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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한민국/농축산업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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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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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6일 (목) 01:47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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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상위항목 : [[대한민국]] &lt;br /&gt;
&lt;br /&gt;
[[한반도]]는 신석기시대부터 농경문화가 일찍이 발달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한국인의 주식이 '''쌀'''과 '''쌀밥'''인만큼 공산업에 이어 비중이 높은 분야가 농업이다. 또한 [[일제]]의 모진 지배를 받았다가 해방이 된 이후인 1945년 ~ 1960년대 이전까지는 공산업이 발달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농업이 주요 경제로 손꼽혔을 정도였다.&lt;br /&gt;
 &lt;br /&gt;
한반도에서 농사를 짓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 ~ 4세기경으로 추정되며 단군의 고조선 시절 한사군의 설치로 이 때부터 한반도에서의 농경기술과 문화가 진보되어 갔던 때였다. 또 삼국시대에는 수도(水稻)의 도입으로 본격적인 벼 농사를 할 수 있었고 기상학과 천문학의 발달로 한반도 농경문화는 발전을 더해가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고려왕조 때는 육식(肉食)을 금하고 채식문화 위주로 갔던 영향 때문에 농산물에 대한 재배가 성하게 되었고 농업방식도 발달하여 계단식으로 경작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농토를 확장하는 등 농업문화가 비중을 차지하였고 목축(牧畜)이 가능한 목마장(牧馬場)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육식문화가 부활한 조선왕조 때는 [[신분제도]]에 따라 농민층은 평민층으로 구분되었고 초기까지는 농업문화가 어느 정도 발달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 그리고 일부 관리들의 반란과 내전, 그리고 기근 등으로 농업이 점차 어려움을 맞기도 하였고 세도정치와 권력다툼으로 농민들의 생활도 어려워져가는 고난기를 겪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한반도 농업문화에도 영향을 받게 되면서 [[일본]]과 서구에서 건너온 밀로 만든 빵이나 과자 등이 들어오게 되면서 이 때를 계기로 쌀과 쌀밥으로 주식을 삼던 조선의 식문화를 바꿔놓게 되면서 한반도 쌀농사를 비롯한 농업에도 영향이 있었고 개화를 계기로 자본주의 방식의 도입으로 인해서 토지의 약탈이 시작되는 등 우여곡절도 겪어왔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및 [[청일전쟁]] 때는 농민들이 민중봉기에 참가하였다가 일본군에 의해 대거 사살되어 희생되기도 하였다. &lt;br /&gt;
&lt;br /&gt;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 농민들의 수난과 혹사가 이어졌던 때로 1910년 [[조선총독부]]가 조선 농민의 농토를 모두 몰수하여 총독부 명의하에 친일파 지주들에게 넘겨버리면서 많은 농민들이 빚을 지거나 농토를 상실하며 실향민이 되는 처지를 겪었고 여기에 [[산미증식계획]]으로 인한 강제적 쌀 생산을 강요받으면서 농민들의 수난과 혹사가 이어지기도 하였다. 또 일제 말기에 접어들면서는 전쟁 체재로 인해서 조선의 쌀이 모두 일본군 군량미로 강탈당하는 등 혹사가 이어져갔고 그 결과 조선의 농업은 이 떄를 계기로 침체기를 겪게된다 농업 뿐 아니라 가축들도 모두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빼앗기는 등의 수난이 이어졌다. [[3.1 운동]] 때도 농민층 일부가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본군경에 의해서 사살되어 희생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해방 이후에는 가난한 농업국가로 전락하여서 농업으로 경제적 비중을 채워갔지만 일부는 수입곡에 의존하며 어렵게 연명하게 되었을 정도로 한국 농업의 침체기가 이어지게 되었던 시절이었다. 여기에 [[남북분단]]으로 대한민국 농토 절반이 [[북한]]으로 넘어갔고 [[6.25 전쟁]]까지 겹쳐서 한국 농업은 최대 수난기를 맞이하였지만 1960년대 박정희 정부가 경제성장 발전계획을 통해서 농업에 대한 근대화 작업을 지시한 것을 계기로 이 때를 계기로 농업이 부흥하게 되었으며 축산업 역시 축산진흥 계획의 일원으로 농축산업 모두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새마을운동]]을 통한 개혁운동으로 농업문화가 발전되어가는 과정을 맞이하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1960년대 경제개발화와 도시화의 급변으로 농촌의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인력 대부분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등 인구감소와 인력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여기에 '''우루과이 라운드''', '''FTA 체결''', '''도농 행정통합 추진''', '''쌀 시장 개방''' 등 여러가지 변수가 작용하여 농촌의 어려움이 있었고 여기에 기후로 인한 가뭄과 물 부족 역시 농업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또 태풍과 폭설 등으로 인해서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농가가 증가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lt;br /&gt;
&lt;br /&gt;
현재 한국 농민의 연령층 수준은 최고 7,80대 이상이 많은 편이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귀농 문화'''가 활발해지면서 도시에서 살아왔던 일부 유입층이 생기면서 농촌의 활성화가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뿐 귀농을 한다고 해도 은퇴자 출신들이 많고 여전히 젊은층에서는 농업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서 어려움이 있는 편이다.&lt;br /&gt;
&lt;br /&gt;
귀농을 했다고 해도 일부에서는 도시 출신들을 중심으로 이미 고정이 된 도시의 인식을 농촌에서 그대로 이어받거나 집단문화 성향이 짙은 농촌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해서 도로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아예 원주민들과 인식 차이로 갈등을 빚는 등 문제점도 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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