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91%90%EB%B4%89</id>
		<title>두봉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91%90%EB%B4%8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91%90%EB%B4%89&amp;action=history"/>
		<updated>2026-05-13T23:17:21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91%90%EB%B4%89&amp;diff=71129&amp;oldid=prev</id>
		<title>2017년 1월 28일 (토) 16:37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91%90%EB%B4%89&amp;diff=71129&amp;oldid=prev"/>
				<updated>2017-01-28T16:37: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909/1054561296.png&lt;br /&gt;
본명 : 르네 마리 알베르트 뒤퐁(René Marie Albert Dupont)&lt;br /&gt;
한국명 : 두봉(杜峰)&lt;br /&gt;
[[세례명]] : 레나도[* 올바른 세례명 표기는 레나토(Renatus). '[[르네]]'는 레나토의 [[프랑스]]식 베리에이션이다.]&lt;br /&gt;
&lt;br /&gt;
||||||||||||&amp;lt;table align=center&amp;gt; [[천주교 안동교구|역대 천주교 안동교구장]]  ||&lt;br /&gt;
|| 초임 ||←|| '''초대 두봉 레나도 주교''' ||→|| 2대 [[박석희]] 이냐시오 주교 ||&lt;br /&gt;
&lt;br /&gt;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Missions étrangères de Paris) 소속의 [[가톨릭]] [[선교사]]이자 [[주교]]. 1969년부터 1990년까지 [[천주교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은퇴했다.&lt;br /&gt;
&lt;br /&gt;
http://dongmun.csj.ac.kr/newbbs/bbs/table/photo/upload/12433273860.jpg&lt;br /&gt;
&lt;br /&gt;
1929년 9월 2일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태어났고, 1950년에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 1953년에는 [[성품성사|사제서품]]을 받았다. 이듬해인 1954년엔 [[한국]]에 파견되었다. 1969년에는 [[천주교 안동교구]] 설정과 함께 [[주교]]로 서품되며 초대 안동교구장에 임명되었다.&lt;br /&gt;
&lt;br /&gt;
그는 [[신학교]] 시절 노동사제가 되고자 생각했다. 당시에는 &amp;quot;[[신부]]들은 해로운 존재들이다. [[부르주아]]다. 일하지 않고 기도만 하면서 남의 돈을 갖는다&amp;quot; 라는 식의 [[공산주의자]]들의 반종교 활동이 활발했다. 이에 대하여 몇몇 신부들이 &amp;quot;교우들에게서 왜 생활비를 받아야 되느냐? 스스로 노동자처럼 살면 되지 않느냐?&amp;quot; 라는 생각으로 평일에는 노동하고 토ㆍ일요일에는 본당에서 사목하는 노동사제의 조직을 만들었다.&lt;br /&gt;
&lt;br /&gt;
두봉 역시 이 문제로 지도 신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나, 결국 계급투쟁 등 [[공산당]]의 주장에 알게 모르게 젖어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노동사제에 대한 생각은 접었다. 대신 그는 선교사제가 되기로 하고,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였던 [[한국]]에 파견된 것을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2달 반 동안 화물선을 타고 인천항을 통해 전쟁으로 참화가 된 한국에 입국한 그는 [[천주교 대전교구]] 대흥동성당 보좌신부, 대전교구청 상서국장,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등을 역임한 후 1969년 [[안동교구]]장에 임명되었다. 이때 그는 &amp;quot;외국인 [[선교사]]는 뒷바라지만 하면 된다. 10년 간 교구 자립기반만 닦고 물러나겠다&amp;quot;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였다. [[유교]]적 전통이 깊은 지역에서 대화와 상호존중을 통해 선교활동에 전력했고,[* 그의 신학석사 학위논문 주제가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었을 정도로, 그는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다. 그는 &amp;quot;유림들은 양심에 따라 인간관계를 아주 중시하는 성격을 지녔다. 천주교회가 추구하는 것이나 나의 가치관이 잘 맞았다. 내가 부딪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amp;quot; 고 말한다.] 특히 관할 구역 대부분이 농촌 지역이라 농촌문제와 농민운동에도 관심이 많아, 가톨릭농민회를 설립하고 농민회관을 건립하였다. 또한 상지전문대학(現 [[가톨릭상지대학교]]), 상지여중고 등 학교와 한센병 환자를 위한 다미안 의원 등을 설립하였다.&lt;br /&gt;
&lt;br /&gt;
약속한 10년이 거의 다 채워져가고 이미 사임서를 제출해 두었던 무렵인 1978년,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사건]], 이른바 [[오원춘 사건]][* 2012년에 일어난 살인 사건과는 전혀 관계없다. 요약하자면 군청에서 보급한 불량 씨[[감자]]에 항의하던 농민 오원춘이 갑자기 행방불명되어, 모진 고문 끝에 긴급조치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대대적인 저항이 일어났다.]이 발생하였다. 이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 눈엣가시 같았던 두봉 주교에 대한 사임ㆍ추방 압력이 거세졌다. 그러나 두봉 주교는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교구장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놓는 것과 이런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다.' 라며 맞섰고, [[교황청]]에서도 '지금 사임서를 수리하면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의 두봉 주교 추방에 협력하는 셈이 된다'는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의 의견을 받아들여 두봉 주교의 사임을 철회하였다. 결국 본의 아니게, 이 사건 후에도 10여 년을 더 재직하다가 1990년 교구장직에서 물러났다.&lt;br /&gt;
&lt;br /&gt;
그는 언제나 가난의 영성을 강조해 왔으며, 주교직을 상징하는 [[문장]](紋章)과 사목표어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은퇴 후, 행여 후임 교구장에게 부담이 될까봐 [[안동교구]]를 떠나 [[경기도]] [[고양시]] 행주외동의 조립식 가건물인 행주 [[공소]]에서 14년간 피정 지도 등을 하면서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달라는 안동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제의에 따라, 2004년 [[경북]] [[의성군]] 봉양면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손수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이를 인근 주민들과 나누어 먹는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피정과 강의에 항상 바쁘다고.&lt;br /&gt;
&lt;br /&gt;
{{{#!html&lt;br /&gt;
&amp;lt;iframe src=&amp;quot;http://player.vimeo.com/video/34198850?badge=0&amp;quot; width=&amp;quot;500&amp;quot; height=&amp;quot;281&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2011년 [[성탄절]] 아침에 [[KBS]]에서는 그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amp;quot;기쁘고 떳떳하게&amp;quot;[* 사목표어를 따로 내세우지 않는 그가 마음에 담아두는 표어라고 한다.]가 방송되었다. 그외에 [[평화방송]]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인 &amp;quot;미션&amp;quot; 에도 출연하였다. &lt;br /&gt;
&lt;br /&gt;
저서는 아니지만 2011년도 사순시기에 [[명동성당]]에서 했던 강론들을 모아 만든 강론집으로 내었다. 제목은 &amp;quot;가장 멋진 삶&amp;quot;. &lt;br /&gt;
&lt;br /&gt;
198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나폴레옹 훈장을 수훈받았으며, 2012년 제16회 만해실천대상을 수상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