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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금문학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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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8T21:18:15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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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4일 (화) 01:32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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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4T01:32:0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분류:학문]]&lt;br /&gt;
&lt;br /&gt;
== 금문학이란? ==&lt;br /&gt;
[[유학]]의 한 갈래로 今文을 중심으로 한 학문 풍조. 유학이 한의 관학이 되면서 경전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로 인해 탄생한 것이 바로 금문경전. 이 금문경전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금문학이다.&lt;br /&gt;
&lt;br /&gt;
== 분서갱유, 그 이후 ==&lt;br /&gt;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국가운영의 편의 및 효율을 위한 여러 통일정책을 펼쳤는데 도량형, 화폐, 서체에 이어 마지막으로 단행한것이 바로 학문의 통일(...)로 유학따윈 필요없다능!! 하며 유교경전을 불태우고(분서) 유학자들을 생매장(갱유)하는 [[흠좀무]]한 일을 저질렀다. 자세한 내용은 [[진시황]]과 [[분서갱유]] 문서를 참조할 것.&lt;br /&gt;
그러나 그 넓은 땅덩이의 책과 사람을 일일히 전부 수거(...)하여 태우고 묻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했기에 많은 유학자들이 살아남았고 책 역시 학문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 한 부씩을 함양의 서고에 보관하게 했다. 즉, 시중에 유통되는 서적류를 검열한 것. 이 정도에서 끝났으면 진 분열 이후 유교경전의 복원은 매우 수월했을 것이지만 함양을 점령한 [[항우]]가 함양을 홀라당 태워먹어서(...) 사실상 소실되었다.&lt;br /&gt;
&lt;br /&gt;
== 관학이 되다 ==&lt;br /&gt;
그러나 [[한고제|유방]]이 [[전한]]을 건국한 이후 새로운 정치질서 수립을 위해서는 기존민중들의 반발을 사던 [[법가]]사상의 법치보다는 좀 더 유화적인 사상이 필요하였고 이에 [[유학]]이 관학으로 채택, 국가적인 푸시를 받게 된다.&lt;br /&gt;
관학이 되었으니만큼 경전의 복원이 필요하였는데, 다행히(?) 분서갱유 후 15년만에 진나라가 망해버려서 여기저기 숨어있던 유학자들이 속속 등장, 머릿속에 들어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경전 복원사업이 시작되었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새로운 유교경전인 금문(今文)이다. &lt;br /&gt;
&lt;br /&gt;
== 고문vs금문 ==&lt;br /&gt;
하지만 분서갱유 당시, 유학자들은 기를 쓰고 경전을 숨겼으니, 한이 수립된 후 여기저기 짱박혀 있던 경전들이 대거 발굴되었다.(특히 담장을 쌓을 때 함께 묻어버린 것이 많았다고 함.) 한은 진과 다른 문체를 사용했기에 원래의 경전(古文)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까진 좋은데...&lt;br /&gt;
&lt;br /&gt;
바로 금문과 고문이 서로 맞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 --유학자들의 기억력이 이 정도입니다 여러분-- 따라서 어떠한 경전을 소의로 삼을 것이냐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아니 원본이 나왔는데 왜...--&lt;br /&gt;
&lt;br /&gt;
하지만 경전복원사업에 뛰어들었던 유학자들은 대부분 한의 중앙정치세력이었고 자신들의 기억력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금문학자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우겼고(...) 금문이 대세를 타게 된다.&lt;br /&gt;
&lt;br /&gt;
결국 금문은 정치이념으로 변주되어 사용되고, 고문은 학문의 모습을 유지하며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게 되었고 후대에는 이러한 점을 높이 사 고문이 정석으로 인정받고 금문경전들은 춘추를 제외하고 모조리 소실되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자기가 써놓고 벽에서 파내기만 하면''' 되니까 경전이 위조되는 일도 있었다. 대표적인 논쟁거리가 유교 3대 경전의 하나인 서경을 만들어내버린 위고문상서다. --경전도 짝퉁--&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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