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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두두리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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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3T23:27:5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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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8일 (토) 16:35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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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8T16:35:2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분류:설화]]&lt;br /&gt;
豆豆里&lt;br /&gt;
&lt;br /&gt;
[[신라]]-[[고려]] 시대의 목신(木神). 두두을(豆豆乙)이라고도 불린다.&lt;br /&gt;
&lt;br /&gt;
이 두가지 이름은 '을'이 보통 'ㄹ'받침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면 쉽게 연결을 알 수 있다. '두둘'이라고 부르는데, 뒤에 인칭을 나타내는 '-이'가 붙으면 '두둘이'→'두두리'가 되는 것이다. 乙은 '리'의 음차로도 자주 쓰였다.&lt;br /&gt;
&lt;br /&gt;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경주시|경주]] 남쪽 10리에 왕가수(王家藪)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목랑(木郞:木神)인 두두리를 제사지냈다고 한다. 두두리 숭배의 시초는 [[비형랑]]이라고 하는데, 비형랑 설화가 주로 기록된 [[삼국유사]]에는 이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으나 신승동국여지승람에서는 &amp;quot;비형랑 이래로 믿었다.&amp;quot;는 표현이 있어 두두리와 비형랑의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lt;br /&gt;
&lt;br /&gt;
[[고려사]]에도 두두리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고려]]시대의 [[이의민]]도 두두리를 숭배했다고 한다. 이의민은 글을 알지 못하고 무당을 믿어서, 집에 신당을 짓고 두두리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집에서 모셨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어느날 두두리가 갑자기 통곡을 하고, 이의민이 놀라서 묻자 대답하기를, 자신이 지금까지 이의민의 집을 잘 수호해왔으나 이제 하늘이 재앙을 내리기로 결정하여 더 이상 이의민을 보호해줄수 없고 자신도 의지할 곳이 없어져서 슬퍼져서 운다고 대답했다.&lt;br /&gt;
&lt;br /&gt;
얼마 후 이의민은 멸망했고, 관리들은 사당에 그려진 두두리 그림을 제거해버렸다고 한다.&lt;br /&gt;
&lt;br /&gt;
또 [[신승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 고종 18년 [[몽골 제국]] 원수 철례탑이 고려를 공격해 왔을때, 경주에서 목랑(두두리)의 말이라면서 아뢰어 왔는데, 두두리가 적진에 적과 싸우러 와 있으니 병기와 말을 보내라고 말하고 충성심이 담긴 시 한수도 지어 보냈다.&lt;br /&gt;
&lt;br /&gt;
[[최우]]가 그것을 믿고 사적으로 병기와 인마를 그림으로 그려 내시 김지석을 시켜서 보내주었다. 그 후 두두리의 효험이 없어졌다고 한다.&lt;br /&gt;
&lt;br /&gt;
[[KBS 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는 신선 전문배우인 전무송이 연기했다. 초반부인 30회에 등장하여 최후반부인 145회에 퇴장했으니 무인시대 등장인물 중 가장 오랫동안 등장한 인물이기도하다.&lt;br /&gt;
&lt;br /&gt;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승려가 자신을 두두을이라 칭하며[* 이와 별개로 목신 두두을의 우상 또한 이의민의 소지품으로 등장한다.] 신라 부흥을 꿈꾸는 면모를 보인다. 이를 위해 이의민 앞에 근근히 나타나 조언을 하면서 최종적으로 이의민이 [[역성혁명|고려를 무너뜨리고 멸망한 신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허나 이의민이 고려의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오르면서 신라부흥의 뜻을 망각해 그의 의도는 점점 무산되어 가고,[* 여담으로 김사미 · 효심의 난을 주도한 효심과 김사미, 그리고 휘하 세력은 이의민을 위해 두두을이 육성한 비밀결사로 나온다. 그리고 효심이 이의민이 신라를 부흥시킬 생각이 없다고 판단하여 독자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나온다.] 결국 미타산에서 [[최충헌]] 형제에게 이의민이 죽음으로서 모든 것이 끝난다. 이후 이의민의 시신을 수습한 후 잠수탔다가 경주에서 농민봉기를 일으킨 후 (1202년 이비, 패좌의 난으로 보인다. ) 진압 당하고 박진재에게 145회에서 죽는다. 그러나 죽기 전 박진재에게 최충헌이 난신적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여 박진재가 최충헌의 대의를 의심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끝내 박진재는 최충헌에게 반기를 들고 만다.&lt;br /&gt;
&lt;br /&gt;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경주시|경주]] 지방의 토속신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몽골의 침입으로 경주 지방이 황폐화 되면서 신앙도 소멸한 것 같다. [[도깨비]]의 기원으로 보는 설도 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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