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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양주 봉선사 동종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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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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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7일 (화) 03:55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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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南陽州 奉先寺 銅鍾. 1469년에 [[조선]]의 8대 왕 [[예종(조선)|예종]]이 아버지인 [[세조(조선)|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종. [[봉선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 [[보물]] 제397호이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봉선사]]는 969년에 창건된 절로, 조선 [[세종대왕|세종]] 때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우리나라 불교 7대 종파를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해버릴 때 혁파되어 폐사지가 되었다. 이후 폐허로 남아있다가 예종 1년, 1469년에 세조의 아내인 [[정희왕후]]가 세조를 추모하며 89칸의 규모로 다시 중창하였다.&lt;br /&gt;
&lt;br /&gt;
이후 같은 해 7월에 예종이 절을 직접 방문해 아버지인 세조를 추모하며 현판을 직접 써 걸어주고 왕실 발원으로 종을 만들게 하였다. 불교가 박해받던 조선 시대에 왕실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매우 희귀한 종이며, 가장 완성도 높은 종으로 평가받고 있다.&lt;br /&gt;
&lt;br /&gt;
높이 236cm, 무게 2만 5000근의 대형 범종으로 화려한 당초문 장식이 조각되어 있고 4구의 유곽과 보살상이 유려하게 배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고려와 조선의 양식이 혼합되어 있으며 종에 빼곡히 새겨진 명문들은 [[강희맹]]이 짓고 [[정난종]]이 썼다.&lt;br /&gt;
&lt;br /&gt;
조선 초 세조 일가가 지녔던 높은 숭불의식에 대해 알아볼 수 있으며, 아름답고 화려한 조각 기술과 제조양식 등을 통해 조선 전기의 범종 제작 기술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고 알아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재이다.&lt;br /&gt;
&lt;br /&gt;
기타 자세한 내용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7104&amp;amp;cid=46657&amp;amp;categoryId=46657|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남양주봉선사동종 항목]]이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79555&amp;amp;cid=49302&amp;amp;categoryId=49302|네이버 지식 백과]]를 참조.&lt;br /&gt;
&lt;br /&gt;
== 보물 제397호 ==&lt;br /&gt;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1_02_01&amp;amp;VdkVgwKey=12,03970000,31&amp;amp;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 남양주 봉선사 동종 (南陽州 奉先寺 銅鍾)]]&lt;br /&gt;
&lt;br /&gt;
&amp;gt;[[봉선사]] 소장. 남양주 봉선사 동종(南陽州 奉先寺 銅鍾)은 임진왜란 이전에 만든 것 중 몇개 남지 않은 조선 전기의 동종으로 예종 원년(1469) 왕실의 명령에 따라 만들었다. &lt;br /&gt;
&amp;gt;&lt;br /&gt;
&amp;gt;높이 238㎝, 입지름 168㎝, 두께 23㎝로 꼭대기에는 용통이 없고 두 마리 용이 서로 등지고 종의 고리 구실을 하는 전형적인 조선종의 모습이다. 종의 어깨에는 이중의 가로줄을 돌려 몸통 부분과 구분짓고 있으며, 종 가운데는 굵고 가는 3중의 가로줄을 그어 몸통 부분을 상·하로 나누고 있다.&lt;br /&gt;
&amp;gt;&lt;br /&gt;
&amp;gt;줄 윗부분에는 사각형의 유곽과 보살을 교대로 배치하였고 아랫부분에는 강희맹이 짓고 정난종이 글씨를 쓴 장문이 새겨져 있다. 글에는 종을 만들게 된 연유와 만드는데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어서, 대대적인 공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 종의 입구 위쪽으로 넓은 띠가 있는데 그 안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파도치는 모양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었다.&lt;br /&gt;
&amp;gt;&lt;br /&gt;
&amp;gt;고려시대에 비해 종 입구가 넓어진 형태나 몸통에 있는 가로 띠와 조각수법 등은 조선시대 나타난 새로운 양상으로, 그 특징들이 잘 나타난 중요한 큰 종이다. &lt;br /&gt;
&lt;br /&gt;
[[분류:대한민국의 보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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