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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진천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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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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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2:5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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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12:50: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신라/인물]]&lt;br /&gt;
[목차]&lt;br /&gt;
仇珍川&lt;br /&gt;
== 개요 ==&lt;br /&gt;
[[신라]] 중대 [[문무왕]] 시대의 [[쇠뇌]] 제작 [[기술자]], [[애국자]].&lt;br /&gt;
&lt;br /&gt;
최종 관등은 사찬으로 [[골품]]은 [[진골]]이거나 최소 [[6두품]]이었던 듯.&lt;br /&gt;
&lt;br /&gt;
== 생애 ==&lt;br /&gt;
=== 당나라로 건너간 배경 ===&lt;br /&gt;
[[삼국통일전쟁]]이 진행되던 당시는 쇠뇌(기계식 활) 기술자는 적국에서라도 스카우트해올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던 시대였다. 예를 들어 [[고구려]]는 6세기 말 [[고구려-수 전쟁]]을 예감하고 재물을 뿌려 수나라의 노수(弩手, 쇠뇌를 쏘는 군사)를 빼어 오기도 했다.&lt;br /&gt;
&lt;br /&gt;
신라인 구진천이 개발한 쇠뇌는 천 걸음 거리까지 화살이 날아간다고 해서 '천보노(千步弩)'라고 불렸는데, [[신당서]](新唐書)에는 신라가 관문에 항상 노사(弩士) 수천 명을 주둔시켜 지킨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나라는 노를 신라를 대표하는 무기로 봤던 것이다. 신라 역시 쇠뇌를 애용해서, 아예 쇠뇌만 다루는 전문부대인 노당(弩幢)을 따로 만들 정도였다. &lt;br /&gt;
&lt;br /&gt;
669년 겨울 당나라는 신라에 사신을 보내 당나라 확제의 칙명이라면서, 노사(弩師) 구진천을 당나라로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신라는 이때까지는 당나라와 싸울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나라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당나라가 구진천을 데려간 것은 장차 신라와 전쟁을 하기 위함이었다.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하여,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최종적으로 신라마저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신라 역시 당나라의 계획을 알고 [[고연무]] 등 고구려 유민들을 몰래 지원하기 시작했다. 670년 3월 신라가 [[설오유]]를 시켜 고구려 부흥군과 연합해 [[압록강]]을 건너 당나라를 선제 공격함으로써 [[나당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진천은 당나라에 머물게 된다&lt;br /&gt;
&lt;br /&gt;
=== 당나라의 협조를 거부하다 ===&lt;br /&gt;
당나라에서 구진천에게 쇠뇌를 만들게 했는데 첫 결과물은 겨우 30보밖에 나가지 않아 [[당고종]]이 그에게 물었다.&lt;br /&gt;
&lt;br /&gt;
&amp;gt;“[[신라|너희 나라]]에서 만든 쇠뇌는 1천보나 나간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겨우 30보밖에 나가지 않는구나. 어찌된 일이냐?”&lt;br /&gt;
&amp;gt;구진천이 대답하였다.&lt;br /&gt;
&amp;gt;“목재가 좋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만약 [[신라|우리나라]]에서 나무를 가져온다면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lt;br /&gt;
&lt;br /&gt;
[[당고종|고종]]은 [[신라]]에 사신을 보내 신라산 목재를 달라고 했다. 곧바로 대나마 복한(福漢)을 보내 나무를 바쳤고, 다시 만들어 쏘아보니, 60보를 나갔다. 이번에도 고종이 그 까닭을 물으니 구진천이 대답하였다.&lt;br /&gt;
&lt;br /&gt;
&amp;gt;“저 역시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아마도 바다를 건너는 동안 나무에 습기가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lt;br /&gt;
&lt;br /&gt;
고종은 구진천이 일부러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무거운 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하였으나 구진천은 끝끝내 자기의 재주를 다 드러내지 않았다.&lt;br /&gt;
&lt;br /&gt;
이후 구진천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지만 황제의 요구를 거절했고 이후에 딱히 당군이 사거리가 긴 노를 썼다는 기록도 없으며[* 중국의 경우 기록상에 사거리가 1천보 가는 노에 대한 첫 기록은 당나라가 멸망한 이후인 [[송나라]] 시대의 상노(床弩)였다.] 결국 나당전쟁이 신라의 선제공격으로 일어나서 당나라가 최종적으로 패배했으므로 구진천의 끝도 좋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목숨을 바쳐 적대국에 기술유출을 막은 애국자.&lt;br /&gt;
&lt;br /&gt;
[[분류:신라의 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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