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8C%80%ED%95%9C%ED%95%AD%EA%B3%B5_YS-11%EA%B8%B0_%EB%82%A9%EB%B6%81_%EC%82%AC%EA%B1%B4</id>
		<title>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8C%80%ED%95%9C%ED%95%AD%EA%B3%B5_YS-11%EA%B8%B0_%EB%82%A9%EB%B6%81_%EC%82%AC%EA%B1%B4"/>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8C%80%ED%95%9C%ED%95%AD%EA%B3%B5_YS-11%EA%B8%B0_%EB%82%A9%EB%B6%81_%EC%82%AC%EA%B1%B4&amp;action=history"/>
		<updated>2026-05-14T00:20:0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8C%80%ED%95%9C%ED%95%AD%EA%B3%B5_YS-11%EA%B8%B0_%EB%82%A9%EB%B6%81_%EC%82%AC%EA%B1%B4&amp;diff=796661&amp;oldid=prev</id>
		<title>2017년 2월 7일 (화) 08:3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8C%80%ED%95%9C%ED%95%AD%EA%B3%B5_YS-11%EA%B8%B0_%EB%82%A9%EB%B6%81_%EC%82%AC%EA%B1%B4&amp;diff=796661&amp;oldid=prev"/>
				<updated>2017-02-07T08:30: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관련 문서 : [[북한의 대남 도발사]], [[사건 사고 관련 정보]], [[대한항공/역사]]&lt;br /&gt;
&lt;br /&gt;
[include(틀:사건사고)]&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대한항공 YS-11기 납북사건은 [[1969년]] [[12월 11일]]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을 태우고 오후 12시 25분경 [[강릉시|강릉]]을 출발해 [[서울특별시|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NAMC YS-11기 국내선 쌍발 [[여객기]]가, 출발한 지 약 14분 만에 [[강원도]] [[평창군|평창]] 대관령 일대 상공에서 승객으로 위장해 타고 있던 북한 [[공작원]] 조창희에 의하여 [[하이재킹]]되어 [[북한]] 원산 인근의 선덕비행장에 강제 착륙된 사건이다.&lt;br /&gt;
&lt;br /&gt;
== 사건 전개 ==&lt;br /&gt;
당시 [[평양방송]]은 사건 발생 후 약 30시간 뒤인 [[12월 13일]] 새벽,  [[조종사]] 2명의 자진 입북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도착하였다고 밝혔다. [[12월 22일]]에 [[판문점]]에서 [[유엔]]의 요청에 의하여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회의'가 열려 납북된 사람들과 여객기 기체의 송환을 요구하였다. 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UN에서 가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며 거부하였다. [[대한민국]]은 [[일본]] [[적십자사]] 및 국제적십자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협상을 성사시키려 하였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사건 이후 대한민국 각지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며, 12개국 주요 항공사에서 이 사건에 대해 규탄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그러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70년]] [[2월 5일]] 드디어 납북자들을 송환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다시 약속을 뒤엎고 승무원 4명과 승객 8명은 송환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결국 대한민국의 지리한 송환 협상에도 불구하고 [[2월 14일]] 판문점을 통해서 12명을 제외한 39명을 송환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이 사건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국무회의]] 의결을 통하여, '탑승객에 대한 검문검색 강화', '비행장 직원에게 사법권 부여', '민간기 승무원들에게 무기 휴대 허용', '승객의 익명 및 타인 명의의 사용 금지' 등의 한층 강화된 항공기 보안 대책을 수립하였다. [[2001년]] [[2월]]에는 송환되지 못한 승무원 중 한 명이었던 성경희가 제3차 [[이산가족]] 방북단으로 평양을 방문한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 수사 결과 ==&lt;br /&gt;
[[대한민국]] [[내무부]] 치안국은 [[12월 15일]] 탑승자들의 가정환경과 과거행적 등 주요 신상을 조사한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방송이 '조종사 유병하가 납북을 주도했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승객 중 한 명으로서 강릉에서 병원 운영을 하던 채헌덕'이 범인이라며 '그가 기내에서 승객 조창희와 부조종사 최석만을 현혹하여 여객기를 납북시켰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표는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단순히 추정으로 발표한 결과였다. 조중훈 당시 [[대한항공]] 사장은, [[내무부]]의 수사 결과에 불복하고 [[12월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부조종사 최석만이 [[간첩]]행위를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으며, 경찰 측의 발표는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닌 단순 추리에서 나온 추정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표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3개월 후 피랍자 송환이 이뤄지면서 밝혀졌다. [[1970년]] [[2월 15일]] [[중앙정보부]]와 치안국은 송환된 피랍자들에 대한 재조사 결과 고정 [[간첩]]이었던 조창희가 '한창기'라는 가명을 사용해 [[대한민국]]에서의 [[간첩]] 활동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령을 받고 [[월북]]을 계획해 승객으로 비행기 앞쪽 좌석에 앉아있다가 이륙한 지 약 14분 후 [[조종사]]를 위협해 납북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날 발표에서는 당초 범인으로 발표되었던 채헌덕은 언급되지 않았으며, 부조종사 최석만이 채헌덕에게 포섭되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발표 후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은 &amp;quot;이 [[사건]]이 간첩 조창희의 단독 범행임이 드러남으로써 그동안 당국이 벌였던 수사나 납북 직후의 발표가 얼마나 졸렬했느냐는 것이 증명되었다&amp;quot;며 [[내무장관]]과 수사 책임자들의 문책을 요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분류:항공 사건사고]]&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