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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명첩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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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4T00:43:29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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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3일 (월) 02:03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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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3T02:03:1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空名帖. [[조선]]시대에 있었던 [[매관매직]] 제도의 일종. 공명(空名)은 &amp;quot;이름이 적혀있지 않다&amp;quot;는 의미이고 첩(帖)은 &amp;quot;임명장&amp;quot;을 의미한다. 즉, 단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임명장이 된다. 정확히는 이 임명장을 부유한 사람들에게 팔아서 국가의 재정을 보충하는 목적으로 사용했다.&lt;br /&gt;
&lt;br /&gt;
보통 국사시간에는 [[임진왜란]]으로 국가의 재정이 후달리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공명첩을 팔았다는 식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조]]임금 시절에 논상의 목적으로 공명공신(空名空身)을 발행하자는 상소가 올라온 적이 있엇다. 공명공신이 이름과 신분을 쓰지 않고 발행하는 첩이었던 것을 보면 조선 초에도 공명첩 제도를 운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중앙의 관리들이 전국을 돌면서 사람들에게 돈이나 곡식의 상납을 독려하고, 만약 누군가가 돈과 곡식을 바치면 즉석에서 &amp;quot;아무개&amp;quot;란 이름을 써서 첩을 내려주는 형태로 운용됐다. 이때 주는 첩은 벼슬을 내리는 고신첩(告身帖), [[천민|천인]]을 [[양인#s-1|양인]]으로 면천시켜 주는 면천첩(免賤帖), [[향리]]들에게 역을 면제하는 면향첩(免鄕帖)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명첩을 통해 받는 벼슬은 말그대로 명예직이었기 때문에 실권은 없었다. 하지만 벼슬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해당 지역에서는 목에 힘주고 이런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어느정도 가치가 있었다. 요새로 치면 대학교에 기부금을 내고 명예 박사 학위 등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lt;br /&gt;
&lt;br /&gt;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논상의 목적으로 발행하기도 했고, 곡식을 확보하려고 발행한 사례도 많다. 실제 실록의 기록을 보면 구휼의 목적이나 [[군량]] 확보를 위해 발행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더불어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amp;quot;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공명첩 더 발행해주세요 ㅠㅠ&amp;quot;]]란 상소가 올라온 적도 있고, &amp;quot;지금까지 너무 많이 발행했으니 이제부터 발행하지 맙시다&amp;quot;는 상소도 있는 점을 보면 발행량이 어느정도 수준에서 정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체적으로 지방에서 난이 발생하거나 [[흉년]]이 들었을 때 공명첩 발행량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었다.&lt;br /&gt;
&lt;br /&gt;
공명첩은 중앙에서 발행하고 관리하는 것이었기에 나름대로 엄격하게 관리됐다. 이 공명첩을 위조했거나 관리들이 몰래 훔쳐서 내다팔았다가 적발될 경우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국가재정이 파탄났기 때문에 후기로 갈수록 공명첩이 대량 발행된 듯 하며 폐해를 논하는 기사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관리도 좀 엉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매관매직이 조장되었으며 조선후기 [[신분제]]가 붕괴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더불어 강제로 상납받은 정황도 있어 [[높으신 분]]들도 이 문제를 인식했는지 &amp;quot;우리 좀 자제합시다&amp;quot;란 논의를 했을 정도였지만 빠르게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다보니[* 이 점은 중세 유럽의 [[면벌부]]와 비슷하다.] 잘 지켜지지는 않은 듯 비슷한 논의가 끊이지않고 반복됐다.&lt;br /&gt;
&lt;br /&gt;
--현대에도 공명첩을 파는 [[시랜드 공국|나라]]가 [[http://www.sealandgov.org/title-pack|있다 카더라.]]--&lt;br /&gt;
&lt;br /&gt;
[[분류:조선(18세기)]]&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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