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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느헤미야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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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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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5일 (수) 06:53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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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include(틀:성경의 목차)]&lt;br /&gt;
&lt;br /&gt;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3/39/Nehemiah1.jpg&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아르타크세르크세스왕의 술 관원이였던 유대인이다. 하칼야(하가랴)의 아들로 기록돼있다. 느헤미야(נחמיה)라는 이름은 [[야훼]]에게 위로받는다는 의미이다. 그의 헌신적인 [[예루살렘]] 복구얘기를 다룬 동명의 구약 [[성경]]이 있으며 [[에즈라]]가 기록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페르시아 왕중왕 앞에서 술담당관리로 있던 중 지인에게 고국 예루살렘의 처참한 광경을 전해들은 느헤미야는 근심하다가 왕 앞에서 암울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이게 사형에 처해질만한 행동이었다고 한다. 일종의 불경죄였다고.] 이에 왕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고 느헤미야는 자신의 조국의 수도가 처한 곤경을 얘기한다. 다행히 일이 잘 풀려 왕은 그를 유다총독으로 임명하고 장교들과 기병부대를 붙여주기까지 한다.&lt;br /&gt;
&lt;br /&gt;
이어서 느헤미야의 정적들이 등장하고 누가누가 성벽을 복구했는지 구간마다 나온다. [* 참고로 이때 성벽을 복구하면서 언제 적들이 훼방을 놓을지 몰라 일꾼들은 제각기 무장하고 공사에 임한다.]&lt;br /&gt;
&lt;br /&gt;
성벽 복구 과정에서, 예전 앗시리아의 침략으로 인해 생겨난, 이민족과의 유대인들 사이의 혼혈족인 사마리아 족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이지만 느헤미야는 거절한다. 이러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에 대해 &amp;quot;유대인들의 민족 순혈주의&amp;quot;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이는 다분히 현대의 반유대적 사고로만 바라보는, 대단히 편향적인 관점이다. 바벨론 유수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그 지역에 원래 있던 혼혈된 사마리아인들 및 모압이나 암몬인들과의 알력에 곧바로 부대껴야 했는데, 그 상황에서 믿을 수 없는 데다 관점이나 생각도 전혀 다른 주변 족속들을 결집의 핵심이 될 성전 건설에 참여시킨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 역사에 비유해 보자면, 친일파들이 독립 기념관이나 백범 기념관 건설, 유지 혹은 관리를 요구하고 또 참여 의사를 밝히는 셈. 당연히 의심부터 드는 게 자연스럽다. 느헤미야가 딱히 민족주의적이거나 골수 순혈 분자라서 저런 행동을 취한 게 아니다.&lt;br /&gt;
&lt;br /&gt;
또한 느헤미야는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상당한 현실주의자였다. 느헤미야의 전임자라고 할 수 있는 에즈라는 이방민족과 통혼한 유대인 가정들을 강제로 이혼시키고, 그 사이에서 나온 혼혈아들을 강제로 부친들과 생이별시켜서 그 당대에도 가정 파괴범으로 유대인들에게조차 욕을 먹고 있었다. 느헤미야는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이미 혼인한 가정의 현 상태는 인정하고 그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은 반드시 히브리어 교육을 시킬 것을 권장하는 선에서 끝낸다. 물론 일종의 인민 재판 비슷한 것을 열어 지도층들을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두들겨 팬 장면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센세이셔널하긴 하지만(...), 비록 자기 울분을 못 이기고 폭발하긴 했어도 실제로 이혼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lt;br /&gt;
&lt;br /&gt;
오히려 이 대목에서 '유대인'이 혈통적인 범위가 아니라 매우 종교적인 범위가 될 단초가 보인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에즈라 때까지만 해도 혈통을 매우 중시했지만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다.[* 본래는 종교적인 범위가 맞다고 하는데, 적어도 이 시기엔 그렇지 않았다. 모세오경에 외국인이 유대교로 개종한 경우 유대인으로 취급했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며, 개종해도 자손 몇 대까진 온전한 국민 취급을 받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한 것은 이방인이 자기 종교를 유지한 상태에서 혼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보는데 이 관점도 오류다. 느헤미야는 치사하게 외국인 처나 며느리에게 개종을 강요하진 않았다.] 이 경향이 굳어지는 것은 훗날의 마카베오 시대. 유일신교로 국민을 단결시키는 이 아이디어는 얄궂게도 기독교를 통해 로마에서 실천된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분류:구약성경]]&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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