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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상엽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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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6T19:35:34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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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4일 (화) 03:38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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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4T03:38: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김(성씨)/목록]]&lt;br /&gt;
 * [[NC 다이노스/선수단]]&lt;br /&gt;
&lt;br /&gt;
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510/30/htm_2015103013499685459.jpg&lt;br /&gt;
&lt;br /&gt;
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07/0917/IE000806331_STD.jpg&lt;br /&gt;
삼성 라이온즈 시절&lt;br /&gt;
&lt;br /&gt;
http://ncdinos.firstmall.kr/data/player/67_1395911304_27180755_profile.jpg&lt;br /&gt;
NC 다이노스 코치 시절 ~~마동석 닮았다~~&lt;br /&gt;
&lt;br /&gt;
||||&amp;lt;#315288&amp;gt; {{{#ffffff NC 다이노스 No.79}}} ||&lt;br /&gt;
||||&amp;lt;#AF917B&amp;gt; {{{#00275a 김상엽(金相燁)}}} ||&lt;br /&gt;
||&amp;lt;#eeeeee&amp;gt; 생년월일 || [[1970년]] [[5월 11일]] ||&lt;br /&gt;
||&amp;lt;#eeeeee&amp;gt; 국적 || [[대한민국]] ||&lt;br /&gt;
||&amp;lt;#eeeeee&amp;gt; 출신지 || [[대구광역시]] ||&lt;br /&gt;
||&amp;lt;#eeeeee&amp;gt; 출신학교 || 수창초 - 경복중 -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lt;br /&gt;
||&amp;lt;#eeeeee&amp;gt; 포지션 || 투수 ||&lt;br /&gt;
||&amp;lt;#eeeeee&amp;gt; 투타 || 우투우타 ||&lt;br /&gt;
||&amp;lt;#eeeeee&amp;gt; 프로입단 || 1989년 고졸 연고지명 ||&lt;br /&gt;
||&amp;lt;#eeeeee&amp;gt;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1989~1999) [br] [[LG 트윈스]](2000~2001) ||&lt;br /&gt;
||&amp;lt;#eeeeee&amp;gt; 지도자 경력 || [[영남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2003~2010)[br][[NC 다이노스]] 투수코치(2011~2012)[br][[NC 다이노스]] 1군 불펜 투수코치(2013~현재) ||&lt;br /&gt;
&lt;br /&gt;
|||||||||||| '''[[1997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lt;br /&gt;
|| [[김인호]]([[현대 유니콘스]]) || → || '''김상엽'''([[삼성 라이온즈]]) || → || [[김재현]]([[LG 트윈스]]) ||&lt;br /&gt;
&lt;br /&gt;
|||||||||||| '''1993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탈삼진왕''' ||&lt;br /&gt;
|| [[이강철]]([[해태 타이거즈]]) || → || '''김상엽'''([[삼성 라이온즈]]) || → || [[정민철]]([[한화 이글스]]) ||&lt;br /&gt;
&lt;br /&gt;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0번(1989~1999)''' ||&lt;br /&gt;
|| 박동경(1983~1988) || → || '''김상엽(1989~1999)''' || → || 박영진(2000~2002) ||&lt;br /&gt;
|||||||||||| '''[[LG 트윈스]] 등번호 60번(2000)''' ||&lt;br /&gt;
|| [[류택현]](1999) || → || '''김상엽(2000)''' || → ||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소개 ==&lt;br /&gt;
'''90년대를 대표하는 삼성의 에이스이자 프랜차이즈 스타'''&lt;br /&gt;
&lt;br /&gt;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동했던 투수로 등번호는 30번. '''대구·경북 지역의 대표적 프랜차이즈 스타 투수'''였으며, 역시 같은 대구·경북 지역의 대표적 프랜차이즈 스타인 [[배영수]]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삼성의 에이스 오브 에이스'''였다. 현재는 [[NC 다이노스]]의 불펜코치로 부임중이다.&lt;br /&gt;
&lt;br /&gt;
전성기인 90년대 초중반, 우리나라에서 1년에 몇차례나 최고구속 150킬로가 넘는 이른바 광속구를 던진 세명 - 마무리 시절 선동렬, 박동희 - 중 하나였다. &lt;br /&gt;
&lt;br /&gt;
별명은 '''만딩고'''[* 1975년에 개봉한 명작영화로 흑인노예를 다룬 영화다.--별명부터가 노예팔자-- 얼굴이 검은 편이라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격년제 에이스'''. [[장원삼]]이 짝수해에만 강했다면 이 선수는 홀수해에만 강했다. 하지만 해태한테 유독 강한데에다 온갖 전천후 세월에도 '''달구벌 폭격기'''라는, 폭격기라는 별명은 선동열 이후 처음이다. &lt;br /&gt;
== 선수 생활 ==&lt;br /&gt;
[[파일:attachment/김상엽/cf.jpg]]&lt;br /&gt;
&lt;br /&gt;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lt;br /&gt;
&lt;br /&gt;
부상 이전 촉망받던 고졸 강속구 투수였다. 최고구속 140km/h만 넘어도 강속구 투수 소리를 듣던 1980년대 후반,&lt;br /&gt;
최고 구속 150km/h에 근접한 강속구를 뿌렸으며, 당시 희귀한 낙차 큰 '''파워 커브'''로 타자를 농락했다.&lt;br /&gt;
&lt;br /&gt;
1989년에 데뷔한 그는 당시 투수코치였던 [[미국]]인 마티 드메리트에게 파워 커브를 전수받고, 한 해 내내 다듬은 끝에 [[1990년]]에 선발과 구원을 오고 가면서 '''12승 18세이브 [[평균자책점|ERA]] 2.81'''이라는, 고졸 2년차로서는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충공깽]]급의 성적을 올렸다. 신인왕이 되기에도 전혀 이상없을 정도의 맹활약이었지만,  프로 첫해 제법 많은 이닝을 던진 관계로 신인왕 자격 요건은 없었다. 참고로 이 해의 신인왕 후보로는 김상엽의 팀동료 투수인 이태일이 주목받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신인왕은 팀 우승 버프를 받은 [[LG 트윈스]]의 [[포수]]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가 차지하게 된다.&lt;br /&gt;
&lt;br /&gt;
1990년에 너무 굴려진 탓인지 1991년과 1992년에는 버로우를 타며 신통치 않은 성적을 냈다. 1992년에 잠시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지만, [[평균자책점]]이 너무 높았다(...)&lt;br /&gt;
&lt;br /&gt;
2년 간 침체기를 겪은 뒤 [[1993년]]에는 시즌 13승에 탈삼진 170개로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탈삼진왕'''[* 물론 그 이전에도 탈삼진 1위를 기록에 남기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탈삼진왕을 시상하게 된 것은 1993년이 처음이다.]에 올랐다. [[해태 타이거즈]]와의 1993 KS 1차전에서 선발, 5이닝까지 무실점으로 역투하면서 그때까지 1:0, 본격 [[삼성 라이온즈]]가 [[해태 타이거즈]]와의 한국시리즈 연패를 끊는가 싶더만, 6회 1사 이후 제구력이 나빠지면서 연속으로 볼넷을 내주고 [[류명선]]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만다. 안타까운 패배를 남긴 뒤 4차전에서 복수에 성공한다. 그리고 팀은 시리즈 중반까지 선전하였으나...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확인하기 바람. &lt;br /&gt;
&lt;br /&gt;
1995년에는 본인의 커리어 하이인 17승을 거두며 [[김상진(1970)|김상진]]과 함께 다승 공동 2위에 올랐다. 1997년에도 12승을 거두며 1990년대 초중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투수진이 열악한 소속 팀 삼성의 특성상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무리한 투구로 혹사당한 측면이 있으며, 어깨/허리 부상으로 지속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고 1998년 이후에는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후 1999년에는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 재활에만 전념하다가 1999년 12월 [[삼성 라이온즈]]가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를 FA로 영입하면서 보상 선수로 [[LG 트윈스]]에 이적하게 된다. 보상 선수로 지명된 당시 김상엽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이적 소식을 듣고 숟가락을 내던졌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팀을 위해서 온 몸 바쳐서 열심히 던졌는데, 그에 대한 결과가 부상과 다른 팀으로의 이적이었으니...... [* '''지금이야 삼성이 [[프랜차이즈 스타]]는 물론 가족을 초청하는 등 [[외국인 선수]]도 잘 대우해 주고 STC를 통해 부상/재활 선수들에게도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쓰고 있으나, 당시의 삼성은 쓸모없다고 판단된 선수는 가차없이 내치는 그런 구단이었다.''' 김상엽 이전의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시진]], [[장효조]], [[강기웅]], [[김성래]], [[이만수]]도 그랬고, 김상엽과 함께 암흑기를 버텨낸 [[박충식]]도 결국 김상엽과 비슷한 시기에 부상을 입어서 재활 도중 FA로 영입된 [[이강철]]의 보상 선수로 [[해태 타이거즈]]에 이적하게 된다.] &lt;br /&gt;
&lt;br /&gt;
[[LG 트윈스]]로 이적한 후 절치부심하여 재활을 마치고 [[2000년]]에 복귀하여 그 해 4월 9일 잠실에서 친정 팀인 삼성을 상대로 선발 등판했으나, 3이닝 4실점으로 조기 강판당하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후 한화전에 등판한 것을 마지막으로 그 해 6월에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2001년]]에는 또 다시 어깨 부상이 찾아오면서 결국 마운드로 돌아오지 못한 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amp;amp;ctg=news&amp;amp;mod=read&amp;amp;office_id=047&amp;amp;article_id=0000103238|LG에서 6.2이닝/2패만 기록한 후 그 해 9월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통산 승수는 78승.&lt;br /&gt;
&lt;br /&gt;
선수 생활은 허무하게 끝났으나, [[성준]], [[박충식]], [[김태한]] 등과 함께 [[556#s-4|1990년대 중반의 암흑기]]를 누비던 [[삼성 라이온즈]]를 온몸으로 지탱한 등불 같은 존재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팀을 위해 열심히 고생한 이 선수들은 모두 허무하게 삼성을 떠났다. 안습[* 김상엽은 김동수의 보상 선수가 되어서 LG로 가서 2001년 은퇴, 박충식은 [[이강철]] 보상선수로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해 2003년 은퇴, [[김태한]]도 [[김기태(1969)|김기태]],[[정경배]],[[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와 묶여서 SK로 갔고 2003년 은퇴한다. [[성준]] 역시 1999년 롯데에서 은퇴했고....][* 저 중에서 이미지가 가장 좋은 건 김상엽밖에 없다. 성준, 김태한은 무능한 걸로 유명하며....지만 성준은 그다지 억울한 측면이 있고 롯데에서 은퇴 뒤 롯데에서 2군 코치로 잠시 있다가 한화로 가서는 그 괴물이라고 불리는 [[류현진]]에게 변형 커터를 전수한 것 이외에는 1군/2군 투수코치를 순회하는 일 밖에 없었고 SK에가서는 이만수와 함께 했다는 점... 후에 친정 팀 삼성에서 2군 투수 유망주들을 키우는 데에 힘을 썻지 어처구니 없이 성준이 무능하다고 까인다.... 모든 삼빠는 이 분께 정정하게 사과드려라... 다만 SK 팬들은 별로 탐탁치 않는 눈빛이라.... 그리고 [[박충식]]은 뜬금없이 [[김성근]] 감독에게 디스를 걸었다가 모든 야구팬들에게 어그로를 끌어서 [[서재응]], [[선수협]]과 함께 까이고 있다.그런데 추후 박충식의 경우는 오해였음이 밝혀졌다. 자세한 경황은 [[박충식]] 항목으로.]&lt;br /&gt;
&lt;br /&gt;
[[김시진]], [[이선희]] 등 삼성의 역대 에이스들이 포스트 시즌만 되면 부진의 늪에 빠져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둔 것과는 달리 김상엽은 예외적으로 큰 경기에 아주 강했던 투수였다. 포스트 시즌에서 거둔 성적이 무려 '''7승'''(...) 그러나 그를 제외한 나머지 동료 투수들이 포스트시즌만 되면 나란히 죽을 쑤는 바람에 가을 무대에서 그 엄청난 성적을 거두고도 [[한국시리즈]] 우승은 한 차례도 맛보지 못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지못미]].&lt;br /&gt;
&lt;br /&gt;
특히 1997년 포스트시즌 같은 경우엔 준 플레이오프에서 [[쌍방울 레이더스]]를 상대로 2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올라왔고 0:2 상황이었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도 [[LG 트윈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둠으로서 그 해 포스트시즌에서만 3승을 거두게 되었다. 그 기세로 5차전 5회까지도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이미 그의 어깨는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황이었고 결국 6회말 선두타자 [[동봉철]]의 번트를 잘 처리하지 못하고 출루를 허용한 뒤 다음 투수 [[전병호]]에게 마운드를 넘긴다. 그리고 전병호와 그의 후속 투수 [[성준]]이 무려 8연속타수 안타를 허용하며 순식간에 역전. 1997년 삼성의 가을야구와 함께 김상엽의 포스트시즌 4승도 그렇게 사라지고 만다. [[최동원]]이나 [[선동열]]이 왔어도 장담할 수 없을만큼 불꽃을 태웠다. &lt;br /&gt;
&lt;br /&gt;
''' 그리고 '에이스' 김상엽의 모습도,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   &lt;br /&gt;
== 투구 스타일 ==&lt;br /&gt;
주 무기는 최고 152km/h까지 찍은 묵직한 직구와 130km/h대의 파워 커브로, 전형적인 올드스쿨 파워 피쳐였다. &lt;br /&gt;
&lt;br /&gt;
과거에 대한 과장과 허풍이 섞이면서 90년대에도 150킬로를 던지는 투수가 흔했던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90년대 중반까지 시즌 투구 최고구속 순위를 매기면 145킬로를 넘는 투수가 채 6,7명에 불과한 시절이었다.&lt;br /&gt;
  &lt;br /&gt;
이상훈이 150킬로를 펑펑 뿌린것처럼 구라를 늘어놓는 추억팔이들이 있으나, 실제 이상훈은 프로시절 딱 한차례 150킬로를 던졌을 뿐, 마무리로 뛸때도 시즌 최고구속은 147~8 정도, 구대성이 부상에서 본격적으로 복귀한 96년 153킬로를 던져 세간의 화제가 되었음을 감안하면, 91년도에 이미 박동희와 함께 마음먹으면 150킬로를 넘길 수 있던 유이한 투수 김상엽이 얼마나 많은 기대를 받았을지 짐작이 가능하다.&lt;br /&gt;
&lt;br /&gt;
(당시 선동열은 어깨이상의 조짐과 함께 팔의 각도가 [[각도드립|~~좁혀지며~~ 내려오며]] 시즌 최고구속이 146~7 정도까지 떨어져 있었고, 92년을 결국 어깨건초염으로 통째로 날린다. 그러나 93년에 마무리- 지금으로 치면 중무리-로 복귀, 153킬로의 광속구를 선보이며 재기에 성공했다.) &lt;br /&gt;
&lt;br /&gt;
또한 그의 파워 커브는 그 당시 구사하는 투수가 거의 없어서 마구급의 위력을 보였다. [* 구사하기 상당히 어려운 구질로, 한국프로야구를 통틀어서 파워커브를 제대로 의미있게 구사한 투수는 김원형, 이대진 그리고 요즘의 김진우 정도이다.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김상엽은 지도하던 선수들에게 전수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 바 있다.] &lt;br /&gt;
&lt;br /&gt;
당시 각 팀의 왠만한 선발투수들은 최고구속 140킬로를 채 못던지는 선수가 다수였고, 보통 제구력이 뒷받침되면 135~138 정도의 직구 스피드로도 충분히 타자를 상대해 왔는데, 김상엽의 파워커브는 최고 137킬로까지 나올 정도로 왠만한 투수의 직구만큼의 속도로 날아오다 수직으로 뚝 떨어지는 그야말로 마구였다.&lt;br /&gt;
&lt;br /&gt;
그 위력을 가장 잘 보여준 경기가 1993년 LG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으로, 파워 커브가 워낙 잘 들어가서 LG 타자들은 거의 공략하지 못하였고 결국 겨우 볼 93개(!)로 1안타 완투승을 거두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직구와 파워 커브만을 우직하게 던졌지만, 허리 부상이 심화된 1990년대 중반에는 파워 커브의 조준점을 낮춰 포크볼처럼 사용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lt;br /&gt;
&lt;br /&gt;
그 외 우리나라에서 컷 패스트볼을 거의 처음으로 실전에서 사용한 선수이기도 했다.&lt;br /&gt;
&lt;br /&gt;
선수시절 마운드에서 잘 흥분하는 것이 단점으로 꼽히기도 했다. 실제로 야수의 에러가 나오거나 볼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굴이 붉어지면서 화 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진짜 열받으면 혼자 공을 공중에 살짝 던졌다가 받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모습과는 달리 제구는 매우 좋은 편이었다. &lt;br /&gt;
== 이야깃거리 ==&lt;br /&gt;
1990년대에는 당시 보기 드물게 야구 선수로서 [[삼성물산]]의 패션 사업부[* 에스에스패션은 1999년 [[제일모직]]에 합병됐다.]인 [[http://www.adic.co.kr/gate/video/show.hjsp?id=I73307|에스에스패션의 신사복 빌트모아 TV CF]]에도 출연하였을 정도로 큰 인기를 구가하였으며, --돈 없기로 유명한--[[삼성 라이온즈]]에서 최초로 연봉 1억원을 돌파한 선수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1996년 선동열 이후 7명의 억대연봉자가 등장했는데 그중 한명이다. 그 만큼 삼성에서 김상엽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 지 잘 알 수 있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병규]]의 홈런성 타구를 [[강동우]]가 캐치하다가 펜스 사이의 틈새에 끼어서 골절상을 입었던 1998년 플레이오프 2차전 당시 마운드에 있었던 투수가 김상엽이었다. '''그리고 그 경기는 김상엽의 마지막 포스트시즌 경기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현역으로 활동할 때''' ~~1990년을 제외하고~~'''홀수 해에는 성적이 좋고 짝수 해엔 성적이 부진한 징크스가 있었다.''' 사실은 징크스가 아니라 어깨에 고질적인 부상[* 이 부상은 혹사 때문에 생긴 것도 있겠지만 이것보다 더 어이없는 이유가 있는데 신인 시절 같은 방을 쓰는 팀원의 고약한 잠버릇으로 인해 어깨를 깔리면서 상처를 입었고 이 상처는 결국 선수 생활 내내 김상엽의 발목을 잡게 된다. 훗날 김상엽이 인터뷰에서 그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통이 터진다고 했을 정도다.] 이 있어서 한해는 잘하고 한해는 쉬는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그 징크스는 [[윤성환|김상엽처럼 비슷하게 얼굴이 검고 잘 생긴 외모에 커브가 주무기인 어떤 후배]]가 이어받게 된다.--&lt;br /&gt;
&lt;br /&gt;
선발로 등판했을 때 1회 초구의 스트라익 여부가 그날 경기를 좌우할 정도로 매우 중요했다고 한다. 그만하면 상대 1번 타자는 1회 초구를 노릴 법도 하지만, 전성기 때는 볼이 워낙 좋았으니...&lt;br /&gt;
&lt;br /&gt;
한 가지 불명예 기록이 있는데, '''투수 한 경기 최다실책'''이 그 기록.1990년 4월 8일 인천 태평양 전에서 3실책을 저질러 작성했는데, [[금민철]]이 2014년 6월 25일 타이를 작성하면서 재발굴되었다.&lt;br /&gt;
== 은퇴 이후 ==&lt;br /&gt;
은퇴 이후에는 야구와 잠시 거리를 두고 살다가, [[2003년]] 1월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였던 [[권영호]] 당시 [[영남대학교]] 감독의 제안으로 [[영남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로 영입되어 [[2010년]]까지 재임했다. 2011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이승엽]], [[박찬호]]가 소속된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박찬호]]가 오릭스와의 계약 조건 중 하나가 [[대한민국]]에서 뛰고 있는 아마추어 코치 중 한 명을 오릭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해 달라는 것이었고, 이에 여러 후보군 중 최종적으로 김상엽이 선택되었다. 이로 인해 김상엽은 [[박찬호]]와의 인연을 맺게 되고, 그 인연은 후에 [[박찬호]]의 공주고 선배인 [[김경문]] 감독이 있는 [[NC 다이노스]]의 창단 투수코치로 임명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김상엽은 삼성시절에도 김경문과 3년간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15년 만에 삼성 코치진으로 다시 돌아온 올드 스타 [[강기웅]]처럼, 그도 머지 않아 다시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길 많은 삼성 올드 팬들은 기대하였다. &lt;br /&gt;
그러나 2011년 10월 10일에 [[최일언]] 코치와 함께 [[NC 다이노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하였다.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amp;amp;ctg=news&amp;amp;mod=read&amp;amp;office_id=076&amp;amp;article_id=0002152150&amp;amp;redirect=true|2011년 인터뷰]] 대구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한 [[이재학]] 등의 [[http://osen.mt.co.kr/article/G1109390480|NC의 신예 선수들에게 구질을 전수하는 등]] 1군 불펜 투수코치로 활동 중이다. &lt;br /&gt;
--아들한테 선수들을 못가르쳤다고 구박받았다 카더라 [[https://www.facebook.com/ncdinos/videos/vb.241899065820824/1000635376613852/?type=2&amp;amp;theater|#]]--&lt;br /&gt;
~~요샌 구박받을 일이 많이 없을 것 같다~~&lt;br /&gt;
== 연도별 주요 성적 ==&lt;br /&gt;
||||||||||||||||||||||||||||||||||&amp;lt;#000000&amp;gt;  {{{#ffffff 역대기록}}} ||&lt;br /&gt;
||&amp;lt;#0066b3&amp;gt;&amp;lt;:&amp;gt; {{{#ffffff 연도}}} ||&amp;lt;#0066b3&amp;gt;{{{#ffffff 소속팀}}} ||&amp;lt;#0066b3&amp;gt;{{{#ffffff 경기수}}} ||&amp;lt;#0066b3&amp;gt;{{{#ffffff 이닝}}} ||&amp;lt;#0066b3&amp;gt;{{{#ffffff 승}}} ||&amp;lt;#0066b3&amp;gt;{{{#ffffff 패}}} ||&amp;lt;#0066b3&amp;gt;{{{#ffffff 세}}} ||&amp;lt;#0066b3&amp;gt;{{{#ffffff 홀}}} ||&amp;lt;#0066b3&amp;gt;{{{#ffffff 승률}}} ||&amp;lt;#0066b3&amp;gt;{{{#ffffff ERA}}} ||&amp;lt;#0066b3&amp;gt;{{{#ffffff 피안타}}} ||&amp;lt;#0066b3&amp;gt;{{{#ffffff 피홈런}}} ||&amp;lt;#0066b3&amp;gt;{{{#ffffff 4사구}}} ||&amp;lt;#0066b3&amp;gt;{{{#ffffff 탈삼진}}} ||&amp;lt;#0066b3&amp;gt;{{{#ffffff 실점}}} ||&amp;lt;#0066b3&amp;gt;{{{#ffffff 자책점}}} ||&amp;lt;#0066b3&amp;gt;{{{#ffffff WHIP}}} ||&lt;br /&gt;
|| 1989 ||&amp;lt;|11&amp;gt;&amp;lt;:&amp;gt; [[삼성 라이온즈]] || 24 || 57⅓ || 2 || 5 || 0 || - || 0.286 || 4.40 || 58 || 3 || 59 || 31 || 37 || 28 || 2.006 ||&lt;br /&gt;
|| 1990 || '''44'''[br](3위) || 160⅓ || 12 || 6 || '''18'''[br](3위) || - || 0.667 || 2.81 || 114 || 12 || 90 || 110 || 60 || 50 || 1.204 ||&lt;br /&gt;
|| 1991 || 36 || 99⅓ || 6 || 6 || 7 || - || 0.500 || 4.62 || 87 || 10 || 73 || 62 || 60 || 51 || 1.550 ||&lt;br /&gt;
|| 1992 || 41 || 144 || 8 || 12 || '''15'''[br](2위) || - || 0.400 || 4.19 || 125 || 9 || 75 || 103 || 71 || 67 || 1.361 ||&lt;br /&gt;
|| 1993 || 36 || 181⅓ || 13 || 6 || 8 || - || 0.684 || 2.58 || 150 || 8 || 82 || '''{{{#red 170}}}'''[br](1위) || 64 || 52 || 1.246 ||&lt;br /&gt;
|| 1994 || 7 || 24⅔ || 2 || 2 || 0 || - || 0.500 || 4.74 || 23 || 3 || 17 || 21 || 13 || 13 || 1.581 ||&lt;br /&gt;
|| 1995 || 27 || '''191⅔'''[br](5위) || '''17'''[br](2위) || 7 || 0 || - || '''0.708'''[br](3위) || '''2.30'''[br](4위) || 140 || 12 || 75 || 132 || 53 || 49 || 1.059 ||&lt;br /&gt;
|| 1996 || 8 || 21 || 3 || 1 || 0 || - || 0.750 || 3.86 || 11 || 2 || 18 || 22 || 9 || 9 || 1.238 ||&lt;br /&gt;
|| 1997 || 25 || 150⅔ || 12 || 6 || 1 || - || 0.667 || 3.35 || 128 || 12 || 73 || 82 || 59 || 56 || 1.261 ||&lt;br /&gt;
|| 1998 || 8 || 36⅔ || 3 || 3 || 0 || - || 0.500 || 5.40 || 38 || 5 || 23 || 17 || 24 || 22 || 1.500 ||&lt;br /&gt;
|| 1999 |||||||||||||||||||||||||||||| 1군 기록 없음 ||&lt;br /&gt;
||&amp;lt;#c30542&amp;gt;&amp;lt;:&amp;gt; {{{#ffffff 연도}}} ||&amp;lt;#c30542&amp;gt;{{{#ffffff 소속팀}}} ||&amp;lt;#c30542&amp;gt;{{{#ffffff 경기수}}} ||&amp;lt;#c30542&amp;gt;{{{#ffffff 이닝}}} ||&amp;lt;#c30542&amp;gt;{{{#ffffff 승}}} ||&amp;lt;#c30542&amp;gt;{{{#ffffff 패}}} ||&amp;lt;#c30542&amp;gt;{{{#ffffff 세}}} ||&amp;lt;#c30542&amp;gt;{{{#ffffff 홀}}} ||&amp;lt;#c30542&amp;gt;{{{#ffffff 승률}}} ||&amp;lt;#c30542&amp;gt;{{{#ffffff ERA}}} ||&amp;lt;#c30542&amp;gt;{{{#ffffff 피안타}}} ||&amp;lt;#c30542&amp;gt;{{{#ffffff 피홈런}}} ||&amp;lt;#c30542&amp;gt;{{{#ffffff 4사구}}} ||&amp;lt;#c30542&amp;gt;{{{#ffffff 탈삼진}}} ||&amp;lt;#c30542&amp;gt;{{{#ffffff 실점}}} ||&amp;lt;#c30542&amp;gt;{{{#ffffff 자책점}}} ||&amp;lt;#c30542&amp;gt;{{{#ffffff WHIP}}} ||&lt;br /&gt;
|| 2000 || [[LG 트윈스]] || 2 || 6⅔ || 0 || 2 || 0 || 0 || 0.000 || 10.80 || 12 || 1 || 6 || 2 || 8 || 8 || 2.700 ||&lt;br /&gt;
||||&amp;lt;#ffff99&amp;gt;&amp;lt;:&amp;gt; '''[[KBO]] 통산(12시즌)''' || 258 || 1073⅔ || 78 || 56 || 49 || 0 || 0.582 || 3.39 || 886 || 77 || 591 || 752 || 458 || 405 || 1.318 ||&lt;br /&gt;
&lt;br /&gt;
||||||&amp;lt;#000000&amp;gt; {{{#ffffff 완투, 완봉기록}}} ||&lt;br /&gt;
||&amp;lt;#0066b3&amp;gt; {{{#ffffff 년도}}} ||&amp;lt;#0066b3&amp;gt; {{{#ffffff 완투}}} ||&amp;lt;#0066b3&amp;gt; {{{#ffffff 완봉}}} ||&lt;br /&gt;
||1990|| 2완투 || 0완봉 ||&lt;br /&gt;
||1991|| 1완투 || 0완봉 ||&lt;br /&gt;
||1992|| 5완투 || 1완봉[br](10위) ||&lt;br /&gt;
||1993|| 6완투 || '''3완봉'''[br](5위) ||&lt;br /&gt;
||1995|| '''9완투'''[br](3위) || 2완봉[br](6위) ||&lt;br /&gt;
&lt;br /&gt;
[[분류:야구선수]]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분류:1970년 출생]] [[분류:투수]] [[분류:우완 투수]] [[분류:우투우타]]&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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