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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단령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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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5T14:05:52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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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5일 (수) 11:3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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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5T11:30:0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團領&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단령/example1.jpg]]&lt;br /&gt;
[[최치원]]의 초상화에 묘사된 신라 중~후기의 단령.&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단령/example2.jpg]]&lt;br /&gt;
[[정몽주]]의 초상화에 묘사된 고려 말~조선 초의 단령.&lt;br /&gt;
&lt;br /&gt;
http://www.museum.go.kr/files/upload/board/112/20111114153645.jpg&lt;br /&gt;
[[신숙주]]의 초상화. 조선 초기 흉배가 달린 단령을 입고 있다.&lt;br /&gt;
&lt;br /&gt;
http://www.cynews.co.kr/news/photo/200904/32929_16863_320.jpg?width=250&lt;br /&gt;
[[채제공]]의 초상화. 조선 중후기 흑단령의 모습이다.&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중국]]에서 유래해 [[한국]]에서도 [[신라]], [[고려]], [[조선]]에서 입었던 [[관복]]으로 [[전통의상]]의 일종이다.&lt;br /&gt;
&lt;br /&gt;
원래는 둥근 깃을 의미하나 단령포, 즉 둥근 깃의 외투를 단령이라고 한다. 특히 조선 시대 관리들이 집무를 볼 때 상복(평상복)으로 입었으며 옷의 색상과 가슴과 등에 달린 흉배와 허리에 매는 띠로 품계를 구별하였다. 현재는 전통 혼례에서 신랑이 입는 옷으로 사용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신라]] [[진덕여왕]] 2년 [[김춘추]]가 [[당나라]]에서 받아온 것이 처음이며 [[고려]] 때에도 신라의 관복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다가 왕권 강화에 큰 힘을 쏟은 광종 11년 3월에(960년) 사색 공복 제도를 시행하였다. 당시 이 사색은 자색, 단색, 비색, 녹색으로 시행이 되었다.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할 때에는 원나라의 관복인 질손을 입었고, 이후 고려 우왕 13년(1387)에 설장수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홍무제]]로부터 [[사모]]와 함께 하사받아 다시 들여왔고 [[정몽주]] 등의 주장으로 관복화되었다. 1900년에 관복이 양복으로 바뀌게 되면서 단령은 사라지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조선 시대의 단령은 처음에는 고려 후기 단령과 처음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가, 상복의 띠 만으로는 상하 구별이 잘되지 않는다고 하여 조선 단종 2년(1454년) 때부터 가슴과 등에 [[흉배]]가 달리고 소매가 점차 늘어졌고 품 또한 넓어졌다. 백관 상복의 흉배는 사각형으로, 1897년(고종 34년) 기록을 보면 왕족은 [[기린]](麒麟), 문관 당상관(정3품 이상)은 [[학|쌍학]], 당하관은 단학, 무관 당상관은 [[호랑이|쌍호]], 당하관은 단호이며 이를 보여주는 실물도 상당수 남아 있다. 초기 흉배의 크기는 상복의 가슴을 모두 덮을 정도로 컸지만, 말기에는 작아졌다.&lt;br /&gt;
&lt;br /&gt;
구조적으로도 약간 차이를 보이는데, 초기의 단령은 중국식 그대로 매듭으로 된 맺은단추로만 옷깃을 고정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맺은단추는 깃 쪽에만 남고 다른 곳은 일반 한복처럼 옷고름으로 여미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또한 색상으로도 상하 구분을 하였는데, 왕족과 당상관은 홍색, 당하관은 청색을 입도록 하여 구분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경비 절감 및 검약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추어 조선 후기에는 당상관 당하관 구분 없이 잿빛의 흑단령으로 통일되는 모습이 조선시대 관료의 초상화들의 변천을 통해 확인된다. &lt;br /&gt;
&lt;br /&gt;
한편, 단령은 혼례의 신랑 예복으로 쓰였는데, 이는 벼슬있는 자의 관복을 착용함으로써 결혼예식을 일생을 통한 최고의 경사스러운 의식으로 여겼음을 나타낸다. 혼례복으로 단령을 착용할 시 자색이나 남색의 관복을 입고 각띠를 띠고 흉배를 달았는데, 신랑예복의 흉배는 당상관과 같은 쌍학을 달았다.&lt;br /&gt;
&lt;br /&gt;
단령이 본래 중국 [[한족]] 왕조들이 고안한 의상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단령의 기원은 서역, 혹은 북방 유목민족 의상인 [[호복]]에서 비롯된 것으로 [[남북조시대]]에 처음 등장하며 이후 당나라와 송나라가 단령을 관복으로 채택하면서 중국 고유 의상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다.[* 당장 [[삼국지]]등 남북조 시대 이전 시대를 다루는 창작물을 봐도 당시 중국 관리들은 단령이 아닌 다른 의상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 드라마 [[삼국(드라마)|삼국]]에선 관복이 이후시기에는 특별한 행사에 입는 조복으로 표현되었다.]&lt;br /&gt;
== 국왕의 상복 ==&lt;br /&gt;
||&amp;lt;table align=center&amp;gt;&amp;lt;|2&amp;gt; [[파일:/files/std/pic_wanggun_01.jpg|width=100%]] ||&lt;br /&gt;
|| https://www.ilbe.com/files/attach/new/20130318/377678/129176819/957942259/773b503e611cf0b1132a06504a303395.jpeg?width=100% ||&lt;br /&gt;
&lt;br /&gt;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고려 태조 [[왕건]] 어진. 이길범 화백의 작품이다. 소매가 좁고 연한 뽕잎색의 단령상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졌다.&lt;br /&gt;
&lt;br /&gt;
||&amp;lt;table align=center&amp;gt;&amp;lt;|2&amp;gt; http://blogimg.hani.co.kr/editor/uploads/2008/04/21/106770_77233.jpg_M590.jpg?width=100% ||&lt;br /&gt;
|| http://www.designdb.com/imagebank/21/P/0000209134P.JPG?width=100% ||&lt;br /&gt;
&lt;br /&gt;
[[종묘]]에 소장된 공민왕의 초상화에서는 흑색 복두를 쓰고 옷깃이 흑색인 붉은 단령을 입고 홀을 든 모습으로 그려졌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32년(1450년) 윤1월 7일의 기록으로 보면, &amp;quot;홍무 2년에는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공민왕(恭愍王) 전(顓)에게 구장 면복(九章冕服)을 하사하셨고...&amp;quot;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1369년부터는 고려 왕도 [[곤룡포]]를 입게 되었으며, 이것이 [[조선]] 때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태조 이성계 어진이 청색인 것으로 보면 고려 왕들도 청색 곤룡포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lt;br /&gt;
&lt;br /&gt;
== 외국의 단령 ==&lt;br /&gt;
&lt;br /&gt;
[[당나라|당]]&lt;br /&gt;
&lt;br /&gt;
http://www.absolutechinatours.com/UploadFiles/ImageBase/horse-riding-polo-Tang-Dynasty1.jp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송나라|송]]&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단령/song.jpg]]&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명나라|명]]&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단령/ming.jpg]]&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lt;br /&gt;
&lt;br /&gt;
http://c2down.cyworld.co.kr/download?fid=642241b84448b5b8dec241bbac7f9bd7&amp;amp;name=%BC%EE%7E1.jpg&lt;br /&gt;
&lt;br /&gt;
&lt;br /&gt;
[[베트남]]&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단령/testalpha.jpg]]&lt;br /&gt;
중국에 온 베트남 사신들의 모습을 조선 사신들이 그린것. 보다시피 조선과 명의 관복과 매우 유사하다. 후 레 왕조(後 黎朝, 1428년 - 1788년) 시기에 입던 관복이다.&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단령/ngyen.jpg]]&lt;br /&gt;
응우옌 왕조(阮朝, 1802년 - 1945년) 시기 단령 사진. 이전의 후레 왕조 시기와 비교해 보면 관복에 문양을 수놓는 등 굉장히 화려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lt;br /&gt;
&lt;br /&gt;
&lt;br /&gt;
[[류큐왕국|류큐]]&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단령/ryukyu.jpg]]&lt;br /&gt;
16세기 말 ~ 17세기 초 류큐 국왕이었던 [[쇼네이 왕]]의 [[어진]]. 왕의 곁에 서 있는 관리들의 복식을 보면 역시 중국것과 유사한 점이 많다.&lt;br /&gt;
&lt;br /&gt;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5/5c/Prince_Sho_Kyo.JPG&lt;br /&gt;
류큐 쇼쿄왕자의 초상화&lt;br /&gt;
== [[천랑열전]]의 등장인물 ==&lt;br /&gt;
http://img42.imageshack.us/img42/9851/danryung.jpg&lt;br /&gt;
[[죽림오괴]]의 막내. [[연오랑]]의 편지가, 명부첩과 바뀌어 모든 사건을 일으킨 원흉. 본래 사유랑과 함께 청수문을 털러 갔다가, 청사검과 함께 보물상자를 한개 훔쳐왔으나, 하필 그게 명부첩이라 형제들을 모두 죽음의 구렁텅이로 이끌게된다(…)&lt;br /&gt;
&lt;br /&gt;
죽림오괴가 전부 전멸한후, 연오랑을 오라버니라 부르며 따라다니게 된다. 아군 합류 이후, 각종 인물에게 [[츳코미]]를 거는 역할이 된다. 전력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어 인질로 잡히거나, 험한꼴을 많이 당한다. 자신을 공격했던 [[월하랑]]에게는 좋은 감정이 없었으나, 연오랑이나 월하랑이나 세상물정은 영 꽝이였기에 중간에 껴서 개고생을 하게 된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연오랑과 월하랑이 [[플래그]]를 세우고, 연오랑이 절벽으로 떨어진 이후 [[적운]], [[금천무]]와 같이 행동하면서 비중이 급하락하게 된다. 최종화 이후에는 첫째 오라버니인 대호량과 같이 살게 된듯하다. 꽤나 비중이 있던 조연이였으나 [[월하랑|히로인]]은 끝내 뛰어넘지 못했다. ~~사실 일러스트만 봐도 월하랑이 백배는 더 났다.~~ 여캐들은 전부 커플[* 연오랑=월하랑, 결마로=유화, 적운=소향, 이연비=진세연, 모용비=자혜가 맺어진다. ~~죽어버린 홍군과 쌍둥이는 지못미~~]이 맺어졌건만, 단령은 혼자 솔로다. ~~괜찮아 대호량이 있잖아~~ 후속작에선 언급조차 안나온다. 안습;;&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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