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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성집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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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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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9:5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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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http://guesthousejeonju.com/files/2014/11/21/19daa83d85265ae93177e72b31732b76154243.jpg&lt;br /&gt;
&lt;br /&gt;
金晟集&lt;br /&gt;
&lt;br /&gt;
1919년 1월 13일 ~ 2016년 2월 20일&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대한민국의 '''미스터 올림피언'''. 1948년 [[런던 올림픽]] [[역도]] 종목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메달을 땄고,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 한국선수단 단장을 두 차례 역임했고, [[태릉선수촌]] 촌장을 18년이나 지냈다.&lt;br /&gt;
&lt;br /&gt;
== 생애 ==&lt;br /&gt;
1919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동에서 아버지 김순정과 어머니 송석녀의 2남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청운초등학교, [[휘문고등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43년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였다.&lt;br /&gt;
&lt;br /&gt;
휘문고 2학년때 대한민국 &amp;quot;역도의 아버지&amp;quot;라고 불리는 서상천 교사의 권유로 역도를 시작했다. 당시 역도를 통한 민족정신의 고취에 앞장서고 역도를 통해 항일을 실천하던 서상천이 설립한 중앙체육연구소에 들어가 역도훈련을 시작하였다.&lt;br /&gt;
&lt;br /&gt;
휘문고 4학년 때에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하기 시작했고, 1936년 5월에 개최된 일본 역도 선수권 대회 및 [[베를린 올림픽]] 참가 선수선발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 입문 1년만에 일본을 제패하고 여러 차례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세우자 일본역도연맹은 아예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역도종목 출전을 포기해버렸다.&lt;br /&gt;
&lt;br /&gt;
1938년에도 올림픽 후보선수 선발전과 전일본 역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였다. 그러나 1940년 예정된 올림픽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무산되었다. 이로써 올림픽 메달을 향한 그의 꿈은 멀어지는 듯했다. &lt;br /&gt;
&lt;br /&gt;
그러다가 일제에서 해방이 되자 전성기를 지난 30세의 나이로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했다. 역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였다.[* 영국 BBC방송 라디어전파를 빌려 하루 15분씩 한국에 경기결과를 전하던 서울중앙방송국(KBS 전신)의 아나운서 민재호는 방송 내내 흐느끼다시피 보도했다. 서울과 전국에서 난리가 났다. 3년전 광복을 재현한 듯한 감동이었다.] 그 후 1952년 헬싱키 올림픽대회에서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따내 대한민국 올림픽 출전 사상 처음으로 2회 연속하여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는 기록을 남겼다. &lt;br /&gt;
&lt;br /&gt;
1954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2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했고,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38세의 노장으로서 5위에 입상하였다.&lt;br /&gt;
&lt;br /&gt;
40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대한 역도연맹 전무이사외 부회장, 대한체육회 이사, 사무총장, 아시아경기대회 및 올림픽경기대회 임원으로 활약했다. 1968년부터 1974년까지 8년간 체육회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어떤 청탁이나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한 덕분에 '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lt;br /&gt;
&lt;br /&gt;
1972년 뮌헨 올림픽과 1984년 LA 올림픽에는 한국선수단 단장을 역임했고, 체육회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후에는 1976년부터 1994년까지 무려 18년 동안이나 [[태릉선수촌]] 촌장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을 육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선수촌장 시절 ‘호랑이’, ‘염라대왕’, ‘시아버지’ 등의 별명을 얻기도 했다. 선수촌 지옥훈련으로 악명 높은 불암산 크로스컨트리가 그의 작품이다. 영원한 ‘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모두 31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캐냈다.&lt;br /&gt;
&lt;br /&gt;
2016년 2월 20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98세.&lt;br /&gt;
&lt;br /&gt;
[[분류:운동선수]]&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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