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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작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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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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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3일 (월) 06:1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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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농민들이 넓은 토지에 농사를 짓는 현상. 넓을 廣을 써서 광작(廣作)이다.&lt;br /&gt;
&lt;br /&gt;
이앙법 즉 [[모내기]]법은 이른시기에 알려졌지만, 농업 용수 확보 등의 문제로 국가에서 장려하지 않았다. 가끔씩 남부 지방에만 시험차 해보는 것이 전부. 그런데 조선 후기에 들어서자 정부의 간섭이 약해지고 모내기법은 대대적인 유행을 탄다.&lt;br /&gt;
&lt;br /&gt;
그리고 국가차원에서 많은 황무지가 개발되었고, [[중국]]으로부터 여러가지 기술 등이 건너온 상황에서,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들은 이것을 빠르게 이용하여 큰 이익을 보았고 이를 통해 부농으로 성장하게 된다.&lt;br /&gt;
&lt;br /&gt;
지주가 아닌 소작인이어도 [[부농]]이 되어 광작을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조선 후기에 들어서 상품경제가 덩달아 발전하고 기타 여러 요인으로, 소작인과 지주의 소득 분배가 소작인에게 유리하게 바뀌었기 때문. 과거에는 수확량을 % 형식으로 나눴다면, 조선 후기에는 소작인이 지주에게 딱 할당량만 건네주면 됐기 때문에 자신의 몫을 남겨 이익을 보기가 쉬워졌다. 열심히 일하면 본인의 재산이 늘어나는 것.&lt;br /&gt;
&lt;br /&gt;
이런 추세에 적응하여, 비교적 적은 노동력으로 대지를 경작할 수 있게 되자. 적응하지 못한 소작인이나 영세 농민 대부분이 농업에서 쫒겨나게 된다. 이렇게 쫒겨난 광산이나, 건설지역, 상단 등으로 흘러가 임노동자가 된다. 농민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분화된 셈.&lt;br /&gt;
&lt;br /&gt;
광작으로 일부 농민들은 강한 자본력으로, 물건을 합리적으로 사고 파는 등. 조선 후기의 경제를 촉진시키는데 어느정도 기여하였음은 물론, 이렇게 부유해진 농민들의 입지가 올라가서 [[신분제]]가 서서히 동요되고, 지주와 소작농민. 양반과 농민 사이를 신분적, 계급적 관계에서 경제적, 사무적 관계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 의의 ==&lt;br /&gt;
광작의 등장은 꽤나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이러한 근대화와 민주화의 기초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사에서 일반적인 근대화 루트가 농민이나 하층민이 부를 축적할 계기 마련 → 사유 재산의 개념이 강화 → 시장과 상업의 발달 → 잉여 노동력의 공업지역 이동 → 공업이 발달 → 신분제 동요와 신흥신분의 개혁요구 → [[혁명]] 혹은 온건적 방법으로 지위 상승과 사회 발전.&lt;br /&gt;
&lt;br /&gt;
[[영국]]이 [[산업혁명]]을 이룬 과정, [[프랑스]]가 [[대혁명]]을 이룬 과정과 거의 비슷하다. 그 말인 즉슨, 조선 후기에도 시민들의 역량이 꾸준히 쌓이고 있단 얘기가 된다. 보통의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답이 없지는 않았다. 다시말해 현재 한국사 교과서는 물론 주류 한국사학계에서 주장하는, 조선 내에서의 [[자본주의 맹아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기초적인 근거로 제시되는 사회상으로 제기되는 현상이 바로 광작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 역시 존재하고 있으니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lt;br /&gt;
&lt;br /&gt;
[[분류:한자어]]&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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