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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네르바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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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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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5일 (수) 02:08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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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분류:로마제국 황제]]&lt;br /&gt;
||||||||||&amp;lt;tablealign=center&amp;gt;&amp;lt;tablewidth=100%&amp;gt;&amp;lt;#CC0000&amp;gt;&amp;lt;:&amp;gt;'''[[로마의 역대 황제|{{{#FFD700 로마의 역대 황제}}}]]''' ||&lt;br /&gt;
||&amp;lt;:&amp;gt; [[플라비우스 왕조]] ||&amp;lt;:&amp;gt;  {{{+1 ←}}} ||&amp;lt;:&amp;gt;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amp;lt;:&amp;gt; {{{+1 →}}} ||&amp;lt;:&amp;gt;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lt;br /&gt;
||&amp;lt;:&amp;gt;&amp;lt;width=30%&amp;gt; 11대 [[도미티아누스]] ||&amp;lt;:&amp;gt; {{{+1 ←}}} ||&amp;lt;:&amp;gt;&amp;lt;width=30%&amp;gt; 12대 '''네르바''' ||&amp;lt;:&amp;gt; {{{+1 →}}} ||&amp;lt;:&amp;gt;&amp;lt;width=30%&amp;gt; 13대 [[트라야누스]] ||&lt;br /&gt;
&lt;br /&gt;
[include(틀:오현제)]&lt;br /&gt;
&lt;br /&gt;
||||&amp;lt;tablealign=center&amp;gt; http://www.art-prints-on-demand.com/kunst/roman/bust_marcus_cocceius_nerva_c3_hi.jpg?width=300 ||&lt;br /&gt;
|| '''이름''' ||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br](Marcus Cocceius Nerva) ||&lt;br /&gt;
|| '''생몰년도''' ||30년 [[11월 8일]] ~ 98년 [[1월 27일]]||&lt;br /&gt;
|| '''재위기간''' ||96년 [[9월 18일]] ~ 98년 1월 27일||&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황제 즉위 전 ==&lt;br /&gt;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는 [[로마 제국]]의 제 12대 황제로,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첫 황제이다. 그와 동시에 오현제 시대 다섯 명의 황제 중 첫 번째 황제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네르바의 증조할아버지인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황제 네르바와 이름이 같다.]는 공화정 시대 말에 집정관을 역임했다. 네르바의 할아버지는 티베리우스의 친구이자 조언자였고, 아버지는 칼리굴라 시절 집정관을 지냈다. 한마디로 네르바는 몇 안 되는 공화정 시대로부터 내려온 명문가에 속해 있었고, 원로원의 중진이었다.&lt;br /&gt;
&lt;br /&gt;
네르바는 베스파시아누스에게 충성했고, 71년[* 베스파시아누스는 69년에 집권했다. 다시 말해 베스파시아누스의 중요한 측근으로, 반정공신에 속했음을 의미할 것이다.]에 집정관을 지냈다. 90년에 도미티아누스는 사트루니누스의 반란이 있었을 때 네르바와 함께 집정관직에 올랐다.[* 황제와 함께 집정관직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형식상으로 집정관은 로마의 최고 관직이었고, 황제와 동격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반란이 일어났을 때 도미티아누스가 그를 선택했다는 것인데, 이는 네르바가 원로원 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중진이었음을 의미한다.&lt;br /&gt;
&lt;br /&gt;
== 황제 즉위 ==&lt;br /&gt;
도미티아누스가 96년 암살당하자, 네르바는 고령인데다 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로원에 의해 황제에 옹립되었다. 고령인데다 자식도 없었던 네르바를 황제로 지목한 것은 조종하기 쉬운 노인을 자리에 앉혀 원로원이 정국을 장악하려는 의도였다.[* 도미티아누스가 실각한 것이 아니라 암살당했는데도, 원로원은 사후 도미티아누스를 단죄한다. 원로원을 억압했던 도미티아누스에 대한 분풀이이기도 했지만, 이는 원로원이 원로원 주도의 정국을 구상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네르바는 그가 재임하는 동안 단죄당하는 원로원 의원은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이는 하드리아누스 시기를 제외한 오현제 시대 내내 이어진다. 하드리아누스는 집권 과정에서 몇몇 반대자들을 숙청해야 했다.] 동시에, 네르바는 사재를 전부 기부해 사심이 없음을 밝힌다.&lt;br /&gt;
&lt;br /&gt;
제위계승이 잡음 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진 덕분에 내전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군대의 인기가 높았던 도미티아누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 자리에 노인이 들어앉은 것에 근위대는 불만을 품고 있었다. 군대는 불만을 품고 있었고 지지기반이 없는 늙은 황제는 계승자도 없었다. 군대는 폭동을 일으켰고, 네르바는 유폐되었다.[* 도미티아누스를 암살한 혐의를 받은 자들이 체포되어 살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네르바는 군대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트라야누스를 후계자로 지명했고, 내전 직전까지 갔던 위기를 수습할 수 있었다. &lt;br /&gt;
&lt;br /&gt;
== 평가 ==&lt;br /&gt;
재위기간이 짧았던 탓에 네르바가 이룬 업적은 적다. 포럼이 완공되었을 때 당시 황제였던 네르바의 이름이 붙어 네르바 포럼이 되었지만, 이는 도미티아누스가 착공을 지시했던 건축물이다.[* 그에게 기록말살형이 내려졌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서민들의 항의로 도미티아누스 경기장 - 현재의 나보나 광장 - 의 이름은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인지 [[나무위키]]에는 [[오현제]] 중 가장 늦게 등재되었다.&lt;br /&gt;
&lt;br /&gt;
네르바는 트라야누스를 후계자로 지명한 것 이외에 한 일이 없다는 비아냥을 받기도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수는 없다. 네르바가 트라야누스를 지명했던 결단은 내전 직전까지 몰린 국가를 구해냈다. 거기에 반은 타의였지만 양자계승의 원칙을 확립했다. 다른 왕조들과는 달리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는 내전 없이 성립되었고, 원로원과의 관계가 대단히 좋은 편이었는데[* 네르바의 제위는 원로원에 의해 정당성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시기의 원로원은 다른 때에 비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네르바의 공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친 원로원 성향의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네르바의 치세를 일컬어 황제의 권력과 시민의 자유가 양립할 수 있었던 행복한 시기라고 평가한다. 여기에서의 시민이란 곧 원로원. 다르게 말하자면 여태까지 권력을 가진 황제들은 좋든 나쁘든 원로원을 호구로 만드는 데에 열심히 몰두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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