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8F%99%EA%B2%BD%EC%9E%A1%EA%B8%B0</id>
		<title>동경잡기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8F%99%EA%B2%BD%EC%9E%A1%EA%B8%B0"/>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8F%99%EA%B2%BD%EC%9E%A1%EA%B8%B0&amp;action=history"/>
		<updated>2026-06-28T04:23:25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8F%99%EA%B2%BD%EC%9E%A1%EA%B8%B0&amp;diff=539967&amp;oldid=prev</id>
		<title>2017년 2월 6일 (월) 16:13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8F%99%EA%B2%BD%EC%9E%A1%EA%B8%B0&amp;diff=539967&amp;oldid=prev"/>
				<updated>2017-02-06T16:13:2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東京雜記. [[조선]] [[헌종(조선)|헌종]] 11년, 1845년에 [[성원묵]](成原默)이 기존의 동경잡기를 최종 증보하여 간행한 [[경상북도]] [[경주시]] 지역의 민속향토지리지. [[규장각]]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고, [[국립중앙도서관]], [[장서각]],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다.&lt;br /&gt;
&lt;br /&gt;
1933년에는 최준이 동경잡기를 수정, 보완하여 [[동경통지]](東京通志)를 간행했다.&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경주 지역은 우리나라 상고 시대부터 최중요 지역이었다. 기원전 [[진한]]이나 천 년 가까이 [[수도]] [[서라벌]]이었던 [[신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고려]]시대에도 수도 지위는 잃었다지만 [[동경]](東京)이라 불리며 [[서경]](西京)과 함께 국가의 최중요 도시 중 하나로 여겨졌다. [[동경민란]]과 [[여몽전쟁]], [[임진왜란]]으로 크게 파괴되어 [[조선]]시대에는 비교적 쇠락했지만, 그럼에도 지역 중심도시 지위는 남아있었고[*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까지도 옆동네 포항이나 울산에서 경주에 장을 보고 문화생활을 하러 갈 정도였다. 지금은 그 관계가 역전되어 경주보다 포항과 울산이 각각 2배, 4배로 인구가 많아진 상태.] 상당한 상징적 의미가 남아있어 동경잡기가 최종 저술되는 [[19세기]]에 이를때까지 2천여년 이상 [[한반도]] 민족의 최고 영지이자 성지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lt;br /&gt;
&lt;br /&gt;
당연히 경주 지역 전용 지리서의 편찬은 19세기가 최초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동경지]](東京誌)라는 이름으로 작자, 연대 미상의 경주지역 지리지가 전해져 왔다. 이것을 1669년에 민주면(閔周冕), 이채(李採) 등이 편집, 보완하여 동경잡기라 이름붙였다. 이후 1711년에 남지훈(南至熏)이 내용을 증보했고, 1845년에 성원묵이 최종 중간한 것이 이 책이다. &lt;br /&gt;
&lt;br /&gt;
다른 읍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대하고 개별적인 역사적인 항목, 특히 진한과 신라 등 역대 왕조의 역사를 한 지역을 중점으로 정리했다는 점, 한 읍지임에도 경제나 정치, 군사 관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인물 관련 항목에 대한 구체적인 분류는 물론 서술 내용 비중이 다른 읍지보다 훨씬 높고 세밀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또한 현재는 사라진 경주 지역에 과거 존재했던 여러 문화 유적의 현황과 위치가 생생하게 남아 있으며, [[회소곡]](會蘇曲) 같은 신라의 가곡이나 [[연오랑과 세오녀]](延烏郎細烏女)와 같은 신라의 수많은 설화, 전설, 기담 등도 생생히 실려 있다.&lt;br /&gt;
&lt;br /&gt;
== 구성 ==&lt;br /&gt;
=== 동경잡기 제1권 ===&lt;br /&gt;
 * 진한기(辰韓紀)&lt;br /&gt;
 [[동국통감]]에서 발췌한 [[진한]]에 대한 설명.&lt;br /&gt;
 * 신라기(新羅紀)&lt;br /&gt;
 시조 [[박혁거세]] 부터 [[경순왕]]까지 역대 왕의 즉위와 사망에 대한 내용. [[유리 이사금]] 대의 [[도솔가]](兜率歌), [[아달라 이사금]] 대의 죽령과 계립령 길의 개통, [[소지왕]] 대의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인 경시의 설치, [[지증왕]]대 한반도 최초로 [[순장]]의 금지와 우경(牛耕)의 보급, 상복법(喪服法)의 제정, [[무열왕]]의 [[백제]] 멸망, [[문무왕]]의 [[고구려]] 멸망과 신역법(新曆法)의 도입, [[애장왕]]의 가야산 [[해인사]] 창건, [[진성왕]]의 폭정(暴政) 등등 신라왕들의 기사가 모두 적혀있다.&lt;br /&gt;
 * 경주지계(慶州地界) : &lt;br /&gt;
 * 건치연혁(建置沿革)&lt;br /&gt;
 * 관호연혁(官號沿革)&lt;br /&gt;
 * 속현(屬縣)&lt;br /&gt;
 * 진관(鎭管)&lt;br /&gt;
 * 속임(屬任)&lt;br /&gt;
 * 인리노비(人吏奴婢)&lt;br /&gt;
 * 읍명(邑名)&lt;br /&gt;
 * 성씨(姓氏)&lt;br /&gt;
 * 풍속(風俗)&lt;br /&gt;
 * 산천(山川)&lt;br /&gt;
 * 승지(勝地)&lt;br /&gt;
 * 토산(土産)&lt;br /&gt;
 * 성곽(城郭)&lt;br /&gt;
 * 관방(關防)&lt;br /&gt;
 * 봉수(烽燧)&lt;br /&gt;
 * 궁실(宮室)&lt;br /&gt;
 * 창고(倉庫)&lt;br /&gt;
 * 학교(學校)&lt;br /&gt;
 경주지역 향교(경주향교 등), 서원(서악서원, 옥산서원 등)과 소학당에 대해 모두 기술하였다. 경주지역 향교, 서원에 부속된 건물, 대성전(大成殿)에 배향된 인물([[설총]], [[최치원]], [[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황]], [[이언적]]), 건물의 중건과 관련된 내용 등이 상세히 기록되었다.&lt;br /&gt;
 * 역원(驛院)&lt;br /&gt;
 * 교량(橋梁)&lt;br /&gt;
 * 사묘(祠廟)&lt;br /&gt;
 * 능묘(陵墓)&lt;br /&gt;
 * 기우소(祈雨所)&lt;br /&gt;
 시조묘(始祖廟)를 비롯하여 경주시 외곽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8곳을 소개하고 있다.&lt;br /&gt;
&lt;br /&gt;
=== 동경잡기 제2권 ===&lt;br /&gt;
 * 불우(佛宇)&lt;br /&gt;
 * 고적(古蹟)&lt;br /&gt;
 * 수(藪)&lt;br /&gt;
 * 호구(戶口)&lt;br /&gt;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전성기 때의 인구수를 기술한 후 1669년의 경주지역 인구수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lt;br /&gt;
 * 군액(軍額)&lt;br /&gt;
 * 전결(田結)&lt;br /&gt;
 * 제언(堤堰)&lt;br /&gt;
 * 각방(各坊)&lt;br /&gt;
 * 각동(各同)&lt;br /&gt;
 경주를 모두 33동(同)으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는데 서원을 기준으로 범위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 &lt;br /&gt;
 * 명환(名宦)&lt;br /&gt;
 * 인물(人物)&lt;br /&gt;
&lt;br /&gt;
=== 동경잡기 제3권 ===&lt;br /&gt;
 * 우거(寓居)&lt;br /&gt;
 * 과목(科目)&lt;br /&gt;
 * 음사(蔭仕)&lt;br /&gt;
 * 효행(孝行)&lt;br /&gt;
 경주지역 효자 54명, 효녀 5명, 효부 4명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lt;br /&gt;
 * 우애(友愛)&lt;br /&gt;
 * 충의(忠義)&lt;br /&gt;
 대부분 [[임진왜란]] 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경주지역 사람들을 열거하고 있다.&lt;br /&gt;
 * 정렬(貞烈)&lt;br /&gt;
 * 기예(伎藝)&lt;br /&gt;
 * 서적(書籍)&lt;br /&gt;
 * 제영(題詠)&lt;br /&gt;
 * 잡저보유(雜著補遺)&lt;br /&gt;
 * 이문(異聞)&lt;br /&gt;
 * 남지훈(南至薰)의 발문&lt;br /&gt;
 * 성원묵(成原熱)의 발문&lt;br /&gt;
&lt;br /&gt;
[[분류:조선의 도서]]&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