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8F%85%EB%8F%84_%EB%B0%80%EC%95%BD</id>
		<title>독도 밀약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8F%85%EB%8F%84_%EB%B0%80%EC%95%BD"/>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8F%85%EB%8F%84_%EB%B0%80%EC%95%BD&amp;action=history"/>
		<updated>2026-06-10T09:47:27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8F%85%EB%8F%84_%EB%B0%80%EC%95%BD&amp;diff=69074&amp;oldid=prev</id>
		<title>2017년 1월 28일 (토) 14:54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8F%85%EB%8F%84_%EB%B0%80%EC%95%BD&amp;diff=69074&amp;oldid=prev"/>
				<updated>2017-01-28T14:54:5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상위 문서: [[조약, 협약, 협정 관련 정보]], [[밀약]]&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독도밀약이란 [[정일권]]-고노의 '미해결의 해결' 이라는 대원칙 아래 1965년 1월 11일 서울특별시 성북동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 자택에서 정일권 [[국무총리]]와 우노 소스케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 의원이 한일정상회담 에서 한일기본조약 체결 과정 중 큰 문제였던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의했다고 '''주장'''되는 조약이다.&lt;br /&gt;
&lt;br /&gt;
이 밀약의 실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핵심적인 주장이 아래 블로그에 잘 요약되어 있다.&lt;br /&gt;
[[http://blog.daum.net/kimys1267/8874868]]&lt;br /&gt;
&lt;br /&gt;
&lt;br /&gt;
{{|독도밀약은 다음 날 [[박정희]]에게 재가를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한 인물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친형 당시 한일은행 전무인 김종락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락은 월간중앙과 인터뷰에서 &amp;quot;대한민국과 일본이 독도 문제를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 한다. 일단 해결로 간주한다는 아이디어는 내가 냈다&amp;quot;고 밝혔으며 박정희 군사정부는 독도밀약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인정과 함께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김종필과 독도밀약을 폭로하다가 통역관의 실수로 실패했다고 밝혔다.  &lt;br /&gt;
&lt;br /&gt;
고노 이치로등 당시 독도밀약 과정에 참여한 일본 정치인들은 독도밀약을 맺었다고 증언하였으나 현재 일본 정부는 독도밀약을 부인하며 비밀리에 영유권 관련 밀약을 맺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가능 하다고 밝혔다. &lt;br /&gt;
&lt;br /&gt;
민족문화연구소가 공개한 미 중앙정보국(CIA)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박정희 정권은 군사쿠데타를 한 1961부터 한일협정을 체결한 65년 사이 5년간에 걸쳐 6개의 일본기업들로부터 집권여당인 민주공화당 총예산의 2/3에 해당하는 6600만 달러를 제공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일본에 쌀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김종필이 재일 한국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신군부 등장 이후 밀약 문서를 없앴다. 노대니얼 박사는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전두환 씨가 정국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시끄러운 문제가 될 것 같아 사본 하나 없는 독도밀약 문건을 태워 버렸다”면서 ”거기에는 서울과 도쿄를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쉬지 않고 정서한 기록들도 포함돼 있어 안타깝다”고 실토했다.|}}&lt;br /&gt;
&lt;br /&gt;
독도 밀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lt;br /&gt;
&lt;br /&gt;
{{|1) 독도는 앞으로 한,일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lt;br /&gt;
&lt;br /&gt;
2) 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할 경우 양국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 수역으로 한다.&lt;br /&gt;
&lt;br /&gt;
3) 현재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lt;br /&gt;
&lt;br /&gt;
4) 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 나간다.|}}&lt;br /&gt;
&lt;br /&gt;
간단히 말해서 광복 이후로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독도]] 영유권에 대해, 한국과 일본은 ''''입으로는 싸우지만 주먹다짐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미리 정해둔 '''국민들은 모르는 조약'''이 실존한다는 주장이다. ~~'''[[키배]]는 하고 [[현피]]는 뜨지 않는다'''는 건가?~~&lt;br /&gt;
&lt;br /&gt;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고 독도 밀약이 계속 유효하다면, 어떤 형태로든 독도 영유권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할 수 없다. 애초에 밀약 자체가 '''애매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lt;br /&gt;
&lt;br /&gt;
'''하지만''', 증언 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어 신빙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며[* 증인채택은 아무나 받을 수 없으며, 국내 중대 사안에 대해서도 정치권의 증인채택 공방은 끊이지 않는 편. 이는 당연하지만 신뢰 문제 때문이다. 이 때문에 증언보다는 문건 같이 문서화 되있는 것이 중요하다.] , 일본 정부는 독도 밀약은 없었다며 그것을 부인하고 있다.[* 물론 밀약이면 당연히 부인할 수 밖에 없다.~~괜히 밀약이겠냐~~ 거기다 내용은 사실상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전제로 하는 조약이나 다를바가 없으니...] 미국의 비밀문서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독도를 일본에게 주라는 미국의 제안을 끝까지 거부한 바 있다는 기록이 있어 의구심이 드는게 사실이며 한일조약 당시 문제가 많았어도 독도 수호 의지는 강력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해당 글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배경 하나를 첨언하자면 밴플리트 보고서(1954)가 먼저 선제된다. 일본의 독도 소유권을 주장할 때 '''매우''' 자주 인용되는 문건이 바로 밴플리트 보고서라 불리는 문건이다. 당시 미국은 한일관계개선을 급속히 바랬고, 당시 독도는 그 관계에 걸림돌이 되었었다. 이런 배경 하에서 미국이 독도를 일본의 땅으로 인정해야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 때 이후로 한일기본조약 때도 미국은 한일 관계에 깊숙히 관여하게 된다. 당연히 한국 정부로서는 [[피꺼솟]]. 다만 밴플리트 장군은 [[친일파]]가 아니라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친한파였으며, 한미관계에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었다.][[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032358&amp;amp;cloc=olink|참고]] 더불어 김종필 전 총리는 일본에게 주느니 독도를 폭파시켜 버리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15&amp;amp;oid=055&amp;amp;aid=0000036801|참고]] 따라서 현재에도 여러 논란이 많은 주장이다.&lt;br /&gt;
&lt;br /&gt;
설사 독도 밀약이 존재하였다고 해도 현재는 폐기되었거나, 그 내용은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독도 헬기장이나, 접안시설의 개축등 3번 조항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행동이 이루어졌기 때문.&lt;br /&gt;
&lt;br /&gt;
이 밀약에 대한 찬반여부는 차치하고, 가장 큰 문제는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한일기본조약|이 밀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는 시기]]에 일본 정부 및 기업에게 막대한 원조를 받았다는 기사가 있다. 또 이 밀약이 사실이고 이후 [[전두환]] 정권에 들어와서 유명무실화 한 뒤에도, 비슷한 내용의 밀약을 다시 맺어 일본에게서 차관을 빌려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뒤 김영삼 정부에 들어서서 독도에 대한 수비를 강화하여 밀약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밀약의 연결고리가 끊기긴 했다.&lt;br /&gt;
&lt;br /&gt;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서도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있다. 진찬룽(金燦榮) 중국 런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이 1972년 중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할 때 센카쿠에 관한 영유권 문제를 거론하지 말자는 '묵계(默契)'가 존재하고 있으며, 1978년 덩샤오핑이 일본을 방문해서 이를 재확인했다는 것. 물론 이에 대해서는 센카쿠를 실효 지배중인 일본이 부인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사실확인이 정확하지 않은 주장'''이니만큼, '''맹목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 것'''이 좋다.&lt;br /&gt;
&lt;br /&gt;
== 관련 문서 ==&lt;br /&gt;
 * [[조약]]&lt;br /&gt;
 *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lt;br /&gt;
 * [[한일기본조약]]&lt;br /&gt;
&lt;br /&gt;
[각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