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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글염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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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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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4일 (화) 01:27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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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4T01:27: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曁艶[* 기염 또는 글염. 曁는 성씨로 쓰일 때 [[반절#s-2]]을 보면 집운 居气切, 광운 居乞切, 居乙切로 '기'와 '글' 모두 가능하다.]&lt;br /&gt;
(?~224)&lt;br /&gt;
&lt;br /&gt;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나라의 신하. 자는 자휴(子休). 오군 출신으로 장온의 수하. 부친과 형은 손권 입장에서는 흉악한 역적에 기대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인물 품평에 탁월하면서 성격은 정직하고 엄했으며, 맑은 의론을 발표하기 좋아했다. 먼저 [[주치(삼국지)|주치]]에게 임명되고 장온이 그를 불러 수하로 삼으니 [[손권]]이 선조랑으로 임명했다가 후에 선조상서까지 승진한다.&lt;br /&gt;
&lt;br /&gt;
222년에 당시 낭관의 관소가 혼탁하고 마구 뒤섞여 있어 대부분의 관원들이 알맞게 인선되지 못한 것에 한탄해 착한 자와 사악한 자를 구별하고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를 구별하면서 사용하려는 생각을 해 여론을 조장했다. [[육손(삼국지)|육손]]은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주거]]는 그들을 한꺼 번에 보충하기는 어려우니 일단은 공으로 허물을 덮은 다음 서서히 능력있는 자들을 뽑아 그들을 대신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반대로 주거의 말을 따라서 실행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고유#s-2|고유]].] 글염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lt;br /&gt;
&lt;br /&gt;
행동에 들어간 글염은 백관들을 탄핵하고 삼서의 관리를 엄밀하게 선발해 대부분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폄하해 낮은 지위로 강등시켰는데, 한 번에 몇 등급씩 강등되기도 하니 옛날 지위를 지키고 있는 자는 열 명 가운데 한 명도 안 될 정도였다.[* [[하정]]이나 [[여일]]과는 달리 피해를 입은 사람은 [[손소#s-2|손소]] 한 명밖에 나오지 않는다. 장온과 글염이 손소에 대해 상소를 올리니 손소는 스스로 위계를 사임하고 죄를 청했으나 복직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일당인 장온 일당은 건드리지 않으니 이런 그의 행동에 [[육모]]는 편지를 보내 [[공자]]의 사랑과 [[곽태]]의 구제를 본받으라고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 말대로 실행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여기서 끝나지 않고 관직에 있으면서 탐욕스럽고 비루하면서 뜻이나 절개가 오염되고, 낮은 자들이 모두 군영의 막부에 배치되어 병사들을 다스리게 된 것이 문제였다. 이로 인해 원한과 분노의 소리는 쌓여 점점 참언이 일어나자 글염과 선조랑 [[서표]]는 전적으로 사사로운 감정을 사용해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공평한 이치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고 다투어 말하니 결국 글염과 서표는 자살해 [[의도는 좋았다|의도만 좋았던]] 그의 개혁은 끝났다.&lt;br /&gt;
&lt;br /&gt;
백성들이 그를 좋아해 그와 친하게 지냈는데, 글염의 죄가 인정되자 글염과 친하게 지내던 선비들이 모두 자신을 변명하기 바쁠 때 오직 [[진표(삼국지)|진표]]만이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 장온은 평소에 촉나라의 정치를 칭찬하던 것 때문에 [[손권]]에게 미움을 받던 상황으로 손권은 장온이 추천한 글염이 죄를 저질렀다는 핑계를 대 장온을 투옥했으며, [[낙통]]이 그를 변호할 때의 설명에는 장온은 글염과 앞이 아니고 뒤로 친했다고 한다.~~[[오십보백보]]~~&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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