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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카무라 슌스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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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3T04:45:0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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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4일 (화) 09:4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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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4T09:40:4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파일:HZR5N6l.jpg]]&lt;br /&gt;
&lt;br /&gt;
||||&amp;lt;#004094&amp;gt; '''{{{#ffffff 요코하마 F. 마리노스 No.10 }}}''' ||&lt;br /&gt;
||||&amp;lt;#dc0038&amp;gt; {{{#ffffff 나카무라 슌스케 }}} [br] {{{#ffffff (中村 俊輔, Shunsuke Nakamura) }}} ||&lt;br /&gt;
|| 생년월일 || 1978년 6월 24일 ||&lt;br /&gt;
|| 국적 || [[일본]] ||&lt;br /&gt;
|| 출신지 || [[요코하마]] 시 ||&lt;br /&gt;
|| 포지션 || 측면 미드필더 ||&lt;br /&gt;
|| 키 || 178cm ||&lt;br /&gt;
|| 프로 입단 || 1997년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입단 ||&lt;br /&gt;
|| 소속팀 || [[요코하마 F. 마리노스]](1997~2002) [br] 레지나 칼초(2002~2005) [br] [[셀틱 FC]](2005~2009) [br] [[RCD 에스파뇰]](2009~2010) [br] [[요코하마 F. 마리노스]](2010~) ||&lt;br /&gt;
|| 국가대표 || 98경기 24골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일본]]의 [[축구]]선수. [[J리그]]의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측면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lt;br /&gt;
&lt;br /&gt;
정교한 왼발 [[프리킥]]과 테크닉 부분만큼은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선수로, 과거 일본 국가대표팀과 [[스코틀랜드]] 리그의 [[셀틱 FC]]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일본에서는 한 때 [[박지성]]의 대항마로 나카무라를 내세우기도 했을 정도.&lt;br /&gt;
&lt;br /&gt;
일본 내에서도 상당한 인기가 있는 선수인데, 1999년 일본 천문학자가 발견한 [[소행성]]에 나카무라의 이름을 딴 '29986 슌스케'라는 이름을 명명했을 정도. &lt;br /&gt;
&lt;br /&gt;
== 선수 경력 ==&lt;br /&gt;
1997년 19세의 나이로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데뷔했으며, 그 해 FIFA 청소년 월드컵에 참가하는 일본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다. 1999년에는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어 [[오노 신지]] 등과 호흡을 맞추었으며, [[2000 시드니 올림픽]] 8강에 공헌하였다.&lt;br /&gt;
&lt;br /&gt;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 당시 [[일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싱가포르]]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 [[브루나이]]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후 대표팀에서 빠르게 주축으로 자리잡아 팀의 2000년 [[AFC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그 해 리그에서 30경기에 출장해 5골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J리그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lt;br /&gt;
&lt;br /&gt;
하지만 2001년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에서 0:5로 대패한 이후 개인기보다 팀워크를 중시하는 타입인 [[필립 트루시에]] 감독의 눈 밖에 났으며, 2002년 초에 잠시 선발되었다가 [[무릎]] 부상을 당한 이후 [[유럽]] 전지훈련에서 극심한 난조를 보이면서 '''일본 축구팬들의 절대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2002년 FIFA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닛칸스포츠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86%가 나카무라의 최종 엔트리 제외를 반대했다고 한다.] 당시 트루시에는 나카무라를 엔트리에서 제외한 이유에 대해 '''피지컬이 약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덧붙여서 당시 [[레알 마드리드]] 입단을 추진했다가 월드컵에 나오지 못해 무산되었다 [[카더라]].&lt;br /&gt;
&lt;br /&gt;
{{{#!html&lt;br /&gt;
&amp;lt;iframe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40&amp;quot; src=&amp;quot;http://www.youtube.com/embed/yT9pzH4dKmc&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월드컵]] 이후에는 350만 달러에 6개월 선 임대 후 3년 계약으로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레지나 칼초]]로 이적해, 일본에서는 네 번째로 이탈리아에 진출했다.[* 앞의 세 명은 제노아에 입단한 [[미우라 가즈요시]], 베네치아에 입단한 [[나나미 히로시]], [[AC 페루자]]에 입단한 [[나카타 히데토시]]이다.] 입단 당시 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10번을 받았는데, 초반에는 '최악의 11'에 선정될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기량을 서서히 회복하면서 32경기에서 7골을 넣어 [[AC 파르마]] 등 여러 구단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2003-04 시즌에는 부상으로 16경기에서 2골을 기록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으며, 이는 다음 시즌까지 이어졌다.&lt;br /&gt;
&lt;br /&gt;
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트루시에의 후임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쿠]]의 신임을 받아 미드필더에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으며,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와의 경기를 포함해 3골을 넣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http://www.youtube.com/watch?v=Q0huZqgqk3w|참고영상]]) 그리고 팀의 2004년 [[AFC 아시안컵]]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대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 이후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골을 기록하는 등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았으며, [[나카타 히데토시]]와 함께 일본 축구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http://www.youtube.com/watch?v=DfixH1lVe-o|참고영상]])&lt;br /&gt;
&lt;br /&gt;
2005년 레지나와 계약이 만료된 이후 --각종 [[찌라시]]들에 의하면--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독일]] [[분데스리가]]의 [[베르더 브레멘]]에서 이적 제의를 받기도 했으나, 나카무라의 선택은 [[스코틀랜드]]의 [[셀틱 FC]]였다.[* 실제로는 [[라싱 산탄데르]]와 이적 협상을 했다고 한다.] 이적료는 270만 [[파운드]]이며, 연봉은 3년간 40만 [[파운드]]를 받는 조건이었다. 이적 이후 스코틀랜드 리그 데뷔전에서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으며, 이후 연속 선발 출전을 하며 네 경기만에 첫 골을 기록하는 등 팀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 결과 2005-06 시즌 팀의 리그와 [[FA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나카무라 본인은 유럽 리그에서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lt;br /&gt;
&lt;br /&gt;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세비야 FC]]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었으며, 나카무라에 이어 [[두웨이]]가 셀틱 이적에 성공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셀틱에 입단한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안습]].-- 또한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FIFA 월드컵]]에 출전해 핵심 선수로 활약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조별 라운드 첫 경기에서 --다소 논란이 있는-- 선제골을 뽑아냈다.[* 골 장면을 보면 일본 선수들이 [[마크 슈워처]] 골키퍼를 밀어 넘어뜨리는 동작이 있다.] --그러나 경기는 결국 [[거스 히딩크|히딩크]] 매직으로 1:3으로 패배--&lt;br /&gt;
&lt;br /&gt;
2006-07 시즌에는 셀틱에서의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던디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경기에서 셀틱 이적 이후 자신의 첫 [[해트트릭]]을 기록해 '맨 오브더 매치'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http://www.youtube.com/watch?v=2TVY2YBjqf8|참고영상]]) 또한,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홈 경기와 어웨이 경기에서 모두 득점에 성공했으며, 특히 홈 경기에서는 나카무라의 골이 결승골이 되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0으로 꺾고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이후 나카무라는 손목 부상을 당해 정작 [[AC 밀란]]과의 16강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mTdEu3BtNTI|참고영상]]) 당시 나카무라가 터뜨린 [[프리킥]] 골은 많은 극찬을 받았으며, --[[영국]]의 찌라시 언론에서-- [[알렉스 퍼거슨]]이 나카무라에게 관심이 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팀에서 핵심적인 활약을 보이면서 팀의 리그 우승을 견인했으며, 리그가 종료된 이후 '스코틀랜드 올해의 선수상'을 포함해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상(물론 신인상은 제외하고)을 모두 수상하는 위업을 달성했다.&lt;br /&gt;
&lt;br /&gt;
2007-08 시즌에는 초반 무릎 부상으로 인해 약 두 달 반 가량 경기에 나오지 못했으며, 부상 복귀 이후에는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자신의 기량을 회복했으며, [[레인저스 FC]]와의 경기에서 중거리 슛으로 골을 터뜨려 일본 선수 중에서는 처음으로 [[올드펌]] 더비에서 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또한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나카무라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셀틱이 [[미즈노 고키]]를 영입하기도 했는데, 셀틱에서 나카무라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lt;br /&gt;
&lt;br /&gt;
시즌 종료 이후 나카무라의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오자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볼로냐 FC]]가 나카무라의 영입을 추진했지만, 나카무라는 계약 만료 이후 친정팀인 요코하마 마리노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거절했다. 결국 2008-09 시즌에도 셀틱에 잔류하게 되었고, 리그 100경기 출장과 두 번째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http://www.youtube.com/watch?v=SFm4ylBp-kY|참고영상]])&lt;br /&gt;
&lt;br /&gt;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된 이후에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카더라]] 통신이 있었지만, 나카무라 본인은 연봉 120만 유로에 [[RCD 에스파뇰]]과 2년 계약에 합의하여 자신이 평소 원하던 프리메라 리가 무대로의 진출을 이뤄냈다. 6000여명의 팬들 앞에서 입단식을 가져 한껏 구단의 기대를 자아냈으며, [[리버풀 FC]]와의 경기장 신축 기념 경기에서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기대가 현실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데뷔한 이후 [[비야레알 C.F.]]와의 경기에서 평점 3점을 받는 등 부진한 경기를 펼쳤으며, 서서히 출전 기회가 줄어들자 [[잉글랜드]] 챔피언쉽에 있던 [[미들즈브러]]에서 영입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나카무라 본인의 거절로 팀에 잔류했으며, 결국 2월 시점까지 12경기 출전(선발 6번)에 1도움만을 기록하는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프리메라 리가 2009-10시즌 최악의 이적 랭킹 1위로 꼽히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결국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2010 FIFA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서 본인의 친정팀인 요코하마 마리노스로 이적해 일본 무대에 복귀했으며, 데뷔전에서 골을 터뜨려 쇼난 벨마레를 3:0으로 제압하고 팀에 승리를 안겼다. 이후 본인의 소원대로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포함되어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대표팀 에이스가 [[혼다 게이스케]]로 넘어간 상황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월드컵이 끝난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였다. 은퇴 당시 A매치 98경기 출장에 24골을 기록한 상황이었으며,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센추리 클럽]]까지 채우지 않을까 여기기도 했다.&lt;br /&gt;
&lt;br /&gt;
[[J리그]]로 복귀한 이후 회춘했다는 평가를 듣고있다. 2010시즌 6골 4도움을 기록한 이후, 2011시즌 6골, 2012시즌 8골 3도움, 그리고 2013시즌에는 무려 13골 8도움을 기록하고 J리그 MVP[* 최초로 J리그 MVP를 두 차례 탄 케이스가 되었고, 2000년 처음 시상할 때는 최연소 수상(20살), 2013년 수상할 때에는 최고령 수상(35살)이라는 기록을 세웠다.]를 차지했으며, 팀에게는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일왕배]] 우승을 안겼다.[* 사실 요코하마 마리노스는 리그 우승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시즌 종료까지 두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한 경기만 승리했어도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으나 모두 패배하면서 산프레체 히로시마에게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대신 일왕배에서 산프레체 히로시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복수에 성공. 나카무라는 일왕배 결승전에서도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35세라는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 자케로니 현 일본 대표팀 감독도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발탁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amp;amp;gCode=spo&amp;amp;arcid=0007898106&amp;amp;code=41161311|참고뉴스]]&lt;br /&gt;
&lt;br /&gt;
== 평가 ==&lt;br /&gt;
[[한국]]에선 그의 커리어 중 가장 화려한 시기가 [[셀틱 FC]]였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스코티쉬 [[프리미어 리그]](SPL)은 [[올드펌]]을 제외하면 다수의 한국 선수가 뛰고 있는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EPL)보다 수준이 훨씬 낮기 때문. 일본 대표팀 [[감독]]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lt;br /&gt;
&lt;br /&gt;
셀틱 시절 이후는 내리막 행보인데다 [[A매치]]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자국 [[축빠]]들에게는 늘 까이고 있는 실정. 특히 경기후 인터뷰에서는 늘 부상에 대한 핑계가 많아 일부에선 '다리가 아프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일본 미디어가 붙이는 '[[기적]]의 [[판타지스타]]'라는 근사한 수식어와는 달리 일본 축빠들이 호칭하는 별명은 キノコ([[버섯]]). 십수년째 불변인 헤어스타일이 이유인 듯 싶다. &lt;br /&gt;
&lt;br /&gt;
프리메라리가에서 부진을 두고 한국해축빠,또는 일까들이 나카무라가 스페인에서 말아먹어서 한국선수가 스페인 가는 게 어려워졌다고 비웃는 경우도 있는데 우습게도 일본에선 정반대로 이천수와 박주영을 두고 똑같은 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하여 재일교포 축구전문가 신무광이 포포투 플러스 한글판에서 이런 지적에 그러는 당신들은 나카무라 순스케는? 아니 한국(2명)보다 더 많이 가서 말아먹었던 수로 일본이 많다(6명), 솔직히 아시아 선수로 스페인 무대에서 잘한 선수라곤 [[자바드 네쿠남]] 하나뿐인데 그럼 이란을 칭송할 것인가? 라고 비아냥거리자 반론하던 일본 축구계 인물들이 없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러나 분명 [[프리킥]]만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특히 위에서 서술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터뜨린 골은 이후로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 2008년 [[골닷컴]]에서 진행한 '세계 최고의 프리키커' 설문 조사에서 나카무라가 20.79%의 지지로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에 이어서 2위를 차지했다.] 이전에는 한 네티즌이 [[유튜브]]에 나카무라와 [[데이비드 베컴]]의 프리킥을 비교하는 영상을 올려서 화제가 된 바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zIdacS0v1B4|참고영상]]) 또한 중거리 슛 능력도 절대 무시 못한다.&lt;br /&gt;
 &lt;br /&gt;
== 기타 ==&lt;br /&gt;
여담으로, 한국 뉴스 기사에서 이 선수의 이름이 '나카무라 쑞봬'로 바뀌어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원인은 슌스케에서 '슌'이라는 글자가 KS X 1001 [[완성형]] 코드에 없는 글자다 보니까 그게 깨져서 그렇게 나온 것 같다. [[http://www.tjplaza.com/?article_srl=5780599|#]] 동명의 [[야구]] 선수인 [[와타나베 슌스케]]를 다루는 기사에도 간혹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http://news.nate.com/view/20151105n29236|##]]&lt;br /&gt;
&lt;br /&gt;
--배급사가 [[세가]]인-- [[풋볼 매니저]]에선 기술 능력치가 [[박지성]]보다 훨씬 좋다. 적어도 기술능력치만 놓고 본다면 여타 다른 잘하는 선수들이 부럽지않다. 하지만 피지컬 능력치는 박지성보다 훨씬 낮아서 오래 굴리기 힘들다.&lt;br /&gt;
&lt;br /&gt;
작은 체구를 가져 수많은 좌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실한 노력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했다는 내용으로 일본 [[초등학생]] [[도덕]]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lt;br /&gt;
&lt;br /&gt;
2008년 [[영국]]의 한 사이트에서 여성팬 2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축구선수' 선정에서 20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오사카]] 거주 한국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한식을 꽤나 즐긴다고 한다. 일본은 물론 스코틀랜드에서 뛰던 시절에도 한식당을 곧잘 찾곤했다고. 한국어도 기본적인 인사말 정도는 할수있다고 한다.&lt;br /&gt;
[[분류:축구선수]]&lt;br /&gt;
&lt;br /&gt;
[[후안 로만 리켈메]], [[루이스 가르시아]]와는 생년월일이 같다. 과연 1978년 6월 24일, 어떤 일이 있었길래...&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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