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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드룬 부르비츠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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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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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3일 (월) 07:0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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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파일:attachment/구드룬 부르비츠/Gudrun Burwitz née Himmler.jpg]]&lt;br /&gt;
&lt;br /&gt;
구드룬 부르비츠(Gudrun Burwitz), 결혼 전 성 힘러(Himmler)는 [[독일]] [[네오 나치]] 운동가이다. [[1929년]] [[8월 8일]] [[나치 독일]]의 [[SS]]와 [[게슈타포]]의 지휘자였던 '''[[하인리히 힘러]]와 그의 부인 마르가레테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후에 남동생이 입양되었다.]&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유소년기 ==&lt;br /&gt;
[[파일:dJNrNjv.jpg|width=500]]&lt;br /&gt;
[[파일:attachment/구드룬 부르비츠/gu.jpg]]&lt;br /&gt;
[[파일:q55cZdy.jpg]]&lt;br /&gt;
&lt;br /&gt;
어린 시절, 아버지 [[하인리히 힘러]]와 함께.&lt;br /&gt;
&lt;br /&gt;
[[파일:ENhUovI.jpg]]&lt;br /&gt;
&lt;br /&gt;
[[아돌프 히틀러]]와 찍은 사진.&lt;br /&gt;
&lt;br /&gt;
'''[[하인리히 힘러]]는 소문난 애(공)처가이자 [[딸바보]]였다'''. 구드룬은 어머니 마르가레테와 함께 [[뮌헨]]에 살고 있었는데 힘러는 수시로 아내와 딸을 [[베를린]]으로 불러들였고 매일같이 가족에게 전화를 하고 매주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힘러는 집무 중에도 딸을 곁에 두었고 '내 강아지(Püppi)' 라고 부르며 아꼈다.&lt;br /&gt;
&lt;br /&gt;
여담으로, 구드룬은 왜 또래의 남자친구들이 자기 근처에도 접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매우 의아해하면서 자신이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는 신세에 대해 푸념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하인리히 힘러|아버지]]가 누군데 감히 어떤 남자가 집적거리겠나'''...?&lt;br /&gt;
&lt;br /&gt;
1945년 5월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하인리히 힘러]]가 죽자 이후 구드룬은 그가 청산가리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어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16세 무렵) 그녀와 어머니 마르가레테는 미군에 체포되어 유럽 각지의 수용소를 전전하였다.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거쳐 1946년 11월 석방되었다. 그녀는 이 시기를 매우 고통스러웠으며 모녀는 힘러의 죄과를 갚아야 한다는 식으로 다루어졌다고 술회했다.&lt;br /&gt;
&lt;br /&gt;
그녀는 단 한 번도 '''[[나치]] 이념을 포기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행위를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나치 시절 아버지와 그 동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자랐던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lt;br /&gt;
&lt;br /&gt;
== [[나치]] 옹호 활동 ==&lt;br /&gt;
구드룬은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불프 디터 부르비츠(Wulf Dieter Burwitz)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다. 그녀는 '''[[네오 나치]]'''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였고 1951년 이후부터는 징역을 살고 있거나 도주 중인 [[SS]] 단원들을 구원하는 모임인 '슈틸레 힐페(Stille Hilfe, 일명 조용한 손길)' 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후 수십 년 간 구드룬은 '슈틸레 힐페' 의 상징으로 활동했고 모임을 주최하거나 저술활동을 하였으며 '''[[나치]]의 공주'''라는 별명을 얻었다.&lt;br /&gt;
&lt;br /&gt;
1952년에는 [[나치]]의 [[유겐트]]를 모방한 비킹 유겐트(Wiking-Jugend)를 설립하는데 일조했다. 전후 [[네오 나치]] 활동의 주축인 '블랙 위도우' 플로렌틴 로스트 반 퇴닝엔(Florentine Rost van Tonningen)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lt;br /&gt;
&lt;br /&gt;
구드룬은 현재 [[뮌헨]] 근교의 고급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근래에도 '''[[나치]]의 [[전범]]을 구원하고 원조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심지어 네오 나치가 관여한 적이 있다는 [[뮌헨 올림픽 참사]]에도 '''구드룬의 개입이 있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비슷한 인물로 [[일본]]의 [[도조 유코]]가 있다. 행보가 거의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흡사하다. 다만 구드룬 부르비츠는 아버지와 동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도조 유코는 조부에게 인간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없다는 게 차이점.&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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