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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홍걸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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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4T03:42:2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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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9:04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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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19:04:5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http://blogimg.hani.co.kr/editor/uploads/2016/02/23/rain_61681_36164_ed.jpg&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기본 정보 ==&lt;br /&gt;
|| 이름 ||김홍걸(金弘傑)||&lt;br /&gt;
|| 출생 ||[[1963년]] [[11월 12일]]||&lt;br /&gt;
|| 본관 ||[[김해 김씨]]||&lt;br /&gt;
|| 부모 ||[[아버지]] [[김대중]], [[어머니]] [[이희호]]||&lt;br /&gt;
|| 가족 ||[[이복형제|이복 형]] 김홍일, 김홍업, [[부인]], 슬하 2남||&lt;br /&gt;
|| 학력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겸 정치인.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3남|셋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희호]]다. 2016년 현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로 일하고 있다.&lt;br /&gt;
&lt;br /&gt;
== 트리비아 ==&lt;br /&gt;
1963년 11월 12일 김대중과 이희호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복형은 [[김홍일(1948)]]과 김홍업이다. 1982년 이화여자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82학번으로 입학하였다. 재학기간 동안 아버지의 정치적 고난을 목도해야 했으며, 당시 5공화국에서는 고려대에 이런저런 압력을 넣어서 그의 입학을 막으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1993년에야 고려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할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김대중 대통령 재직 중 2002년 5월 최규선 게이트 (불법 뇌물 자금 수수)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김대중은 대통령 재임시에 아들 3명이 모두 권력형 뇌물 비리로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를 두고 '[[홍삼|홍3]]게이트(뇌물3형제)'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https://namu.wiki/w/김대중/평가#s-2.4.6|최규선이라는 고단수]] 인물에 의해 완전히 농락 당했다는 평. 그 후 2005년 8월 15일 [[노무현]]에 의해 광복절 경축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lt;br /&gt;
&lt;br /&gt;
미국포모나대학교 태평양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lt;br /&gt;
&lt;br /&gt;
2016년 1월 4일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 안철수가 이희호 여사와의 비공개 독대 자리에서 이희호 여사의 [[http://news.joins.com/article/19364470|안철수 신당 지지 의사표현]]을 들었다고 [[언론플레이]]를 하자, 즉각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html?no=260098|그런 거 없다. 어머니는 그냥 듣기만 하셨다]]는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였다.&lt;br /&gt;
&lt;br /&gt;
[[국민의당]] 창당 멤버들이 연로한 어머니를 정치적 언플에 악용했다고 생각했고 이에 크게 격분했던지 그 이후 [[안철수]] 전문 저격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6년 1월 24일에는 아예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의 논설위원이자 칼럼니스트였던 [[고종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있었으면 김홍걸을 족보에서 파버렸을 거라며 비난을 남기기도 하였다.] 입당일에 열린 국회 기자회견에서 &amp;quot;2012년 대선 때 순수한 뜻으로 정권 교체를 위해 뛰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 이 자리에 섰다&amp;quot;고 말했다. 아울러 더민주야말로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정신이 합쳐진 60년 민주당의 정통 본류이며, 더 이상 돌아가신 [[김대중|아버지]]의 이름을 호남 분열과 갈등의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되고 분열의 수단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며 [[국민의당(2016년)|더민주 탈당파]]를 겨냥했다. &lt;br /&gt;
&lt;br /&gt;
이미 입당 인사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총선]]에 나가겠단 말을 하려고 이 자리에 선 게 아니라며 선을 그었지만, 나중에라도 총선에 나가겠냐는 기자들 질문에는 &amp;quot;나중에 분명히 밝히겠다&amp;quot;고 답하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과거에 무려 15억 원을 뇌물로 받은 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두 형들도 모두 감옥 신세를 져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예나 평판을 떨어뜨렸는데, 더불어민주당에서 과연 공천을 받아도 되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11년 전에 그 죗값을 다 치렀고, 김대중의 아들을 [[더민주]]가 받아들인다면 [[국민의당]]과의 정통성 논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해줄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그후 [[문재인]] 대표는 1월 26일 김홍걸 교수 본인이 아예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말해 출마설에 대해 분명한 매듭을 지었다. 총선에 공천을 받지 못한 대신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에 임명 되었다. 입당 이후 친노패권주의가 문제되자, &amp;quot;친노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확실한 것은 친문 의원은 1명 밖에 없더라&amp;quot;라는 말을 하였다.&lt;br /&gt;
&lt;br /&gt;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하여 비대위의 후보 명단 발표로 당내에 분란이 일어나자, &amp;quot;A,B,C그룹안을 나눈 다음 투표를 하는 것은 당헌에도 어긋난다&amp;quot;는 발언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20대 총선]] 기간 막판에는 [[문재인]]의 호남 선거 운동을 지원하였다. 이 때 문재인은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은퇴 및 대선 불출마를 하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호남에서는 패배했으나, 정작 총선 후에 문재인 지지율은 올랐기 때문. 비록 호남에서 패배한 것은 맞지만 문재인이 직접 지원 유세를 한 PK 지역에서 낙선을 각오하고 출마한 후보들이 8개 지역구에서 당선에 성공한 기적같은 결과를 이뤄냈고, 수도권에서 더민주 지지세가 집결하여 대승을 거두면서 상황이 미묘해졌다.[* 특히 수원시에선 민주당이 20년 이상 패배한 팔달구에서 처음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남평우 - 남경필 부자가 이 지역의 맹주였는데, 남경필 의원이 경기도지사에 당선돼 의원 자리게 비게된 이곳에 2014년 7.30 재보궐선거 때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했다가 새누리당의 정치 신인에게 패해 일시적 정계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선관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득표율을 보면 더민주가 국민의당에게 패한 것은 맞지만, '전북의 맹주'라고 불리던 정동영 의원이 이제 재선에 도전하는 정치 신인 김성주 후보에게 불과 0.7% 차이로 간신히 이기는 등 압도적 참패보다는 예상 외로 접전 구도가 많았기에 문재인이 섣불리 정계 은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다시 역전하기 시작하면서 16년 8월 기준으로 호남에서는 문재인이 지지율 1위를 회복했다.&lt;br /&gt;
&lt;br /&gt;
2016년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5.18 광주 민주화 항쟁]] 36주기 기념식에서 [[손학규]]가 &amp;quot;정치의 새 판을 짜는 데 앞장서겠다&amp;quot;고 말하자, &amp;quot;국민들께서 이미 [[20대 총선]]을 통해 새로운 판을 짜 주셨는데 무슨 새 판을 또 짠다는 것인가?&amp;quot;라며 손 전 지사에게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http://www.viewsnnews.com/article?q=132219|#]]&lt;br /&gt;
&lt;br /&gt;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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