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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국사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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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4T11:30:57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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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8일 (토) 15:23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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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8T15:23: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상위항목 : [[절/한국]]&lt;br /&gt;
&lt;br /&gt;
東國寺&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DGtemple01.jpg|width=600]]&lt;br /&gt;
절대 [[일본]]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다.[* 대웅전 보수 이전의 사진으로 보이며, 지금과는 대웅전 문 등이 조금 다르다.]&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전라북도]] [[군산시]]에 위치한 [[사찰]]. [[등록문화재]] 제64호. &lt;br /&gt;
--[[이동국]]과는 상관없다.--[* 재밌게도 이동국의 소속팀은 [[전북 현대 모터스]], 동국사는 전북 군산시 소재. 게다가 이동국 본인도 불교 신자라고 한다... --상관이 아주 없진 않은.... 가?--]&lt;br /&gt;
--[[동국대학교]]와도 상관없다. 아니다 동국대도 [[불교]] 학교이니 상관 있을지도?--&lt;br /&gt;
주소도 전라북도 군산시 ''동국사길 16''[* 지번 주소는 금광동 135-1이다.]으로,  길 이름이 되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동국사(東國寺)란 이름은 해동(海東)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줄인 것으로, 일본의 절이 아니라 이제 한국의 절이란 의미라고 한다.[* [[동국대학교]]의 교명 역시 1946년에 양주동 박사의 의견에 따라 '우리나라'란 뜻에서, 한자까지 똑같은 동국(東國)이라고 정하였다.]&lt;br /&gt;
&lt;br /&gt;
[[일제강점기]] 당시 500여 개가 있었다고 알려진 국내의 일본식 사찰 중에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되는 건물들 중 하나로,  '''그 중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것 중 유일하게''' 사찰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다른 일본식 사찰 건물로는 [[목포]]의 구 동본원사 목포별원과 [[경주시]]의 구 서경사가 있다. 전자는 해방 후 '''[[개신교]] [[교회]]'''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지자체의 문화센터로, 후자는 정리가 힘들 정도로 이래저래 다용도로 쓰이다가 현재는 [[무형문화재|정가]] 전수관으로 사용 중.] --[[적산가옥|적산사찰]]--&lt;br /&gt;
&lt;br /&gt;
흔히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5742|링크]]. 정확하게 말하면, 동국사는 [[절|본래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건축 당시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일본식 사찰 건물이다. 국내에 남아있는 다른 일본식 사찰 건물들은 위 각주의 사례처럼 더 이상 사찰은 아니지만 건물이 온전히 남은 경우도 있으며, 반면 계속 사찰로서 기능하더라도 건물의 형태가 많이 변형되었거나, 절을 구성하던 기존 건물들이 사라진 경우가 많다.&lt;br /&gt;
&lt;br /&gt;
물론 건물의 용도 자체는 해방 이후 한국식 [[절]]로 바뀌었다. 불행했던 역사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이색적인 근대의 모습을 즐기는 군산 관광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고 있다. &lt;br /&gt;
&lt;br /&gt;
== 역사 ==&lt;br /&gt;
[[경술국치]] 1년 전인 1909년([[순종(대한제국)|융희]] 3), 우치다(內田佛觀)을 위시한 일본 조동종(曹洞宗) 소속 승려들이 금강선사(錦江禪寺)란 이름으로 포교소로 개창하면서 시작되었다. 1913년에 현위치로 이전하면서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다. [[일제강점기]] 동안은 조동종 소속 사찰로서 이름을 금강사(錦江寺 긴코지)라 하였다.[* 지금도 동국사 입구 석주에 금강사(錦江寺)라는 명문이 한자로 남아 있다. 이외에도 ○○ 9년이라는 연호 표기와 시주자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일본과 관련된 부분은 모두 끌로 깎아 파내서 지워버렸다. 시기상 연도는 [[쇼와]] 9년으로 1934년이고, 시주자도 한국인 노 아무개의 이름만 남아 있고 일본인 이름은 지워진 상태다.] 군산시에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으므로, 이들 일본인 신자들을 위한 사찰로 기능하였다.  &lt;br /&gt;
&lt;br /&gt;
[[파일:attachment/DGtemple02.jpg]]&lt;br /&gt;
1920년 후반의 모습.&lt;br /&gt;
&lt;br /&gt;
하지만 [[광복]] 이후 승려들을 포함하여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사찰은 [[미군정]]에 의해 압수되었다. 곧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되었다가 1955년에 전라북도 종무원에서 매입하였다. 1970년에 당시 주지였던 승려 남곡(南谷)이 이름을 동국사로 개명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로 증여하였다. &lt;br /&gt;
&lt;br /&gt;
그 후 1990년대 [[조선총독부]] 건물을 식민지 잔재 청산을 위해 철거한 [[김영삼]] 정부는 일본식으로 건축된 사찰들이 아직 국내에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중 하나였던 동국사의 철거를 검토하였다. 그러나 이 절은 조계종의 사유재산이라서 철거보상을 해줘야 했는데 그 비용 3억원 때문에 하지 못하였으며 그 이후로는 철거 여론도 잠잠해졌다. 2003년에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다.&lt;br /&gt;
&lt;br /&gt;
== 건축물 ==&lt;br /&gt;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건물로, 정방형 단층팔자지붕 홑처마 형식의 [[에도시대]](江戶時代)양식이다. 외관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색이 차분해서 정갈한 느낌을 준다. 지붕물매는 75도의 급경사를 이룬다. 지붕의 각도가 75도라서 기와는 못질을 해서 고정시킨다. &lt;br /&gt;
&lt;br /&gt;
건물 외벽에 미서기(미닫이)문이 많은데 이는 습한 일본기후의 특성이 반영된 일본 건축기술로 건축되었기 때문이고,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한국 건축|전통 한옥]]과는 구조나 외형에 있서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처마 밑만 보더라도 [[서까래]]는 그저 평행하고, [[공포]]가 매우 단순하여 밋밋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에도시대의 건물은 서까래와 공포는 거의 장식이고 실제 구조와는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구조는 법당 천장위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볼 수 없다.&lt;br /&gt;
&lt;br /&gt;
공간 구조 역시 다른데, 요사채는 한국 사찰과 달리 복도를 통해 법당과 요사가 연결되어 있다. 법당에 들어갈 때는 대웅전의 문이 아니라 복도의 문을 통해 들어간다. 법당 내부는 신발을 신고 들어올 수 있는 정면의 현관과 절을 할 수 있는 외진, 부처상이 놓이는 내진으로 구분되는 일본식 절의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외진과 내진 사이에는 [[란마]](欄間)라는 통풍창이 있고, 그 아래에는 미닫이문틀이 남아 있는 것을 봐서는 원래 미닫이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동국사 대웅전을 수리하면서 일본식 기와가 필요했기에 수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수입은 안된다면서 제동을 걸었기 때문에 결국 한국에서 일본식 기와를 만들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하다가 전남 강진에서 만들게 되었다. 비용은 수입의 두배가 들었다고 한다. ~~[[무역]] 필요성의 예 쯤 되려나….~~ ~~국세지출이 2배로 늘었다는 이야기인데..정신이 있는건지..~~&lt;br /&gt;
&lt;br /&gt;
참고로 원래 지붕 용마루 양 끝에 있던 것으로 보이는 샤치호코상[* 몸은 물고기, 머리는 호랑이 모양의 상상의 동물. 화재를 제압한다는 의미. 한국의 치미와 비슷하다.]이 지금은 동국사 현관 옆 밖에 놓여져 있다. 언제 내려졌는지는 [[추가바람]].&lt;br /&gt;
&lt;br /&gt;
법당 옆에는 종각이 하나 있는데, 종각을 둘러싼 석불들[* 32면 관세음보살상과 12지 수본존 석불상이다. 맨 앞에는 아이를 안고 있는 자안 관세음 수본존불상이 있으며, 그 뒤로 중생 교화를 위해 근기에 따라 서른 두가지 모습으로 형상화하였다. 밀교에 기반한 풍습이라고 한다.] 역시 일본에서 가져온 것이다. 종 역시 전형적인 일본식 종이다. [[교토]]에서 주조되었다. 종에서 금강선사라고 씌어진 글을 확인할 수 있다.[* 여담으로 이 절에 새겨진 명문에는 일제와 시주자들을 찬양하는 씁쓸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lt;br /&gt;
&lt;br /&gt;
== 기타 ==&lt;br /&gt;
 * 대웅전 뒤로 돌아가면 대나무 숲과 요사채 안쪽의 아주 작은 정원 등을 볼 수 있다. &lt;br /&gt;
&lt;br /&gt;
 * 대웅전 뒤에는 눈이 허연 개도 한마리 있는데, 이름은 동백이라고.&lt;br /&gt;
&lt;br /&gt;
 * 동국사 진입로에는 돌을 쌓아서 만든 석축이 있는데, 지그재그형으로 쌓여져 있다. 이는 일본식의 석축 쌓기로, 군산 시내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다.&lt;br /&gt;
&lt;br /&gt;
 * 우리나라가 해방된 이후, 조계종에서 이 절을 인수할 때 이 절에는 한국에서 살던 일본인들이 조상들의 뼈를 모신 납골당이 있었다. 그런데 이를 철거하면서 그곳에 있던 수많은 일본인들의 유골가루를 죄다 강에 뿌려버렸고,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인들이 '''울면서 찾아와 절 마당의 흙을 유골가루 대신 퍼간 실화'''가 있다....)&lt;br /&gt;
&lt;br /&gt;
[[분류:절]] [[분류: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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