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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과학사/한국/개항기 이후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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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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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4일 (토) 15:11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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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include(틀:한국 과학사)]&lt;br /&gt;
[include(틀:프로젝트 문서,프로젝트=나무위키 한국 과학사 프로젝트)]&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과학사/한국|단군 이래로 계속 이어져 온 우리나라의 전통 과학사]]를 탈피하고 서양의 [[과학]]과 문물을 도입하기 시작한 시대. [[서양]]의 발전된 과학과 문물도 중요하지만, [[단군]] 이래로 내려온 한국 과학사의 전통도 중요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지식인]]은 한국 과학사의 전통을 유지하는 것보다 일단 발전된 문물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고, 결국 [[과학사/한국|한국의 과학]]이 [[과학사/서양|서양의 과학]]에 가려져 오랫동안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lt;br /&gt;
&lt;br /&gt;
== 역사 ==&lt;br /&gt;
[[1876년]] 개항~[[1945년]] 광복까지의 [[과학사/한국|한국 과학사]]를 서술한다. 이 시기별 역사는 문맥이 통하는 시기를 기준으로 하며, 기본적으로 10년 단위 또는 주제별로 서술한다.&lt;br /&gt;
=== 개항기 ===&lt;br /&gt;
==== 서양 과학과 문물의 시찰 ====&lt;br /&gt;
1876~1885.&lt;br /&gt;
1876년 2월 [[강화도 조약]]이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개항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여러 발전된 나라에 문물과 과학을 배워 오려는 수신사 활동이 활발했다. &lt;br /&gt;
&lt;br /&gt;
강화도 조약의 당사자답게 가장 먼저 수신사 활동이 이루어진 것은 일본이었다. 1876년 7월부터 일본에 [[수신사]]를 보내게 되는데 이 수신사는 두 차례에 보내게 된다. 1차 파견이 [[김기수]] 외 75명, 2차 파견이 [[김홍집]] 외 57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단 외교적으로 파견한 것에 불과했고 제대로 된 시찰단 파견은 1881년부터 이루어진다. 1881년에 파견된 &amp;quot;신사 유람단[* 신사 유람단이라고 해서 여행 간 것이 아니다! 이 명칭이 굉장히 헷갈리기 때문에 바꾸자는 말도 나오고 있고 현재는 조선 시찰단, 일본 문물 시찰단 등으로 부르고 있다.]&amp;quot;이 그것인데, 이 신사 유람단이 파견된 과정이 굉장히 이상하다. 신사 유람단을 보낸 주역인 [[통리기무아문]]은 이들을 [[동래]]부 암행어사로 속여놓고 그 다음 바로 [[도쿄]]로 보내 버린 것(...)--낚시 성공-- 이 때 일어난 신사척사운동 때문에 기밀스럽게 진행되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파견된 신사 유람단은 74일 간 머무르면서 일본의 문물을 시찰하고 보고서로 써서 [[고종(대한제국)|고종]]에게 보냈는데 '''이 보고서의 양이 무려 100책[* 이때의 책은 현재의 권 개념과 같다.]이었다고 한다.'''--[[통조림]]을 했나 어떻게 그럴수가--이때 파견된 조준영, [[박정양]], 엄세영, 강문형, 조병직, 민종묵, [[이헌영]], 심상학, [[홍영식]], [[어윤중]], 이원회, 김용원은 통리기무아문의 관직에 앉아 개화 정책을 추진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1881년에는 [[청나라]]에 김윤식을 중심으로 한 영선사가 청나라의 발전된 군사 기술을 배우기 위해 파견되었다. 파견된 사람은 15~20살의 영재 학도와 기술 장인이었다. 이들은 [[톈진]]에 있는 기기창에 가서 무기 기술을 배워오려고 했는데 반 정도가 중간에 귀국하고 정부가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않았을 뿐더러 청나라 정부가 정작 중요한 기술은 가르쳐주지를 않아서 별로 수확이 없었다.  &lt;br /&gt;
&lt;br /&gt;
1883년에는 [[민영익]]과 보빙사 일행[* [[민영익]], [[유길준]], [[홍영식]], 서광범, 변수, 최경석, 오례당, 고영철]이 출발했다. 보빙사 일행은 미국에서 40일 동안 머물며 세계 박람회, 병원 등을 보기도 했다. 이때의 미국은 조선에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보빙사 일행을 더욱 잘해 줬는데 미국 대통령 [[체스터 앨런 아서]]를 만나 보기도 했고[* 자세한 것은 [[체스터 앨런 아서#s-5|해당 문서]] 참조.] 공짜로 6개월 동안 유럽 여행을 보내주기도 했다. 보빙사 일행은 이 이후 개화파로 활동했으며 유길준은 1889년 서양 기행문 [[서유견문]]을 쓰기도 했다. 보빙사 일행은 조선 최초의 세계 여행을 했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lt;br /&gt;
==== 서양 과학 도입의 시작 ====&lt;br /&gt;
1885~1893.&lt;br /&gt;
과학적 성과가 많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서양 문물과 과학을 대부분 이 시기에 알게 되었고 후에 일어날 서양 과학 전면 도입의 시초가 되었다. 특히 전신망(전선)이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매우 괄목할 만 한 일인데, 전신망 관련 부분은 연도를 초록색으로 입력했다.&lt;br /&gt;
&lt;br /&gt;
 * 1885년: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이 세워졌다. [[제중원]] 항목 참조.&lt;br /&gt;
 * {{{#green 1885년 8월}}}: 서울-의주를 잇는 서로전선이 이어졌다. 서로전선 사이에 6천여개의 전봇대가 설치되었는데 비용 부담은 청나라에게서 빌린 돈으로 했으며 전신 사무소도 청나라가 운영했다.&lt;br /&gt;
 * {{{#green 1888년}}}: 서울-부산을 잇는 남로전선이 이어졌다. 남로전선은 서로전선과 달리 우리나라 정부가 운영했으며 전신 부호도 한글이었다.&lt;br /&gt;
 * 1890년: 1885년 충청도에서 시작된 [[우두]]법 의무 접종이 전국에서 이루어졌다.&lt;br /&gt;
 * {{{#green 1891년}}}: 서울-원산을 잇는 북로전선이 이어졌다. 서로전선과 남로전선으로 조선으로 가는 길과 영향력을 확보한 청나라와 일본은 북로전선이 이어지면 러시아가 영향력을 얻게 될 수 있어 반대했기 때문에 원산까지만 이어졌다. 이는 1899년이 되어서야 함흥까지 이어졌다.&lt;br /&gt;
==== 서양 과학의 전면 도입 ====&lt;br /&gt;
1894~1909.&lt;br /&gt;
갑오개혁이 일어난 후에는 여러 가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전차 도입, 군사 기술 확보--그런데 그 다음이 [[일제강점기|바로]]...--, 태양력 시행 등이 있다. 지금까지의 시기 중 가장 많이 개화를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겉치레였다. 이 시기에 개화를 제대로 했더라면 과장을 섞어 일제 강점기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최소한 부국강병이 되었을 것이고 이렇게 힘없이 일제 강점기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lt;br /&gt;
&lt;br /&gt;
 * 전차 도입은 1899년 5월 17일에 개통되어 달리기 시작했는데 한성 전기 회사에서 운영했다. 한성 전기 회사는 그뿐만 아니라 전등, 전화 관련 업무도 책임졌는데 돈이 없어서(...) 미국에 매각되었다. 사실 미국의 압박이 있기도 했지만...&lt;br /&gt;
 * 군사 기술 확보로는 군기창의 확대와 군사 기술 개발 등이 있다. 1902년에는 양무호[* 화물선을 개조한 것. 당연히 제대로 쓸 수 없었고 이듬해 광제호 구입의 원인이 되었다.]를, 1903년에는 광제호를 구입했다. 하지만 일본 등 다른 열강에 비해서 힘이 훨씬 약했다.&lt;br /&gt;
 * 태양력 실행은 [[태양력#s-2.1|이 문서]] 참조.&lt;br /&gt;
=== 일제 강점기 ===&lt;br /&gt;
이 문서를 읽기 전에: 이 시기에 한국이 근대 문명을 접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제는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근대적 과학기술을 도입한 것이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징용 등에 의해 희생되었다. 이 시기의 과학기술 발전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일제의 만행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란다.&lt;br /&gt;
==== 의학 ====&lt;br /&gt;
추가바람.&lt;br /&gt;
==== 교통과 건설, 통신 ====&lt;br /&gt;
추가바람.&lt;br /&gt;
==== 기타 ====&lt;br /&gt;
조선어학회 같은 곳이 그랬듯, 1920년대 독립운동에서는 실력을 키워 독립을 얻어야 한다는 주장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여기서 실력을 키워야 할 대상에 과학이 들어있었고, 그래서 이때 활발한 과학 대중화운동이 벌어졌다.&lt;br /&gt;
&lt;br /&gt;
과학 운동의 시작은 발명학회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  동경고등공업학교로 유학을 갔던 김용관은 일본의 발전된 과학기술력을 보고 일본 국력의 밑바탕은 과학기술의 생활화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돌아온 후 1924년 '''발명학회'''를 설립하였다. 처음의 발명학회는 얼마안가 문을 닫게 되지만, 김용관은 포기하지 않고 자금을 모아 1931년 다시 발명학회를 세우게 되고, 이어서 과학 잡지인 '과학조선'을 창간하고 4월 19일을 [[과학의 날]]로 정하게 된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amp;amp;contents_id=5206]]]&lt;br /&gt;
&lt;br /&gt;
윤치호 등의 사회지도층과 민족주의자들까지 합세해서 활발히 시행되던 과학 운동은 후에 2개의 노선으로 갈라진다. 발명학회의 설립 당시에 김용관은 과학 운동의 목표를 '발명 정신을 고취시켜 특허를 많이 내는 것'에 둔 반면, 과학의 날 행사를 본격적으로 주관하던 과학지식보급회는 '대중에게 기초과학을 보급하고 기초과학연구가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에 두었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 운동은 2개의 노선이 갈라져 서로 싸우다가 일제의 탄압 심화로 인해 종결된다.&lt;br /&gt;
&lt;br /&gt;
추가바람.&lt;br /&gt;
== 과학자 ==&lt;br /&gt;
=== 개항기 ===&lt;br /&gt;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 수신사 일행으로 참여한 대부분이 이 시기의 과학자가 되었다. 사실 경술국치 이전까지는 과학 학위를 가진 사람도 없었고,아예 과학자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개화파가 과학자 정도가 될 것이다. 이 문서의 [[과학사/한국/개항기 이후#s-2.1.1|이 문단]] 참조.&lt;br /&gt;
=== 일제 강점기 ===&lt;br /&gt;
 * [[우장춘]]&lt;br /&gt;
 * [[지석영]]&lt;br /&gt;
 * [[석주명]]&lt;br /&gt;
== 관련 문서 ==&lt;br /&gt;
 * [[과학사/한국]]&lt;br /&gt;
 * [[과학사/한국/대한민국]]&lt;br /&gt;
 * [[과학사/한국/북한]]&lt;br /&gt;
[[분류:과학사]]&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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