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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지섭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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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23:57:29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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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4일 (화) 04:22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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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4T04:22: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include(틀:건국훈장 대통령장)]&lt;br /&gt;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0/%EA%B9%80%EC%A7%80%EC%84%AD.gif&lt;br /&gt;
&lt;br /&gt;
 * 상위 항목 : [[의열단]]&lt;br /&gt;
&lt;br /&gt;
1884.07.21~1928.02.20&lt;br /&gt;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lt;br /&gt;
&lt;br /&gt;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일본어]]를 1달 만에 익혀 상주보통학교 교사가 되었으며, 독학으로 금산 지방 법원의 서기 겸 통역으로 일했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법률사무소를 그만두고 모든 것을 뿌리친 채 오로지 [[독립운동]]만을 할 것을 결심, [[베이징]]으로 건너가 [[의열단]]과 고려공산당에 가입했다.&lt;br /&gt;
&lt;br /&gt;
[[천황]]을 향해 의거하기로 한 이유는,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본인]]들이 사냥하고 학살하는 모습에서 분노했기 때문이라고. 그 상황에서 충격을 받고, 목숨 바쳐 의거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의열단]]에 가입한 후 [[김원봉]] 등과 함께 조선 내의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찰서, 재판소 등을 비롯한 일제 주요관서를 폭파하기 위해 국내로 30여 개나 되는 폭탄의 반입을 꾀했으나 실패하고, 간신히 빠져나와 다시 [[상하이]]로 피신했다.&lt;br /&gt;
&lt;br /&gt;
이후 [[의열단]]에서는 [[도쿄]]에서 열리는, 일본 고관들이 대거 참석하는 '제국의회'에 폭탄을 던지기로 계획했고, 이를 위해 의열단은 일본어에 능통하고 외모가 일본인과 닮은 김지섭을 일본으로 보냈다.&lt;br /&gt;
&lt;br /&gt;
당연히 폭탄을 소지하고는 정상적인 루트로 일본에 가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아편]]과 [[코카인]]을 [[밀수]]하는 [[일본인]]으로 가장했다고 한다] 상해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석탄운반선 '천성환호'를 통해 12월 21일, 일본으로 [[밀항]]하게 된다.&lt;br /&gt;
&lt;br /&gt;
열흘 후인 12월 31일, 천성환호는 일본 [[후쿠오카]] 현 야와타제철소에 도착했다. 열흘간이나 배 밑 창고에서 지내며 하루에 [[주먹밥]] 한두 개로 끼니를 때우는 바람에 쇠약해진데다가, 자금마저 녹록치 않아 야와타 시(市) 여관에서 1월 3일까지 머무르다가 [[도쿄]]로 출발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도쿄에 출발하자마자 알게 된 사실은, 제국회의가 무기한 휴회되었다는 것. 밀항인 신분인데다가 폭탄을 소지하고 다니면 발각될 위험이 크고, 제국회의가 언제 다시 열리는지 일정이 전혀 없었기에, 김지섭 의사는 목표를 [[고쿄]](일왕의 궁성)로 바꾸게 된다.&lt;br /&gt;
&lt;br /&gt;
다음날인 1월 5일 오후 거사를 계획하고 폭탄 3개를 품 속에 숨긴 채 [[덴노]]가 사는 궁성 앞으로 가서 니주바시(이중교) 건너편 정문 앞까지 가서 보초병들과 싸우고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탄[* [[상하이]]에서 일본으로 건너갈 때 [[밀항]]하느라 배 밑 창고에서 숨어 있었다. 배 아래쪽이라 습한 창고에서 열흘이나 있게 되는 바람에 폭탄이 습기를 먹게 되었고, 이 때문에 불발탄이 났다고 한다.]이 2개씩이나 나와 결국 체포된다.&lt;br /&gt;
&lt;br /&gt;
결국 김지섭은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거의 다 된 1927년 10월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928년 2월 22일에 옥중에서 병사해 45세로 순국하고 만다.&lt;br /&gt;
&lt;br /&gt;
엄청난 일을 해낸 [[독립운동가]]이지만 이름이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유는 저 김지섭 의사의 의거건을 [[일본 정부]]에서 묻었기 때문. 이 사건은 일본 고위층 몇 사람이 죽은 것보다 더 큰 사건이라고.&lt;br /&gt;
&lt;br /&gt;
여담이지만 [[후세 다쓰지]]가 김지섭의 변호를 맡았다고 한다.&lt;br /&gt;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 [[분류:안동시 출신 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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