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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춘수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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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20:37:29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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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4일 (화) 04:28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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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4T04:28:5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상위 항목 : [[시인]]&lt;br /&gt;
&lt;br /&gt;
http://oi58.tinypic.com/nots1l.jpg&lt;br /&gt;
&lt;br /&gt;
&amp;gt;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lt;br /&gt;
&amp;gt; 그는 다만&lt;br /&gt;
&amp;gt;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lt;br /&gt;
&amp;gt; &lt;br /&gt;
&amp;gt;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lt;br /&gt;
&amp;gt; 그는 나에게로 와서&lt;br /&gt;
&amp;gt; 꽃이 되었다.&lt;br /&gt;
&amp;gt; &lt;br /&gt;
&amp;gt; -「꽃」&lt;br /&gt;
&amp;gt; &lt;br /&gt;
&amp;gt; &lt;br /&gt;
&amp;gt;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lt;br /&gt;
&amp;gt;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lt;br /&gt;
&amp;gt;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lt;br /&gt;
&amp;gt;&lt;br /&gt;
&amp;gt;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lt;br /&gt;
&amp;gt;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lt;br /&gt;
&amp;gt;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lt;br /&gt;
&amp;gt;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lt;br /&gt;
&amp;gt;나는 한밤내 운다.&lt;br /&gt;
&amp;gt;&lt;br /&gt;
&amp;gt;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lt;br /&gt;
&amp;gt;탑을 흔들다가&lt;br /&gt;
&amp;gt;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lt;br /&gt;
&amp;gt;&lt;br /&gt;
&amp;gt;……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lt;br /&gt;
&amp;gt;&lt;br /&gt;
&amp;gt;-「꽃을 위한 서시」&lt;br /&gt;
&amp;gt; &lt;br /&gt;
&amp;gt; &lt;br /&gt;
&amp;gt; 다늅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lt;br /&gt;
&amp;gt;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딩구는 황혼 무렵&lt;br /&gt;
&amp;gt; 느닷없이 날아온 수 발의 쏘련제 탄환은&lt;br /&gt;
&amp;gt; 땅바닥에&lt;br /&gt;
&amp;gt;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lt;br /&gt;
&amp;gt; 순간,&lt;br /&gt;
&amp;gt; 바숴진 네 두부는 소스라쳐 삼십보 상공으로 튀었다.&lt;br /&gt;
&amp;gt; 두부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lt;br /&gt;
&amp;gt;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lt;br /&gt;
&amp;gt;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lt;br /&gt;
&amp;gt;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lt;br /&gt;
&amp;gt;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lt;br /&gt;
&amp;gt; &lt;br /&gt;
&amp;gt;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lt;br /&gt;
&amp;gt; &lt;br /&gt;
&amp;gt; &lt;br /&gt;
&amp;gt; 남자와 여자의&lt;br /&gt;
&amp;gt;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lt;br /&gt;
&amp;gt;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lt;br /&gt;
&amp;gt; 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lt;br /&gt;
&amp;gt;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lt;br /&gt;
&amp;gt; 새가 되었다고 한다.&lt;br /&gt;
&amp;gt; 발바닥만 젖어 있었다고 한다.&lt;br /&gt;
&amp;gt; &lt;br /&gt;
&amp;gt; -「눈물」&lt;br /&gt;
&lt;br /&gt;
金春洙 (1922~2004)&lt;br /&gt;
&lt;br /&gt;
[[대한민국]] 의 [[시인]]. [[1922년]] [[11월 25일]] [[경상남도]] [[통영시|충무]]에서 태어났다. &lt;br /&gt;
&lt;br /&gt;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교 예술학부에서 공부했으나, 1942년에 일왕과 총독 정치를 비판하여 1943년에 퇴학당했다. 1946년에 귀국하여 1951년까지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역임했다. 1946년에 시 &amp;lt;애가&amp;gt;를 발표하면서 등단, 이 때부터 시를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1961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교단에 들어선 그는 1964년부터 1978년까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영남대학교]]의 문리대 학장을 지내다가 1981년에 정계로 들어오며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시인과 평론가로서 활동한다.&lt;br /&gt;
&lt;br /&gt;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시 &amp;lt;[[꽃]]&amp;gt;과 2004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문학파트 중 시 지문에 &amp;lt;내가 만난 [[이중섭]]&amp;gt;이 수록되어서, 학생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시인이다. &amp;lt;[[꽃]]&amp;gt; 자체도 연시(戀詩)처럼 보일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이라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하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김춘수의 시풍은 사물의 본질과 인간의 실존, '''존재'''의 세계 등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질리게 나오는 '''존재 탐구'''~~&lt;br /&gt;
&lt;br /&gt;
1948년 첫 시집인 &amp;lt;구름과 장미&amp;gt; 출간을 시작으로 시 &amp;lt;산악(山嶽)&amp;gt;, &amp;lt;사(蛇)&amp;gt;, &amp;lt;기(旗)&amp;gt;, &amp;lt;모나리자에게&amp;gt;, &amp;lt;꽃&amp;gt;, &amp;lt;[[꽃을 위한 서시]]&amp;gt; 등을 발표하였다. 다른 시집으로는 &amp;lt;늪&amp;gt;, &amp;lt;[[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amp;gt;, &amp;lt;타령조 기타&amp;gt;, &amp;lt;처용(處容)&amp;gt;, &amp;lt;남천&amp;gt;, &amp;lt;비에 젖은 달&amp;gt;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1958년에 한국시인협회상, 1959년에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받았다.&lt;br /&gt;
&lt;br /&gt;
한편 [[흑역사]]도 있는데, 1981년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1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방송심의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제5공화국]]에 대한 '''친군부''' 행위다. 등단 이후 시에 정치적 견해나 현실을 잘 드러내지 않고, 허무주의에 기반을 둔 인간의 실존과 존재를 노래했던 시인으로서는 실망스러운 행보였다. [[전두환]] 대통령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시를 지었다가 지금도 까이고 있는 [[서정주]]처럼[* 물론 [[서정주]]는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전적이 참으로 화려해서(...) 이 방면으로는 독보적으로 까이고 있지만.] 김춘수도 [[전두환]]을 찬양하는 헌정시를 지었다.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9806C29E427768D5BFD9F85EC2D786D45FE0&amp;amp;outKey=V128a59af1f04162d4138412fed9aaadbd2e1f1fe48d684d01004412fed9aaadbd2e1&amp;amp;width=720&amp;amp;height=438|# KBS 영상]][* 1988년 2월에 있었던 퇴임 만찬 때 낭독되었던 시다. 공식 석상임에도 너무나 태연자약하게 담배를 꼬나무는 [[전두환]]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만 이 당시 흡연 및 금연 문화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은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시외버스에서의 흡연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나, 1990년대 후반만 해도 버젓이 버스 의자에 재떨이가 존재했었다. 당시에는 흡연이 타인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영상을 잘 보면, 객석에서도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님이시여 겨레의 빛이 되고 역사의 소금이 되소서&lt;br /&gt;
&lt;br /&gt;
님이 태어나신 곳은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내동 마을&lt;br /&gt;
한반도의 등줄기 소백의 긴 매 뿌리 뻗어내려 후미지고 아늑한 분지를 이룬 곳&lt;br /&gt;
천구백삼십년대의 어느 날 님의 일가는 일본 제국주의의 그 악마의 등살을 견디다 못해 정든 땅&lt;br /&gt;
이웃을 버리고 머나먼 남의 땅 만주벌판으로 내쫓기는 사람들처럼 억울하게 억울하게 떠나가야만 했으니&lt;br /&gt;
&lt;br /&gt;
그 때 가족들의 간장에 맺힌 한과 분은 아직도 여리고 어린 님의&lt;br /&gt;
두 눈과 폐부에 너무도 생생하게 너무도 깊이깊이 박히었을 것입니다&lt;br /&gt;
&lt;br /&gt;
님이 헌헌장부로 자라 마침내 군인이 된 것은 그것은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lt;br /&gt;
천구백칠십구년 가을에서 팔십년 사이 이 땅 이 겨레는 더할 나위 없는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lt;br /&gt;
발등에 떨어진 불은 우선 그것부터 끄고 봐야하듯이 우선 치안을 바로잡고&lt;br /&gt;
우선 인심을 안정시키고 우선 경제의 헝클어진 운행을 궤도위에 올려놓아야만 했습니다&lt;br /&gt;
 &lt;br /&gt;
이런 일들을 해내기 위하여 천구백팔십일년 새 봄을 맞아 마침내&lt;br /&gt;
제 5공화국이 탄생하고 님은 그 방향을 트는 가장 핵심의 자리에 앉았습니다&lt;br /&gt;
 &lt;br /&gt;
그리고 보십시오 님께서 단임으로 평화적 정부이양을 실천한 일 그것입니다&lt;br /&gt;
건국 이래 가장 빛나는 기념비적 쾌거라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lt;br /&gt;
님은 선구자요 개척자가 되었습니다&lt;br /&gt;
 &lt;br /&gt;
그 자리 물러남으로 이제 님은 겨레의 빛이 되고 역사의 소금이 되소서&lt;br /&gt;
님이시여 하늘을 우러러 만수무강 하소서||&lt;br /&gt;
~~쓸데없이 길다~~&lt;br /&gt;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북쪽이랑]] 다를게 뭐냐~~&lt;br /&gt;
&lt;br /&gt;
이러한 친군부 행위는 &amp;lt;꽃&amp;gt; 등으로 단순히 김춘수를 서정시인 및 순수시인~~그리고 난해시인~~으로만 알고 있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고교 문학 시간에도 이 짓을 언급하는 교사들도 있긴 하다) 다만 김춘수 본인은 이 시기를 두고, “한 마디로 100%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처량한 몰골로 외톨이가 되어,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쩔 줄 모르고 보낸 세월”이라 회고했다고 전해진다.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life/200411/h2004112919183823400.htm&amp;amp;ver=v002|출처]] 판단은 위키러 개인에게 맡겨 둔다. 그나마 그가 죽기 전인 [[2004년]] [[11월 11일]]에는 제 19회 소월시문학상 특별상으로 받은 상금 300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기도 했다.&lt;br /&gt;
&lt;br /&gt;
[[2004년]] 8월 기도폐색으로 쓰러져 호흡곤란으로 인한 뇌 손상을 입어 [[분당구|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했지만, 결국 [[2004년]] [[11월 29일]] 아침 9시, 향년 83세로 별세했다.&lt;br /&gt;
&lt;br /&gt;
[[경북대학교]] 정문과 학생주차장 사이에 조성되어 있는 KNU 센트럴 파크에 그의 대표작인 &amp;quot;꽃&amp;quot;이 새겨진 시비가 있다.[* KNU 센트럴 파크에는 &amp;quot;킹 메이커&amp;quot;라는 별명을 얻은 정치인으로 유명한 [[김윤환]]의 시비도 있다.([[김윤환]]은 영문과 출신이다)]&lt;br /&gt;
[[분류:통영시 출신 인물]]&lt;br /&gt;
[[분류:시인]]&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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