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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군현제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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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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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5일 (일) 13:13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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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3 郡縣制}}}&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중국]] [[진시황]]이 실시한 지방 행정 제도. 영토 전체를 군(郡)과 현(縣)으로 구분하고 황제가 직접 임명한 임기제 지방관을 파견하여 직할 지배하는 형태의 제도이다. [[주나라]] 때 실시된 [[봉건제]]를 대신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 제도.&lt;br /&gt;
&lt;br /&gt;
== 역사 ==&lt;br /&gt;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나라들은 다양한 부국강병책을 펼쳤고, 그 일환으로 지방의 통치를 제후, 공경대부에게 세습 영지로 분봉해주는 제도가 아닌 군주가 직접 임명하는 비세습적인 지방관을 통해 직할 통치를 수립하고자 하는 정책이 다양하게 실시되었다. [[초나라]]는 소국들을 병합하고 현을 설치했으며, [[진(춘추오패)|진]](晉)은 군을 설치했다. [[전국칠웅]]도 모두 비슷한 직할 통치를 시도하였으며, [[진(통일왕조)|진]](秦)에서 [[상앙]]의 개혁을 통해 최초로 광역행정구역인 군과 하위 행정구역인 현을 두는 군현제가 실시되었다.&lt;br /&gt;
&lt;br /&gt;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뒤 전국적으로 군현제를 실시하였다. 전국을 36개 군으로 나누고 각 군에 직접 태수를 파견하여 직할 지배하는 제도를 통해 막강한 중앙집권국가를 이룩한 것이다. 그러나 진시황의 가혹한 통치 때문에 진시황 사후 통일 진나라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전국시대]]의 여러 국가들이 부활하였다. [[항우]]는 진나라를 멸망시킨 뒤에 이미 부활한 국가들과 더불어 각지에 [[항우의 18제후왕 분봉|18개의 왕국을 분봉]]하면서 다시 [[봉건제]]로 회귀하였다.&lt;br /&gt;
&lt;br /&gt;
이후 [[초한전쟁]]을 거쳐 중국을 재통일한 [[한나라]]는 군현제와 봉건제를 절충한 [[군국제]]를 실시하였다. 수도와 가까운 요충지는 군현을 설치하여 직할지배하고, 수도와 먼 지역에는 제후왕을 봉분하여 봉건제를 실시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이 제도 역시 봉건제의 단점을 고스란히 갖춘 미봉책이었음은 분명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나라는 계속해서 제후국들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불만을 품은 제후국들이 대반란을 일으킨 [[오초칠국의 난]]이 진압되면서 제후국의 힘은 결정적으로 약화되었고, [[한무제]] 이후 봉건제는 유명무실화되어 군현제가 확립되었다.&lt;br /&gt;
&lt;br /&gt;
다만 명목상으로 제후국은 이후에도 중국의 역사 내내 존재했다. 그러나 제후는 실권을 가지지 못한 명예직에 가까웠고, 제후국의 통치 역시 황제가 임명한 지방관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사실상 군현제였다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분류:정치 체제]]&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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