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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곽영주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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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3T11:18:0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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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3일 (월) 02:35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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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3T02:35:1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경호실/역사]]&lt;br /&gt;
郭永周 &lt;br /&gt;
(1925 ~ 1961)&lt;br /&gt;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ko/thumb/d/d6/%EA%B3%BD%EC%98%81%EC%A3%BC.JPG/300px-%EA%B3%BD%EC%98%81%EC%A3%BC.JPG?height=400||[[파일:attachment/B0FBBFB5C1D6_1.jpg|height=400]]||&lt;br /&gt;
||이승만의 하야 이후에도 계속해서 경호하던 모습||사형 집행 직전의 그의 최후의 모습||&lt;br /&gt;
[목차]&lt;br /&gt;
== 소개 ==&lt;br /&gt;
[[대한민국]]의 악덕 부패경찰. 지금의 [[대통령경호실|대통령경호실장]]격인 경무대경찰서장이었으며 [[이승만]]의 신임을 등에 업고 막강한 권력을 남용하였다. 최종 계급은 [[경무관]]이었다.&lt;br /&gt;
&lt;br /&gt;
== 생애 ==&lt;br /&gt;
&lt;br /&gt;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이정재(깡패)|이정재]]와는 고향선후배였다. [[일제 강점기]]의 행적은 알수 없으나 해방 후 경찰로 있던 이정재[* 고향인 이천에서 씨름 선수로 활동하다 강제징용때 경성으로 상경하여 [[김두한]]의 반도의용정신대에서 서기 일을 보다가 경찰 특채가 되어 해방후에 다시 경찰에 복직해서 활동하고 있었다.]의 도움으로 수도경찰학교에 입학했다.&lt;br /&gt;
&lt;br /&gt;
이승만이 대통령 당시 이승만의 눈에 띄어 이승만의 경호일을 보게되었다. 뽑힌 일화가 있는데 당시 곽영주는 수도경찰학교를 졸업하고 경찰서 보초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이승만이 경찰서 방문 시 문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곽영주를 인상깊게 보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덩치와[* 1950년대에 곽영주의 신장은 무려 180cm가 넘었다. 전성기의 김두한이 키 182cm에 몸무게 92kg이었다고 한다.]우렁찬 목소리, 서구적인 마스크가 썩 이승만에 맘에 들었던지 경무대 경호원으로 특채되었고 그뒤에도 이승만에게 총애를 받고 1956년에 곽영주를 지금의 [[경호실/역사|대통령 경호실장]]인 경무대 경찰서장으로 임명했다. 경사에서 경무관으로 올랐으니 무려 '''5계급 특진'''이다. '''결국, 곽영주의 승진은 인사원칙을 깡그리 무시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공무원들이 이승만에게 무조건 아부하면서 충성해야만 출세를 한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심어주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이후 곽영주는 이승만의 빽을 믿고 날뛰기 시작했다. 이정재에 대한 은혜를 갚는답시고 그가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니든 절대 체포하지 못하게 했으며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무조건 그의 편을 들어줬다. 그 결과 이정재를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잡혀가는 황당한 경우마저 있었다.&lt;br /&gt;
&lt;br /&gt;
지금으로 따지면, 일개 경호실장이 정치에 엄청나게 참견을 해대는 심각한 수준의 월권 행위를 저지른 셈으로 [[십상시|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에 전부 참견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려고 했다.]] 이 때, 곽영주가 얼마나 까불고 다녔는지 '''부부통령(副副統領)'''이라는 별명도 얻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것은 뒷날의 경호실장 '''[[차지철]]'''도 충실히 계승한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직접적으로 민간인을 사살한 적이 없는 차지철[* 사실 차지철도 [[박정희]]의 앞에서 시위하는 민간인을 학살해버리자는 투의 이야기를 하기는 했다. 자세한건 본인 문서를 참고하자.]과 달리 곽영주는 민간인을 사살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곽영주가 자신의 손으로 사살한 민간인만 수백 명 이상이었다.&lt;br /&gt;
&lt;br /&gt;
곽영주는 군 장교의 진급심사에 참견했는데 그 장교의 소양보다는 당사자나 가족의 사상 관계를 캐묻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식으로 태클 걸렸던 사람이 김익렬과 [[박정희]]. 김익렬은 [[4.3 사건]] 당시 무분별한 경찰의 진압에 회의를 느끼고 [[빨치산]]과 일시 휴전을 한 탓에 '''공개장소에서 면박당해서 끌려나갔다.''' 결국 김익렬은 50년대 내내 찬밥이었다.&lt;br /&gt;
&lt;br /&gt;
박정희는 과거 남로당에 가입한 경력이 있으니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박정희는 [[김정렬]] 당시 국방부 장관이나 [[백선엽]]이 찾아와서 심사위원들을 일일이 설득시키고 기어이 진급시켜줬다. 그런데 곽영주는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을 드러내도 먹히지 않자 어떻게 알아냈는지 박정희의 이혼 경력을 들고 와 박정희의 여자 관계가 굉장히 문란하다는 모함을 했다. 하지만 씨도 안 먹혔다.&lt;br /&gt;
&lt;br /&gt;
박정희는 [[한국전쟁]] 중에 당시 부인이었던 김호남과 이혼했는데 어른들이 억지로 결혼시킨 거라 원래부터 사이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김호남은 이혼 충격 때문에 한때 친정에서 손을 써서 절에 들어가 요양을 하기도 했다. 김호남의 딸 박재옥에 의하면 김형욱의 자서전에도 언급되는 '박정희가 어느 스님이랑 그렇고 그런 관계에서 딸을 낳았는데 박정희와 얼굴이 똑같다'는 소문은 사실 이 이야기가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곽영주가 박정희를 어떤 식으로 모함했나 하면 앞에서 언급한 내용 중에 '''&amp;quot;김호남이 충격 때문에 한때 친정에서 손을 써서 절에 들어가 요양을 했다.&amp;quot;''' 는 것을 비구니를 강간해서 박정희와 똑같이 생긴 딸을 낳았다는 식으로 모함했다.[* 박정희는 김호남과 이혼한 이후에도 한 때 사귀던 여자와 같이 살면서 자신이 박재옥을 키우려고 했고 대통령 때 정식으로 딸이라 인정했다. 장성일 때 자신의 부관이자 후일 칠레 대사를 역임한 한병기와 결혼시켰다.]&lt;br /&gt;
&lt;br /&gt;
1960년 [[4.19 혁명]]이 발생하자 곽영주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시민들을 무력진압했다. 서대문 앞 총격사건이나 이기붕 자택(현재의 4.19 도서관 터) 발포 사건은 그의 직접 명령에 의한 것. 이후 이승만이 하야하자 곽영주는 자신의 기반을 잃었고 그대로 체포되어 장면 정권하에서 벌어진 재판에서 단기형을 받았다. 하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혁명재판]]이 벌어지자 그는 다시 체포되었다.&lt;br /&gt;
&lt;br /&gt;
같은 혐의로 같이 체포된 [[홍진기]][* [[조봉암]]을 사형시킨 법무장관이자 [[중앙일보]]의 창업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홍석조 BGF리테일 회장,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의 아버지이다. [[이병철]]과는 사돈이자 [[이건희]]의 장인이다.]와 유충렬이 사형 선고 후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으로 감형된 것과 달리 곽영주는 그대로 사형이 선고되었다. 결국 곽영주는 [[정치깡패]] 이정재, 영화깡패 [[임화수]], 이승만 정권 당시 내무부장관이었던 [[최인규]], 정치깡패 신정식과 나란히 1961년 교수형을 당했다.&lt;br /&gt;
&lt;br /&gt;
곽영주가 박정희의 원한을 사서 사형을 당했다는 소문도 있으나 사실 이걸 빼더라도 사형당해도 모자랄 만한 사고들을 쳤다. 4공화국 당시 정치 보복이나 소위 반혁명 재판[* 5.16 이후에 박의장 암살음모, 반혁명 음모, 이주당 사건등으로 박정희 군정을 몰락시키려던 사건들. 다만 이 사건은 [[채명신]]이 한탄했듯이 모두 [[김종필]]의 머리에서 나온 조작 사건이 분명하다. 원충연 같은 경우는 이런 혐의로 '''박정희 사망때까지''' 감옥살이를 한다.] 때와 달리 혁명재판 혐의자나 군부내 5.16 반대자들[* [[강원도]] 쪽에서 무력 진압을 천명한 [[이한림]]은 후일 박정희 정권 때 교통부 장관을 역임하고 [[강영훈]]도 나름대로 중용되어 [[제6공화국]] 때에는 [[국무총리]]가 된다. 화병으로 사망한 정강은 예외.]에게도 의외로 '''관대한''' 모습을 보여준 박정희였지만 곽영주의 죄는 한도를 넘은 셈.&lt;br /&gt;
&lt;br /&gt;
평가는 당연히 권력 남용으로 인한 부정적 평가가 절대적이다. 하지만 1979년 10.26 사건때 화장실로 도망갔던 차지철과 달리 끝까지 이승만에 대한 충성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51000209103015&amp;amp;editNo=2&amp;amp;printCount=1&amp;amp;publishDate=1960-05-10&amp;amp;officeId=00020&amp;amp;pageNo=3&amp;amp;printNo=11722&amp;amp;publishType=00010|4.19 이후 구속기사]]&lt;br /&gt;
&lt;br /&gt;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1011800209103025&amp;amp;editNo=2&amp;amp;printCount=1&amp;amp;publishDate=1961-01-18&amp;amp;officeId=00020&amp;amp;pageNo=3&amp;amp;printNo=11975&amp;amp;publishType=00010|여담으로 4.19 이후 그의 장남(곽승근)이 유괴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lt;br /&gt;
&lt;br /&gt;
1995년에 월간조선 10월호에서 최인규, 임화수, 이정재, 조용수, 최백근, 신정식, 한필국과 함께 1961년에 교수형을 당했을 때의 사진이 모두 공개되었다. &lt;br /&gt;
&lt;br /&gt;
== 미디어 ==&lt;br /&gt;
=== [[제2공화국(드라마)|제2공화국]] ===&lt;br /&gt;
이동신이 연기했다. 첫 등장시부터 이승만에게 궁중어투를 사용해 해설자에게 제대로 까였다.&lt;br /&gt;
&lt;br /&gt;
함께 경무대에서 이승만을 보좌하는 비서관 박찬일과 경쟁과 암투를 벌이는 사이로 묘사된다. 4.19 혁명이 발발한 이후 계엄사령관이 된 [[송요찬]]을 포섭하려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친하게 지내던 정치깡패 임화수, 유지광이 계엄군에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송요찬에게 [[고대생 습격 사건]]은 시위 때문에 피해본 노점상들이 빡쳐서 벌인 일일뿐이라는 식으로 뻘소리를 해대면서 이들의 체포를 막으려 하지만 제대로 까임만 당한다.&lt;br /&gt;
&lt;br /&gt;
결국 이승만이 하야하자 마구 발광하면서 분노를 터뜨리고 허정 과도정부가 수립된 이후 경무대 발포 사건 책임자로 구속당한다.&lt;br /&gt;
&lt;br /&gt;
=== [[무풍지대]] ===&lt;br /&gt;
이운우[*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에서는 권일과 [[홍종철]] 1인 2역을, [[코리아게이트]]에서는 [[허문도]]를 연기했다.]가 연기했다.&lt;br /&gt;
&lt;br /&gt;
=== [[야인시대]] ===&lt;br /&gt;
[[곽영주(야인시대)]] 항목으로.&lt;br /&gt;
[[분류:경찰공무원]]&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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