는 사임한다. ~~그리고 요코하마엔 또다시 [[암흑기]]가 찾아온다. 명장을 몰라보는 병신들~~&lt;br /&gt;
&lt;br /&gt;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주니치 드래곤즈]] 등 여러 구단에서 투수코치를 맡았으며, 프로필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투수코치로도 활동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lt;br /&gt;
원래 [[콘도]] 등의 성씨는 [[외래어 표기법/일본어]]의 표기 법칙에 따라 '''곤도'''로 적어야 하지만, 이 사람 같은 경우엔 특이하게도 성씨의 발음 자체가 그대로 '''곤도'''라서(히라가나 표기가 '''ごんどう=곤도''') 딱히 외래어 표기법에 맞출 필요가 없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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