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3%B5%EB%B3%91%EC%9A%B0</id>
		<title>공병우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3%B5%EB%B3%91%EC%9A%B0"/>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3%B5%EB%B3%91%EC%9A%B0&amp;action=history"/>
		<updated>2026-07-03T23:32:47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3%B5%EB%B3%91%EC%9A%B0&amp;diff=39816&amp;oldid=prev</id>
		<title>2017년 1월 23일 (월) 02:05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3%B5%EB%B3%91%EC%9A%B0&amp;diff=39816&amp;oldid=prev"/>
				<updated>2017-01-23T02:05: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관련 문서 : [[키보드]], [[세벌식]], [[의사/목록]]&lt;br /&gt;
&lt;br /&gt;
||&amp;lt;table align=right&amp;gt;&amp;lt;-2&amp;gt; http://www.hellodd.com/data/photos/IMAGE/NEWS//2009/10/20091008130214.jpg ||&lt;br /&gt;
|| 이름 ||공병우 (公炳禹)||&lt;br /&gt;
|| 출생 ||[[1907년]] [[1월 24일]], [[평안북도]] [[벽동군]]||&lt;br /&gt;
|| 사망 ||[[1995년]] [[3월 7일]], [[서울특별시]]||&lt;br /&gt;
|| 본관 ||[[공(성씨)|김포 공씨]]||&lt;br /&gt;
|| 직업 ||[[안과]] [[의사]]||&lt;br /&gt;
|| 가족 ||[[배우자]] 이용희, 슬하 3남 6녀||&lt;br /&gt;
|| 종교 ||[[개신교]]||&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amp;gt;한글을 사랑한 괴짜 의사[* [[김은식]]이 펴낸 공병우에 대한 어린이용 평전 제목이다.]&lt;br /&gt;
&lt;br /&gt;
[[안과]] [[의사]], 자판 연구가, 전 [[한글문화원]] 원장. 한국 최초로 전문 안과를 개원한 인물.[* 공병우는 자신의 성을 따서 병원 이름을 '공 안과'로 붙였는데 이 병원은 현대에도 남아있다..] 그러나 한글 기계화로 더 유명하다.&lt;br /&gt;
== 한글 관련 운동 ==&lt;br /&gt;
{{{#!html&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480&amp;quot; height=&amp;quot;360&amp;quot; src=&amp;quot;//www.youtube.com/embed/XgGsStfYYkE&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lt;br /&gt;
sky ICT-IT야사-공병우 박사와 한글기계화 운동&lt;br /&gt;
&lt;br /&gt;
=== 세벌식 타자기 개발 ===&lt;br /&gt;
오른쪽에 초성·가운데에 중성·왼쪽에 종성을 배치하여 입력하는 체계인 '공병우 [[세벌식]] 자판'을 1949년부터 개발하고 계속적으로 연구하여, [[6.25 전쟁]] 때 이미 한글을 타자기로 빠르게 입력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연구에 힘입어 한 때 세벌식 점유율은 월등하게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1969년, 세벌식 타자기 특유의 빨랫줄 글꼴(아래 세벌식 워드프로세서 개발 문단 참고)이 '이' 자를 '일' 자로 위조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고  이에 따라 정부는 세벌식 타자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네벌식 타자기를 표준으로 지정했다. 또한 1983년, 빨랫줄 글꼴의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공 정부는 네벌식을 [[마개조]]한 [[두벌식]][* 이 두벌식은 정작 현대한글에 최적화 된 자판도 아니었고, 당시에 이미 나와 있던 박영효-송계범 두벌식보다도 못한 물건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http://sebeol.org/gnuboard/bbs/board.php?bo_table=lab&amp;amp;wr_id=25|여기]]를 참고.]을 표준으로 지정하고 세벌식의 사용을 계속 제한하였다. 이러한 탄압들에 대응하여 공병우는 정부에 반발하다가 [[코렁탕]]을 당할 뻔하기도 하였다. [[http://www.ebs.co.kr/tv/show?courseId=BP0PAPB0000000009&amp;amp;stepId=01BP0PAPB0000000009&amp;amp;lectId=3063743|참고 동영상]]&lt;br /&gt;
&lt;br /&gt;
&lt;br /&gt;
=== 한글 전용화 ===&lt;br /&gt;
지식인들이 6.25 전쟁 때 남한으로 피난 오면서 남한은 북한보다 한자 사용률이 높았다. 그러나 공병우 타자기의 편리함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손으로 글씨를 쓰는 대신 공병우 박사의 타자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병우 박사의 타자기는 순[[한글]]은 입력할 수 있지만 당시에 많이 쓰이던 [[한자]]는 입력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한자의 사용을 포기하고 순한글을 사용하게 되었다. 90년대 이후 컴퓨터의 발달로 한자를 타자로 입력할 수 있게 되었지만 50년대 당시만큼 한자를 사용하지 않게 된 것도 공병우 타자기의 영향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 세벌식 워드프로세서 개발 ===&lt;br /&gt;
[[파일:attachment/공병우/빨랫줄.png]]&lt;br /&gt;
&lt;br /&gt;
위 빨랫줄 글꼴은 공병우가 타자기를 빠른 속도로 치기 알맞게 글꼴을 새로이 만든 것이다. 이 글꼴의 특징은 초성, 중성이 빨랫줄처럼 되어 종성을 매달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네모꼴을 벗어난 것으로, 정부에서 세벌식 타자기를 기피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글씨를 칠 때 글씨의 모양이 중간중간에 바뀌는 것이 없다보니 익숙해지면 편리한데다가, 2000년대 들어서 그 디자인을 어느 정도 인정받아 비슷한 글꼴들이 개발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공병우는 한국어 입력기가 없는 컴퓨터에서도 한글을 입력할 수 있게 이 글꼴을 사용하여 새로운 로마자 대응 글꼴을 만들었는데, 이를 [[직결식 글꼴]]이라고 부른다. 이 글꼴을 그대로 영자 워드프로세서에 대입시킨 공병우 박사는 프로그램의 변경 없이 한글 문서를 만들 수 있는 워드프로세서를 선보이게 되었다. [[http://moogi.new21.org/story15.htm|여기에서 당시 워드프로세서의 원리를 체험해 볼 수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 세벌식 컴퓨터 자판 개발 ===&lt;br /&gt;
[[컴퓨터]]의 등장 이후 컴퓨터 용으로 자판을 개발할 필요가 생기자, 공병우는 여든이 넘은 몸으로 [[세벌식/자판종류#s-2.1.2|세벌식 공병우 최종]] 자판을 개발하였다. 이 자판은 공병우가 직접 개발한 마지막 자판이기 때문에 '세벌식 (공병우) 최종'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렇다고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s-11.9|'최종 자판'이 세벌식의 마지막 자판인 것은 아니다.]]  1995년 공병우 박사 사후, 공병우 박사의 뒤를 이은 자판 개발자들이 계속해서 세벌식 자판 개선에 힘써왔고, 이는 2015년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공병우 세벌식(공세벌식)은 [[두벌식]]보다 손가락 연타 수가 적어서 피로도가 적다는 특징이 있고, 개량 자판에 따라 한 글자를 한 타에 칠 수도 있다. 신광조 세벌식(신세벌식)도 공병우 세벌식에서 비롯되었을 만큼 공병우 박사는 세벌식 자판 계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lt;br /&gt;
&lt;br /&gt;
=== 기타 한글 관련 활동 ===&lt;br /&gt;
&lt;br /&gt;
 * 안과의사였던 공병우가 한글 타자기 개발 등 [[한글]]의 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에는 한글학자인 [[이극로]]의 영향을 받았다. 진료를 받으러 방문한[* 공병우 박사의 공안과와 한글학회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극로와 한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 시각장애인용 한글 타자기를 개발한 사람도 공병우이다.&lt;br /&gt;
&lt;br /&gt;
 * 나이가 들어도 노익장은 여전하여 한글문화원을 설립할 당시 나이가 82세였다.&lt;br /&gt;
&lt;br /&gt;
 * 실력 있는 젊은 인재들과 정보를 나누어 프로그램 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래아 한글]]도 이러한 지원 아래 태어난 작품.&lt;br /&gt;
&lt;br /&gt;
&lt;br /&gt;
== 국내 최초의 안과전문의 ==&lt;br /&gt;
세벌식 타자기 개발과 한글 연구로 더 유명해지긴 했지만 개요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안과의사, 그것도 대한민국 최초의 안과 전문의였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최초로 안과 병원을 개원하였다. 아직도 공병우가 개원한 공안과는 광화문에 자리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또한 대한민국 최초의 하드렌즈를 만든 한국 콘택트렌즈 연구소에서 하드렌즈 연구의 주축이시기도 하셨다고 한다. [* [[콘택트렌즈]] 항목의 일회용렌즈에서 참조함.]&lt;br /&gt;
&lt;br /&gt;
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로 쌍커풀 수술을 하기도 했고, 그전까지 일본 가나로 만들어져 있던 시력 검사표를 한글로 제작하기도 하셨다. &lt;br /&gt;
&lt;br /&gt;
한마디로 대한민국 안과계의 &amp;quot;선구자&amp;quot; 이자 &amp;quot;최초&amp;quot; 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서 한때는 우리나라에서 네번째로 세금을 많이 낼 정도로 부를 쌓기도 했다고 하나 정작 본인은 돈 버는 것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lt;br /&gt;
== 기타 ==&lt;br /&gt;
공병우의 좌우명은 '시간은 생명이다.'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빠른 자판 개발에 힘써 온 것이다. 이를 통해 세벌식 자판은 [[두벌식]] 자판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http://uncyclopedia.kr/wiki/%EC%84%B8%EB%B2%8C%EC%8B%9D_%EC%9E%90%ED%8C%90|백괴사전]]에서는 몇몇 게임의 단축키가 세벌식에서 작동이 안 된다고 공병우에 대해 불평하기도 했다. ~~국민들이 게임에 빠질 것을 우려한 예언가라는 반응.~~ ~~하지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경우는 세벌식도 지원한다~~] 한글 타자기 개발에 대한 공로로 특허청은 1999년도에 공병우가 우리나라 7대 발명가 중 하나라고 발표했다.[[http://blog.naver.com/themotivator/60212695865|#]] 공병우의 생각을 잘 나타낸 저서로는 자서전인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이외에도 일제시대에 [[창씨개명]]을 요구받자, 자신이 죽었다고 선언했다는 일화가 있고, 시간 절약을 위해 50년대 당시에 집 구조를 미국식으로 바꾸어서 이웃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했다는 일화도 있다. 당시에는 화장실이 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공병우가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화장실을 집 안에 들여놓았기 때문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화변기가 조금씩 들어왔고, 당시의 글이나 신문을 보면 1920년대에는 왠만큼 사는 집안에선 이미 화변기를 꽤나 설치해놨었다. 이런 점을 종합해봤을때 공병우 박사가 사는 집 정도면 푸세식은 좀 터무니없고, 최소 화변기 이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lt;br /&gt;
&lt;br /&gt;
또한 민주주의에도 크게 기여하였는데, 80년대 민청련 초기자금이 없어 허덕이던 시절 문제 소지가 될까 현금자본을 대주지는 못하고 --그게 그거지만-- 공병우 타자기를 수십 개 기증하여 자금마련에 도움을 주었다.&lt;br /&gt;
&lt;br /&gt;
1995년 사망 뉴스가 나오자 당시 [[PC통신]] 게시판은 공병우 박사에 대한 조의글로 넘쳐났는데 당시 PC통신 게시판이 한 사람에 대한 조의글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것은 거의 최초의 일이었다. 한 신문 기자는 이를 '''네티즌들의 사회장이 열리고 있다.'''라고 표현했다.&lt;br /&gt;
&lt;br /&gt;
[[백인제]]박사와 더불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에서 검증을 위해 참여되었다. 단, 이 부분은 위조지폐를 찍어냈을 인쇄물 검시 담당으로 관련되었기에 범인 심리를 맡았다는 이유로 납북이  된 원인으로 추정된 [[백인제]] 박사와 달리, 서울에서 납북을 피할 기회를 엿볼 수 있었다.&lt;br /&gt;
== 함께 보기 ==&lt;br /&gt;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0&amp;amp;contents_id=54751|공병우]],《네이버캐스트》, 2014년 5월 1일 작성. 2014년 5월 9일 확인.&lt;br /&gt;
[[http://www.onday.or.kr/wp/?p=9566|공병우 박사를 아시나요?]] - 따뜻한 하루&lt;br /&gt;
[[http://www.moonhwawon.ye.ro|한글문화원 홈페이지]]&lt;br /&gt;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490321&amp;amp;memberNo=11036773|[스브스뉴스, 스브스스토리] 참된의사. 나는 내 식대로 행복하게 살아왔다]] 2016년 1월 30일 15:56&lt;br /&gt;
&lt;br /&gt;
[[분류:한글 전산 처리]][[분류:의사]][[분류:발명가]]&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