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5%AC%EB%A1%9C%EB%8B%A4_%EC%82%AC%EC%95%BC%EC%BD%94</id>
		<title>구로다 사야코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5%AC%EB%A1%9C%EB%8B%A4_%EC%82%AC%EC%95%BC%EC%BD%94"/>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5%AC%EB%A1%9C%EB%8B%A4_%EC%82%AC%EC%95%BC%EC%BD%94&amp;action=history"/>
		<updated>2026-07-02T05:50:52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5%AC%EB%A1%9C%EB%8B%A4_%EC%82%AC%EC%95%BC%EC%BD%94&amp;diff=42172&amp;oldid=prev</id>
		<title>2017년 1월 23일 (월) 07:02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5%AC%EB%A1%9C%EB%8B%A4_%EC%82%AC%EC%95%BC%EC%BD%94&amp;diff=42172&amp;oldid=prev"/>
				<updated>2017-01-23T07:02:0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상위 문서 : [[일본 황실]], [[아키히토/가족관계]], [[공주]], [[장녀]], [[막내]]&lt;br /&gt;
'''黑田淸子'''&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파일:attachment/구로다 사야코/22.jpg]]&lt;br /&gt;
~~오달수?~~&lt;br /&gt;
&lt;br /&gt;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의 2남 1녀 중 막내. [[1969년]] [[4월 18일]]생. &lt;br /&gt;
&lt;br /&gt;
미혼 시절의 이름은 노리노미야 사야코(紀宮淸子), 신분은 내친왕(內親王)[* [[덴노]]의 딸과 손녀까지는 내친왕, 증손녀부터는 [[여왕#s-4|여왕]]이라 한다. 단 현행 황실전범이 제정된 1947년 이전에는 4대손까지를 내친왕, 5대손부터를 여왕이라 했다. 남자는 친왕/왕.]이었다. 2005년 [[11월 15일]] '''평민 구로다 요시키(黑田慶樹)와 결혼, 내친왕(황족)의 신분을 잃고 평민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외모로 인하여 (특히 젊은 시절 미인이었던 어머니와 비교되어) 네티즌들 사이에는 종종 웃음거리 대상으로 취급받지만, 선량한 성품과 원만한 대인관계로 호평받는 인물이다. [[외모지상주의]]로 인한 과소평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케이스.[* 사실 작은[[오빠]]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과 더불어, [[미치코 황후]]의 친자식이 아니라 [[아키히토]] 덴노가 다른 여성과 내통하여 낳은 혼외자식이라는 [[카더라 통신]]이 일본 내에 암암리에 퍼져 있는 듯.]&lt;br /&gt;
&lt;br /&gt;
== 어린 시절 ==&lt;br /&gt;
http://livedoor.sp.blogimg.jp/royalfamily_picture/imgs/9/4/9487b29c.jpg&lt;br /&gt;
1969년 4월, 사야코 공주를 낳고 궁내청 병원에서 퇴원하는 [[아키히토]] 황태자와 [[미치코 황태자비]] 내외.&lt;br /&gt;
&lt;br /&gt;
http://blogimg.goo.ne.jp/user_image/1b/35/86538074d49f938a0bde450ef2bac620.jpg&lt;br /&gt;
어머니 [[미치코 황태자비]]가 찍은 [[후미히토]] 친왕과 사야코 공주. ~~[[마코 공주|그런데 훗날 후미히토의 큰딸]]이 보인다?~~&lt;br /&gt;
&lt;br /&gt;
아들만 둘이던 [[아키히토]] 황태자의 첫 딸이라 많은 사랑을 받았다. 9살 위인 큰오빠 [[나루히토]] 친왕은 물론이고, 5살 위인 작은오빠 [[후미히토]] 친왕 역시 어린 여동생을 몹시 귀여워했다고. [[일본]] 황족들이 다 그러하듯 [[가쿠슈인]]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졸업했다. 다만 '''[[가쿠슈인]]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의 1년 동안, 다른 민간 유치원에 다녔다.''' 언젠가는 시집가서 출가외인(出嫁外人)이 될, 게다가 평민이 될 딸이라는 생각에 그런 듯. &lt;br /&gt;
&lt;br /&gt;
어릴 적엔 너무나 귀한 장손이라 도리어 난폭했던 큰오빠 [[나루히토]] 친왕이나 천성적으로 활달한 작은오빠 [[후미히토]] 친왕과는 달리,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황족이라도 어린 나이이며 또래의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로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조카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처럼 상당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는 매년 어머니 [[미치코 황태자비]]와 짧은 [[여행]]을 다녔다. 이는 당시 모진 시집살이로 고통을 받고 있었던 [[미치코 황태자비]]에게도, 학교에서의 괴롭힘으로 힘들었던 사야코 공주에게도 위로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자라면서는 점점 부모의 공무(公務)에 동행하는 모습도 보였다. &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구로다 사야코/sayako.jpg]]&lt;br /&gt;
&lt;br /&gt;
1985년 3월, [[가쿠슈인]] [[여중|여자 중등과]]를 졸업하는 사야코 공주. 이후 가쿠슈인 [[여고|여자 고등과]]를 거쳐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일어일문학과]]에 진학했다.&lt;br /&gt;
== 성년기 ==&lt;br /&gt;
[[1989년]] [[4월 18일]], 만 20세로 성년이 되었다. 축하 행사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그해에 할아버지 [[쇼와 덴노]]가 사망하여, 다음 해 3월로 연기되었다. &lt;br /&gt;
&lt;br /&gt;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했다. 성적이 우수하여 주위에서는 [[대학원]] 진학도 권유했으나, 사야코 공주는 '''[[조류(동물)|조류]] [[연구소]] 근무'''를 택했다. 야마시나(山科) 조류 연구소에서 비상근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주 2회의 통근 시에는 스스로 만든 [[도시락]]을 가져가서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고.[* [[후미히토]] 친왕의 장녀 [[마코 공주]]도, 고모 사야코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박물관에서 비상근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헤이본샤(平凡社)에서 출판된 《일본동물대백과》 중 '물총새' 항목은 사야코 공주의 작품이기도 하다. &lt;br /&gt;
&lt;br /&gt;
'''[[일본]] 황족들 중에서 일을 하여 급여를 받은 인물은 사야코 공주가 최초'''였으며, 연구소에서 받은 급여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모아두었다고 한다. 사야코 공주는 '''돈을 잘 쓰지 않아'''서, 궁내청 측에서는 그녀에게 지급하는 금액을 줄였을 정도라 한다. --일 좀 해라, 황족 [[니트족|니트]]들이여--&lt;br /&gt;
&lt;br /&gt;
그 외에 [[안내견]] 육성과 [[자원봉사]] 등에도 흥미가 많다고 한다. [[개]]를 좋아하며, [[만화]]책 및 애니메이션도 좋아한다고. [[영어]], [[요리]], 일본무용 등 '''특기도 많다'''고 한다. 일본무용의 경력은 20년이 넘어,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황족으로서 국내외의 공무 활동도 꾸준히 했다. 1997년에는 [[프랑스]] [[파리(도시)|파리]]를 방문하여 일본문화센터 개관식에 참여하기도 했다.[* 원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황태자 부부를 초청하고 싶었으나, 일본 궁내청에서는 사야코 공주를 대신 보냈다. 황태자 부부, 특히 [[마사코 황태자비]]는 아들 출산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유로.]&lt;br /&gt;
== 가족들과의 좋은 관계 ==&lt;br /&gt;
사야코 공주는 아버지 [[아키히토]] 덴노와 어머니 [[미치코 황후]]가 몸이 아플 때 열심히 그 곁을 지켰으며, 특히 시집살이로 모진 고통을 겪은 어머니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1993년 [[실어증]]에 걸려 쓰러졌던 [[미치코 황후]]를 내내 간병했기에, [[미치코 황후]]가 이듬해에 회복되자마자 한 말이 &amp;quot;사야코.&amp;quot;였다고. [[미치코 황후]]는 하나뿐인 딸을 시집보내며 '''&amp;quot;사야코는 내가 울적해 있을 때 곁에 다가와서 위로해 주는 딸이었습니다. 나의 친정어머니[* 쇼다 후미코(正田富美子). 후미코의 친정 소에지마(副島) 가문은 옛 [[화족]]([[백작]]) 가문이다.]께서 그랬던 것처럼, 나도 시집가는 딸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amp;quot;'''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lt;br /&gt;
&lt;br /&gt;
작은올케 [[키코 비]]와는 같은 [[가쿠슈인]] 출신이어서, 키코 비가 황실로 시집오기 전부터 친하게 지냈다. 조카인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도 [[고모]]인 사야코 공주를 잘 따랐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착하고 성격 좋기로 소문났다. 상냥하고 친절하며 의지되는 성품이라고. 어머니를 간병한 에피소드나, 학창 시절에 황족(특권계층)이라는 이유로 심한 [[이지메]]를 당했지만 꿋꿋이 이겨낸 것, [[후미히토]] 친왕이 황족 모임에서 시녀를 희롱하다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꾸짖음을 듣자 오히려 화를 내어 큰 싸움으로 번질 뻔했을 때[* 이때 새댁이었던 [[키코 비]]는, 남편의 포악한 행동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두 오빠를 말린 것이 사야코 공주였다는 이야기 등등. 사야코의 성품이나 일화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나 루머가 단 하나도 없는 것으로 미루어 허언은 아닌 듯.&lt;br /&gt;
&lt;br /&gt;
== 요시키와의 만남과 [[약혼]] ==&lt;br /&gt;
남편이 된 구로다 요시키는 [[도쿄]] 도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평민인데, 사야코 공주의 작은오빠인 '''[[후미히토]] 친왕과는 [[가쿠슈인]] 동창이며 절친한 친구'''이다.[* 말이 평민이지, [[가쿠슈인]]을 다니며 왕자와 친구로 지냈을 정도이면 구로다 가문 역시 상당한 집안이다.] 자연히 요시키와 사야코 공주는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을 것이다. 이후 2003년 [[후미히토]] 친왕이 주최한 [[테니스]] 시합에서 두 사람은 재회하여 사랑을 키우기 시작했다.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사야코 공주의 사정 때문에, 주로 궁성 내에서 [[데이트]]를 하거나 [[전화]] 및 [[이메일]]을 주고받았다고 한다.&lt;br /&gt;
&lt;br /&gt;
'''2004년 12월 30일 [[약혼]]을 발표'''했다. 본래 약혼 발표는 11월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니가타]] 현의 지진과 다카마츠노미야 키쿠코(高松宮喜久子) 비[* [[아키히토]] 덴노의 숙모. [[다이쇼]] 덴노의 3남인 [[다카마츠노미야 노부히토]] 친왕의 아내.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손녀이며, 외가는 방계 황족인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이다. 키쿠코 비는 자녀를 낳지 못하여, 대신 조카손녀 사야코 공주를 친손녀처럼 귀여워하며 애정을 쏟았다.]의 사망으로 인해, 2차례나 미루어졌다.&lt;br /&gt;
&lt;br /&gt;
== 사야코 공주의 결혼이 [[일본]]에 미친 영향 ==&lt;br /&gt;
'''[[덴노]]의 딸이 시집가는 것은 무려 45년 만의 일[* 1960년, [[쇼와 덴노]]의 5녀 [[스가노미야 타카코]] 공주가 시집갈 때.]'''이어서, 일본열도는 오랜만의 경사에 들떴다. 한 경제연구소의 분석에 의하면, 사야코 공주의 결혼식이 결혼 관련업계에 미친 파급효과가 무려 1,160억 엔(약 1조원)에 이른다고. &lt;br /&gt;
&lt;br /&gt;
참고로 요시키와 사야코 공주의 결혼은 양쪽 다 '''[[만혼]]'''에 해당한다. 요시키는 40세, 사야코 공주는 36세. 사야코 공주의 [[고모]]들이 모두 17~21세에 시집간 것과 비교해 보면, 시대의 변화도 있지만 대단히 늦은 셈. 그러나 사야코 공주는 평소부터 '''&amp;quot;내 결혼 시기는 내가 정하겠습니다.&amp;quot;'''라며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결혼할 것임을 밝혔고, 많은 일본 여성들은 그녀의 태도에 깊이 공감했다고 한다. 이는 최근 '''일본 여성들의 만혼 풍조'''를 반영하고 있다고 AFP통신에서는 전했다.&lt;br /&gt;
&lt;br /&gt;
== 결혼에 따른 사야코 공주의 변화 ==&lt;br /&gt;
결혼과 함께 사야코 공주의 '''신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먼저 황족의 신분을 잃고 남편을 따라 평민이 되었으며,  '''이름도 미혼 시절의 '노리노미야 사야코'에서 남편의 성씨를 따라 '구로다 사야코'로''' 바뀌었다. [[운전면허/일본|운전면허]]도 취득했으며, 처음으로 [[은행]] [[통장]]도 만들었다. [[호적]]과 선거권도 가지게 되는 등, 일반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들이 주어졌다. 결혼을 앞두고서는 일반 가정에 가서 [[요리]]를 배우는 등 신부수업도 받았다. 품위 유지비로 1억 5,250만 엔(약 13억 2,000만 원)의 돈도 받았다.&lt;br /&gt;
&lt;br /&gt;
본래 황실의 결혼식은 궁성에서 치러지는 것이 전통이었으나, 요시키와 사야코 공주의 '''결혼식은 데이코쿠(帝國) [[호텔]]에서''' 치러졌다. 약 150명이 초대되어 '''간소한 [[티타임]] 형식'''으로 치러진 이 결혼식에는, 요시키의 상관인 ~~[[천하의 개쌍놈]]~~ [[이시하라 신타로]]도 초대되었다. 처음으로 황실의 결혼식을 맡은 [[호텔]] 측에서는 긴장하여 '''만반의 경비와 보안'''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하객들의 사진을 일일이 입수하여 대조했다는 소문도 있으나, [[호텔]] 측에서는 &amp;quot;손님에게 큰 실례&amp;quot;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한 하객의 말에 따르면 &amp;quot;결혼식장에 올 때 [[청첩장]] 봉투를 꼭 지참하라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봉투에 적힌 주소와 이름이 명단과 일치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었습니다.&amp;quot;라고 한다.[* 다만 원래 [[일본]]에서는 결혼식에 참석할 때 청첩장은 필수적으로 지참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 및 민영방송 5사는 대대적으로 결혼식을 중계하여 방송했다. 사야코 공주의 막내 고모인 [[시마즈 타카코]][* [[쇼와 덴노]]의 5녀. 자매들 중에서 유일하게 행복하고 무난한 삶을 살아간 인물로, 화려하고 활달하며 떠들썩한 성품이라고 한다.]가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구로다 사야코/sayako2.jpg]]&lt;br /&gt;
&lt;br /&gt;
[[결혼식]]에서. [[일본 황실]]의 전통에 따라, 사야코 공주는 신랑 요시키와 함께 나란히 걷지 못하고 3발자국 뒤에서 따라가야 했다. &lt;br /&gt;
&lt;br /&gt;
참고로 사야코 공주의 [[웨딩드레스]]는, 어느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코스프레]]라고 한다.&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구로다 사야코/false.jpg]]&lt;br /&gt;
&lt;br /&gt;
사야코 공주의 결혼식에 참석한 큰오빠 부부, [[나루히토]] 황태자와 [[마사코 황태자비]]. 마사코 황태자비는 [[시누이]]의 결혼식에 [[웨딩드레스]]와 비슷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와서 비판을 받았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의상 선정 탓에, 이 해프닝을 [[마사코 황태자비]]가 당한 시집살이 일환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일본 황실]]에서는 서양식 의복을 입기로 한 자리에 마사코 황태자비에게만 [[기모노]]를 입고 오라든지 해서 마사코 황태자비 혼자 잘못된 드레스 코드에 맞추고 웃음거리가 되게 하는 일들을 상당히 자주 했다. 이러한 심술궂은 시집살이는, [[마사코 황태자비]]의 [[시어머니]]인 [[미치코 황후]]도 젊은 시절 당했던 일이었다. [[미치코 황후/갖가지 시집살이 에피소드]] 참조.] &lt;br /&gt;
== 결혼 후의 생활 ==&lt;br /&gt;
비상근으로 근무하던 조류 연구소를 그만두고, 한동안 전업 [[주부]] 생활을 했다. 궁성과 구로다 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신축 [[아파트]]를 구입했으나, 이듬해 아파트가 완공될 때까지 임대아파트에 임시로 거처해야 했다. 신축 아파트는 [[도쿄]]의 주택치고는 드물게 숲과 맞닿아 있어 외부에서 훔쳐보기 어려우며, '''안전과 사생활 보호가 철저한 집'''이라서 선택했다고.[* 북향이라 [[미치코 황후]]가 반대했다는 소문도 있다.]&lt;br /&gt;
&lt;br /&gt;
2008년 4월에는 친정 부모의 결혼기념일을 구로다 자택에서 축하했다. 또한 2009년 12월에는 남편 요시키와 함께 황실 일가의 모임에도 참석하는 등, '''결혼 이후에도 친정과 친밀하게 교류'''하고 있다.[* 사실 말이 좋아서 친밀한 교류지, 황실 일가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여지없이 달려와주는 '''해결사'''나 다름없다. 일례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가 [[히사히토]] 친왕 하나만 남겨놓고 모두 집안을 비웠을 때 [[마사코 황태자비]]가 [[아이코 공주]]와 같이 놀게 하면서 돌보려고 히사히토 친왕을 데리러 왔더니만, 아키시노노미야 쪽 시종들이 안 된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통에 사야코가 달려와서 중재해야 했다. (...) 이미 오래 전부터 두 오빠의 사이가 험악해질 때마다 이걸 말리는 건 사야코 공주의 역할이었으니,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lt;br /&gt;
&lt;br /&gt;
2012년 4월 26일에는 '''[[이세신궁]]의 임시 제관(祭官)'''으로 취임했다. 1988년부터 제관을 맡아 온 넷째 고모 [[이케다 아츠코]][* [[쇼와 덴노]]의 4녀. 바로 위의 언니인 [[다카츠카사 카즈코]]가 제관직에서 퇴임한 후, 카즈코의 뒤를 이어 [[이세신궁]]의 제관이 되었다.]가 고령으로 쇠약해졌기 때문이라고. &lt;br /&gt;
&lt;br /&gt;
http://hibakama.up.seesaa.net/image/20120514-757365-1-L.jpg&lt;br /&gt;
&lt;br /&gt;
[[이세신궁]]의 제관으로 활동하는 사야코.&lt;br /&gt;
&lt;br /&gt;
http://i44.tinypic.com/sw3191.jpg&lt;br /&gt;
사야코의 [[티아라]]. [[미키모토]] 사에서 제작되었다. 일본 여성 황족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예장에 갖추는 티아라는 모두 국비로 지출되어, 여성 황족이 결혼으로 황적에서 이탈하면 국고에 반납된다. 하지만 사야코의 티아라는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의 사비용에서 지출해 비용을 치른 것으로, 사야코의 사유재산.&lt;br /&gt;
&lt;br /&gt;
=== 비판 (혹은 의혹) ===&lt;br /&gt;
다만, 2014년 들어서 남편 구로다 요시키와는 별거하면서 친정(황궁)에 살고, 세금을 몰래 타 쓴다는 이야기가 [[일본인]]들 사이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행사 때는 남편을 불러서 다정한 [[부부]]인 척하고, 결혼 후에 본인이 [[집안일]]을 하지 않고 남편이나 친어머니가 하녀처럼 일해준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일반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으면서 언론에는 적응한 척 위장보도한다고 욕을 엄청 듣고 있으며, 요시키의 이름만 빌린 위장 결혼설도 떠도는 중이다.&lt;br /&gt;
&lt;br /&gt;
[[사야코 공주]]는 결혼 전까지만 해도 못생긴 외모(…) 외에는 이미지가 굉장히 좋았는데, 결혼하고 시간이 흐른 후로는 이런 소문들로 인해 ~~2ch와 황색 언론 중심으로~~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다. '로얄 도부스 [[니트]]'[* '도부스'는 '아주 못생긴 여자'를 일컫는 말, '니트'는 '취업 의욕이 없는 자발적 실업자'를 일컫는 말.], '세금 도둑', '부사야' 등의 별명들도 생겼다. 서녀 설까지 나오면서[* 진지한 설은 아니고, 젊은 시절 미모로 이름났던 [[미치코 황후]]와 사야코의 외모가 너무 달라서 도는 가십이다(…). 작은오빠 [[후미히토]] 친왕 역시 일본 황족치고는 키가 지나치게 크다고(178cm) 서자설이 돌았다. ~~[[미치코 황후]]의 키가 꽤 큰 편이라는 건 넘어가자~~ ~~시집올 당시 [[쇼다 미치코]]의 키는 161cm였는데, 당시 일본 여성치고는 굉장히 큰 키였다. 그리고 친정 부모와 형제들은 그보다 더 컸다.~~], 황족도 아닌 주제에 황족 행세한다고 또 까이고, 그동안 알려졌던 착하다는 이야기도 사실은 거짓말 아니냐는 이야기가 돈다. &lt;br /&gt;
&lt;br /&gt;
[[일본인]]들은 그냥 씹을 거리가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성격 좋고 평판이 좋았던 사야코가 세금 도둑이라는 소문이 충격인 것인지, 이제는 하다하다 어머니 [[미치코 황후]]의 잘못된 교육이 문제가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 사야코가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할 때 다닌 [[미치코 황후]]와 함께 다녔던 여행에서 고급 숙소만 골라 머물렀던 것까지 다시 트집을 잡혔다. &lt;br /&gt;
&lt;br /&gt;
[[분류:일본의 인물]][[분류:일본 황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