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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동리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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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7T01:18:18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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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4일 (화) 03:24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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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4T03:24: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작가/목록]]&lt;br /&gt;
&lt;br /&gt;
http://ncc.phinf.naver.net/ncc02/2011/11/23/258/01.jpg&lt;br /&gt;
[[1913년]] [[12월 21일]] ~ [[1995년]] [[6월 17일]]&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한국의 [[소설가]]·[[시인]].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사실은 서울 경신고등보통학교 4년 재학중 중퇴하였다. 그 이유는 돈이 없어서. 하지만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고 하여 그의 작품들이 평가절하되어야 한다면 난 그런 대학 반댈세(...) 오히려 평가절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설가도 학력 따지는 더러운 세상(...)] &lt;br /&gt;
&lt;br /&gt;
1913년에 경북 경주에서 출생. 본명은 김시종. 순수문학을 주로 하였고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을 통해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인간과 이념의 갈등에 주안을 두었다. 대표작으로는《[[화랑의 후예]]》,《[[무녀도]]》,《[[역마]]》,《[[황토기]]》,《[[등신불]]》 등이 있다. &lt;br /&gt;
&lt;br /&gt;
결혼을 세 번 하였는데 첫째 부인은 김월계 (김동리보다 6살 연하, 1940년 결혼, 1966년 이혼 성립.), 둘째 부인은 소설가~~대인배~~ [[손소희]] (4살 연하, 1948년 재혼, 1987년 사망), 셋째 부인은 소설가 [[서영은]] (30살 연하(...), 1987년 재혼)[* 하지만 그 전부터 ~~좋은 말로 해서~~연애관계였다. 24살의 서영은씨와의 연애관계에 대해 손소희씨가 여러모로 뒷수습해주고 묵인해주지 않았다면... 게다가 87년 사망하면서 서영은씨에게 &amp;quot;선생님을 부탁한다&amp;quot;라고 말하면서 뒤를 맡겨버린다.]&lt;br /&gt;
&lt;br /&gt;
자식으로는 법조인 김평우씨 (김월계씨 소생, 둘째 아들)와 기업가 김기홍씨 (손소희씨 소생, 다섯째 아들)가 있다.&lt;br /&gt;
&lt;br /&gt;
[[황순원]]과 함께 한국 현대 소설의 거장이다.~~그리고 오늘도 학생들은 이 두 사람의 그림자 안에서 고군분투중~~ 취미는 골동품 수집, 꽤나 고상한 취향이셨던 듯.&lt;br /&gt;
== 생애 ==&lt;br /&gt;
1913년 경북 경주 성건리에서 아버지 김임수(壬守)와 어머니 허임순(許任順)의 5남매 중 3남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김시종이다. 이 이름과 동리라는 이름은 큰형인 김범부 씨가 지어주었다. 이 분이 뭐하는 분인지 궁금하면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7150205|여기]]를 볼 것. 괴물 형 아래 괴물 동생이 태어난 셈이다. ~~뭐야 이 집안. 도올 김용옥 집안 같잖아. 마치-_-;;~~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김동리가 형인 김범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 중론이며[* 심지어 첫부인인 김월계씨의 경우 ‘걷는 모습이 얌전하다’는 말로 허락을 하자 당장 결혼했을 정도. 학교를 미션스쿨에서 다녔음에도 그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사상이 전통적인 사상들이라거나 유교나 불교에 해당하는 것이 많은 것도 이 형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다. 둘째 형은 경주에서 건어물 상을 하고 있었다고.] 이 형에 대한 내용은 &amp;lt;[[화랑의 후예]]&amp;gt;에도 나온다. 화랑의 후예에 나오는 황진사를 소개해줬다는 숙부의 모델이 바로 김범부씨라는 것이 중론.[* 나이 차이가 열 여섯은 더 나니 숙부 같았을 수도 있겠다.]&lt;br /&gt;
&lt;br /&gt;
1934년 &amp;lt;조선일보&amp;gt; 신춘 문예에 시 '백로'가 입선하면서 등단하였다. 이듬해 &amp;lt;조선 중앙 일보&amp;gt;신춘 문예에 단편 '화랑의 후예'가 당선되며 소설가로서도 등단하게 된다. 1937년 [[서정주]], [[김달진]] 등과 '[[시인 부락]]' 동인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1941년 절필하기까지 21편의 글을 쓰고 세대논쟁[* 유진오가 &amp;lt;문장&amp;gt;지에 &amp;lt;순수에의 지향&amp;gt;이라는 평론을 발표하자 김동리가 &amp;lt;순수이의&amp;gt;로 반박하고 김환태가 &amp;lt;순수시비&amp;gt;로 김동리에 찬동하자 벌어진 논쟁이었다. 순수문학논쟁이라 불리기도 하나 이 논쟁 자체는 신세대와 구세대의 문학관의 차이에서 온 논쟁이었으므로 세대논쟁이라 칭한다. 즉 표면적으로는 세대론, 내면적으로는 순수성의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진 것. 이후 일제의 폭압 등 외부적 요소에 의해 시들해졌다가 광복이 되고 나서 새로이 논쟁에 불이 붙는다.]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중일전쟁이 길어지면서 일제의 압력이 피부로 느껴질 때가 되자 절필한다. 그리고 절필한 뒤로는 일제의 징용을 피해 사천의 양곡배급소에서 일하였다.&lt;br /&gt;
&lt;br /&gt;
1945년 광복을 맞아 [[임화]]등이 ‘조선문학건설본부’ 등을 조직하고 ‘조선문학동맹’으로 통합하자 전조선문필가협회에 참가하게 된다. 여기에 별도로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만들기도 하며 좌익계열과는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당대 관심은 조선문학동맹 쪽에 더 가고 있었다. 한때 미군정에서 여론조사를 했을 때 남한의 70%가 사회주의계 정파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공산당의 신탁통치찬성이후 뒤집힌다.] 이는 지식인도 마찬가지라...~~코, [[콩라인|콩]]?!~~&lt;br /&gt;
&lt;br /&gt;
해방공간에서 김동리는 대부분 우익의 민족문학론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갔다고 보면 되지만 사실 극단적인 우익에 가담한 문학가들도 있었고 문학가를 가장해서 좌익공격에 앞장선분들도 있었던터라 김동리의 행보를 우파로 간주하기는 조금 애매한 입장, 오히려 ~~어용~~ 우파 문단쪽에서는 그가 '''순수문학에만 경도'''한다고 배척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이때 그는 소설집《무녀도(巫女圖)》(1947) 《역마(驛馬)》(1948) 《황토기(黃土記)》(1949)들을 출간한다.&lt;br /&gt;
&lt;br /&gt;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목도하게 되자 과거 토속성과 외래문화의 대립에 따른 인간성을 그리던 작품에서 어느정도 이동하여 인간과 이념의 갈등을 주로하는 작품을 썼다. 이시기에 속하는 작품으로는 《귀환장정(歸還壯丁)》(1951) 《실존무(實存舞)》(1955) 《사반의 십자가》(1958) 《등신불(等身佛)》(1963)이 있다.&lt;br /&gt;
&lt;br /&gt;
1947년 청년문학가협회장, 1951년 동협회부회장, 1954년 예술원 회원,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 교수, 1969년 문협(文協) 이사장, 1972년 중앙대학 예술대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3년 중앙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1년 4월 예술원 회장에 선임되었다.&lt;br /&gt;
&lt;br /&gt;
1995년 사망하면서 첫번째 부인 김월계씨와 합장되었다.[* 그런데 김동리는 손소희씨 옆에 묻히기를 바랐다는 말이 있다. 그게 사실이면(...)]&lt;br /&gt;
&lt;br /&gt;
쓰러지면서  후처 관련 재산분쟁으로 나름 여성지에 오르내리기도 했다(....)&lt;br /&gt;
&lt;br /&gt;
=== 문학적 성향 ===&lt;br /&gt;
그는 그의 작품을 3개의 성향으로 나누어서 했는데, 하나는 말 그대로 한민족의 삶과 정서를 다룬 《[[역마]]》,《[[무녀도]]》등의 작품이 있다.&lt;br /&gt;
&lt;br /&gt;
또한 다른 하나는 우리 삶을 다룬 [[리얼리즘]] 성향의 작품으로써 대표작은 《[[까치소리]]》,《[[혈거부족]]》,《[[광풍 속 에서]]》가 있다.&lt;br /&gt;
&lt;br /&gt;
나머지 하나는 '[[예술]]'에 관련 된 것으로 그는 이를 장편으로 시도 했으나, 문학적인 평가는 그리 좋지 못하였다.&lt;br /&gt;
&lt;br /&gt;
== 기타 ==&lt;br /&gt;
서라벌예대 시절 좌익의 혈육이라는 따가운 시선 아래 여러가지로 압박을 받고 있던 [[이문구]]를 제자로 받아들였고 [[경찰]]에서 나와 이문구를 조사하려고 하면 &amp;quot;내 제자보고 왜 그래?&amp;quot;라고 실드를 쳐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문구의 문재를 알아보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으니 여러모로 이문구에게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고. 이문구 자신도 일가가 참혹하게 살해된걸 알았기에 김동리 선생에게 은덕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이문구의 형은 [[서북청년단]]에게 가마니로 싸져서 바다에 '''수장되었다'''. 분지 논쟁때 작가들이 서로간에 쉴드친것을 보고 '''자신이 살려면 문단에 들어가야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http://www.essaykorea.net/gnu4/bbs/board.php?bo_table=essayrev&amp;amp;wr_id=20&amp;amp;page=4|스승님의 실드]]. 이문구는 이러한 스승님의 영향으로 일평생 보수와 진보 문인들을 상호 연결해주며 사상에 구애되지 않고 모두와 교분을 다졌다.&lt;br /&gt;
&lt;br /&gt;
서라벌예대 시절 가르쳤던 제자들이 모두 등단했다는 것은 전설로 통한다. 그리고 그 제자 중 한 사람이 [[박경리]] 선생이다. 스승이고 제자고 간에 하나같이 [[먼치킨]]들. 또한 직계 제자는 아니지만, 가정 주부로 지내던 [[강신재]]([[젊은 느티나무]]의 작가)를 추천해서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했다.&lt;br /&gt;
&lt;br /&gt;
남민전 사건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구속 문인들의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는데, 한 문인 모임에서 [[김남주]] 시인에 대해 '김남주는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분명하므로 절대 석방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면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소속 문인들의 공개 비판을 받았으며,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던 중앙대 문창과 학생들은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벌이는 등 큰 파문으로 이어진 적이 있다. 결국 문창과 교수들이 제출한 해촉 의견서가 받아들여져 1988년 9월 명예교수직에서 물러났다.&lt;br /&gt;
&lt;br /&gt;
경주 토함산 [[석굴암]]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조금 빠지면 동리목월 문학관이 있다. 한 번 들러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lt;br /&gt;
&lt;br /&gt;
[[주당]]으로 특히나 유명했다.&lt;br /&gt;
&lt;br /&gt;
== 대표작 ==&lt;br /&gt;
 * [[무녀도]]&lt;br /&gt;
 * [[역마]]&lt;br /&gt;
 * [[황토기]]&lt;br /&gt;
 * [[화랑의 후예]]&lt;br /&gt;
 * [[을화]]&lt;br /&gt;
 * [[귀환장정]]&lt;br /&gt;
 * [[실존무]]&lt;br /&gt;
 * [[사반의 십자가]]&lt;br /&gt;
 * [[등신불]]&lt;br /&gt;
[[분류:경주시 출신 인물]]&lt;br /&gt;
[[분류:소설가]]&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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