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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두막루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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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4T00:28:15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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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8일 (토) 16:36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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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8T16:36:4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include(틀:한국의 역사)]&lt;br /&gt;
[include(틀:만주의 역사/고대)]&lt;br /&gt;
&lt;br /&gt;
||&amp;lt;-2&amp;gt;&amp;lt;:&amp;gt;&amp;lt;tablealign=right&amp;gt;https://41.media.tumblr.com/9de2124d03f03b8a18f6a17709c06d27/tumblr_o3p4bv63LR1sqk8veo6_r1_540.png?width=350||&lt;br /&gt;
||&amp;lt;-2&amp;gt;현재 지도의 측정 값은 전라남도에서 두막루까지의 거리는 [br]약 1,290.89 km(3천리,3284里)[* 제주도를 제외한 경우임]가 나온다.||&lt;br /&gt;
||&amp;lt;:&amp;gt;국호||두막루(豆莫婁)||&lt;br /&gt;
||&amp;lt;:&amp;gt;위치||만주 북부 ||&lt;br /&gt;
||&amp;lt;:&amp;gt;수도||알수 없음 ||&lt;br /&gt;
||&amp;lt;:&amp;gt;정치체제||군주정으로 추정 ||&lt;br /&gt;
||&amp;lt;:&amp;gt;국가원수||왕(王) ||&lt;br /&gt;
||&amp;lt;:&amp;gt;존속기간||5세기 말엽? ~ 8세기 초엽?||&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달말루(達末婁), 대막루(大莫婁), 대막로(大莫盧)라고도 한다. 과거 [[만주]] 북단에 위치했던, (북)[[부여]]의 후계 국가로 알려져 있는 국가이다.&lt;br /&gt;
&lt;br /&gt;
지명이나 인명 뒤가 ~루자로 끝나는 것은 부여와 [[고구려]], [[백제]] 등 [[만주]]와 [[한반도]]에 퍼져 있던 부여계 국가들의 언어적 특징 중 하나이다. [[중국]] 학계에서는 고구려 관직명인 대막로와 발음이 연관성이 보인다며 여기서 국호가 나온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lt;br /&gt;
&lt;br /&gt;
기록 상으로는 [[송화강]] 이북의 소흥안령 지방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막루가 사료의 기록대로 '''정말 부여의 후계 국가가 맞다면 [[한국사]]상 가장 최북단에 위치한 나라 중 하나이다.'''[* 다르게 말하면 두막루가 있던 시절은 두막루 외 기타 한국의 역사적 국가들을 포함해서  한민족의 최대 영토 시절이다. 다만 두막루는 커녕 당시 남쪽에 있던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등은 서로 동족 의식이 없진 않았지만 거의 없었고 애초에 두막루부터가 북쪽에 영토 자리 잡았을 뿐 별로 눈에 띄는 나라도 아니었기에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만주 서북단의 대흥안령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는 [[고리국]]([[탁리국]])도 엄청나게 북쪽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고리국은 신화 속의 국가라 실체가 불분명하고 위치비정도 애매하다. &lt;br /&gt;
&lt;br /&gt;
몽골계와 언어가 같다는 기록이 있고, 멸망 이후 몽골로 이주된 흔적이 있는 등 몽골과도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다.&lt;br /&gt;
== 역사 ==&lt;br /&gt;
[[위서]] 두막루전[* 그런데 두막루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는 [[위서]] 두막루전의 내용은 [[삼국지]] 동이전의 기록을 거의 복붙하다시피 한 것이라 사료의 신뢰성이 의심되기도 한다. 기존 학계에서는 두막루가 부여계가 아니라 단지 부여계를 자칭했을 뿐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최근 일부 학자들은 부여계가 맞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긴 한데, 실제로는 아래 써 있다시피 학계에서도 인지도가 듣보잡인지라 논쟁은 그냥 정체 상태... --기록이나 유물이 많이 있어야 논쟁을 하든 말든 하지--]에 의하면 5세기경 북부여가 [[물길]] 또는 [[고구려]]에게 쫓겨가 성립된 나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이]]의 땅 중 가장 평평한 곳에 위치하여 오곡에 적합한 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군장은 모두 여섯 가축의 이름으로 관직을 하고 형벌은 엄했다고 한다. 풍속은 음란하지만, 특히 투기하는 부인은 미워하여, 투기하는 자는 죽이는데, 시체를 그 나라 남쪽 산 위에 버리는데, 여자 집에서 이를 얻을 수가 없다. [[소]]나 [[말]]을 바치면, 이를 얻을 수가 있다. 혹은 말하길 본래 근본은 '예맥'의 땅이라 한다.&lt;br /&gt;
&lt;br /&gt;
&amp;gt;開元十一年, 又有達末婁․達姤二部首領朝貢. '''達末婁自言北扶餘之裔, 高麗滅其國''', 遺人度那河, 因居之, 或曰他漏河, 東北流入黑水. 達姤, 室韋種也, 在那河陰, 涷末河之東, 西接黃頭室韋, 東北距達末婁云.&lt;br /&gt;
&amp;gt;개원(713~741) 11년에 또 달말루와 달구 등 두 부락의 수령들이 조공하였다. '''달말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로서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처하게 되었는데 혹은 타루하라고 하는 물줄기가 동북쪽으로 흘러 흑수에 유입된다 하였다. 달구는 [[실위]]의 종족으로 나하의 남쪽, 동말하의 동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황두실위와 접하며 동북쪽으로는 달말루에 이른다고 하였다. &lt;br /&gt;
&amp;gt;----&lt;br /&gt;
&amp;gt;[[https://zh.wikisource.org/wiki/%E6%96%B0%E5%94%90%E6%9B%B8/%E5%8D%B7220#.E5.80.AD.EF.BC.8C.E6.97.A5.E6.9C.AC|신당서 권 220]][* 관련 주소 클릭 후 高麗滅其國 를 검색하면 된다.]&lt;br /&gt;
&lt;br /&gt;
이들은 [[당나라]]에도 조공했기 때문에 당나라 시기의 열전에도 남아있다. 헌데 무슨 이유인지 수·당이 만주를 엄청 갈궈대던 6세기 말부터 7세기까지는 이들의 조공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때문에 이시기에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조공 기록이 8세기 초반까지 지속되다 사라지기 때문에 이쯤에 멸망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8세기 초반, 때마침 발해 무왕과 [[흑수말갈]]이 충돌하던 시기이다. 두막루의 정확한 위치는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바가 없지만 발해와 흑수말갈 사이에 끼어 있다고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보다 두막루를 연구한 내용 자체가 손가락으로 셀 정도지만...] 멸망 이후 실위와 함께 [[몽골]] 지방으로 이동하면서 그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실위]], [[고막해]], [[거란]]과 같은 말을 썼다는 기록으로 봐선 몽골 지방으로 이동 후 몽골계 민족들에게 동화된 것 같다.&lt;br /&gt;
&lt;br /&gt;
영토는 사방 이천리로 서쪽에 [[실위]], 남쪽에 [[말갈]]이 있고 동쪽으로는 바다에 접한다는데, 바다라는 게 [[아무르강]]인지 [[오호츠크해]]인지 [[동해]]인지 --며느리도-- 아무도 모른다. [[책부원귀]] 외신부 조공조에 의하면 당나라 현종 개원 12년(724년)에 달말루의 대수령 [[낙개제]](諾皆諸)가 와서 조공했다고 한다. 아마 낙개제는 기적적으로 전해지는 두막루의 유일한 인명인 것 같다.&lt;br /&gt;
&lt;br /&gt;
== 인지도 ==&lt;br /&gt;
대중적인 인지도는 그야말로 처참하다. 대체로 대중적인 인지도라는 게 국사교육 즉, 국사교과서 또는 국사 관련 시험에 등장하느냐 마느냐로 좌우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나무위키에서도 [[틀:한국의 역사]]에 두막루가 있었으나 저명성 부족과 한국사 여부 불분명으로 틀에서도 제외당했다. 아주 예외적으로 [[화랑세기]]의 미실[* 최근 화랑세기가 위서라는 견해가 많으니 유의하자.]같이 국사교과서에 등장하지 않아도 대중매체의 상업적 흥행 덕에 인지도를 확보하기도 하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미실같은 경우는 그나마 [[선덕여왕]]이라는 이름 하에 나와서 그만큼 알려진 것이지 아예 주인공을 미실로 놓고 '미실'이란 사극을 만들었다면 결과는 미지수이다.] 어차피 대중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역사물은 그 역사적 소재가 어느 정도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lt;br /&gt;
&lt;br /&gt;
역사 애호가들 사이에선 부여를 계승한 만주의 정체불명의 신비한 나라 정도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을까? &lt;br /&gt;
&lt;br /&gt;
참고로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두막루의 틀/한국사 잔존 여부와 두막루가 부여계 국가인가 아닌가로 엄청난 --[[키배]]--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lt;br /&gt;
&lt;br /&gt;
== 관련 연구 ==&lt;br /&gt;
워낙 알려지지 않은 나라여서 연구가 겨우 이것밖에 안 된다. ~~안습~~&lt;br /&gt;
=== 한국 ===&lt;br /&gt;
 * 노태돈, 〈부여국의 강역과 그 변천〉, 《국사관논총》 제4집, 국사편찬위원회, 1989년&lt;br /&gt;
 * 김정배, 〈두막루국 연구: 부여사의 연결과 관련하여〉, 《국사관논총》 제29집, 국사편찬위원회, 1991년 12월&lt;br /&gt;
 * 박경철, 〈부여사 전개에 관한 재인식 시론〉, 《백산학보》 제40호, 백산학회, 1992년&lt;br /&gt;
 * 干志耿, 김영수(번역) , 〈고대 탁리 연구〉, 《백산학보》 제44호, 백산학회, 1994년&lt;br /&gt;
 * 유태용, 〈두막루국 흥망사 연구 시론〉, 《백산학보》 제70호, 백산학회, 2004년 12월&lt;br /&gt;
 * 강인욱, 〈삼강평원 곤토령⋅봉림문화의 형성과 물길⋅두막루⋅말갈의 출현〉, 《고구려발해연구》 제52집, 고구려발해학회, 2015년&lt;br /&gt;
=== 중국 ===&lt;br /&gt;
 * 溤家昇, 〈豆莫婁國考〉, 《禹貢》半月刊 7卷 1,2,3 合刊, 1937&lt;br /&gt;
&lt;br /&gt;
[[분류:국가(8세기)]] [[분류:만주의 역사]] [[분류:원삼국시대]][[분류:부여]]&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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