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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권희로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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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30T15:58:01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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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3일 (월) 08:42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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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3T08:42: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權嬉老(金嬉老) [[1928년]] [[11월 20일]] ~ [[2010년]] [[3월 26일]]&lt;br /&gt;
&lt;br /&gt;
[[재일]] 조선인. 아버지 권명술(權命述)과 어머니 박득숙(朴得淑) 사이에서 출생했다. 3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넝마주이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1933년 어머니가 재혼하면서부터 의붓아버지의 성을 따 김희로라고 불렸다. 현재는 친아버지의 성을 따서 권희로라는 이름을 쓰지만 김희로로 널리 알려져 있다.&lt;br /&gt;
&lt;br /&gt;
[[재일]]조선인으로 [[일본]]에 살았는데 극빈층으로 빈곤하게 생활했다. 소학교 때부터 민족에 관계돼 차별당하면서 조선인은 다닐 곳이 못된다고 학교를 그만두었다.&lt;br /&gt;
&lt;br /&gt;
의붓아버지의 구박으로 13살에 가출하여 배가 고파 음식을 훔쳐먹었고, 수차례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혼인과 사업에 실패하고 마흔 살이던 1968년 2월 20일 채권자에게 청부받아 빚을 독촉하던 [[야쿠자]] 2명이 '''&amp;quot;[[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amp;quot;'''라고 한 말에 격분해 [[라이플]]로 이 작자들을 사살했는데 이 작자들은 실제로는 야쿠자도 아니고 야쿠자들의 꼬붕이었고, [[킬빌]]에 잠깐 나오는 엄마 젖이나 먹고와야 할 고딩 수준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라이플을 가지고 있다는 거 자체가 당초 살해할 의도가 있었단 거다.&lt;br /&gt;
&lt;br /&gt;
이후 '''[[다이너마이트]]''' --이건 또 어디서 났대?;;-- 와 라이플, 실탄을 갖고 도주, 가와네(川根) 온천장[* 온천에서 목욕할 수 있게 설비가 된 장소 혹은 온천이 있는 곳.]에 있는 여관 후지미야에서 투숙객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관들과 대치하다 4일(88시간) 만인 24일 검거당했다. 인질극 와중에 개를 사살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이 인질극은 당시 TV를 이용해 생생하게 중계되었고 권희로는 '''&amp;quot;경찰관의 한국인 차별을 고발하고자 사건을 일으켰다&amp;quot;'''라고 주장하면서 TV를 이용해 경찰관들에게 사과를 받아 내 파문을 일으켰다. 체포당한 후 8년간 벌인 재판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구마모토 형무소에 수감당했다.&lt;br /&gt;
&lt;br /&gt;
누가 권희로에게 다이너마이트와 라이플을 주었는지는 지금도 미궁에 빠져있는데 경찰청 측에서도 함구했다. 참고로 이때 사용한 무기는 [[호와 M300]]으로서 같은 탄약을 쓰는 [[M1 카빈]]의 30발들이 탄창과 조준경이 부착된 라이플. 이 사건 이후 일본의 총도법이 더 엄격하게 개정됐다.&lt;br /&gt;
&lt;br /&gt;
권희로가 가석방되게끔 하고자 1980년대 후반부터 승려 박삼중과 재일동포 사업가 조만길 등이 '재일 한국인 김희로 씨 석방 후원회'를 만들어 노력해 왔다. 1981년에는 돈(頓)모(52) 여인과 옥중 결혼식을 가졌다.&lt;br /&gt;
&lt;br /&gt;
권희로의 이야기는 1970년 단행본 『분노는 폭포처럼』으로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고 기자 출신 작가인 [[혼다 야스히루]](本田靖春)의 &amp;lt;私戰&amp;gt;(시센)으로 나왔었다. 1990년대 초에는 이 &amp;lt;私戰&amp;gt;(시센)을 원작으로 [[김영빈]] 감독·유인촌 주연 영화 &amp;lt;[[김의 전쟁]]&amp;gt;이 제작되기도 했다. [* 정확하게는 일본에서 먼저 극화물이 나왔다.]&lt;br /&gt;
&lt;br /&gt;
그 결과 1999년 9월 7일, 31년 만에 석방돼 7년 이상 복역한 외국인 장기수는 법으로 국외 추방토록 규정된 일본 법규에 따라 승려 박삼중과 한국으로 왔고 친아버지의 성을 따라 권희로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귀화했다.&lt;br /&gt;
&lt;br /&gt;
귀국 후에는 [[중앙일보]]의 후원받게 된다. 권희로의 후견인이었던 승려 박삼중과 오래 인연한 통일문화연구소 차장 김준범의 힘을 빌려 독점 계약을 성사한다. 1999년 9월 10일, 권희로가 중앙일보를 방문해 당시 사장 홍석현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일보에서 사설로 지나친 대접을 질타하자 많은 네티즌[* 인터넷이 이렇게 엄청나게 보급된 건 2000년대 초반]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lt;br /&gt;
&lt;br /&gt;
물론 중앙일보의 대접은 극진했다. 평생 구독권을 선물했고 호암갤러리에 모시고 갔으며, 삼성서울병원에서 2박 3일간 정밀 건강 진단받게 조처했다. 그 후 모두 19회에 걸쳐 중앙일보에는 수기 &amp;lt;어머니, 미움을 넘어섰어요&amp;gt;가 연재된다. 연재가 끝난 후 중앙일보는 중앙M&amp;amp;B를 이용해 수기를 단행본으로 엮어 출판한다. ~~확실히 단물을 빼먹은 셈인데 권희로가 지은 죄를 생각하면...~~ &lt;br /&gt;
&lt;br /&gt;
[[https://monthly.chosun.com/client/reporter/writerboardread.asp?idx=1049&amp;amp;cPage=1&amp;amp;wid=ksdhan|월간조선 2001년 1월호를 보면]] 귀국 후 이전에 옥중 혼인한 여자 돈 모씨와 2000년 2월부터 4월까지 부부로 함께 살았으나 2달 후 돈 모씨는 권희로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지 못했다면서 권희로의 돈을 가지고 달아났으며 인터뷰에서 자신이 권희로의 돈을 가지고 달아난 것은 &amp;quot;정신상 피해 보상&amp;quot;이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amp;amp;code=4&amp;amp;artid=12310&amp;amp;pt=nv|여자 돈 모씨는 1979년 출옥한 후, 권희로에게 온 후원금을 위시해 3억 원을 빼돌린 적이 있었지만, 권희로는 귀국 후에도 그 여자를 포용했다.]] 그 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02&amp;amp;oid=038&amp;amp;aid=0000100927|2001년 9월에 체포됐다.]] 그 여자는 1993년에도 돈을 갖고 튄 적이 있었고 기실 여자 돈 모씨는 내연 관계에 있던 일본인의 본처를 살해한 죄로 수감돼 권희로와 옥중 인연이 됐고 두 번이나 권희로의 돈을 가지고 튀었다. 한 번은 포용했지만...&lt;br /&gt;
&lt;br /&gt;
그 후 권희로는 여자 박 모씨와 내연으로 관계했다. 2000년, 71세의 권희로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001&amp;amp;oid=020&amp;amp;aid=0000024903&amp;amp;|내연의 관계에 있던 여자 41세 박 모씨의 남편을 살해하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http://www.hani.co.kr/section-009010000/2000/0090100001200009040519p136.GIF|유혈주의]]&lt;br /&gt;
&lt;br /&gt;
공주치료감호소[* 치료감호법에 의거해 죄를 저지른 심신장애자(정신장애자)나 마약· 알코올 중독자를 수용해 치료하는 시설.]장 51세 최상섭(崔相燮)은 권희로가 체포당했을 당시 검찰청에 의뢰받아 권희로가 비정상 가정 환경과 오랜 수형 생활 탓에 인격에 장애가 있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 후에는 치료감호[* 치료감호법을 좇아 죄를 지은 정신장애자나 알코올ㆍ마약 중독자를 실형 복역에 앞서 치료감호소에 수용하여 치료를 실시하게 하는 보호 처분.]받았다고... 중앙일보에서는 나중에 후원을 철회했고 권희로를 후원한 승려 박삼중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평소 평판이 좋지 않았던 권희로가 죄를 자꾸 저지르자 후회스럽다고 말하면서 지지를 철회했다. 승려 박삼중은 직업상 권희로보다 악질 범죄자들도 만나 본 승려 박삼중이 이럴 정도면 말 다한 건데 그 중에는 [[김태촌]]도 있다. 김태촌도 노답이지만...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aeyani79&amp;amp;folder=1&amp;amp;list_id=5939880&amp;amp;page=1|2006년에는 인질로 잡혔던 일본인과 만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대한민국으로 귀화하고서는 [[부산]]에서 살았으며, [[http://jpnews.kr/sub_read.html?uid=4149&amp;amp;section=sc1|취미는 장 보기와 총기 사격이었다.]]&lt;br /&gt;
&lt;br /&gt;
2010년 3월 26일 오전 6시 50분께 [[전립선암]]으로 투병 중이던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소재한 봉생병원에서 죽었다. 향년 82세. &lt;br /&gt;
&lt;br /&gt;
일부 일본인들은 권희로를 영웅시했는데 사채업자를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상[* [[사채꾼 우시지마]]를 참고] 그럴 수도 있다.--그런데 사채업자 이미지가 좋은 나라가 있나?-- 전반에 걸친 인식이 좋지 않은 편이다. [[혐한]]들에게는 '''킨키로우'''[* 일본식 발음, 카타카나로 キンキロー로 표기하는 때가 잦다.]라 불리면서 까인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은 죄를 저질러도 애국인 양 미화한다.'''는 인식이 퍼지게 됐는데 실은 그냥 범죄자 맞다. 차별에 항거해 일어섰다고 생각하진 말자. &lt;br /&gt;
&lt;br /&gt;
[[대한민국]]에서 제작된 영화 &amp;lt;'''[[김의 전쟁]]'''&amp;gt;에서는 [[유인촌]]이 권희로 역할을 연기한 적이 있었다. 일본 [[후지 TV]]에서도 대한민국보다 1년 전에 같은 제목으로 드라마를 제작했는데 거기서는 [[기타노 다케시]]가 연기했었다.&lt;br /&gt;
&lt;br /&gt;
[각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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