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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기남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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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2T07:19:14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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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4일 (화) 10:19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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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4T10:19:4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상위 항목 : [[영화 감독/목록]]&lt;br /&gt;
(1942.04.17- )&lt;br /&gt;
http://img.seoul.co.kr//img/upload/2011/01/08/SSI_20110108190457.jpg&lt;br /&gt;
[목차]&lt;br /&gt;
== 소개 ==&lt;br /&gt;
~~이딴 망작을 왜 남기남~~ &lt;br /&gt;
한국의 ~~정체불명~~ 영화감독.&lt;br /&gt;
~~거꾸로해도 남기남~~&lt;br /&gt;
&lt;br /&gt;
사실 [[에드 우드]]...와 비교는 [[씨네21]]에서 처음 시도했다. 하이텔 시절의 모 평론가는 그를 [[로저 코먼]](Roger Corman 1926.04.05~)에 비유했다. 사실 유명인사들의 [[리즈시절]]에 작업했다는 점이나 현역 유명인들을 출연시키는 점에서는 로저 코먼에 더 가까울것이다.  남기남이 [[심형래]], [[최수종]], [[백일섭]] 등과 작업했듯이 코먼은 [[잭 니컬슨]],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작업했다. 그리고 이들이 유명해진 뒤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하다!&lt;br /&gt;
&lt;br /&gt;
별명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카메라잡이'''. 예를 하나 들자면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를 찍었을 당시 영화 도입부에 [[갈갈이 삼형제]]가 [[산]]에서 내려오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을 잘 찍고 갑자기 남 감독이 삼형제에게 제자리 점프를 할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에는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했지만 영화를 완성하고 시사회장에서 그 이유를 알았다고 한다. 바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야말로 영화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찍은 셈. ~~배우들이 무슨 장면을 찍는지도 모르는데 찍고 있다.~~&lt;br /&gt;
&lt;br /&gt;
[[서라벌예술대학]][* 현 [[중앙대학교]] [[영화학과]]의 전신. 예상 외로 남기남은 정식으로 영화공부를 한 사람이다.]을 졸업한 후 1972년, 《내 딸아 울지 마라》로 데뷔, 100여 편이 넘는 셀 수 없는 작품을 감독했다. 셀 수 없는 건 일단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이 당시까지만 해도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 음반같은걸 보존해야한다는 인식이 드물었고[* 그래서 1980년대까지 TV프로그램이나 영화자료같은건 보존미흡이나 테이프 돌려쓰기로 유실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록도 그다지 쳬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사이트마다 그의 작품 수에 대한 설명이 각각 다르다. 남기남 자신도 그 수가 헷갈린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렇게까지 많이 찍을 수 있었던 이유는 비슷한 처지였던 [[고영남]] 감독 문서에 잘 나와 있지만, 이때는 영화사가 외국 영화를 수입할 때 일정 작품의 국내 영화를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 그래서 거기에 등장한 게 빠른 시간 내에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감독 남기남이었다.[* 남기남은 빨리 대충 싸게 많이 찍었다면, 고영남은 많이 찍기는 더 많이 찍는데 대신 최소한의 퀄리티는 유지하는 식이었다. 이 때문에 실제로 상영된 영화수에서 한국 역사상 1, 2위를 다투는 고영남과 달리 남기남은 순위권에 들지 못한다. 당시에는 찍었다고 등록하는 것이 중요했지, '''영화를 실제로 극장에 거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남기남의 영화 상당수는 실제로 극장상영은커녕 비디오도 나오지 못하고 영화사 창고에서 썩었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저예산과 적은 시간 안에 빠르게 영화를 찍어냄으로서 부족한 작품을 채워내는 감독으로의 역할을 한 것. 사실 스크린 쿼터 폐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베 볼|이런 제도의 악용을 지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남기남이야 말로 쿼터제가 낳은 [[사생아]]라는 말씀.[* 스크린 쿼터제와 당시 영화법은 약간 다르긴 하다. 당시 영화법은 외화수입을 제약한 형태였기 때문. 영화를 상영하는 것에는 제약이 없었다.] 참고로 로저 코먼의 컬트 영화 《[[흡혈식물 대소동|공포의 작은 가게(Little Shop of Horror)]]》는 이틀 만에 찍어서 [[기네스북]]에 올랐었다. &lt;br /&gt;
&lt;br /&gt;
사실 [[임권택]] 감독도 이런 쪽에서 일했지만 적어도 그는 이런 와중에서도 《짝코》나 《아밴고 공수군단》 같은 진짜 걸작도 꽤 찍었다. &lt;br /&gt;
&lt;br /&gt;
이름이 남기남인 이유가 '필름을 왜 남기남?'이라는 썰렁한 농담이 있을 정도로[* 이건 씨네21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개그가 원조다], 많은 작품을 빠른 시간 안에 찍어내는 특유의 기술로 유명하다. 데뷔 초기에는 [[드라마]]를 찍었으나, 시대가 뒤집혀서 그가 일을 못하게 된 상황에서[* 당시 [[유신]] 정권으로 인해 영화사의 수가 제한됐고, 그 시대가 뒤집히는 동안 본인 주장에 큰 작업을 준비하던 그는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타이완]]의 제작자와 손잡고 당시 [[이소룡]]의 사망 이후의 틈을 탄 짝퉁 이소룡 영화들를 찍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빠른 작업속도는 [[충무로]]에서 알려져서 여러 싸구려 영화들을 찍게 됐다. 그러다보니 그의 작업 전반은 [[개그맨]]의 캐릭터에 의지한 개그물이나, 액션만 있는 액션물로 차게 되었다. 그 와중에 간간히 예술성 있는 영화를 찍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시도'''다. 하지만 그 특유의 엉성함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lt;br /&gt;
&lt;br /&gt;
그 빠른 속도에는 대부분 리허설을 시켜도 카메라를 돌려서 끝내버리고, 소림사 촬영 당시 허가를 안 받고 찍고 물러가서 스태프가 빨리 가서 허가를 받으면 다시 찍을 수 있다고 하자 이미 다 찍었는데 뭘 찍냐고 했다는 등, 리허설시키는 것과 동시에 찍는 걸로 유명하다. 《[[무릎팍도사]]》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심형래]]의 영화 방식이 바로 남기남식 영화 구도이다. 시간이 아까워서 빨간 화면을 만들기 위해서 카메라 렌즈 위에 빨간 셀로판지를 덮어씌운 일화는 유명하다. 또 다른 일화로는 《영구와 땡칠이》의 실내 세트를 짓는 일주일 동안 《태권소년 어니와 마스타킴》라는 제목의 액션 영화를 [[미국]] 가서 찍었다. 이 작품에선 '''[[강석현]]'''과 '''[[신성일]]'''이 나온다.&lt;br /&gt;
&lt;br /&gt;
1989년, 비공식적 기록으로는 180만 관객을 동원한 《영구와 땡칠이》로 반짝 전성기를 맞기도 했지만(당시 《영구와 땡칠이》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을 흥행에서 눌렀다. 그런데, 《영구와 땡칠이》의 공식 집계는 없다시피한[* 1990 년 1월호 로드쇼에선 아예 이 영화가 집계에 없던 반면에 스크린 지에선 1위로 선정했다. 스크린 관객 수치에선 적어도 서울 43만으로 서울 30만이 채 안되던 《최후의 성전》을 이기긴 이겼다.]게 사실이라 분명치는 않다. 하여간 [[인기]]는 대단했다.) 그 후 계속되는 흥행 실패와 부도로 인해 [[90년대]] 중반 남기남은 개인적으로 큰 고통을 겪는다. 본인 말로는 32억 원이 공중분해됐다고. 흥행 실패와 부도의 가장 큰 이유는 극장에 영화를 걸지 못한 것이다. 아마 이전의 남기남과 다른 진지하게 찍은 영화들이라 더더욱 극장에 못 걸은 것으로 짐작된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외화수입개방 때문이다. 1984년 외화수입이 전면 개방되고, 미국의 압력으로 1988년부터는 헐리우드 직배 영화가 등장한다. 기존 남기남의 방식으로는 애들의 코묻은 돈을 빼먹는 용도(방학전에 찍어서 방학 때 개봉, 어린이날 특수용 등 빨리 찍을 필요가 있다.) 외에는 통용될 수가 없었다. 그후로도 나름대로 재기를 시도하지만 시원찮았고[* 그 시절에 만든 영화들 중 극장 개봉한 것은 천년환생 한편 뿐이었고, 그나마 그것도 땜빵용 개봉이었다.], 2003년에 [[개그 콘서트]] 출연진을 주연으로 한 여름시즌 코미디 영화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큘라》로 그럭저럭 흥행을 했지만 그뒤로 비슷한 류의 여름 영화가 몇편 나오다 말았고 본인이 만든 '바리바리 짱'조차 그 분위기에 휩쓸려 묻혔다. 요즘에도 영화는 만들지만 개봉이 안되고 있는 현실인 듯. 아마추어 평론가는 제외하더라도 씨네21에서 지속적으로 밀어주었으나....남기남 감독이 2000년 초반, 호러존이란 사이트와 인터뷰를 한 걸 보면 씨네21에서 은근히 괴작감독으로 까듯이 소개한 탓에 여길 무척 싫어했었다. [[KBS]]에서는 아예 다큐프로까지 해주었다.&lt;br /&gt;
&lt;br /&gt;
씨네21에 인터뷰를 봐도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신이 멍할 수준이다. [[저작권]]의 개념은 없고[* 홍콩 영화 용지인자(龍之忍者)의 장면을 무단으로 짜깁기해서 흑룡통첩장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무협 영화 팬덤 내에서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 물론 남기남이 활발히 활동했을 시절에는 비단 사회 문화계 전반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자체가 처참했기에 딱히 남기남만이 이상한건 아니지만 ] 빨리 싸게 찍는다면 무슨일이라도 하는 타입이다. 씨네21 인터뷰는 그나마 포장을 하려고 했는데도 그 모양이다. 코먼과 비교하려고 해도 비교하기가 미안해지는 수준이다. 애초에 코먼은 헐리우드에 엄청난 공헌을 한 전설적인 감독이자 제작가이다. 코먼은 돈될만한 영화와 저예산에 집착한 상업성때문에 까이지, 감독이나 제작자로서의 역량은 우수한 편이다[* 코먼을 까는 헐리우드의 영화 관계자들도 코먼의 영화가 예산 한도에서 그나마 괜찮게 뽑아냈다는 점은 인정한다.]. 지금 한국영화인들 중에서 [[심형래]]나 [[박준형]]을 제외하면 남기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lt;br /&gt;
&lt;br /&gt;
http://image.sunzio.com:8080/sunzio_info/2010/05/11/473486_20100511163738_img_87010.jpg&lt;br /&gt;
2010년에 《동자대소동》이 공개될 예정이었는데 2011년 1월 6일 개봉. 대한극장에선 나흘 정도 상영되고 막을 내린듯.(2010년 1월 10일 현재 전국 6군데정도 극장에서 상영 중) [[http://okdongja.co.kr/384|2008년도에 제작]]되었는데, 홍보비가 없어서 이때까지 개봉을 시도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2010년 현재 극장개봉은 포기했는지 10월 29일에 DVD출시만 잡혀있다고 되어있었는데 실제로 발매되었는지 추가바람. 이것도 공식적으로 '''4번 이상''' 밀렸다. 즉, '''언제든''' 또 밀릴 수 있다는 뜻. 아마 더 밀리면 그냥 창고로 갈 확률이 높다. [[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29835634X|하지만 드디어 DVD 발매 되었다!]] 이번에는 부동산이나 철거 문제를 다루는 등,사회적인 내용이지만...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108500015|차기작은 성인영화라고...]]&lt;br /&gt;
== 작품 목록 ==&lt;br /&gt;
 * 뒤돌아 보지 마라 - 1979년작. &lt;br /&gt;
http://www.iphotoscrap.com/Image/797/1441449151-m.jpg&lt;br /&gt;
[[반공]]액션영화로 [[조총련]]들이 마약을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밀수하려 할 때 한국의 대공수사본부는 수사원 [[백일섭]]을 파견한다. 황당한 일들의 연속 끝에 일본 형사들이 급습하여 체포하는데. 격투 장면에서 맞는 장면과 소리가 일치되지 않는다. [[http://movie.daum.net/moviedetailStory.do?movieId=1197|다운로드 서비스도 있다]]&lt;br /&gt;
&lt;br /&gt;
 * 열번 찍어도 안 넘어진 사나이 - '''1980년작. 12월 24일 개봉'''&lt;br /&gt;
만수는 광주역에서 [[라이터]] 수리점[* 그 당시에는 일회용 라이터도 잘 없었고, 대부분 [[지포]]나 고급 가스라이터였기 때문에 고장이 나면 수리점에 맡겼다. 일회용 라이터가 늘어난 것은 80년대 초중반 이후다.]을 한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과시가 심한 성격 탓에 문제를 잘 일으킨다. 교훈과 정의를 중요시하는 당시 검열이나 심의 덕에 '''전혀 개연성없이''' 조폭 박쥐파를 소탕하게 된다.&lt;br /&gt;
&lt;br /&gt;
 * 여자 대장장이 - 1982년작&lt;br /&gt;
백하촌에서는 3년마다 마을의 경비를 담당하는 경비대장을 '''권법대회'''로 뽑는다. 현직 대장 조칠은 흉악해서 마을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주인공 호생은 대장간의 딸 취취와 친한데, 취취는 초반부에 악당들과 격투를 벌이고, 그뒤로는 비중이 없다. 내용은 황당하기 그지 없는데, 소주인이 누구인지 가리는 건 솔로몬왕의 재판(아기를 둘로 자르자고 하니, 아기를 넘겨주겠다는 어머니를 승소시킨)을 카피한 거다.&lt;br /&gt;
&lt;br /&gt;
당시에는 [[이소룡]]을 필두로 권격영화가 많이 나와서, 홍콩을 무대로 한듯한 권격영화들이 쏟아져나왔다. 예를 들면 故 이형표 감독의 애권(愛拳).&lt;br /&gt;
&lt;br /&gt;
http://image.cine21.com/cine21/still/2005/0722/M0020302_1.jpg&lt;br /&gt;
 * 평양박치기 - 1983년작&lt;br /&gt;
[[이대근]]과 [[백일섭]]이 [[고등학생]]으로 나오는 영화. 개연성이 없는데 중반부에 가다가 [[반일]]영화가 된다.&lt;br /&gt;
&lt;br /&gt;
http://oldcine.co.kr/web/product/big/oldcine_1938.jpg&lt;br /&gt;
 * 흑룡통첩장 (黑龍通牒狀 ; Black Dragon's Last Warning) - 1985년작&lt;br /&gt;
1982년 홍콩의 오사원(吳思遠)감독이 제작한 용지닌자(龍之忍者; Ninja in the Dragon's Den)의 일부 신을 무단으로 도용한 다음 몇몇 장면을 새로 찍어서 짜깁기한 작품으로, 퀄리티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말이 필요없다]]. [[흑역사]]. 흑룡통첩장의 극장개봉 신문광고와 금성비디오에서 출시한 VHS 케이스 표지에서 &amp;quot;一名 : 龍의 忍者&amp;quot;라 표기한 탓에 나중에 1989년 벧엘프로그램에서 VHS로 진짜 용지닌자가 출시되었음에도 용지닌자의 국내 극장 개봉명을 흑룡통첩장으로 아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lt;br /&gt;
&lt;br /&gt;
 * 심형래의 탐정큐 - 1985년작.&lt;br /&gt;
[[심형래]]주연의 [[하드보일드]] [[누아르]]를 표방한 것 같아도,그냥 황당한 코미디영화. 심형래와 그 친구들은 무슨 사무실을 차리는데, 어느 집안에서 사람들이 연이어 죽자 그걸 수사한다. 결국 그집 재산을 가로채려는 며느리(결혼식은 안 올렸다)의 소행임을 밝혀낸다. 그런데 부자라도 집에 방공호가 있고, 그 안에 큰 동굴이 있다. 여기서 집안의 큰아들로 나오는 배우는 [[김동현]]이다.&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남기남/23.jpg]]&lt;br /&gt;
 * 따귀일곱대 - 1987년작.&lt;br /&gt;
[[심형래]]가 영구 기믹이 아니라, 천재 기믹으로 나오는 이색작. [[백일섭]]이 회장역으로 나오는데, 심형래가 결혼을 조건으로 백일섭의 따귀 일곱대를 때린다는 내용[* 부연하자면 &amp;quot;결혼을 승락받고 싶으면 내 따귀 일곱대를 때려봐라.&amp;quot;라는 내기를 백일섭이 걸자 심형래가 갖은 잔머리로 퀘스트(?)를 수행하는 내용. 그래서 마지막 일곱대까지 성공하는데에서 엔딩이 뜬다.].&lt;br /&gt;
&lt;br /&gt;
 *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 - 1989년작.&lt;br /&gt;
&lt;br /&gt;
 * 누가 붉은 장미를 꺾었나 - 1990년작.&lt;br /&gt;
김청 주연의 액션(?) 영화로 [[박근형]], [[김상순]], [[윤문식]] 등도 출연한다. 마지막에 엄청난 반전이 있는 영화. &lt;br /&gt;
&lt;br /&gt;
[[파일:갈갈이 드라큘라.jpg]]&lt;br /&gt;
 *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큘라 - 2003년작이며 정창욱 감독과 공동제작. [[윤택]] 등 웃찾사 개그맨들도 이곳에 나왔다.&lt;br /&gt;
&lt;br /&gt;
[[파일:/pds/200805/21/03/b0007603_4833880f1e532.jpg]]&lt;br /&gt;
 * 바리바리 짱 - 2005년작.&lt;br /&gt;
[[심영(야인시대)|심영]] 역할로 유명한 김영인씨가 출연했다.&lt;br /&gt;
&lt;br /&gt;
 * 동자대소동 - '''2010년작'''&lt;br /&gt;
[[정종철]],[[박준형]]주연의 영화로... DVD 출시되었는데,놀랍게도 2만원이 넘는다. 원래 신품은 그정도로 비싼 게 당연하지만... 메뉴가 어처구니 없게도 본편과 '선택 보기'외에 없고 색 보정이나 조명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 게다가 18mm로 촬영한 느낌이라서 8, 90년대 영화(그것도 뉴스의 한 장면같은 기록 영상)를 보는듯한 느낌을 전해 준다...(표지는 완전 HD로 촬영된 것 같지만 그뿐이다)[[네오 리얼리즘]]영화일까...(다시 말하지만 2010년작이다) 참고로 [[박노식]]의 [[용팔이]]시리즈처럼 결말에는 표창장을 수여받는다.&lt;br /&gt;
[[분류:한국 영화 감독]]&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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