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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니코메데스 4세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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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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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5일 (수) 07:34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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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니코니코니]]~~&lt;br /&gt;
&lt;br /&gt;
[[흑해]] 연안의 [[헬레니즘 제국]]의 하나인 [[비티니아 왕국]]의 마지막 왕.&lt;br /&gt;
&lt;br /&gt;
기원전 94년 아버지 니코메데스 3세의 죽음으로 왕위를 계승하고 니코메데스 4세가 되었다. 몇 년간 그냥저냥 잘 살았지만 [[폰투스 왕국]]의 국왕 [[미트리다테스 6세]]가 세력을 키워서 비티니아를 공격했다. 미트리다테스 6세는 니토메데스 4세의 형제인 소크라테스를 부추겨서 거병을 시키고, 소크라테스가 니코메데스 4세를 격파했다. 니코메데스 4세는 [[로마]]로 달아났다. 니코메데스 4세는 로마의 도움으로 왕위를 되찾았지만, 이번에는 미트리다테스 6세가 직접 군대를 끌고 비티니아로 진군해와서 다시 로마로 도망쳐야 했다. 로마에서는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사령관이 돼서 비티니아를 도와 폰투스를 공격했다. 전쟁에서 패배한 미트리다테스 6세는 니코메데스 4세의 왕위 복귀를 인정했다.&lt;br /&gt;
&lt;br /&gt;
기원전 84년 니코메데스 4세는 비티니아의 왕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비티니아는 로마의 영향력이 매우 강력해지게 된다.&lt;br /&gt;
&lt;br /&gt;
기원전 81년, 아시아 총독의 부관이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의 특사로서 비티니아에 파견되었다. 카이사르는 니코메데스 4세의 궁전에 오래 머물렀는데, 나중에 이것 때문에 니코메데스 4세와 카이사르가 [[동성애]] 관계였다는 스캔들이 벌어졌다. 고대 로마에서 동성애는 윤리적으로 금기되지는 않았지만, '삽입 당하는' 행위는 남자답지 못하는 것으로 폄하당했다. 당시 카이사르와 니코메데스 4세의 나이 차이를 볼 때, 카이사르가 '당하는' 입장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커서 더더욱 스캔들이 커진 것. 이 때문에 카이사르에게는 '비티니아 왕비'라는 별명이 붙어버렸다.(…) 오죽하면 카이사르의 개선 행사 때 개선장군을 놀려먹는 전통에 따라 병사들이 &amp;quot;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했고, 니코메데스는 카이사르를 정복했다!&amp;quot;고 소리칠 지경. 물론 카이사르는 동성애가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했지만, 로마 시민들에겐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lt;br /&gt;
&lt;br /&gt;
기원전 74년에 사망. 유언으로 비티니아 왕국을 통째로 로마에 증여해버렸으며, 원로원은 비티니아를 로마의 속주로 삼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미트리다테스 6세가 유언에 이의를 제기하며 [[아르메니아 왕국]]과 함께 로마에 싸움을 걸어 또 전쟁이 일어난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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