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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한화사전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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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6T11:28:55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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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7:31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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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17:31:5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大漢和辭典&lt;br /&gt;
&lt;br /&gt;
[[일본어]] : 大漢和辞典(だいかんわじてん, 다이칸와지텐)&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가 편찬하고 다이슈칸쇼텐(大修館書店)에서 발행한 역대 최대 규모의 한화(漢和)사전.&lt;br /&gt;
&lt;br /&gt;
다이슈칸쇼텐의 사장인 스즈키 잇페이(鈴木一平)가 모로하시에게 집필을 의뢰한 1925년부터 착수하여 75년이 지난 2000년에야 완성을 보았다. 사실, 1960년에 13권으로 일단 사전 부분은 완간되었고, 14~15권은 수정증보된 내용이다.&lt;br /&gt;
&lt;br /&gt;
대만의 &amp;lt;중문대사전&amp;gt;이나 중국의 &amp;lt;[[한어대사전]]&amp;gt;이 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한 결과물이고, 대한민국의 &amp;lt;한한대사전&amp;gt;의 경우도 [[단국대학교|대학]]의 전폭적 지원 아래 [[http://user.dankook.ac.kr/~oriental/|연구소]]의 많은 연구원들이 참여한 집합적 성과인 것과 비교할 때, 대한화사전 발간 과정을 보면 일개 출판사 사장인 스즈키가 기획하여 전 재산을 쏟아붓고 한학자인 모로하시 혼자 모든 편찬 작업을 도맡아 일생을 거쳐 완성한 집념의 성과로, 결국 스즈키는 기쿠치칸상(菊池寛賞)을, 모로하시는 문화훈장을 수상했다.&lt;br /&gt;
&lt;br /&gt;
== 출판 과정 ==&lt;br /&gt;
=== 모로하시 ===&lt;br /&gt;
모로하시 데쓰지는 1883년 일본 [[니가타|니가타현]]에서 [[서당]] [[훈장#s-1|훈장]]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한학을 익혔으며 동경고등사범학교 국어한문학과를 졸업하고 1919년 문부성 중국철학 문학연구생으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lt;br /&gt;
&lt;br /&gt;
중국의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청조 교감학(校勘學)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다음과 같이 당시를 술회하였다. 이것이 대한화사전 편찬의 출발점이 되었다.&lt;br /&gt;
&amp;gt;중국 유학시절 하루의 3분의 1이나 4분의 1을 사전을 뒤지거나 원전(原典)의 감고(勘考)하는 일이 일상이었는데, 만일 완전한 원전에 의해서 완전한 해석을 한 사전이 있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중략) ...중국에 [[강희자전]]은 있으나 숙자(熟字)는 없고, 패문운부(佩文韻府)는 성어(成語)는 많으나 해석이 없다. '그러면 내가 한 번 해볼까'하고 막연히 생각한 적이 있다.&lt;br /&gt;
&lt;br /&gt;
=== 스즈키 ===&lt;br /&gt;
다이슈칸쇼텐의 창업자 스즈키 잇페이는&lt;br /&gt;
&amp;gt;출판은 천하의 공기(公器)이다. 한 나라의 문화의 수준과 그 전모를 보이는 출판물을 간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출판업자가 이루어야 할 책무이다. 첫째로 실제로 도움이 되는 편리한 것(검색상 부정확한 것을 바로 잡음), 둘째로 결코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정확하고 다른 것보다 우수한 특색을 가진 것), 셋째로 후세까지 남는 것이라는 세 가지를 고려하여 한 권의 한화사전을 출판하여야 한다.&lt;br /&gt;
는 사명감에 사전을 집필할 적임자를 찾던 중 모로하시 데쓰지와 만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 출판 ===&lt;br /&gt;
1928년 정식 출판 계약을 한 이후 모로하시는 [[강희자전]]을 비롯한 중국의 전적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어휘를 수집하고 원전의 용례를 모아 카드로 작성하기 시작, 1931년에 이르러 이 카드가 40만을 헤아려 출판사가 계획한 한두 권으로 담을 수 없는 양으로 늘어났다. &lt;br /&gt;
&lt;br /&gt;
그러자 스즈키는 규모의 확대를 받아들이고 이 사전을 세상에 내는 일이라면 자신의 일생을 걸겠노라고 결의, 사전에 알맞게 정판(整版) 공장을 따로 설치하고, 필요한 활자를 일류 목판 조각사 수십 명을 동원하여 조각하게 하였다.&lt;br /&gt;
&lt;br /&gt;
드디어 1941년 마감 단계에 들어가 표제자와 어휘에 일련 번호를 붙이고 최종적인 교정을 행했는데 이 기간에 4명의 조수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었고 모로하시도 [[백내장]]으로 한 쪽 눈이 실명하게 되었다.&lt;br /&gt;
&lt;br /&gt;
1943년 9월 10일 제1권이 간행되자 그 반향은 엄청나 모로하시에게 아사히문화상이 수여되고 책의 예약 또한 3만 부를 넘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1945년 2월 25일 동경 대공습으로 조판해놓은 1만 5천 페이지 분의 활자와 어렵게 입수한 용지가 모두 재로 변하는 일이 발생하여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였으나 불행 중 다행히 모로하시에게 전권의 교정쇄 3부가 남아 있어 재기의 발판이 되었다. &lt;br /&gt;
&lt;br /&gt;
전쟁이 끝난 후 사전 편찬을 재추진하며 스즈키는 사운을 걸고 이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대학 재학 중인 장남과 고등학교 재학 중인 차남을 모두 퇴학시켜 사업에 참여하게 하여 장남은 경영에, 차남은 식자 기술을 익히게 했다. 후에 삼남은 대학 졸업 후 경리 업무를 맡게 했다. &lt;br /&gt;
&lt;br /&gt;
또한 목판 인쇄를 위해 사진식자기연구소의 이시이 모키치(石井 茂吉)를 일 년간 설득하여 승낙을 얻었고 이시이 모키치는 6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맡은 일의 일관성을 위해 표제자를 모두 혼자서 써내야하는 힘든 일을 하루에 20자씩 8년간에 걸쳐 수행하였다. 이 공로로 훗날 서체 개발의 공으로 기쿠치칸(菊池寬)상을 받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마침내 27년의 각고 어린 노력 끝에 1955년 8월 제1권의 인쇄가 마무리된다. 이 때까지 이작업에 종사한 인원이 22만 2천6백82명, 비용 또한 당시 물가로 환산하여 약 6억엔을 넘었다.&lt;br /&gt;
&lt;br /&gt;
== 영향 ==&lt;br /&gt;
대한화사전의 편찬은 한자와 한문의 종주국인 중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lt;br /&gt;
&lt;br /&gt;
[[대만]]은 국방위원회가 중심이 되고 학술원이 실무작업을 맡아 1962년부터 1968년까지 작업해 4만9905자를 담은 &amp;lt;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amp;gt;을 발간했으며, [[중국]]은 1975년 [[덩샤오핑]]과 [[저우언라이]] 등 중국 지도부가 직접 독려하며 국책사업으로 사전 편찬을 시작, 18년 동안 연인원 1000명을 동원해 단자(單字) 2만여자, 37만 어휘를 담은 &amp;lt;[[한어대사전]]&amp;gt;(漢語大詞典) 13권을 1994년 완성했다.&lt;br /&gt;
&lt;br /&gt;
우리나라에선 [[http://user.dankook.ac.kr/~oriental/|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가 1978년 편찬에 착수해 1999년 제1권을 낸 후 2008년 10월, 30년 4개월 만에 전질 16권 &amp;lt;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amp;gt;을 완간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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