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9%80%EC%A7%84%ED%98%B8%28%EC%96%91%EA%B6%81%29</id>
		<title>김진호(양궁)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9%80%EC%A7%84%ED%98%B8%28%EC%96%91%EA%B6%81%2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9%80%EC%A7%84%ED%98%B8(%EC%96%91%EA%B6%81)&amp;action=history"/>
		<updated>2026-06-30T07:35:5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9%80%EC%A7%84%ED%98%B8(%EC%96%91%EA%B6%81)&amp;diff=528686&amp;oldid=prev</id>
		<title>2017년 2월 6일 (월) 14:49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A%B9%80%EC%A7%84%ED%98%B8(%EC%96%91%EA%B6%81)&amp;diff=528686&amp;oldid=prev"/>
				<updated>2017-02-06T14:49: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http://img.yonhapnews.co.kr/photo/yna/YH/2009/08/19/PYH2009081902000000700_P2.jpg?width=350&lt;br /&gt;
위는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인 모습이고, 아래는 타임지가 찍어 준 선수 시절 모습이라고 한다. 당시 대학 1학년.&lt;br /&gt;
&lt;br /&gt;
[include(틀:신궁)]&lt;br /&gt;
&lt;br /&gt;
[[대한민국]]의 전 양궁 선수이자, 현재는 [[한국체육대학교]]의 교수 겸 [[대한양궁협회]] 이사.&lt;br /&gt;
&lt;br /&gt;
[[대한민국]] '''여자 신궁 계보의 시조'''로서, 여자 양궁이 세계 최강이 되는데 그 주춧돌을 놓고, 가장 먼저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양궁 선수다. 대한민국 양궁에 미친 영향력 하나만큼은 절대적이었던 선수로, 가히 '''대한민국 양궁의 어머니'''라고 할 만하다. 현역 시절 별명은 '''양궁 여왕'''.&lt;br /&gt;
&lt;br /&gt;
[[1961년]] [[12월 1일]] 생으로,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여고 출신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양궁부에 가입하면서 양궁 선수로서의 길에 접어들었다. 실력이 없었으면, 그냥 고교 시절 취미로 하는 정도로 끝났을 텐데, 막상 해보니 실력이 [[넘사벽]]. 손가락이 부러진 상황에서 대표 선발전에 나가 1위를 했을 정도면 말 다 했다.&lt;br /&gt;
&lt;br /&gt;
[[1978 방콕 아시안 게임]] 개인전 금메달과 1979년 [[베를린]] 세계 양궁 선수권 대회에서 전무후무한 5관왕에 등극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5관왕은 지금 제도 아래서는 불가능한데, 이는 당시에는 거리별 궁사 성적에 따라 메달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급부상하였다. 하지만, 이 무렵 터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이 올림픽 참가를 보이콧하였고, [[대한민국]]도 모스크바 대회 보이콧에 동참함에 따라 선수 생활의 최절정기에 타의에 의해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면서 올림픽 메달의 기회는 어이없이 날아갔다.&lt;br /&gt;
&lt;br /&gt;
그래도 포스는 여전해서 1983년 LA 세계 양궁 선수권에서 또 다시 5관왕에 등극했다. 마침 이듬해 열릴 올림픽이 LA 개최라서 금메달 후보로 유력했는데, 정작 [[1984 LA 올림픽]]에서는 컨디션 난조로 부진하면서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긴장감 때문에 흔들리면서 0점을 두 번이나 쏘는 등 전반적으로 많이 흔들렸다. 그 결과 금메달을 차지한 [[서향순]]이 신궁의 계보를 이어받았고, 김진호 자신은 결국 올림픽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단체전이 없던 시절이라 그걸로 올림픽 경력은 끝났다. 선수 생활의 절정기에 실패했다는 좌절감 때문에, 결국 선수 생활을 지속하는 것 대신 [[한국체육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하는 것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후,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거쳐 1995년 한체대에 정식 임용되어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여러 모로 최강의 포스를 자랑하던 선수였지만, 올림픽과 이상하게 인연이 없었다. 그래도 [[대한민국]] 여자 양궁의 전설의 첫 장을 장식한 선수이기 때문에, 매번 신궁의 계보를 논할 때, 반드시 그 첫머리에 등장하는 선수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http://navercast.naver.com/korean/sportsperson/175|다음 링크를 참조할 것.]]&lt;br /&gt;
&lt;br /&gt;
고향인 [[예천군]]에 그녀의 업적을 기리는 김진호 국제 양궁장이 건립되었다.&lt;br /&gt;
&lt;br /&gt;
[[분류:운동선수]]&lt;br /&gt;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진호, version=39)]&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