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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능통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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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8T03:17:08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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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5일 (수) 06:57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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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5T06:57:5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lt;br /&gt;
&lt;br /&gt;
== 일반적인 의미 ==&lt;br /&gt;
 * 能通 : 무언가에 능숙함을 일컫는 말.&lt;br /&gt;
&lt;br /&gt;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삼국지)|오나라]]의 인물 ==&lt;br /&gt;
[include(틀:오서 정황한장주진동감릉서반정전)]&lt;br /&gt;
&lt;br /&gt;
凌統&lt;br /&gt;
(189년 ~ 217년 또는 237년[* 후술하겠지만 217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lt;br /&gt;
&lt;br /&gt;
[[오(삼국시대)|오나라]]의 장수로 [[자(이름)|자]]는 공적(公積).&lt;br /&gt;
&lt;br /&gt;
=== 정사 ===&lt;br /&gt;
==== 아버지의 죽음 ====&lt;br /&gt;
아버지 [[능조]]는 오나라의 손책과 손권을 2대에 걸쳐 섬겼다. 능통의 등장은 능조가 사망하는 시점이다. 203년에 오는 대대로 악연인 [[황조]]를 공격했는데, 그 때 능조는 [[닥돌]]하다가 눈먼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lt;br /&gt;
&lt;br /&gt;
《삼국지연의》에서 능조가 해적 출신 [[감녕]]에게 화살 맞고 죽었다고 나오는데, 이건 〈감녕전〉에 주석으로 남은 위요의 《오서》의 기록에서 나온 것이다. 이게 주석이지 본문이 아니기 때문에 본문만 보고 감녕과 능통의 원수관계가 100% 《삼국지연의》의 창작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lt;br /&gt;
&lt;br /&gt;
당시 능통은 15세였는데 능조가 국사를 위해 죽었으므로 손권은 능통을 별부사마에 제수하고 파적도위를 겸임하여 아버지의 병사를 거느리게 했다.&lt;br /&gt;
&lt;br /&gt;
==== 진근을 죽이고 ====&lt;br /&gt;
손권이 보둔과 마둔을 공격할 때 능통도 따라갔는데, 손권은 보둔을 함락시키고 마둔에는 병사 1만을 남긴 채 능통과 장이에게 포위를 맡기고 돌아갔다.&lt;br /&gt;
&lt;br /&gt;
기한이 되기 전, 능통은 대장 진근(陳勤)과 함께 술을 마셨는데, 진근은 술 마시는 예의를 어겼고 [[패드립|능통의 아버지인 능조까지 모욕]]했다. 사람들이 연회를 떠난 후, 진근은 길에서도 능조를 험담했으므로 능통은 진근을 칼로 찔러버리고 진근은 며칠 후 죽었다.&lt;br /&gt;
&lt;br /&gt;
마둔을 공격할 기한에, 능통은 진근을 죽인 죄를 지고 스스로 화살과 돌을 받아내며 싸워, 제 때에 자신이 맡은 부분을 무너트렸다. 여러 장수들은 능통의 활약으로 적을 무찔렀다. 돌아올 때에는 스스로 군정에게 가 결박되었다. 손권은 능통을 칭찬하고, 그 공적으로 죄를 면해 주었다.&lt;br /&gt;
&lt;br /&gt;
==== 복수는 물건너가고 ====&lt;br /&gt;
208년에 능통은 황조 토벌전에 따라나서 복수를 하려고 했다. 능통은 [[동습]]과 함께 몽충을 이끌고 돌격했으며, 적장 장석을 베고, 여몽이 적의 수군을 패배시킨 틈을 타서 능통은 먼저 그 성을 공격하여 크게 노획하는 등의 전과를 올린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원수인 감녕이 그 전에 투항해 버려서 레귤러 멤버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복수는 물 건너 갔고 능통은 주먹을 내리칠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lt;br /&gt;
&lt;br /&gt;
《오서》의 기록에서 능통은 아버지의 원수인 감녕에게 늘 원망을 했고 이에 감녕은 항상 능통을 경계하고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손권 역시 능통에게 한을 품지 말라고 명령했다.&lt;br /&gt;
&lt;br /&gt;
어느 날 여몽의 집에서 연회를 열었는데 능통이 칼춤을 췄다. 감녕이 이에 일어나서 자신도 쌍극무를 출 수 있다고 말했다. 여몽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자신도 칼과 방패를 쥐고 칼춤을 춰서 두 사람의 거리를 벌렸다. 후에 손권은 능통의 의도를 눈치채고 감녕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주둔하게 했다.[* 연의에서는 나중에 감녕과 화해를 하지만 정사에선 화해했다는 언급이 없다.]&lt;br /&gt;
&lt;br /&gt;
[[적벽대전]]에도 참가했으며, 남군전투에서 [[주유(삼국지)|주유]]가 감녕을 구원하러 갈 동안 본거지를 무사히 지켰다.&lt;br /&gt;
==== [[손권]]의 신임 ====&lt;br /&gt;
능통은 어진 선비와 가까이 지내며 재물은 가벼이 여겼다. 또한 공손하고, 수하를 잘 대했고 의를 중시했으며 주로 불리한 시점에서 후위를 맡거나, 불리하지 않아도 닥돌이 필요한 상황에서 먼저 창들고 뛰어가는 역할이었기에 [[손권]]이 이 친구를 크게 신임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후 2차 [[합비 공방전]]에서 영혼까지 털리고 도망치던 [[손권]]을 수하의 300명을 이끌고 죽을 힘을 다해 구원했고, 수십명을 죽였으나, 수하의 병사들은 전멸했다. 자기가 아끼던 병사들이 모두 죽자, 울기 시작했는데 손권이 말하길&lt;br /&gt;
&amp;gt;공적, 죽은 자는 이미 죽었고, 실로 경은 살아 주었는데, 어찌 사람 없음을 걱정하오?&lt;br /&gt;
라고 말하며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손권이 마음을 기울인 점에 있어서는 여몽과 능통에 대한 것이 가장 무거웠고, 주연은 그 다음이었다고 한다고 하니 그의 죽음 때 손권이 얼마나 난리를 쳤을지 짐작이 간다... 게다가 29살에 요절해버렸으니... 게다가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게 있는데 죽을때의 나이가 흔히 단명했다고 알려진 [[손견]], [[주유(삼국지)|주유]]보다도 적다!&lt;br /&gt;
&lt;br /&gt;
능통이 병으로 죽자 손권은 크게 슬퍼하고 능통의 두 아들인 [[능열]]과 [[능봉]]을 궁 안에 거둬 양육했다.&lt;br /&gt;
&amp;gt;아들인 [[능열]](淩烈)과 [[능봉]](淩封)은 나이가 각각 몇 살 밖에 되지 않아 손권이 궁 안에서 기르고 친애하며 대우함이 여러 아들들과 같으니 빈객들이 나아가 알현하면 그들을 불러 보여주며 “얘들이 내 호랑이 새끼요”라 했다. '''나이가 8, 9세가 되자,''' 갈광(葛光)에게 영을 내려 독서를 가르쳐 주게 하고, 10일에 한번은 말을 타게 하였다.&lt;br /&gt;
위 기록은 손권이 그만큼 능통을 아꼈고 능통의 자식들까지 궁에서 기를 정도로 총애를 했다는 뜻이 된다.&lt;br /&gt;
&lt;br /&gt;
=== 사망 시기 논란 ===&lt;br /&gt;
사망 연도에 29세 사망설과 49세 사망설, 두 가지 설이 있다. 능통 본인의 열전에는 49세에 죽었다고 적혀있는데(이 기록대로라면 능통의 생몰연도는 189~237), 다른 오나라의 인물인 [[낙통]]의 열전을 보면 낙통이 '''능통 사후'''에 그의 부대를 통솔하여 222년의 이릉 전투에 참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낙통은 228년에 죽었다. 237년에 죽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222년에 멀쩡히 산 사람의 부대를 이끌었다는 셈이 되는데, 낙통전에는 분명히 '능통이 죽은 후'라고 적혀 있다.&lt;br /&gt;
&lt;br /&gt;
즉 능통전이 잘못되었거나 낙통전이 잘못되었거나 둘 중 하나인데 능통전이 잘못되었다고 보는 경우 능통전의 나이 四十九를 二十九의 오기로 보는 설이 있다. 만약 낙통전이 맞다면 능통의 생몰년도는 189년~217년이 된다. 또한 능통이 [[형주 공방전]]이나 [[이릉대전]], 조비의 몇 차례의 남정 등 217년 이후 237년까지 20년간 '''숱한 중요한 전투에 참전한 기록이 없다'''는 점도 217년 사망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거기다가 [[건강실록]]에서는 217년에 죽었다고 못 박아버렸다.&lt;br /&gt;
&lt;br /&gt;
또한 능통 사후에 손권이 몇 살 밖에 안된 능통의 자식들을 궁 안에 거둬 양육했다고 한다. 능통전 기록대로 49세에 죽은 게 맞다면 당시 49세가 적은 나이는 아닌데도 그때까지 장성한 아들이 없이 유아에 불과했다는 점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lt;br /&gt;
&lt;br /&gt;
또한 합비 공방전 때 부상을 당해 손권이 배에 능통을 남겨두고 의복을 갈아입혔으며, 약을 써서 죽지 않았다는 기록이 존재하는데 이로 볼 때 합비 전투 때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어쨌든 [[오나라의 요절징크스|능통 역시 요절한 인물]]이 맞다. &lt;br /&gt;
&lt;br /&gt;
=== 연의 ===&lt;br /&gt;
[[삼국지연의]]에서의 능통과 감녕과의 ~~그렇고 그런~~ 적대관계를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김홍신 평역판 기준)&lt;br /&gt;
&lt;br /&gt;
{{|(전략) 황조를 죽인 뒤 손권군은 잔치 분위기였다. 이 때 능통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감녕이 주인공격이 되어 모든 사람의 이목을 받는 걸 보고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에 계속 감녕을 노려보다가 옆에 있는 부하의 칼을 쓱 꺼내들고 중앙으로 나서며 말했다.&lt;br /&gt;
&amp;quot;오늘은 기쁜 날이니 제가 칼춤이라도 춰 보겠습니다.&amp;quot;&lt;br /&gt;
이에 아까부터 능통의 눈초리를 느끼고 있던 감녕도 창을 하나 꺼내들고는 역시 중앙으로 나서며 말했다.&lt;br /&gt;
&amp;quot;저도 미약하게나마 창을 써 보겠습니다.&amp;quot;&lt;br /&gt;
두 사람이 칼과 창을 가지고 춤을 추는데 그 눈에 살기가 어려 있었다. 둘 사이의 분위기를 눈치챈 [[여몽]]이 얼른 칼과 방패를 들고 끼어들며 말했다.&lt;br /&gt;
&amp;quot;두 분이 춤을 추시더라도 저만큼은 추시지 못할 거요. 제 칼과 방패를 쓰는 솜씨도 봐 주시오.&amp;quot;&lt;br /&gt;
여몽은 능통과 감녕 사이에서 둘이 치고받지 못하게 거리를 벌려 놓았다. 잔치 자리에 때아닌 칼춤이 벌어지자 불안함을 느낀 장수들 중 하나가 얼른 손권에게 달려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손권이 둘 중 하나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급히 도착하자 능통과 감녕은 무기를 거두고 자리에 앉았다. 손권은 능통을 보자 호통을 쳤다.&lt;br /&gt;
&amp;quot;같은 오나라의 장수이니 원한은 씻어 버리라고 하지 않았던가!&amp;quot;&lt;br /&gt;
이에 능통이 울며 엎드리자 손권이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달랬다. (후략)|}}&lt;br /&gt;
&lt;br /&gt;
{{|(전략) 합비에서 장료군이 몰려온다는 것을 듣자 손권이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lt;br /&gt;
&amp;quot;조조군을 깨트릴 용자는 없는가?&amp;quot;&lt;br /&gt;
이에 능통이 공을 세울 기회라 여겨 나서며 말했다.&lt;br /&gt;
&amp;quot;제가 가겠습니다.&amp;quot;&lt;br /&gt;
&amp;quot;군사는 얼마면 되겠는가?&amp;quot;&lt;br /&gt;
&amp;quot;3천이면 충분하겠습니다.&amp;quot;&lt;br /&gt;
이 때 누군가가 끼어들며 외쳤다.&lt;br /&gt;
&amp;quot;기병 백이면 충분하거늘, 어찌 3천이나 끌고 간다는 말입니까?&amp;quot;&lt;br /&gt;
모두가 소리나는 쪽을 보니 바로 감녕이었다. 감녕을 원수로 여기고 있는 능통이 그 소리를 듣자 화가 날 수밖에 없어 외쳤다.&lt;br /&gt;
&amp;quot;네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amp;quot;&lt;br /&gt;
&amp;quot;3천씩이나 필요할 것이 없다, 내가 100명을 이끌고 적을 치는 것을 보라!&amp;quot;&lt;br /&gt;
이에 손권이 두 사람을 제지시키며 능통에게 군사 3천을 주고 적을 치도록 했다.&lt;br /&gt;
(중략)&lt;br /&gt;
과연 감녕은 100명을 이끌고 적진을 습격하고도 군사 한 명을 잃지 않았다.&lt;br /&gt;
(중략)&lt;br /&gt;
다음 날 장료군 측에서 악진이 나와서 도발을 하자 능통이 자신이 나서서 손권에게 말했다.&lt;br /&gt;
&amp;quot;제가 저 자의 목을 베겠습니다.&amp;quot;&lt;br /&gt;
이에 능통이 나가서 악진과 싸웠다. 한참 싸우던 중, 실수로 말에서 떨어지자 악진이 쓰러진 능통을 창으로 찌르려 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악진을 맞췄고 악진은 땅에 쓰러졌다. 조조군에서 한 장수가 나와 악진을 데려가는 동안 능통도 본진으로 돌아와 손권에게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했다. 이에 손권이 까닭 모를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lt;br /&gt;
&amp;quot;악진의 볼에 화살을 쏴서 그대를 구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amp;quot;&lt;br /&gt;
&amp;quot;모릅니다. 어느 분이십니까?&amp;quot;&lt;br /&gt;
능통이 허둥대는데 손권이 웃음지은 얼굴로 말했다.&lt;br /&gt;
&amp;quot;바로 감녕일세.&amp;quot;&lt;br /&gt;
능통은 의외의 사실에 놀라서 멍하니 있다가 감녕에게 가서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lt;br /&gt;
&amp;quot;귀공께서 큰 은혜를 베푸실 줄은 몰랐소이다.&amp;quot;&lt;br /&gt;
이후 두 사람은 원한을 씻고 친구가 되었다 한다. 손권도 두 사람이 화해하게 된 것을 큰 수확으로 삼았다.(후략)|}}&lt;br /&gt;
여기서 정사 기준으로 첫 번째 부분은 사실이고 두 번째의 부분은 감녕이 백 명의 병사로 적진을 습격한 부분은 사실이나 그 외에는 연의의 묘사이다. 실제 정사에선 능통과 감녕이 화해했다는 기록이 없다.&lt;br /&gt;
=== 미디어 믹스 ===&lt;br /&gt;
 * [[능통/기타 창작물]] 문서 참조.&lt;br /&gt;
[[분류:동음이의어/ㄴ]]&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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